한솔케미칼, ‘영업비밀’ 내세워 백혈병 사망 노동자 ‘외면’

강현정 기자 / 기사승인 : 2020-01-29 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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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요인 알 수 있는 ‘기초자료’ 안 내고 기일 지연시켜
법원, 업무상 재해 판결…“유해인자에 지속적으로 노출, 백혈병 발병”

 

 

[일요주간 = 강현정 기자] LG디스플레이·삼성전자 등에 전극보호제·세정제 등을 납품하는 한솔케미칼 전주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는 1차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박성규)는 지난 10일 “근로복지공단이 이모씨의 배우자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2012년 한솔케미칼 전주공장에 입사해 전극보호제, 세정제 등 전자재료 생산업무를 했다. 그는 2015년 31세의 나이로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8월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씨의 부인 김모씨가 2018년 1월 25일 이씨의 산업재해 여부를 다투는 행정소송을 걸었다.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김씨의 법정 대리인인 박다혜 변호사는 사업장이 취급물질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에게 알리는 물질안전보건자료(이하 MSDS)를 요청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한솔케미칼 측에 2018년 6월 15일, 7월 20일, 11월 26일 세 차례에 걸쳐 MSDS 제출을 명령했다. 또 2012년부터 2015년까지의 공정안전보고서도 요청했다.

 

그러나 행정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한솔케미칼과 산업안전보건공단·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행정법원의 명령을 ‘영업상의 비밀’이라며 거절한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산업안전에 관한 문서 요청에만 무려 11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된 것.

 

전문가들은 사업장의 MSDS 제출 거절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MSDS는 (사업장의) 질병 발생과 관련한 위험 요인들을 알 수 있는 기초적 자료다. 이를 제공받지 못하면 재판의 시작부터 막히게 된다”는 입장이다.

 

박 변호사 역시 한솔케미칼이 아주 기본적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기일이 지연되는 등 입증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솔케미칼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상·하반기로 나눠 사업장 내 유해인자를 측정하는 작업환경 측정을 실시했다. 백혈병의 주요 유해인자로 알려진 산화에틸렌, 벤젠, 1,3-부타디엔, 포름알데히드는 측정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환경부에서 측정해 공개한 사업장의 ‘2015년도 화학물질 배출량 정보’에 따르면 이 사업장에선 2015년도에 1,3-부타디엔 601㎏, 포름알데히드 40㎏을 배출한 것으로 돼 있다.

 

재판부는 “각 유해인자가 측정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어 있었다는 점을 보면 한솔케미칼이 이 사건 발병 이전에 각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 방지 조치를 적절히 취하고 있었는지 다소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또, “고인은 사업장에서 발생한 벤젠 등 백혈병 유해인자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했고, 백혈병의 악화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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