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국회 '크리스마스의 악몽'… 50시간 넘겨

김완재 기자 / 기사승인 : 2019-12-26 11:11:20
  • -
  • +
  • 인쇄
23일 밤 9시 49분 시작되어 26일 0시를 기해 종료, 50시간 11분
더불어민주당 6명, 한국당 7명, 바른미래당 1명, 정의당 1명 등 총 15명
▲ 국회는 50시간동안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이미지합성=뉴시스)

 

[일요주간 = 김완재 기자]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진행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23일 밤 9시 49분 시작되어  26일 0시를 기해 종료됐다.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의 무제한 토론을 시작으로 필리버스터가 개시된지 약 50시간11분만이다.

 

 필리버스터는 국회 내 다수파인 여당이 쟁점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의사진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다. 2012년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우리 국회에서는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실시할 수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선거법 개정안 우선 상정에 반발한 한국당의 무제한 토론 요구로 시작된 이번 필리버스터에는 더불어민주당 6명, 한국당 7명, 바른미래당 1명, 정의당 1명 등 총 15명의 여야 의원이 교대로 토론에 나섰다. 

 

선거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정의당도 참여했다. 이를 '맞짱 토론'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숫자로는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없는 소수 정당이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다수당이자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필리버스터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016년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진행한 192시간30분 간의 필리버스터 때도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당은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의사를 진행해놓고 그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토론을 하는 막장 코미디"라고 비판했다.민주당은 한국당의 일방적인 여론 선전의 장(場)이 되도록 놔둘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참여했다는 설명이다. 

 

▲ 피곤해하는 문희상 국회의장 (사진=뉴시스)

 

이번 필리버스터에서 발언 시간이 가장 길었던 의원은 한국당 박대출 의원으로 5시간50분을 기록했다. 

 

이어 한국당 권성동(4시간55분), 한국당 김태흠(4시간53분), 민주당 김종민(4시간31분), 한국당 주호영(4시간), 한국당 전희경(3시간41분), 민주당 최인호(3시간30분), 한국당 정유섭(3시간2분), 민주당 홍익표(3시간), 바른미래당 지상욱(2시간49분), 민주당 기동민(2시간37분), 민주당 강병원(2시간37분), 정의당 이정미(1시간52분), 민주당 김상희(1시간36분) 의원의 순으로 발언시간이 길었다. 최단 시간은 한국당 유민봉 의원으로 45분에 그쳤다.

 

지난 2016년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당시에는 이종걸 의원이 12시간33분 동안 발언하는 기록을 세웠다. 

 

사흘간 진행된 필리버스터에서 한국당은 4+1 협의체의 정당성을 지적하고 선거법 개정안을 '누더기'라고 비판했다. 문 의장의 의사진행 방식도 편파적이라고 문제삼았다. 반면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과 검찰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필리버스터로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한국당을 비판했다.

 

여야가 거칠게 충돌하며서 필리버스터가 진행된 50시간 동안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고성과 야유가 끊이지 않았다.

 

국회법에 이와 관련한 구체적 규정은 없지만 필리버스터 도중에는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이 원칙인 만큼 생리현상을 참아가며 토론을 이어가거나 일부 의원은 기저귀를 착용해 왔다. 이번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선 한국당 주호영 의원도 기저귀를 착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주 의원에 이어 두 번째 필리버스터에 나선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지난번에는 화장실을 허락해줬다고 한다"면서 2016년 2월 테러방지법에 대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당시 안민석 의원이 화장실을 다녀온 선례를 거론, 문 의장에 동의를 구한 뒤 화장실을 다녀왔다.

 

이를 놓고 한국당이 항의하자 문 의장은 "반말하지 마라. 의장이다. 그래도 당신이 뽑았다"며 "의장을 모독하면 스스로 국회 모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준(準)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 공방 과정에서 알바니아, 레소토 등 우리에게 낯선 국가들의 이름이 소환되기도 했다.

 

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나라가 전세계에서 세 나라가 있는데 베네수엘라, 알바니아 레소토"라며 "전부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비례대표 안 내고 지역구만 내다보니까 블랙코미디가 돼 한번 하고 폐지해 버렸다. 명색이 세계 10위 무역대국인 대한민국에서 독재국가, 후진국가인 베네수엘라, 알바니아, 레소토를 따라하기 창피하지 않냐"고 했다.

 

여야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놓고도 입씨름을 했다. 한국당 정유섭 의원이 "이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 집행정지를 해달라. (구속된지) 1000일이 된 여자 대통령, 뭐 그렇게 증오로 복수를 해야되겠느냐"고 하면서다.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정 의원은 "아직도 이렇게 전 정권 사람들에 대해 (복수를) 아직도 만족을 못하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여야의 설전은 필리버스터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15번째 주자이자 마지막 필리버스터 주자인 한국당 김태흠 의원은 선거법 개정안에서 선거권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진 점을 문제삼았다.

 

김 의원은 "고등학교가 정치 태풍지대로 변하고 전교조 교사들의 파행으로 학교 교육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만약에 잘못된 나쁜 후보가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돈이나 살포하는 등의 행태가 벌어지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냐"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만약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렇게 애들을 폄하하면 안된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느냐"고 따지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뭘 사과하라는 거냐. 사과 못한다"고 거부했고 입씨름이 이어지는 와중에 문 의장은 임시회 회기 만료와 필리버스터 종결을 선언했다.

 

▲ 필리버스터 종료 후 로텐더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기자회견 (사진=뉴시스)
 

각 당은 필리버스터 기간 동안 조를 편성해 본회의장을 지켰다. 

 

민주당은 24시간을 9명씩 6개조로 나눠 본회의장 당번조를 편성해 본회의장 사수를 당부했다. 한국당 역시 국회 로텐더홀 농성장을 지키는 조를 지역별로 편성해 해당 조가 본회의장을 오갔다.

 

한편, 한번 필리버터를 걸었던 안건은 다음 회기 때는 자동표결에 들어간다. 

 

선거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한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평화당+대안신당)의 의석(157석)만으로도 의결 정족수(148석)을 넘기기 때문에 본회의에서 표결에 들어간다면 가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