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상의 구상 새로운 경계를 열다”

이정훈@예술통신 / 기사승인 : 2013-05-27 08: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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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태호의 작업세계를 만나다]
▲ 낙하-1 @예술통신

작가 강태호의 작업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가 최근에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 속에 내재 되어 있는 변화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체험을 즐기게 한다. 90년대 미술학부 시절부터 이어온 인연이 근 20여년이니 그의 깊은 내막은 알지 못해도 곁에서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였다고는 할 수 있다. 작자의 기억에 그는 추상계열의 작가로 화단에 등단하여 줄곧 모노크롬(단색화) 회화를 전개하였다.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혹은 패턴이 등장하기도 하고, Toile을 무거운 덧칠로 감싸기도 하고, 때로는 극한 명도의 대비를 보여주며 거대한 화면의 깊이를 찾아가던 인상 깊은 작업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그의 Canvas엔 언제나 단색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마치 오래된 사진의 흔적처럼 혹은 차마 떨쳐버리지 못하는 낡은 습관처럼 그의 그림 속에 간직한 우울한 회색톤의 모노크롬은 언제나 한 작가를 기억하게 하는 그 만의 틀로 남아 있다.

▲ 낙하-4 @예술통신

1970년대 한국화단을 이끌던 모노크롬 회화 양식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구적 개념미술과 몰개성적인 미니멀리즘을 계승한 한국화단의 독자적 경향이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기존 질서의 붕괴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Informal로 이어졌고 실존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더불어 추상의 시대를 열었다.

이는 한국화단에도 고스란히 전해져 60년대 한국 추상의 계기가 된다. 그러나 전후 재건의 열기가 뜨겁게 타오르던 7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는 더 이상 방종한 예술계의 안이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불어 서양화의 무분별한 추종이란 자성의 목소리와 더불어 물질화 되어가는 사회를 향한 메시지의 성격을 드러내면서 한국화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백색의 모노크롬’이다.

현재 한국화단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박 서보나 이 우환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작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백색의 모노크롬은 이일이나 오광수등과 같은 비평가들이 지적하듯 비 물질화의 단계, 중성구조로서의 바래진 정서'의 표현이며 일본의 비평가 나카하라 유스케가 지적하듯 ‘한국적인 미의식과 정체성’을 가장 잘 획득한 일련의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 @예술통신

예술은 언제나 사회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는 일종의 유행과도 같은 성향을 지녔다. 그러나 그것은 유행 이라기보다는 한 시대의 정신적 경향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70년대 초에 태어난 강태호 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경향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더구나 홍익대학교라는 거대한 문화의 산실에서 수학을 하였던 작가의 배경은 선배 작가들의 고뇌와 시대적 경향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화폭에 표현되어진 감각적인 공간은 언제나 무한한 확산의 길을 걷고 있다. 급기야 2011년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작가의 작업이 신선한 반향을 몰고 오는 까닭도 자극적인 색체와 현란한 테크닉으로 이목을 모으고 있는 일련의 작가들 속에서 유독 고즈넉한 먹물의 향을 품기는 그만의 독특한 작업 세계에서 비롯하고 있다.

그의 최근 작업을 돌아보면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가 떠오른다. 중국의 대륙을 여행하며 기록한 ‘열하일기(熱河日記)’중 ‘산장잡기(山莊雜記)’에 들어 있는 글귀 ‘一夜九渡河’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며 감각기관을 통해 전해 오는 물소리가 사람의 마음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표현하고 있다. 추상의 벽을 깨고 구상을 넘나드는 작가의 작업과 정신세계는 태연자약 물소리 하나로 수십 개의 비유를 만들어 내던 박지원의 감각과 연계되어 있다.

거대한 물기둥이 대지를 가르고 중력으로부터 튕겨나간 물보라가 작은 물방울이 되어 허공으로 스며든다. 단색으로 처리된 화면은 마치 흑백 사진의 한 컷처럼 어느 순간의 격정에 머물러 있고, 꿈틀거리는 물기둥의 몸부림은 때론 거대한 폭포수처럼, 때론 작은 도랑의 맴돌이처럼 화면을 감싸며 낮은 소리로 엮여 있다.

여기에 마치 안개 인양 혹은 연기 인양 뿌옇게 흐려진 배경화면은 얼핏 산과 물이 만나는 다점(茶店)에 들어선 동양의 풍경이 되어 고스란히 서양의 Canvas로 옮겨 놓았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넉넉한 공간과 백색의 모노크롬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형상을 지녔으나 추상의 정신세계에 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식의 허와 실이 눈으로 판단되는 세상의 가치를 향해 조용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의 작업이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Superrealism적 경향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슈퍼리얼리즘은 주로 일상적인 사물을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슈퍼리얼리즘 작가들은 사진이나 슬라이드와 같은 문명의 도구를 사용하여 작업의 효과를 높이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로베르토 베르나르디(Roberto Bernardi)와 같은 작가는 섬세한 붓놀림을 통해 일상의 물건들을 마치 정물 사진처럼 담아내곤 한다. 그러나 작가 강태호의 그림 속엔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적인 감각과 현상이 담겨 있다.

심지어는 몰개성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화폭에 옮겨 놓거나 현실화 하는 일련의 슈퍼리얼리즘 작가들의 차가운 행위와도 일치하는 점을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몽환적이며 불분명하고 포근한 감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이 극사실적인 느낌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꿈을 꾸고 난 후의 느낌과 같다.

▲ 숲-3 @예술통신
예컨대 서양의 Cubism(입체파)이 숨겨진 시각을 표현하기 위해 입체적 희한함(bizarreries cubique)을 도입하여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려 하였다면 시각적으로 현실감이 떨어지는, 다 초점 방식의 펼쳐진 표현 방식을 통해 더욱 사물다운 사물을 표현했던 동양적 표현 방식의 차이라 할 것이다.

비록 작가 강태호의 작업이 시각적으로 극사실적인 표현과는 거리를 두고 있으나 그의 그림 속에 담겨진 공간과 주변의 사물을 내포하고 있는 뭉뚱그려진 모노크롬의 물방울들이 상상의 씨앗으로 작용하여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꽐꽐거리는 물소리를 듣게도 하고 시원한 한여름의 폭포를 연상케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강태호의 작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물의 도시 춘천에서 태어나 서울의 문화를 먹고 살아가는 한 작가의 삶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과 추억을 통해 그들의 세계를 만들어 가듯, 작가 또한 물에 대한 어린 기억과 추억에 어우러진 통찰의 시간이 그의 진지한 삶만큼 짙은 향을 풍기고 있다.

시인 정지용의 향수가 되어버린 충북 옥천의 작은 실개천이나 소설가 이효석의 강원도 봉평의 어느 메밀꽃 마을처럼 그의 작업 속에 등장하는 아련한 배경은 물안개의 도시 춘천을 닮아있다. 그러나 물방울이란 소재를 생각하면 왠지 낯설다. 항상 변화의 시도 앞에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어찌 보면 너무나 식상할 것 같은 물방울은 강태호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게 물방울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최근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파열하는 물방울들은 예사롭지가 않다. 대지를 뚫고 거대한 공간으로 치솟는 거대한 물기둥 속으로 잔잔히 부서지는 물방울의 잔해는 마치 누군가의 아픔처럼 혈(血)이 낭자하듯, 가슴깊이 묻어두었던 응어리가 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듯, 절규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방울의 디테일을 기대하고 그의 작품을 대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는 디테일이 없다. 단지 물방울 모양의 허상이 담겨져 있다. 더 이상 주변의 사물과 조우하지 못하는 물방울인 것이다. 회색 톤으로 일관된 그의 물방울은 그래서 더욱 깊은 맛을 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기대할 수 없는 물방울의 허무함이 그의 화폭에는 담겨져 있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 화백은 그의 물방울을 총에 맞아 죽어가던 사람들이 뿜어내던 아픈 기억의 흔적, 선혈이라 이야기한다. 의미 없는 죽어간 사람들의 흩뿌림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고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반짝이는 영롱함을 간직한 아픔인 것이다. 감히 그의 작품과 견준다면 강태호의 작품은 그마저 거부한 아픔일 것이다. 혈혈단신 서울이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했던 그의 아픈 청춘이 던져준 질문들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리도 어둡고 연기와도 같은 속절없는 물기둥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방울 작가 김창렬 화백은 말한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것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噓)’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다. 그러나 아직은 젊은 작가 강태호의 물방울은 앞으로 살아갈 날과 끝없이 이어질 삶의 고통을 대하는 젊은 작가의 새로운 희망이 되어 질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가 만들어갈 이야기들에 애착이 가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삶이 녹아 있는 작업을 통해 신선한 감동의 시간을 나 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정훈@예술통신



<프로필>

강태호 (Kang tae ho)

경력사항
1997: 홍익대학교 졸업
2000: 홍익대학교 동대학원 졸업
1997: 뉴코아 전국 미술학도 장학공모전 최우수상
1997~2000: 대한민국미술대전
1997~2000: 중앙미술대전
1998: 제 1회 개인전 홍익대학교 갤러리
동아미술제
1998: 미술세계대상전 우수상
2000: 제 2회 개인전 한전갤러리
2003: 자연.환경미술대전
2009: 아름다운 구속(서울남부지청검찰청)
2010: 겨울,자연속으로..(화천 LED 터널 전시관,화천)
2010: 오늘의 미술 소통과교감전(포스코 갤러리 기획 초대전)
2010: 제 3회 개인전 KASF (Korea Art Summer Festival),SETEC
2011: 아름다운 정원(포스코 신년기획초대전)
2011: 성산구락부전(부남미술관)2011: 제4회 개인전 KASF (Korea Art Summer Festival),SETEC
2012: 제1회 무리전 (홍익대,현대미술관)
2013: 영월국제조각,회화심포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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