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휴가에도 경제학이 숨어 있다

박용경 / 기사승인 : 2018-08-29 1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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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주간=박용경 기자] 우리나라 근로시간은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전문가들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휴식의 부족’이 노동생산성 저하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휴가철을 맞아 휴가의 경제적 의미와 파급효과에 대해 알아봤다.


‘휴가(holiday, vacation)’라는 말이 탄생한 것은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 유럽과 미국 등 산업화를 시작한 국가들에서는 하루 24시간 기계가 가동됨에 따라 근로자들이 하루 14~16시간씩 일하는 게 보통이었다.


일요일 휴무도 없이 주7일, 1년 내내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로자들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산업재해와 질병 등이 만연했다. 휴식 없이 일하면 생산량이 늘어날 줄 알았는데, 근로자들의 건강 악화와 장시간 근로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인한 부작용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 대공황 이후에야 ‘휴가는 내수’ 인식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휴일·휴가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은 체결 국가 근로자들에게 매주 일요일을 포함해 주 1회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기로 하는 조항을 담았다. 각국 정치 지도자들이 “근로자들에게 최소한의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70년 채택한 제132호 협약에서 “1년간의 근무에 대해 3주간의 휴가기간, 2주이상의 연차 유급휴가의 연속 사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187개 ILO 회원국 가운데 37개 선진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적절한 휴가와 휴식은 직장인들에게 단순 휴식을 넘어 적극적으로 삶의 질(QOL: Quality of Life)과 삶에 대한 만족도를 높인다는 데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휴일과 휴가가 ‘QOL’ 향상을 넘어서 내수경기를 진작하는 방편으로 인식되고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이 1930년대 세계 경제 대공황을 겪고 난 뒤였다.


적정한 수준으로 휴일과 휴가를 보장하는 것이 국민복지 증진과 연결될 뿐 아니라, 민간 소비를 늘리고 관광산업을 발전시켜 관련분야 일자리를 확대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 주요 선진국 vs 한국의 휴가문화


프랑스는 1년 동안 근무한 직장인에 대해 5주의 유급휴가를 법적으로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6개월 이상 근무하고 80% 이상 출근한 경우 연간 10일의 유급휴가를 보장하고 있고, 되도록 1~2주 연속 장기휴가를 다녀오도록 하는 ‘포지티브 오프(positive off)’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직장인들의 장기휴가를 권장해 침체된 내수경기 진작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한편으로 공휴일제도 변경을 통한 ‘골든 위크’, ‘해피 먼데이’ 제도를 도입해 관광수요 확대 및 관광지출 증대 효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은 사정으로 인해 자신의 휴가일수를 다 사용할 수 없는 경우 동료가 대신 쓸 수 있도록 하는 ‘휴가기부제(donated leave)’까지 운영하고 있다. 최근 두드러지는 추세는 각국 정부가 자국민들이 휴가를 국내에서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를 적극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은 위대하다(Holidays at home are great)’ 캠페인을 펼치고 있고, 호주는 ‘휴가 없는 삶은 없다(No Leave, No Life)’ 캠페인을 근로자 뿐 아니라 고용주들을 상대로까지 시행하면서 국내여행을 권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자국민의 국내여행을 활성화하기 위해 근로자와 기업이 여행경비를 공동 분담하고, 가입 근로자들에게는 관광시설 사용료 할인 및 우선 사용권 제공 등의 혜택을 주는 ‘체크 바캉스(ch?uevacances)’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로자 삶의 질 향상과 함께 내수경기 진작효과를 거두기 위한 조치가 적극 모색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내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6년 ‘국민여가활성화 기본법’을 개정,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직장인들의 휴가사용 실태를 조사하고 사용촉진 대책수립 및 시행 의무를 부과했다.


휴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 ‘눈치 보지 않고 휴가 쓰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한편 국내관광 활성화와 내수경기 진작 효과를 거두겠다는 정책목표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일-생활의 양립(work-life balance)’을 통한 복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럽 각국 및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노동집약적 압축 성장을 유지해 온 여파로 성숙한 휴가문화가 아직 조성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 주요 선진국의 휴가문화


- 미국 : ‘휴가 기부제’ 운영( 휴가 미사용 시 동료가 대신 사용) - 6개월


- 프랑스 : 1년 근무 시 연간 5주의 유급휴가 보장 - ‘체크 바캉스’ 시행(근로자-기업 경비 공동부담)


- 일본 : 6개월 이상 근무 시 연간 10일의 유급휴가 보장 - ‘포지티브 오프’ 운동(1~2주 연속 장기휴가 장려)


? 연차만 다 써도 ‘17조’ 소비증대 효과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해 내놓은 <휴가 확산 기대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에 국내 임금근로자들이 평균 7.9일의 연차휴가를 사용해 약 15조7402억 원을 국내외 여행과 문화·오락·스포츠에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국내여행을 통한 지출이 7조1581억 원으로 전체의 45.5%를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연구원은 직장인들이 평균 15.1일 부여된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한다면 약 16조7719억 원의 여가소비 지출이 추가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이에 힘입어 국내생산 29조3570억 원, 부가가치 13조1341억 원, 신규고용 21만8115명의 직·간접 경제효과가 유발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생산유발효과는 현대자동차의 2014년형 쏘나타 46만 대 생산이나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4 스마트폰 1670만 대 생산 때 발생하는 효과와 같다고 한다.


이런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정한 휴가 보장이 직장인들의 전반적인 삶과 직장생활, 나아가서는 가정생활 만족도까지 높인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직장인이 부여된 연차휴가를 100% 사용할 경우 전반적인 삶의 질 만족도가 2.78%, 직장생활 만족도 2.50%, 가정생활 만족도 2.08%, 건강상태 만족도는 0.72% 증가하는 효과가 기대됐다.


반대로 자유로운 휴가 사용을 제한하면 직장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 저하와 스트레스를 유발해 업무능률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개인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가 ‘충분한 휴식과 휴가가 생산성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떠받쳐주는 필수조건’임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한국형 체크바캉스(근로자 휴가지원 사업)’를 도입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능하다면 직장인들이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휴가철 국내여행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노력도 보완돼야 할 것이다. 다양한 국내관광 상품과 프로그램을 개발해나가는 노력도 더욱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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