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서독으로 파견된 간호사의 '레터 수기’

임옥진 / 기사승인 : 2018-11-07 16: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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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의 대한민국의 실상은 어떠하였을까? 수출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절대 가난에서 맹렬히 탈출하기 위한 조국 근대화의 시발점이었다. 이제, 선진국 진입의 목전에서 지난 세대를 회고해보면, 국민들의 지행합일적 헌신적 조국사랑은 부국강병의 초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만방에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힘찬 고동소리였다. 당시 서독에 간호사로 파견되어 노심초사 가족사랑과 불철주야 조국애를 불사른 ‘레터 수기’를 입수하여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지면을 생생하게 구성하였다.(편집자주)


기내에서 내려다 본 독일은 ‘단정하고 아름다워’


이전 우리 방을 생각하면 지상천국에 온 느낌이


● 첫 번째 편지-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불초 옥진이는 예정보다 이틀 빨리 비행기를 탑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저에게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김포 공항의 송영장엔 수많은 인파로 가득합니다.


6일 밤 9시 5분 비행기 트랙에 올랐어요. 맨 먼저 과자가 왔는데 그건 아마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쥬스가 오고 그리고 식사를 한 후 태평양 상공을 날으며 푹 한잠 잤어요. 듣던 말과는 달리 얼마나 상쾌하고 안락한지 몰라요.


오를 때 조금 그리고 내릴 때 귀가 좀 아플 정도예요. 다른 땐 가는지 안가는지 방안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안락했어요. 8시간 후 알래스카에 도착, 기내에서 알래스카의 그 설경 표현할 길 막막했어요.


알래스카 땅에 내려 엽서도 사고 집에 엽서를 띄웠어요. 나중에 보니 우표를 부쳐야 하는데 깜빡 잊었어요!. 얼마 후 다시 탑승, 독일까지 9시간 걸린대요. 보니까 오르고 내릴 때만 과자를 주는군요.


그걸 먹으니 귀가 덜 아프군요. 식사하고 마시면서 북극의 가장 추운 곳이며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스칸디나반도를 구경했어요. 햇볕이 쨍쨍한대도 여전히 빙하와 눈으로 쌓여 있네요.


어머니! 아버지! 독일이 멀지 않대요. 독일이 내려다 뵙니다! 아름답습니다!! 마음에 들어요!!!그러나 무엇 하나 사람의 손이 안 들어간 곳이 없는 듯 반듯반듯 다듬어서 있어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없군요. 그만큼 독일 국민이 근면했다는 증거겠어요.


집들이며 빌딩들이 아주 띄엄띄엄 서있어서 설 곳 없을 만큼 빽빽한 서울보다 훌렁훌렁해서 좋군요. 1년이면 1달 정도나 햇빛이 날 정도라는데 안개처럼 보이는 스모그가 끼여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햇빛도 나고 보기 드믄 좋은 날씨라네요. 축복받은 나라예요.


여기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8시간이나 늦군요. 우리나라에서 오후 일텐데 여기 오니 아침 7시예요. 서독 대표들이 나와 간단한 환영식을 한 후 각 병원으로 배당됐어요.


어머니! 아버지! 저는 웨스트앤드(Westend)라는 병원에서 나를 초청한대요. 이 병원으로 이번에 5명이 오는데 1명은 8일에 온다고 해요. 1병동 기숙사에서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어요. 건너방에 같이 온 경기도 강화도 분이 기거하게 됐어요. 아곳 병원은 베를린 자유대학병원으로써 독일에서 두 번째 큰 병원이래요. 올 때 비행기 삯은 병원에서 전부 부담했대요.


기숙사 방도 웬만큼 마음에 들어요. 이제 3년 동안 지낼 수 있는 내 방이 생긴 거예요. 깨끗한 침대, 옷장, 찬장, 책상 겸 무슨 장이 합쳐서 셋. 책상, 그리고 테이블, 의자 둘, 쇼파 둘, 그리고 이중 창문엔 노란 커튼이 길게 드리워 있어요. 좁은 방에서 아홉 식구가 같이 잠을 자던 우리 방을 생각해 보면 지상천국에 온 느낌이 든답니다!!! (1970.5.7)


백화점의 카트에 물건담으면 카운터 순식간 계산


금방 먹을 수 있게 조리시간도 짧아 너무 편리해


▲ 동료들과 함께
▲ 동료들과 함께
▲ 중환자실에서 필자
▲ 중환자실에서 필자

● 두 번째 편지-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아버지! 하루 종일 시달리며 고단하신 몸으로 불초여식을 걱정하고 계시지나 않는지 모르겠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없는거나 마찬가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기며 과일이며 국을 끓여서 밥에 한 상 차려드린다면 맛있게 잡수실 텐데 눈물이 납니다.


여기서 잘 먹을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나서 목이 매여서 못 먹겠어요. 도대체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맛있게 잘만 먹으니 참...저도 이제는 식성이 좋아져서 지금은 잘 먹어요.


그건 그렇고 엊저녁 하루 밤 잤는데도 3~4일 지난 것 같은 느낌이네요. 주한 서독 대사관에서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찾아주셨더군요.


독일에는 외국인들이 많은데 비행기 삯까지 부담하면서 초청하는 곳은 한국뿐이라는군요. 그만큼 한국 사람이 신임을 얻은 거래요. 그러므로 한국인의 긍지를 가지고 일하래요. 무슨 일이 있을 땐 연락하라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군요.


우리들은 정부 초청이기도 하고 또 이전 간호원들보다 유리한 점이 많대요. 여기 수도 베를린에는 한국 간호원이 많아요. 이 병원엔 간호원이 총 1500명 정도라는데 한국 간호원이 우리 4명이 왔으니까 19명이 되나봐요. 그리고 한국 남자는 이 도시에는 소수에 불과해서 볼 수 없대요.


오늘도 날씨가 매우 좋군요. 5년 계약으로 4년 전에 온 언니가 수간호원의 지시 아래 우리를 안내하는데 버스를 타고 이름 있는 백화점에 갔어요.


버스는 주로 이층으로 되어 있군요. 컴퓨터 계산기로 착착 계산을 하고 돈이 들어있는 문이 단추를 꾹 누르면 열리고 그리고 또 닫혀지는군요.


백화점은 자동으로 된 에레베이터가 있고 그리고 올라가고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라는 층계가 항상 돌고 있어서 발을 딛고 올라서서 가만 있으면 올라가고 또 내려오는 거예요. 우리나라 조흥 은행에는 이와 똑같은 에레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층계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이전에 200마르크(16000원)을 선불해 주더군요. 우선 필요한 것 좀 사기위해 썼어요. 다음 주 화요일까지만 병원에서 식사를 하고 우리 스스로가 해먹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릇과 음식이며 산거예요.


뭐든지 편리할 뿐이예요. 백화점엔 철사로 만들어진 바구니(현재 한국의 카트)를 밀고 다니면서 갖고 싶은 물건을 다 추려 담아서 카운터로 가서 셈하는 건데 정찰제로써 물건마다 가격표가 전부 붙어있네요.


무엇 하나 자동 계산기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군요. 카운터에서도 순식간에 계산이 돼서 지불하면 봉지에 담아 가져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그 많은 물건을 살려면 여기 가서 한참 흥정하고 싸고 주고받고 또 저기 가서 그렇게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정말 뭐든지 편리하군요.


우리나라에선 식사도 부엌에서 2시간 내외를 일해야 밥을 먹고 그러는데 여기는 조리하는데 조금의 시간도 걸리지를 않아요. 금방 먹을 수 있게 조리되어 나오니까요.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셔야 해요. 정희, 영희, 병환이, 옥희, 경선이 모두 잘 있지? 여기 언니는 혼자 재밌게 지내고 있다. 오빠와 올케언니도 안녕하시겠지요?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수습기간이 석 달이예요. 그 석 달 동안은 견학과 공부하는 거예요. 일주일 후쯤 시작한다는군요. 이 기간은 일하지 않지만 월급은 평소와 같이 나온다는군요. 그럼 내내 건강하시고 안녕하십시오. (Berlin에서 옥진 올림 1970.5.8.)


■ 임옥진 프로필


독일 베르린 자유대학병원 근무


英國 The Bible College of Wales 졸업


한국여자신학교 영어교수


<역저> ‘영적인 싱글’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되는 믿음’


‘당신의 교회는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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