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반세기 전’ 서독으로 파견된 간호사의 '레터 수기’(2)

임옥진 / 기사승인 : 2018-11-12 10: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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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대를 회고해보면, 국민들의 지행합일적 헌신적 조국사랑은 부국강병의 초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만방에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힘찬 고동소리였다. 당시 서독에 간호사로 파견되어 노심초사 가족사랑과 불철주야 조국애를 불사른 ‘레터 수기’를 입수하여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지면을 생생하게 구성하여 주말 연재한다.(편집자주)


아버지! 어머니! 돈 때문에…조금만 참아주십시오.


딸은 식성이 좋아 이제 독일 음식 제법 잘 먹어요.


● 부모님 전상서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아버지! 바쁜 시기가 어김없이 다시 돌아와 날마다 고되게 일하시겠죠? 건강하셔야만 됩니다. 무리하지 마셔요. 적당하게 일하십시오. 큰아버지 큰어머니께서도 별고 없으시지요? 당숙, 당숙모도 평안하신가요?


저는 아무 탈 없이 이곳 독일에서 행해지는 여러 수속에도 모두 임했고 이제 오늘부터 3개월 동안 괴테 인스티튜트 학생이 되어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오빠한텐 따로 편지 쓰겠지만 잘 계시죠? 아버지! 어머니! 돈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지요?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올케 언니도 안녕하시죠? 모두 궁금합니다. 정희, 영희, 병환, 옥희, 경선이 모두들 공부 잘하고 재밌게 지내고 있겠지?


그곳은 지금 아침 7시겠군요. 여긴 밤 1신데요. 제가 자려고 하면 엄마 아버지랑은 일어나시겠어요. 시시로 셈해 보고 있네요. 아버지 어머니 부디 돌아가는 날까지 무병하시기 바랍니다.


딸은 독일 양노원이나 정신병원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많은데... 미안하고 감사하게도 저는 의사와 간호사를 양성하는 좋은 대학병원에 와 있네요. 물건 값은 우리나라에 비교하면 너무 비싸지만 벨린에서 기거하는 한 이곳에 적응하는 수밖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이 정말 많아요. 우리나라도 여러모로... 사고방식도 문명도 생활수준도 하루 바삐 더욱 발전해야 할 텐데 초조한 마음이군요.


얼마 전에 옆방에 휴가 갔던 한국 간호사가 돌아와서 심심하지 않고 물심으로 도움 받는 것이 많네요. 밤엔 텔레비전도 함께 보고 음악도 듣고요, 먼저 온 언니들이 돌아가며 초대를 해줘서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정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집엔 비가 와야 할 텐데 농사일은 잘 진행되는지요? 여기 기후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고 질경이, 쑥부쟁이, 민들레, 개나리도 흡사하군요. 대도시 안에 수목이 그야말로 울창하고 새들 또한 어쩜 그렇게 많을까요?! 도심 한복판에 비둘기며 참새며 이름 모를 새들이 사람 옆에서도 달아나지 않고 먹이를 받아 주어먹고 있네요. 정말 여러모로 살기는 좋은 나라 같아요.


그건 그렇고 정희는 독일에 올 생각이면 와도 좋아. 그러나 학력을 더 쌓았으면 좋겠어. 공부는 어떻게 인가 할 수 있고 학력이 있대서 꼭 실력과 지혜도 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많은 서류들에 전부 기재해야 되고 프라이드도 있고 말이야.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그렇다면 혹시 편입을 할 수는 없는지 알아봐. 실력을 쌓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어. 아버지 어머니의 의견도 없이 이러쿵저러쿵하고 있군요.


어머니 아버지! 딸은 식성이 좋아 이제 독일 음식도 잘 먹어요. 쌀은 조그마한 봉지에 팔아요. 먹고 싶으면 한 끼는 밥 먹고 아침저녁은 빵 두 쪽씩만 먹어도 (영양가가 많아서인지) 배가 부르네요. 두 쪽으로 무슨 배가 부르냐고요? 걱정 마세요. 배고프면 알아서 더 먹겠지요? 하 하. 그럼 부모님, 식구들 그리고 큰아버지 큰어머니 모두 내내 안녕히 계십시오. (1970. 5. 21 Berlin에서 딸 올림)


전혀 다른 세계! 가슴 벅찬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먼저 온 언니들의 따뜻한 대접이 얼마나 고마운지


▲  필자가 근무했던 Westend Krankenhaus 대학 종합병원
▲ 필자가 근무했던 Westend Krankenhaus 대학 종합병원

● 오빠! 안녕하세요.


이제야 펜을 드는 미흡함을 용서해 주세요. 동생 옥진은 그 동안 생소하기만한 이국땅에서도 불편을 모르고 전혀 다른 세계의 새로운 사실들에 가슴 벅찬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집과는 왕래 있으셨는지요? 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시니 왕래 있었겠지 생각하고 늦장을 피워 이제 쓰네요. 이곳은 Westend Krankenhaus라고 대학 종합병원인데 이곳에서 3년 동안 근무하게 될 거예요.


베르린에서 가장 역사 깊고 두 번째로 큰 병원이래요. 이 병원엔 간호원이 1500명 정도라는데, 한국 간호원이 이번에 우리들 네 사람이 와서 모두 19명인가 봐요. 베르린은 저의 상상을 초월하게 아름답네요. 정말 살기 좋은 나라인 것 같군요.


여기 온 다음 날엔 200Mark(16000원 정도)를 선불해 주더군요. 19일까지는 수속을 받으며 먼저 온 어떤 언니 독일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노동청, 경찰청 등 관계 기관들을 방문해야 했어요.


우리 스스로 식사를 해 먹기 위해 이름 모르는 백화점들을 찾았었는데 참 편리하군요. 뭐든 정찰제로 속이는 법도 깎는 법도 없으니 편하군요. 바퀴달린 철사 바구니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카트)를 밀고서 빙 돌아 필요한 것을 말없이 담아가지고 카운터에 올려놓으면 착착 계산을 합니다.


전자계산기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어요. 항상 돌고 있는 에스켈레이터 계단이며 곳곳에 엘리베이터며, 도로 공사 등 노동하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희한해요. 뭐 하나 기계가 아닌 것이 없이 자동화 되어 있네요.


오빠! 지금 동생은 3개월 동안 괴테학교에 나가고 있어요. 수습 기간이죠. 20일부터 독일어 수업 재미있게 하고 있군요. 조금 먼 정신과 대학병원인데 버스를 두 번 타야 하는 곳이죠. 이곳 버스는 모두가 2층이군요.


차장이 필요 없고 운전사가 혼자서 단추만 그리고 계산기만 꾹꾹 누르고 앉아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항상 자리가 남아서 손님이 서 있는 것은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자리가 차면 태우지도 않는군요.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했고 발전하고 있지만, 차장이 스프링처럼 사람들을 버스 안으로 밀쳐 넣고 스프링처럼 사람들이 밀려 나오는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가 되어요.


먼저 온 언니들의 따뜻한 대접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군요. 각각 돌아가며 초대를 해서 우리나라와 독일에 대한 담소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하며 우리 명곡 엘피판들을 듣고 고향에 간 것처럼 즐거운 시간들도 가졌어요. 기후는 거의 같은데 조금 더 서늘한 것 같아요.


비는 하루 3-4분간씩 5~6번 오는 것 같아요. 맞지 않을 만큼 오는가 봐요. (여자들은 머리에 비 안 맞으려고 잡아당기면 접어지는 비닐 캡을 핸드백에 넣고 다니면 된데요). 젊은 사람들은 판타롱(폭이 넓은 바지)과 맥시(긴 치마)를 많이 입고 있고, 나이든 사람들은 거의 오버코트 같은 것을 입고 있어요. 한국은 지금 쯤 더울 텐데요.


4년 전에 온 어떤 언니의 도움으로 베르린 시내를 한 바퀴 두루 돌며 식물원 등을 구경했는데 어찌나 아름답던지 가슴이 벅찼어요. 도시 가는 곳마다 어찌 그리 수목과 수목에 꽃이 많은지...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라워요.


간단한 물건들은 돈을 넣으면 나오는 장치를 거리 곳곳마다에 해 놓았군요. 독일 사람들은 근무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우리나라는 밤 12시도 문을 열죠? 여기는 6시면 문을 닫네요. 토요일은 오후면 문을 닫고 일요일엔 모든 상점이 아예 문을 닫아서 돈 넣고 뽑는 이외에는 물건을 전혀 살 수도 없군요.


대도시 안 인데도 새들이 그렇게 많아 온종일 너무 시끄러울 정도군요. 도시 중심도로에 차들과 새들이 함께 사는 곳 베르린에서 이만 소식드립니다. 오빠 그럼 내내 몸 건강하세요. 올케 언니 많이 위해 주세요. (1970. 5. 27 동생 옥진 올림)


■ 임옥진 프로필


독일 베르린 자유대학병원 근무


英國 The Bible College of Wales 졸업


한국여자신학교 영어교수


<역저> ‘영적인 싱글’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되는 믿음’


‘당신의 교회는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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