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유안, 미나리! ‘쉼표 같은 영화’

수필낭송가 조유안 / 기사승인 : 2021-05-14 12:04:15
  • -
  • +
  • 인쇄
얘! 미국영화면 어떻구 ‘좋기만 하믄 되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잠시 그곳에 머물게 했던 쉼표 같은 영화
▲ 수필낭송가 조유안
● 에덴동산으로 보이지만 시골구석일 뿐

어린 데이빗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화면에 가득하다. 속눈썹을 깜빡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 남부 ‘아칸소’주 작은 시골마을에 한국인 가족이 이사 오며 시작된다. 차에서 내린 가족 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허허벌판 그리고 트레일러하우스라고 불리는 바퀴 달린 긴 집뿐이다.

어린 데이빗과 누나 앤은 낯선 환경이 흥미로운 듯 여기저기 둘러본다. 엄마 모니카는 망연자실해 서 있고 아빠 제이콥은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해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같은 장소에 있어도, 각자가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제이콥에겐 이곳이 꿈을 이루어갈 낙원, 에덴동산으로 보이지만 모니카에게는 고생길이 뻔히 보이는 시골구석일 뿐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 온 지 10년. 제이콥은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다. 10년 세월을 그의 말대로 병아리 똥구멍만 보며 일을 하는 것에 지쳤다. 미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 아칸소에서 한국 채소를 키우며 자신의 농장을 꾸리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그것도 50에이커의 아주 큰 농장을.

아무리 큰 농장을 꿈꾸어 봐도 당장 수입이 없는 그들은 이곳 부화장에서 맞벌이를 하며 농장 일을 병행해야 한다. 돌봐 줄 사람 없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해야 하는 처지다.

병아리는 태어나면 바로 감별을 해서 암놈은 살려두고 수놈은 폐기한다. 맛도 없고 알도 못 낳는 수놈은 사료만 축내는 쓸모없는 존재다. 수많은 수평아리가 폐기되어 굴뚝에 연기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 온 제이콥은 기필코 농장을 성공시켜 쓸모 있는 수컷이 될 것을 다짐한다.

모니카는 선천적으로 심장판막에 이상이 있는 아들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집 근처에 큰 병원이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 불확실한 꿈을 좇기보다 소득은 적어도 가족이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픈 아들과 착한 딸을 이런 촌구석으로 데려와 고생시키는 남편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태풍이 몰아치던 날 밤 그들은 쌓였던 감정이 폭발해 큰 싸움을 하고 만다. 둘의 생각은 화성과 목성만큼이나 멀다. 나는 누구 편도 들지 못한 채 마음이 복잡해진다. 제이콥도 모니카도 그 자리, 그 입장에선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올라온 두 개의 가지가 양극으로 갈라져 자랐을 뿐이라는 것을.

● 3대를 넘나드는 특별한 생활

극과 극인 의견 차이를 제삼자를 등장 시켜 엉성하게라도 봉합하려는 의도일까. 다음 날 아침 모니카는 너희들을 돌봐주러 한국에서 할머니가 오실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날씬한 모습에 허스키한 목소리.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 씨가 도착한다. 순자씨는 10년 만에 만난 딸이 허허벌판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천연스럽게 행동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사위에 대한 원망도 없다.

6.25 전쟁 중에 남편을 잃어 청상이 된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딸 모니카를 애지중지 키워 시집보냈다. 살림이 넉넉지 못한 줄 짐작은 했겠지만 트레일러에서 사는 것을 보았을 때 왜 가슴이 아프지 않겠는가. 딸이 속상할까 봐 ‘바퀴 달린 집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신파조가 없는 순자 씨. 멋지다.

뼛속부터 한국 사람인 순자 씨와 한국과 미국이 뒤섞인 제이콥과 모니카. 그리고 오리지널 미국 마인드를 장착한 앤과 데이빗. 3대를 넘나드는 특별한 생활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할머니와의 생활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요리도 쿠키도 만들 줄 모르고 화투 치며 욕이나 하는 할머니가 도통 할머니 같지 않다.

▲ 3대를 넘나드는 특별한 생활이 시작된다.

데이빗은, 맛있는 음식을 해 주기는커녕 텔레비전으로 레슬링만 보는 할머니가 미워서 ‘산에서 온 이슬 물’(마운틴 듀)을 가져다 달라는 말에 오줌을 싸서 ‘이슬 물’이라며 준다. 그 일로 아빠에게 혼쭐이 나지만 정작 화를 내야 할 할머니는 그깟 오줌 좀 마시면 어떠냐며 데이빗 편을 들어준다.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폴’을 고용해서 열심히 작물을 키우던 제이콥은 튼실하게 자라던 가지도 파프리카도 시들어 가는 것을 발견한다. 물을 끌어다 쓰던 지하수가 말라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제이콥은 아내 몰래 호스에 상수도를 연결해서 쓴다.

수돗물로 그 많은 작물을 키우려면 요금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확이 코앞인데 말라 죽일 수는 없다. 거래처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약속된 날짜에 내다 팔면 다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 거래를 취소하겠다는 전화다.

한창 작물을 수확하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거래를 취소하겠다는 전화다. 물값은 여전히 나가고 있는데 판로는 막혀버렸고 작물은 지금 수확하기 알맞은 시기다.

새벽녘, 희뿌연 농장에 제이콥이 서 있다. 그의 옆모습에서 가족의 앞날을 떠안고 가야 하는 가장의 고뇌와 무거운 어깨가 느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샌 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내 아들을 떠올린다.

내겐 지금도 어리기만 한데 아내와 어린 두 딸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제이콥과는 다른 시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아들인들 왜 어려운 일이 없었을까. 엄마에게 외국에서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 애에게 ‘얼마나 힘드니’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잘했다’ ‘우리 아들 대단하다’는 이야기만 한다. 내 말이 위안이 되고 잠시나마 어깨가 으쓱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랍장에서 옷을 고르던 데이빗은 서랍이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친다. 정성껏 치료해준 할머니는 저렇게 큰 서랍을 어떻게 들었냐며 ‘스트롱 보이’라고 칭찬한다.

데이빗이 태어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뛰지 마’였다. 데이빗은 항상 심장이 아픈 아이, 뛰면 안 되는 연약한 아이였다. 그런데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할머니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스트롱 보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은 말이다.

● “원더풀 원더풀 미나리!”

햇살 좋은 날, 개나리처럼 노란 블라우스를 입은 할머니는 데이빗의 손을 잡고 냇가로 산책을 간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뿌려 두었던 곳이다. 공들여 키우지도 않았는데, 보아주는 이도 없는데, 음식이 되고 약도 되는 미나리가 무성히 자라 있다.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치켜 올리며 외친다.

“원더풀 원더풀 미나리!”

‘잘못하면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엄마가 할머니에게 말하는 것을 엿들은 데이빗은 죽게 될까 봐 두렵다.

죽기 싫다고 말하는 데이빗. ‘걱정 마. 할머니가 너 죽게 안 놔둬’라고 위로하는 순자 씨. 처음으로 손자를 꼭 안고 잔 다음 날 아침, 순자 씨는 뇌출혈로 일어나지 못한다. 병원에서 퇴원하고도 말이 어눌하고 몸을 잘 쓰지 못한다. 아픈 엄마가 걱정인 모니카는 큰 병원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사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힌다.

오클라호마 한 병원에서 데이빗의 심장을 검사하는 날, 가는 김에 병원 근처 한인마트에 들러 판로를 개척해 보기로 한 제이콥은 잘생긴 놈들을 골라 상자에 넣는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병원 복도에서 모니카는, 당신 없으면 안 된다고 캘리포니아로 함께 가자고 말한다. 제이콥은 당신은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난 다 잃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시작한 것은 끝내야겠다고 대답한다. 그것이 아내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 말인지 알지 못한 채.

의사가 데이빗의 심장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잘 지내면 머잖아 다 낫게 될 것이라고. 이 장면을 보며 대속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대신 아파서라도, 대신 죽어서라도 손자를 낫게 하고 싶은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데이빗을 나아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

제이콥은 병원 근처 한인마트에서 계약을 따낸다. 그렇게 바라던, 아들의 심장이 좋아지고 판로도 찾았다. 이제 돈을 벌기만 하면 된다. 그동안의 시름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러나 문제는 모니카의 상처 받은 마음이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누었던 대화로 남편이 농장과 가족 중에 농장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상황이 좋으면 함께 살고 아니면 헤어지는 거냐고 묻는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래. 됐다” 제이콥의 눈빛에서 소통 단절의 안타까움을 본다. 애초에 엉성하게 봉합해둔 상처가 터져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아이들을 돌봐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는 처지가 된 순자 씨.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 창고에 흩어진 쓰레기를 모아 태운다. 드럼통 안에서 타던 쓰레기가 바람에 날려 풀밭에 떨어진다. 불은 삽시간에 번지고 몸이 불편한 순자 씨는 어찌할 줄 모른다.

집에 도착하면 짐을 싸서 헤어질 일만 남은 제이콥과 모니카. 집 근처에 오자 탄 냄새가 난다. 창고가 불타는 것을 본 제이콥은 필사적으로 작물을 밖으로 옮긴다. 모니카도 함께 뛰어든다.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창고 밖으로 피한 그들은 피땀으로 수확한 작물을 몽땅 태우는 거센 불길을 바라보며 서로를 보듬는다.

헝클어진 머리, 초점 잃은 눈, 실성한 듯 절뚝이며 멀어져 가는 순자 씨. 제법 먼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가 두 팔 벌려 할머니를 가로막는 데이빗.

“할머니 가지 마세요. 우리랑 같이 집으로 가요.”
아이들 손을 잡고 함께 돌아가는 순자 씨는 이제 정말 사랑받는 할머니가 되었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슬 맺힌 풀잎은 햇살에 반짝이고 희고 노란 꽃들 사이로 나비가 날아다닌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수맥을 찾아주는 사람과 함께 지하수를 찾아 나선다.

데이빗은 할머니와 손잡고 가던 미나리 밭으로 아빠를 안내하며 씩씩하게 앞장선다. 물 한 번 주지 않았어도 알아서 잘 자란 미나리. 제이콥은 ‘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찾으셨네’라고 말하며 미나리를 뜯는다.

‘늘 한결같은 밤 속삭이는 마음 어우러지네.
작은 발자욱 위로 한 방울씩 또 비가 내리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처럼 잔잔하고 마음을 적시는 노래 ‘레인 송’이 흐른다.

영화는 가족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순자 씨는 어찌 되었는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채 끝난다. 알려주지 않아도 관객은 안다. 그들은 헤어지지 않고 농장에 남아 열심히 살아가리라는 것을. 어디서나 뿌리내리는 미나리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제이콥과 모니카는, 바라던 것이 모두 이루어진 순간에 가장 불행했고 가진 것을 모두 잃은 순간에 가장 편안해졌다. 헤어질 일만 남았던 부부. 화재가 그들을 결속시켰고 한 걸음 더 성장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구원해 준 것은 어떤 절대자가 아닌 바로 ‘순자 씨’다.

‘미나리’, 잠시 그곳에 온 마음을 머물게 했던 쉼표 같은 영화다.

◑ PS: 이 영화가 미국 영화인지 아닌지로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 아카데미 스타 윤여정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얘, 미국 영화면 어떻구 또 아니면 어떠니. 영화가 좋기만 하믄 되지.”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