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가재산 ‘장례문화의 대대적인 변화상’(상편)

핸드폰 책쓰기 코칭협회 가재산 회장 / 기사승인 : 2021-06-16 16: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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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밤 10시 이전 짧은 시간에 조문
비참석 조문객들 ‘온라인 장례문화’ 확대경향

생전의 고인 ‘사진 액자 비치’ 긍정적 변화상
오랜인연 지인‧혈육과 ‘事前출판기념회’ 각별
▲ 장례문화 혁신의 일련의 흐름들을 고민하고 있는 ‘핸드폰 책쓰기 코칭협회 가재산 회장’
코로나 19로 정부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모임 규제로 조문과 장례 문화에도 불가피하게 대변혁의 조짐이 일고 있다. 이제는 전통적 장례문화에서 다양하게 진전되고 있는 장례문화의 새로운 대안과 변화상의 폭넓은 일련의 흐름들을 고민하는 특집지면을 마련했다.(편집자주)

● 코로나 19 장례문화 어떻게 바꾸고 있나? 두루 예시하여 달라.

▼ 2019년 말 촉발된 코로나 19가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불가불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장례문화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상주의 가까운 지인들이 발인 전 날 밤새 상주 곁을 지키며 슬픔을 위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집안의 경사(慶事)는 놓쳐도 조사(弔事)는 최대한 참여하는 것을 예의로 여기던 우리 경조사에 대한 인식도 코로나로 인해 직접 찾아가 조문을 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이해하려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같이 고스톱도 치고 술도 마시며 철야를 하는 일이 상주를 위한 최고의 예로 생각하기도 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같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머무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자 밤 10시 이전에 가능한 짧은 시간에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보통 사람들은 3일장이다. 공동묘지나 선산으로 가기도 했으나 요즘은 대부분이 화장장으로 가는데,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친인척이 아니라면 조문은 장례식장에서 끝난다. 상주가 고인을 입관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시간이 있다.

▲ 코로나19 유족들은 대부분 가족임에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때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유족들은 대부분 가족임에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한 시신은 화장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장례를 치르는 걸 기본으로 하고 있다. 부모가 돌아가셨음에도 자녀들까지 확진이 돼 장례식장 방문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주목할 일은 디지털 상조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고장은 물론 추모관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 우리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하여 주시고, 아울러 서양의 장례문화에 대해서도 코멘트 하여 달라.

▼ 우리가 유교적인 전통을 계승 및 발전시켜왔다면, 서양의 경우 기독교 종교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빈소를 차린다. 떠나간 이를 기리며 충분히 슬퍼하는 시간과 장소, 한 날 한시에 모이는 것이 어려운 조문객들을 위한 배려가 반영되어 있는 장례문화다.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문화임이 맞지만 사실상 고인의 종교와 상관없이 전통적인 장례 절차를 따르고 있다.

장례는 세계 각 종교의 세계관, 가치관, 윤리관, 인간관 등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이로 인해 민족, 문화,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장례 문화가 생겨나고 동서양 장례 문화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현대 동서양 장례 방법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그 바탕에 깔린 관념과 오랜 관습의 차이로 절차나 예를 표하는 방법 등이 다르다.

동양에서 삶은 잠시 머무는 것이며 죽으면 다시 되돌아간다고 여겼다. 죽음은 삶이 시작되었던 지점에서 출발하여 곡선의 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그 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죽음과 삶은 낮과 밤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윤회사상과 제사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전통 장례식에서는 광명의 상징인 흰 옷을 입었다.

반면, 서양에서는 죽음을 삶에 대한 이질적인 개념으로 보고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사상을 따라 제사 없이 추도식이나 추도 기도회로 진행한다. 검정색 상복을 착용하는 것으로 동서양장례 문화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동양에서도 검은 정장을 착용하는데, 이는 서양 장례 문화에서 흘러온 것임을 알 수 있다.

▲ 장례식장의 조문시 화환 문화에 대한 대안이 다각도로 제시되고 있다.
● 한국의 장례문화는 매장에서 화장으로 급속히 변했다. 다시 한 번 장례문화가 코로나 비대면 시대를 즈음하여 대혁신을 예고하고 있는데?

▼ 2021년 2월 화장률은 90.4%로 코로나 영향으로 지속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으로 인해 촉발된 죽음에 대한 인식이나 관련 장례문화는 앞으로 크게 변할 것임에 틀림없다.

첫째, 장레절차나 문상이 간소화가 진행될 것이다. 결국 한번 체험한 모든 문화의 변화는 ‘간소화’와 ‘편리함’으로 귀결된다. 3일장이 보통이지만 빈소의 개념을 축소하여 당일 장례 혹은 2일장이 보편화된다거나, 축소된 장례의 기간만큼 직접 찾아오지 못하는 조문객들을 위한 온라인 실시간 장례 시스템 확대 등이 예고된다.

둘째, 디지털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모바일로 부고 문자를 주고받고 사이버 추모관에서 조의를 표하고 모바일로 조의금을 보내는 디지털 상조 서비스가 일반화 되고 있다. 한국이 ICT 강국임을 보란 듯이 언택트 시대 장례문화를 바꾸고 있다. 관련업체들은 장례비 부담을 대폭 줄여주고 스마트한 디지털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셋째, ‘웰다잉’(Well-Dying)이 문화가 가속화할 것이다. 삶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길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생을 뜻깊게 보낼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고령화에 따른 각종 질병의 증가, 가족 해체와 1인 가구의 확산으로 급증하고 있는 고독사 등이 웰 다잉 트렌드를 이끄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죽음학회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가속화와 더불어 언택트 스마트 시대에 걸맞는 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할 것이다. 죽기 이전의 자산관리나 유언장 작성은 물론 죽은 후에 관리하는 종합서비스나 디지털 장의사, 디지털 포탈 서비스산업으로 확산될 것이다. 관련 업체들의 디지털 상조 플랫폼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 우리 장례식장에서도 조화대신 사진이나 그림 액자로 점차 대체되고 있다.
● 한국의 장례식에는 음식으로 손님 접대하기에 매우 분주한 모습이 태반사이다. 또한 비효율적인 화환문화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 한국인은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왔다. 타인이나 가족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죽음의 준비도 미흡하다. 사실 코로나를 겪으며 장례 음식 문화에 대한 성찰이 도드라지고 있다.

유가족들은 3일 내내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는데 그 공간에서 식사를 위해 마스크를 필연적으로 벗어야하는 상황이 생기니 현재의 코로나에 대한 정서와 맞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결혼식장에서는 식사 대신 작은 선물을 전달하는 식으로 접객을 하고 있는데 장례식장도 다과를 정갈하게 담은 도시락 등으로 접대 방법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환의 경우 화환에 담긴 순기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예를 표시하는 방법이자 비어있는 빈소를 꾸미는 수고와 비용을 화환으로 대신하는 등 분명 화환이 가진 순기능이다.

최근 액자 형태의 화환들이 놓여져 있는 빈소에 조문을 간 적이 있다. 고인의 생전 사진과 별 사진 등을 전시하고 보내는 사람들의 위로 문구를 족자처럼 만들어 붙인 모습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고인을 살아생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통해 고인의 모습을 보니 조문하는 그 시간이 더 의미 있게 여겨졌다.

상주에게 듣기로는 발인 후 설치된 액자를 상주가 가져가는 식이라 버려지지 않는다고 하여 내심 비효율적인 화환 문화가 조금씩 개선되고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반가웠다. 아예 고인의 사진들을 대량으로 전시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 코로나로 인해 화장 후 유골함에 넣어 가족들만 모여 간단하게 장례식을 마치고 있다.
● 물론 죽음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도 한다. 어떤 종류의 죽음이던 웰다잉 관점에서 가족들에게 부여하는 유익함을 총평하여 달라.

▼ 웰다잉이라는 말은 잘 사는 것(웰빙, well-being)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역발상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흐름인 것만은 틀림없다. 본디 긍정심리학 분야에서 연구되던 웰빙 개념이 대중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삶의 질만 중요하냐? 죽음의 질도 중요하다!”라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존엄사나 안락사 문제와 함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최종적 목표로서 웰다잉이 중요하며 대표적인 예로는 묘비명 쓰기, 입관 경험해 보기, 유언장 쓰기, 죽음 토론하기 등이 있다. 그 중요성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첫째, 물질적 측면에서 막대한 금전과 재산이 잘 죽는 것을 보장할 수 있을까? 긴 병환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노년의 투병생활은 제아무리 효심이 깊은 자녀라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다.

특히 사회 안전망의 도움이 시급한 저소득층과 차상위 계층의 경우 금전적인 한계로 인하여 잘 죽는 것이 무척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노년기 주변과의 단절로 인해 많은 독거노인들이 고독사 위협에 직면해 있고, 가난한 중환자들은 병상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하곤 한다.

둘째, 신체적 측면에서 보면 노년기에 자기관리, 건강관리, 멘탈관리를 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노년기에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고 변화하는 육체에 적응하는 것은 개인의 삶의 질에 매우 중요하다.

노년기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민폐도 민폐거니와 온갖 볼 꼴 못볼 꼴을 가족들에게 다 보여주며 참담한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다가 결국 병상 위에서 최후를 고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셋째, 대인관계적 측면에서는 노년기의 개인들은 가족, 친척, 친구, 동료 등의 주변인들을 살아오는 동안 많이 먼저 떠나보내며 그렇게 하면서 사회적 연결망이 점차 줄어든다. 어떻게 보면 이는 고독사가 비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죽음의 자리에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않아서 내가 죽건 말건 세상은 무심히 돌아간다면, 이 역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죽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친밀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함께하기를 원한다.

웰다잉은 개인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형태를 자신의 삶의 마지막으로 장식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중요한 건, 그런 외부 환경적 조건 외에도 심리적 준비와 이해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 로부터 시작된 웰다잉의 질문은 죽음에 대해 직시하고 이해해야 하며, 미리부터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 지난 4월 31일, (사)대한장례인 협회는 관련업체들과 디지털 상조 플랫폼 출시에 대한 상호교류 및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 해외에서 생전(生前) 장례식이 성행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 최근 일본에서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별 행사가 명사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다. 프로레슬러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이노키는 75세 되던 그 해 10월 쓰모 경기장으로 잘 알려진 료고쿠 체육관에서 세상과 이별 파티를 화제가 되었다.

또 건설 장비업체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 사장도 81세 때 담낭암으로 한시적 삶을 선고받자????아직 건강할 때 삶에 힘이 되어준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신문광고를 내고 생애 마지막 파티를 했다.

일찍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활동인 이른바 ‘슈카쓰(終活)’가 활발해졌다. 방식은 다르지만 서구에서는 ‘살아서 하는 장례식’(Free funeral)이 이제 흔한 일이 되고 있다.

살아서 하는 ‘생전 장례식’의 한국의 대표적 사례를 간략히 소개하여 본다. 생전 장례식을 연 서길수 전 서경대 교수는 2009년 정년퇴직 후 강원도 산사에 들어가 3년간 죽음을 공부했다.

그는 ‘죽음이란 익은 과일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제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라는 문구의 희한한 부고(訃告)를 보냈다. 제목이 ‘살아서 하는 장례식과 출판기념회’였다. 멀쩡히 산 사람을 장사 지낸다고? 고인(故人)도 없고, 통곡도 없는 초상집에 초대받은 셈이다.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은 내과의사 출신의 캐나다 교포 이재락 박사는 당시 83세였다. 그는 느닷없이 캐나다 토론토의 <한국일보>에 공개편지를 보냈다. 제목은 ‘나의 장례식’이었다. “죽어서 장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살아서 더운 밥 같이 나누자” 거동도 하고, 말도 하고, 몸이 덜 아플 때 지인들과 친지를 모시고 멋진 곳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끝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이를 장례식이라 해도 좋고, 마지막 작별인사 모임이라 불러도 좋다고 하면서 와인을 곁들인 사전 장례식 잔치는 멋지게 진행되었다. 가족 소개와 헌시 낭송, 지인들의 ‘이재락 박사’ 이야기, 그리고 자식들이 말하는 아버지의 일생. 장남은 ‘내가 걸어온 길’(My Way)을 마지막 노래로 장식했다. 살아서 하는 장례식은 분명 국내에서도 여러 형태로 확산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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