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뒤면 둥근 보름달이 차오르는 한가위입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고요히 숨을 고르는 계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둘러보면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정답을 쏟아내는 ‘AI의 시대’입니다. 손안의 화면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볼 수 있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우리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지치고 고독해지곤 합니다. AI가 최적의 지식과 답은 줄 수 있어도, 내 삶의 고단함을 따뜻하게 다독이고 진짜 살아가는 의미까지 찾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 숫자 너머에 숨은 진짜 마음의 갈망
실제로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종교와 빠르게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2025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의 60%, 특히 20대의 76%~80%가 '믿는 종교가 없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절반 이상(52%)이 '단순히 관심이 없어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평안을 향한 갈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해마다 34만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산사 템플스테이를 찾고 있으며,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젊은 세대이자 비불교인입니다. 종교학에서는 이처럼 제도권 종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내면의 평화와 의미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을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종교는 없지만 영적인 사람)이라 부릅니다. 거창한 형식을 벗어던졌을 뿐, 참된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의 뿌리는 여전히 다정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 '나'라는 작고 외로운 틀을 벗어나는 시간
하루 종일 '할 일과 미래',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다 보면 마음은 '나'라는 꽉 막힌 울타리에 갇혀 피로해집니다. 하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책길의 바람을 느끼거나 조용히 깊은 숨을 내쉬어보세요. 나를 매어두었던 걱정에서 한 걸음 슬그머니 물러설 때, 마음에 작은 숨구멍이 뚫리며 고요한 평온함이 차오릅니다. AI가 모든 정답을 주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바쁜 나를 내려놓고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더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위안은 결코 거창하지 않습니다. 지친 퇴근길 바라보는 저녁노을,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는 순간, 그리고 이번 추석처럼 둥근 보름달 아래서 식구들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시간 속에 마음의 안식이 있습니다.
"나 혼자 잘 살아가야지" 하며 바짝 움켜쥐었던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주변에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것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명절마다 누려왔던 가장 다정하고 소박한 지혜였습니다. AI는 결코 알지 못하는 이 따뜻한 마음의 온기야말로 우리 삶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진짜 힘이 아닐까요.
일요주간 / 박덕수 칼럼니스트 happyworld5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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