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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자 작가 |
그만큼 결혼은 우리의 삶 부분에서 분리시킬 수 없는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그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쯤은 그러한 논쟁의 대상에서 사라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사람들은 결혼에 관계되는 사람들의 문제나 결혼의 의미등 왈가왈부의 대상에서 졸업을 시키지 못하고 있다. 모든 드라마의 소재나 이 세상에 일어나는 문제들의 대부분의 일들은 거의 결혼이 기초가 되어 발생되는 문제들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수억 만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결혼에 대한 확실한 논리가 확립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걸까? 언제까지 그러한 것들이 논쟁에서 사라지게 될까? 영원히 해답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결혼을 하는 이유를 밥을 먹는 이유와 같은 원리로 어정쩡한 대답을 할 뿐 구체적인 대답은 만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느사이 그러한 것들의 해결은 무언중에 포기하고 이제는 결혼은 그렇게 문제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채 문제들을 즐기는 상태가 된 것같다.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은 해결이 기본이며 해결을 미룬채 살아가는 것은 언젠가는 더 큰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누구나 문제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며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은 미룬채 문제가 있는 것이 정상이다라는 생각의 주입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삶의 양태도 즐기는 기술이 발달되어 겉 부분만 포장된 속의 곪은 부분은 그대로 둔채 인생은 그런거야 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 전선이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모두 정상이라고 살아가고있다. 원래 정상을 찾기 위해서는 참의 길을 가게될 때 만이 가능한 일인데 참이 아닌 편법을 사용하여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기에 특별히 의심하는 말들이나 연구는 더 진전이 되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결론은 그냥 남들이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하는 생각이외의 별다른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인 것같다.
그러기에 지금까지도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정확하게 정립이 안되었으며 그로인해 결혼에 따른 문제들은 끊이지 않고 대두되고 있다고 본다. 결국 그러한 상태의 즐김은 참이 아니며 바람직하지 못하다. 참이 아닌 것은 언제라도 때가 되면 폭발의 순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에든 즐긴다는 참 의미는 진정한 승리를 이룬다음에 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기기위해 한시적으로 즐기는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도있다. 그것은 참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목전에 두고 승리를 염두에둔 문제의 한계를 넘기위한 수단으로 일시적인 즐김의 차원이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알았을 적의 행위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행위와는 많은 차이가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의 즐김은 바로 확실한 방향을 알지못한 두루뭉실한 눈치로 알아차려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것같아 하고있는 즐김의 경우다. 그 경우는 문제해결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을 악화시키는 현상을 초래 할 뿐이다.
무엇이든 참이 아닌 것들을 오래 사용하거나 따라가면 반드시 사달이 나게 되어있다. 요사이 그러한 것들로 맞았다 틀렸다의 의견이 분분하다. “막장드라마의 홍수로 막장사회를 부추긴다” 는 등 이혼,자살,낙태,불륜 패륜 출생비밀같은 소재는 기본이고 극한 상황의 장면이 예사로 전개되고 있다는둥, 소재나 줄거리 언어들은 비윤리적이고 선정적이어서 그러한 것들의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시청자들도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러한 것들의 노출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대범하고 극에 달하는 지점에 다다르고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금 세상은 모든부분에서 극에 다다르는 경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쩌면 그러한 사회현상들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그동안 누적된 것들이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제상태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흐름은 우연이 없다. 나타나는 현상은 때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므로 어쩔 수없다. 그것이 순리요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속에서 곪아 있던 부분이 팽창되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때가되어 밖으로 표출되게 된다.
사람들이 그렇게 선호하는 것만 보아도 분명 가려운 부분을 속시원히 긁어주는 부분도 있기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러한 내용들이 전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것들이라면 먼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순리의 흐름이기 때문에 예사로 넘길부분이 아니다. 어쨌든 문제로 등장이 되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이 시회적 문제로 등장되었다는 의미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며 또 생각을 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러한 내용들은 지금까지 결혼의 의미와 정체가 확실하게 정립이 안된 상태에서 그냥 덮어둔채로 살아온 오류들이 쌓여 자연스럽게 폭발되고 있다고 본다. 결혼생활의 의미를 모른채 겉으로는 좋은척 포장된 상태가 정상이라고 즐기는 시간을 오래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한 집건너 결혼으로 인한 문제들이 날로 날로 급증해 가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제의 사건은 현제의 현주소다. 물론 잘못된 부분을 제동을 거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그대로 두었다가는 걷잡을 수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속에서 제동을 거는 일들을 수없이 지켜보고 지금도 그와같은 흐름속에서 살아가고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 원인 때문에 오늘날 더 많은 문제들이 속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오히려 과거에서부터 근원적인 대처를 하지않고 덮고 제동을 걸어 오늘날에 더 보태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현실에 나타나는 좋지 않은 문제들앞에서는 자신들과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하기에 바쁘다. 이혼,자살,낙태,불륜,패륜등은 곧 우리들의 일이다. 한사코 가장 나쁜 사람들의 몫 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계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상식선에 두려하지 아니하며 자신만은 그 대열에 끼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치며 멀리 하려한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의 생각을 고차원의 상태에 두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일 뿐이다. 현실은 그러기에는 그러한 위기에 너무 많이 노출 되어있으며 한 집건너 그러한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은 거짓말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바로 남의 일이 아니라 내일이라는 마음으로 임하지 아니하면 도저히 문제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일들의 원인은 인간이 나아 갈길을 모르고 인간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알고보면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인간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눈치를 살피게 되며 있는 사실도 없다고 감추게 되며 오히려 사건은 미궁속으로 감추어지게 된다. 인간을 자세히 알게되면 소설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주인공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우아하고 고귀하게 보여도 그러한 입장에 노출될 수있는 확률은 절반 이상이다. 그러므로 창피 할 일이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두렵고 겁나 엄현히 존재하는 사실을 부인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기 보다는 현제의 사건을 인정하고 제동을 걸기전에 그러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먼저 알아내어 방법을 간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만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길이다.
무조건 막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제동은 일시적인 치유에 불과 할 뿐 온전한 해결이 아니기에 막을 때는 숨어있는 척하다가 다시 때가되어 더 크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우리는 날마다 보고있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은 극단의 위기안에는 기회가 숨어있다는 의미다. 무슨일이든 폭발이 될 쯤의 위기가 오면 한계에 도달되었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모든 문제는 한계의 지점을 통과하는 그 지점에 문제의 열쇠도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다소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차라리 폭발이 되면 속에 곪아있는 부분들이 빠져 나가게 될 것이고 치유가되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방치하여 문제의 원인조차 모른채 지나친다면 사태는 더 악화일로에 치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동을 걸어 막거나 오히려 속은 곪아있는데 아무리 건전하고 좋은 내용이라도 겉만 번드르르하게 될 뿐 오히려 기름에 물을 붓는 격이다.
지난날은 지금처럼 극한 상황의 것들이 난무하지는 않았다. 내용이 그럴싸해 한류의 동력이 된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한류의 동력이 되어 그것으로 외형의 위상은 조금 나아졌을지 몰라도 결국 속은 더 곪아들어가고 있었다는 증거가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
모든 원인은 원인을 파헤치지 아니하고 제동을 걸거나 막아버렸거나 문제를 덮어둔 상태로 겉만 치장해온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바로 결과적인 접근의 방식이다. 속은 썩어있는데 아무리 좋은 겉으로 치장한들 무슨의미가 있겠는가? 이제라도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고 속을 들춰내어 치유하는 것이 바른 길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무조건 덮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때문인지 제동을 걸기전에 한번쯤은 생각을 해야 한다.
드라마의 효력은 엄청나다. 잘만 만들면 사람들에게 큰 활력소가 될수있다. 사람들은 어느사이 비정상적이고 극한상황의 소재나 줄거리들을 즐기고있다. 분명 그것은 누가보아도 거꾸러 가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그냥 감춘다고 막는 것 만으로는 나중에 또다시 불거져 나오게된다.
문제를 곧 해결의 초석의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한다. 문제를 문제로 보아버리면 영원히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게된다. 문제를 통하여 사람들이 변하는 기회로 삼아야한다. 사람들이 변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다 사람들이 변하게되면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이제라도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접근의 시도가 관건이다.
그런의미에서 결혼은 모든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결혼의 참 의미를 파헤쳐 사람들에게 알게하는 것이 순서다. 결혼의 의미를 알게되면 인간의 의미도 알게 될 것이고 세상에 태어난 의미도 알게 될 것이다.그러면 참 인간이 되는 길도 알게 될 것이고 세상은 참인간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인간이 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에 결혼은 인간이 만들어지기에 가장 필요한 환경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되기위해서는 결혼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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