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간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따르게 했던 모든 것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해 와 버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료들이 모두 참의 방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동의하거나 바꾸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아성들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과들을 누구를 탓해야할까? 지금까지는 넉넉한 마음으로 갈 수있었다. 진행의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터인데 그런기미는 아무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 세상이 초토화가 되고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느낄 때나 깨닫게 될까?
아직은 지금의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밀고나갈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지금의 지도자들이 먼저 깨달아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중 하나님을 알게한 지도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접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시도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왔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접근의 발달은 엄청난 외형의 성장에 반하여 하나님의 참 모습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인간적인 기술이 능하면 할수록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되며 자신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알리기 위하여 온갖방법을 동원하지만 그럴수록 더 멀어지게 된다. 그 결과 모든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음성을 들을 수 없었으며 동시에 분별이 흐려져 엉뚱한 길로 와버렸다.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방법으로 통치하고 다스린다고 하지만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나님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이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제아무리 하나님을 외쳐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다. 차라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들의 지혜가 더 앞서버렸다. 그러한 현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지도자들보다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의 말을 더 믿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지도자들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세상에 문제가 생겨도 침묵만 지키는 상태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게한 지도자들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변변치 못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밀린것이다. 그 밀림은 실로 많은 세월동안 진행이 되어왔으며 그 사이에 하나님의 위력은 한없이 추락되어 왔다.
오늘날의 모든 결과는 지극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힘으로 꾸려온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혼란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한 때문에 빚어진 것들이다. 이 세상의 움직이심은 하나님의 손길이신데도 그들은 단 한마디 언급이 없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외치지만 하나님의 의중을 아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삶과 하나님을 분리시켜 버린지 오래다.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가서 하나님 뵙고 오는 것으로 만족한다. 자신의 삶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 속에서의 하나님은 찾을 생각이 없다. 그것은 고통의 대가지불이 따라야 하기에 쉽지가 않기때문이고 그 길이 참이 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도와 응답으로 고통을 거치지 않고 얼마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갈 수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출발부터 하나님의 목적과 달라져 있었다.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으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 만들어진 몸이다.
알고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자의가 아니었으며 죽을 때까지 하나님에게 예속된 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태초부터 하나님의 손안에서 벗어나길 원하여 아담과 예와의 배반이 해결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인간의 힘으로만 해 보겠다고 하는 행위들이 바로 그것이다.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면모를 아셨을 터이고 오늘이 당도하게 되리라는 것도 아셨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은 이미 아담과 하와의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순종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순종하며 따라온 결과가 오늘에 이르렀다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과는 참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잘못된 길과 방법으로 와버렸다. 그 잘못된 이유가 이 세상의 모든 잘못됨의 초석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순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미와는 다른 순종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을 닮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외형인 겉모습만을 닮는 길을 자원했다. 그것이 바로 은사 곧 육의 음성의 접근이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고 순종하는 것은 답을 알 필요가없다.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겨드리고 가면된다. 인간은 인간이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눈은 인간의 한계에 갇혀 인간보다 더 큰 세계는 알지 못한다.
인간의 병의 진단은 인간보다 더 높은 차원이 되어야 할 수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식이다. 자식은 어른이 되기전에는 사람구실을 잘하지 못한다. 성인이 되기전에는 부모님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만 한다. 그런데 어린아이에서부터 눈치가 발달되어 어른의 흉내를 내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흉내는 결코 흉내에 그친다. 흉내는 수고없이도 재주로만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된다. 흉내는 영원한 자기 것이 될 수없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버리면 구차한 변명도 행위의 반복도 의미없으며 필요없게 된다. 이미 자신의 체질과 속성이 하나님의 속성에 젖어들게 되므로 자기 것 이되어 속안에 스며있게 된다.
이미 하나님의 속성이 내것이 되었기에 흉내내는 일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속성이 닮지 않고 육체의 음성으로 들어 흉내낸 것은 기억장치일 뿐이다.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고 불안하므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듣기를 원한다.그래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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