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사람들(6)-3인방의 두목 등극(1)

이호준 / 기사승인 : 2012-03-19 10: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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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가정파탄·사업실패·카드빚 등의 사연들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

설득


1. 두목등극의 여파


지훈은 그렇게 3인방의 두목으로 등극을 했다. 그것은 서면롯데백화점과 공판장을 거점으로 노숙을 하는 부랑인들과 앵벌이들이 떠받들어 모셔야 할 두목이 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축하나 복종의 예를 표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고, 심드렁한 침묵 속에 흩어져버린 것이 전부였다. 더욱이 생각보단 쉽게 무릎 꿇은 동만과 호삼이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를 일, 지훈이 진정한 유아독존[唯我獨尊]으로 군림하기위해선 특별한 본보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그늘을 마다하고 도망친 앵벌이들을 잡아 족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곤란한 일을 처리 할 때 부리던 두 명의 덩치들을 불러드렸다. 먹을 것, 입을 것만으로도 충성을 맹세했던 부하들, 도망친 앵벌이들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지하철만 타도 벌이하기 바쁜 이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고, 잡아 눈만 부라려도 술술 불든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불 것이기 때문이다.


지훈과 두 덩치들은 그렇게 찾아낸 족족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에 협박과 갈취를 일삼더니 급기[及其]야는 부산역에 까지 쳐 들어갔다. 그리고 박스한 장을 의지해 지친 몸을 쉬는 노숙부랑인들을 깨워 돈이나 물건들을 빼앗고, 반항하는 이들을 밟고, 차는 그야말로 무법천지[無法天地]를 만들어버렸다.


이런 호랑말코 같은 지훈도 1년 전 준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었는데, 명우는 그 모든 상황을 구경꾼으로 목격했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와 고자질 아니 고자질을 하는 것이다.
소파 뒤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며 “음음~~~음음~~”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가수 강애리자의 ‘분홍립스틱’, 1988년 서울올림픽열기가 한참 뜨거웠던 당시 선남선녀들의 가슴을 온통 분홍색으로 물들였던 노래다.
준은 그런 명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일어나 선반 위 약상자를 건넨다.


“풋훗, 새끼. 자!”
“와~ 우습나.”
“그 얼굴을 해가지고 노래가 나 오냐?”


뒤돌아 약상자를 건네받은 명우의 말이 30%만 사실이라 해도 ‘실직노숙인협동조합’ 위원장인 준이 나서야 될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훈을 찾아가 감 놔라, 대추 놔라할 수는 없다.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칼이나 병 같은 흉기를 들거나 떼거리로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 준에겐 뭔가 확실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별 뾰족한 수는 떠오르질 않고, 만지작거리는 음료수 캔을 통해 채 식지 않은 냉장고의 기운이 느껴질 뿐이다.


“명우야. 지훈이 보면 상대하지 말고 연락해라.”
거침없이 내뱉는 것 같지만 고민한 흔적이 역역한 준의 목소리다. 그러나 거울에 비친 붓고 터진 얼굴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명우에겐 간절히 원했던 답. 남은 꿍꿍이속을 마저 털어버리려는 듯 너스레를 ‘주저리주저리’ 머리끝을 걷어 올리는 멋을 부리며 뒤돌아본다.


“내가 바보가, 그 자슥을 상대하게 내, 아~무리 생각해 바도 그 자슥, 제대로 상대 할 사람은 쭌이 니 밖에 없는기라. 어떻노?”
“이제 좀 사람 같네. 좀 씻고 다녀라.”
“그자! 옛날엔 끝내 줬는데.”


대화중에도 뒤를 ‘힐끔힐끔’ 거울 속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명우, 멈췄던 콧노래를 ‘흥얼흥얼’ 밖으로 나가 답례라도 하듯 사무실과 주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와 주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음음~~음~”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띠~이, 띠~이.......”
“아~! 냄새 좋다.”


명우는 세탁기를 통한 개과천선(改過遷善)으로 제 색깔을 찾은 옷가지들을 입 벌린 검은 비닐봉투에 구겨 담는다.
“왜? 그냥가게!”
“이 여름 땡볕에 몇 번 털면 된다 아니가.”
걸을 때마다 ‘부스럭부스럭’ ‘흔들흔들’ 그네를 타는 빵빵한 검은색비닐봉투, 정문을 나서는 명우의 뒤꽁무니를 쫓던 준이 지레짐작한 훈계를 한다.


“술 좀 작작 마시고 다녀.”
‘휘적휘적’ 부산역을 향해 걷던 명우가 처진 등 뒤로 손을 흔든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운명이라는 듯, 미안하다는 듯.......


현실의 차이를 꼬집어 내고 싶어도 별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뒷모습이다. 하지만 자본우선주의와 종교패권주의에 길들여진 현실에선 그저 같아 보이는 것일 뿐, 섞이고 싶어도 섞일 수 없고, 죽어서도 같을 수 없는 절대적 괴리[乖離]가 존재하는 것이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멀어지는 만큼..................


2. 1년 전 굴욕


지훈은 이런저런 행정처분으로 쌓인 과태료 150만원 때문에 한 달 조금 넘는 구치소생활을 했다. 면회한번 안온 식구들에 대한 야속함도 잠시 이제 끝났다는 낯익은 후련함에 부산역지하철계단을 두 계단씩 뛰어 오르는데, 시끄럽다.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에 나라로 갑시다.”
180Cm정도 키에 뒤로 묶은 허리까지 내려온 생머리, 갈색뿔테안경, 파란벙거지를 쓴 사내다. 앞에는 모금함을 뒤엔 ‘불우이웃돕기모금공연’이란 글귀가 선명한 현수막을 분수대 철제난간에 묶어 세워놓고, 시원하게 물을 뿜어대는 역광장분수대를 배경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다.


“짜슥! 돼지 멱을 따라.”
누군가에겐 문화라는 고전적 가치가 누군가에겐 술이나 담배 값 정도 우려낼 좋은 핑계거리가 될 수도 있는 법, 지훈은 의미심장한미소가 쑥스러운 듯 코를 비비며 발길을 돌린다. 택시 승강장 쪽 풍성함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그늘아래다. 부산역식구 중에서도 제법 잔뼈가 굶은 치들의 아지트[agitpunkt]로, 대낮인데도 벌써부터 박스를 깔고 둘러앉아 벌린 술판이 왁자지껄 요란하다. 그런데 걸어오는 한 사내를 향해 의심스런 눈을 모으는 사내들, ‘성큼성큼’ 가까워질수록 확인되는 모습에 사내들이 바쁘게 일어나 부르고 악수를 나누며 자릴 권하는 인사를 한다. 묵묵히 앉자 술잔 채우기 바쁜 노인을 뺀 4명이다.


“저 자슥, 지훈이 아니가?”
“그래 맟다. 지훈아!”
“행님들 잘 계셨는교?”
“언제 나왔노? 고생 많이 했제?”
“고생은 무슨.........”
“일리와 앉아라.”
“지금 나오는 길이가? 면회한번 못가가 미안하다. 자! 한잔 받아라.”


경제, 사회, 정치적인 괴리현상에 해고, 가정파탄,...사업실패, 카드빚, 등의 사연들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는 사람들, 돈, 명예,...... 학력, 종교가 아닌 빈곤, 죽음,...... 좌절, 절망의 소통이다.
언제나 그랬듯 할 일없어 이유 없는 버릇처럼 시작했던 술자리가 지훈의 출감환영파티가 되어 왁자지껄,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훈이 갑자기 일자 눈을 희 번득 휘두르며 대들듯 묻는다. 변변치 않는 안주에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킨 때문인데, 둘러앉은 모두가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앞 다퉈 말려본다. 처음부터 본체만체 술잔 기울이기 바빴던 노인만이 여전 할 뿐이다.


“행님들,”
“와?”
“지기, 지기 뭡니꺼?”
“와?”
“저! 머리 긴 안경잽이 기생 오래비 같은 자슥, 지가 뭔데? 시끄럽구로, 부산역에서 노래질 입니꺼? 행님들이 하라 했는교?”
“김지훈이 니 벌써 취했나?”
“행님도 참! 지가 취해보입니꺼?”
“근데 와 그라노? 좋타 아이가. 심심치도 않고.”
“좋긴 뭐가 좋은교? 와이로 받아 먹었는가베?”
“니, 나오자마자, 와 이라노?”
“그만하고 자! 자! 자! 술이나 한잔 받으라.”
“잠깐만 기다리 보소. 내 손보고 볼 테니까네.”


술잔을 외면한 채 일어난 지훈이 노래 중인 준을 향해 취한 몸을 ‘비틀비틀’ 걸어간다. 자신이 없는 사이 생긴 변화도 못 마땅한데,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는 현실에 더욱더 부아가 치민 것이다.
“바라. 바라. 시끄럽다. 시끄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
못들은 척 노래를 열창하는 사내, 가수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다. 지훈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기 가득한 팔을 휘젓는다.


“이 개돼지 같은 자슥이 씨~ ”
“우카캉캉~” 악보와 분리되어 요란하게 나동그라진 스탠드, 마이크스탠드 앞에서 두 사람을 가로막고 서있던 검은색 악보스탠드다. 그 우악스러움에 노래를 멈춘 사내가 미간을 찡그리며 쏘아본다. 긴 머리를 배경삼은 갈색뿔테안경 넘어 흥분과 멸시 가득한 눈빛, 지훈의 생각과는 영 딴판이다. 그렇다고 시작한 시비를 되돌릴 순 없는 노릇, 술 취해 풀린 눈을 치켜뜨며 불퉁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눈에다 그래 힘 주믄, 레이저 광선 나오는가베?”
감은 듯 뜬 듯 종잡을 수 없는 일자 눈을 희 번득 치켜뜨며 노려보는 사내, 검게 그을린 피부와 175Cm 키에 비해 짧아 보이는 팔과 스포츠머리, 주저앉은 주먹코,......우악스럽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볼 때마다 요구하는 뭔가를 들어줘야하기 때문이다. 준이 메고 있던 기타를 분수대 안쪽으로 벗어던지며 지훈의 멱살을 움켜잡는다.


“이 새끼가 미쳤나? 술 처먹을 라면 곱게 처먹어 새꺄.”
벗어던진 기타야 분수대난간 넘어 풍성하게 조성된 관목[灌木] 숲의 쿠션역할을 믿어보는 것이고, 일단은 기세등등한 상대방의 기를 꺾고 보자는 맞대응이다.
“뭐! 이른게 다 있노? 나(놔)라. 이거 안 놓나. 니....”
“싫다면 어떻할네? 새꺄.”


지훈은 자신의 멱살을 움켜잡은 상대방의 악력[握力]도 악력이지만 일단 당황스럽다. 그래도 김지훈하면 부산역근방에서는 먹어주는 이름, 대충 이정도면 힘 좀 쓴다는 몇몇을 뺀 나머진 제 몸 추스르기 바빴었다. 그런데 계집처럼 긴 머리에 하얀 얼굴의 사내가 할 테면 해보자는 식이다.
단단히 움켜잡힌 멱살을 통해 조여 오는 숨통에 힘의 균형이 옮겨질 때마다 흔들리는 상체, 지훈이 무게중심을 앞으로 이동시키며 신체조건보다 덜 발달된 팔을 내민다.


“니~ 김지훈이라고 안 들어 봤나.”
급한 대로 준의멱살을 잡아 호각세[互角勢]를 유지하려는 것인데, 준이 기다렸다는 듯 멱살을 당기는 동시에 오른발을 뒤로 빼며 상체를 왼쪽으로 틀어 숙인다. 그래서 업히지 않으려고 억지를 쓰다 등에 매달린 꼴이 된 지훈, 뭔가 잘못대도 크게 잘못 됐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 풍경들이 180도 세차게 회전하더니 숨쉬기 불편한 통증이 온몸을 괴롭힌다.
“아~하~! 쪽 팔리구로, 니 자슥~”
준의 어정쩡한 업어치기에 회전하는 풍경들과 함께 나가떨어진 지훈, 충격완화요법인양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일어난다. 그러나 맨손으로 상대하기엔 벅찬 상대, 출감파티로 흥청거렸던 술자리를 향해 뛴다.


“비키라. 비키, 내 저 새끼, 죽여 벌끼다.”
어깨를 내둘 거린 우악스러움, 둘러앉은 노숙부랑인들의 움직이는 엉덩이가 바쁘다. 덕분에 계획보다 더 수월케 골라잡은 병, 아직 소주가 반이나 남아 있는 소주병이다. 지훈은 이제 가감(加減)없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 시작으로 소주병을 휘두르며 준을 향해 코뿔소처럼 돌격해야하는데, 어떠한 싸움이든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지 못하더라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훈이 결의에 찬 일자 눈을 부라리며 돌아선다. 그런데 관할지구대경찰관들, 부산역노숙부랑인들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우호적인 박 경장과 김 순경이다. 박 경장이 친근한 얼굴을 가장하며 지훈을 향해 한 발 내딛는다.


“그 병 가지고 뭐 할라 그러는교?”
“니희들은 뭐꼬?”
“김지훈씨. 그만하고 그 병 이리주소.”
“내 말리지 마라. 저 머리 긴 놈, 화~ㄱ, 죽어벌끼다.”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라는교? 못 본 걸로 할 테니까네 그 병 이리주소.”
“비키라, 내 저 머리 긴 새끼한테, 맞았다 아니가. 내 쳐 맞을 땐 뭐하고 있다. 이제 와 지랄이고?”


지훈은 만류하는 박경장의 눈높이에 맞춰 소주병을 휘두르며 준을 향해 한발 두발....걸음을 내딛는다. 박 경장은 김 순경과 함께 지훈이 내딛은 간격 맞춘 뒷걸음질을 치며 타이르듯 공무를 집행한다.
“자꾸 이라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채포합니데이.”
“그~래! 법 좋타(좋다). 내 저 쌔끼한테 맞았으니까. 법대로 해 바라.”


비아냥대는 지훈이다. 하지만 두 경찰관들 또한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상황을 헤쳐 나온 터다. 박 경장이 뒷걸음질을 멈춘다. 그러자 김 순경 또한 구경꾼들을 배경으로 서있는 준을 지킬 마지노선[Maginot Line]인 양 버티고 선다.


“김지훈씨, 진짜 이럴랑교?”
“왜 쳐 맞은 내한테만 이라는데?”
“그러니까. 병 노으소.”
“하~아, 참! 박갱장님이나 좀 놓으소.”
지훈과 박 경장의 잡고, 고함치고, 뿌리치고, 밀고, 당기는 진전 없는 활극(活劇)이다. 이에 뒤에 서있던 김 순경이 단호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나선다.
“아~~ 좀 그만 좀 하소. 자꾸 이러면 진짜 체포합니다.”


활극을 펼쳤던 두 사람이 주춤대는 짧은 순간을 포착한 것인데, 아스팔트바닥을 차며 나서는 동작이 과장스럽지만 시위진압의 위용(威容)이 엿보인다. 때마침 어깨 위에 은빛잎사귀까지 햇볕에 ‘번들번들’ 세를 더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역한 지훈이 활극을 펼쳤던 몸을 뒤로 기우뚱, 푸념 섞은 목소리를 내뱉는다.
“와? 내한테만 이라는데?”


이때가 기회다 싶은 박 경장, 타이르듯 누그러트린 목소리로 손을 내민다.
“그러니까네. 그 병 이리주고 야기하소. 우리가 처리할 테니께네.”
“.......................”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경찰관들의 업무분담이다. 할 말을 잃은 지훈이 못이기는 척 소주병을 내밀자 박 경장이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를 뽐낸다.
“자! 이제 천천히 알아듣게 말해보소?”


나이는 못 속인단 말처럼 쩔쩔맸던 모습은 온데간대 없고, 당당하게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훈은 부담스럽다. 뭐 하나 잘 했다 큰소리 칠 것 없는 쌍방폭행, 이 상태대로라면 징역살고 나온 지 하루도 안 돼 경찰서로 끌려 가야하기 때문이다. 준을 향해 손가락질 동원한 악다구니를 치며 ‘휘적휘적’ 자신의 출감파티로 흥청거렸던 술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니, 머리 긴 놈, 언젠가 니는 내손에 죽는기라. 알았나.”
둘러앉은 치들 틈바구닐 비집고 들어가 앉더니 어느 누구 허락하지 않은 술잔을 들이키며 헛기침 섞인 헐떡거림을 삭혀본다.


그런 지훈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던 박 경장은 안심이란 듯 뒷짐을 지며 옆에 서있는 준에게 걱정 섞인 권유를 한다.
“어디 다친 덴 없는교? 오늘은 좀 그러니까! 정리하고 내일 하이소.”


그러나 준이 고마움 물씬한 사과(謝過)로 입을 때자 난데없는 인사를 던지며 뒤꽁무니에 김 순경을 달고 황급히 자리를 뜬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는데? 참.......”
“그럼 고생하이소. 김 순경아! 가자.”


언제나 그렇듯 삶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업무 때문이다. 그리고 더 있다간 준의 하소연을 마냥 들어줘야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훈은 어느 누구 허락한적 없는 술잔을 들이키고도 둘러앉은 이들의 불편한 기색을 나 몰라라 가쁜 숨을 몰아쉬기 바쁘다. 이를 지켜보던 황 영감이 소주잔을 들며 입을 연다.
“아이구, 자슥아. 고마해라. 니 실력 갖고 어림없다.”


무리 중 제일 연장자로 검은머리 한 올 찾아볼 수 없는 황 영감, 처음부터 지훈을 반기지도, 말리지도 않은 채 묵묵히 술잔이나 기우리며 자리를 지켰던 몫인 것이다.
지훈은 말리는 시어미가 더 밉다고, 종잡을 수 없는 일자 눈을 ‘번들번들’ 황 영감을 쏘아보며 불퉁한 목소리를 쏟아낸다. 언성을 높이며 더듬을 땐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흥분에 사래라도 들린 듯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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