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사람들(14) - 노숙인들의 세계

이호준 / 기사승인 : 2012-05-29 10: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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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같지 않은 자슥들 땜에 잠도 못자고 이게 문 짓이고....”

1. 행복의 나라로

동근이 양껏 달궈져 주체 못하는 아우성들을 진정시킨다.

“아~아~ 조용, 조용, 조용히 해봐라.”

구경꾼을 해산시키고 상황을 지켜보다 끼어든 것인데, 30~40명의 노숙부랑인들은 눈치 살피기 바쁘다. 포악한 것만 놓고 따진다면 지훈은 쨉이 안 되는 동근이기 때문이다.

“....................”
“우리 동생이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함 들어보자. 괴안체?”

1초.....5초........ 어색하게 흐르는 침묵, 이 눈치 저 눈치 살펴야하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노숙부랑인이 푸념 같은 넋두리를 내뱉는다. 이에 무릎에 턱을 괴고 앉자 있던 노숙부랑인이 중요한 뭔가를 발견한 아이처럼 손뼉을“짝, 짝, 짝~” 호들갑스런 목소리를 높이며 자리를 차고 일어나자, 모두들 동근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답답함에서 숨통 틀 핑계거리를 찾는 티격태격이다.

“가수한테는 노래를 들어야 되는 긴데...”
“맞다. 맞다. 가수한테는 노래를 들어야 되는기다.”
“아침부터 문(무슨) 노래고?”
“암만(아무리) 가수라케도 아침부터 노래가 되겠나?”
“그래! 아침에는 안 된다 카더라.”
“준이 누고? 부산역가수 아니가, 하면 하는 기제.”

폭력에서 알 수 없는 결과로 바뀌어가는 전조현상[前兆現象]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나중의 문제, 준이 가장한 볼멘 목소릴 내뱉는다. 감지한 현상에 물꼬를 트기 위한 것인데, 동근이 울퉁불퉁한 목소리로 거들고 나서자 부화뇌동[附和雷同]한 목소리들이 박수를 치는 환호성이다.

“뭡니까. 이거! 내가 노랠 못 한다는 겁니까?”
“야! 그럼, 우리 카수 노래 함 듣자.”
“그래! 좋~타. 우리 가수 노래 함 듣자.”
“짝짝~~~ 우훗~~~~ 짝짝짝...”
“그래 함 해봐라.”
“와~, 박수소리가 작나. 자! 다시 함 박수~.”
“와! 짝짝~~~ 우훗~~~~ 짝짝짝~~~~”
울퉁불퉁한 동근의 성원에 더욱더 커진 박수소리와 환호성, 준이 한쪽 입 꼬리 올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올 것 같지 않은 목소리를 가다듬어본다.
“참! 내! 으흠, 칵악~칵, 으흠.......장막을 걷어라....”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준이 부산역 분수대 앞에서 공연할 때마다 불러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의 18번지가 된 노래다. 몇 명이 박수장단에 환호성을 추임새처럼 넣고, 어제 푼 술기운이 아직 흥겨운 세 명은 시작부터 어깨를 ‘으쓱으쓱’ 70~80년대 극장 판 대한뉴스에서나 목격가능한 군인 춤을 춰대며 사방을 헤집는다.

하지만 일관된 옷차림에 가방을 짊어진 노숙부랑인들, 성동근처럼 알콜중독자나 장애에 늙고 병든 꼬지꾼들,........대부분이 몇날 며칠을 씻지 않아 푸석한 얼굴에 감당하기 힘든 냄새가 풀풀하다. 이들이 이른 아침 박수장단에 어울려 노래하며 춤을 춘다. 백번을 우긴다 해도 정상으로 이해하기엔 뭔가 묘한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열차를 타고 도착해 역사를 빠져나오는 여행객들이 ‘힐끗힐끗’ 상황을 주시, 기록, 전달할 수 있는 구경꾼으로 합세한다.

“..............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에 나라로 갑시다.”
“짝짝짝.......앵콜...... 앵콜.....”
“준아 앙콜이란다. 한곡 더 해야 되지 않겠나.”
각양각색(各樣各色)의 서먹함들이 경계심을 뒤로한 채 보내는 박수에 환호성, 폭력으로 물든 아침풍경에 흐름을 주도[主導]하고 반전[反轉]을 이끌어내는 구경꾼들의 역할이 반영된 변화인 것이다.

2. 어울림

“누구 관람료 걷으라..........”

모여 있는 누군가의 외침, 행여 뒤질세라 나선 동근이 벙거지를 벗어 허벅지에 대고 몇 번 털더니 준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동전 몇 닢을 던지는데, 구경꾼들이 박수로 호응하자 고개 숙여 합장[合掌]한 후 ‘휘적휘적’ 구경꾼들 틈으로 합류한다.
그런 짭짤한 수입을 기대하는 꿍꿍이에 체크무늬양복에 넥타이를 맨 중년의 신사가 부응[副應]하듯 나선다. 두툼한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동근이 던져놓았던 동전 밑에 깐다. 자신의 보편적 행위가 혹여 바람에 날아갈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에 잦아들던 박수소리가 다시 커지는데, 사람들을 비집고 나서는 할머니, 벙거지 앞에 서서 준의 위아랠 훑어보며 묻는다.

“아제요. 지금 뭐 하는 건교?”

아침열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하다 궁금증을 떨치지 못하고 구경꾼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그러나 준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고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내세운 미소가 어색할 뿐이다. 할머니는 그런 싱거운 미소와 구경꾼들의 박수소리가 범벅 되어 발휘된 최면효과를 헛웃음으로 받아넘기며 손지갑을 뒤져 꺼낸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지폐를 모자 안에 넣는다.

뒤이어 젊은이도 1000원, 아가씨도 1000원, 아줌마는 5000원.... 물결치듯 커졌다 작아졌다 다시 커지는 박수소리, 자신 얼굴 반만 한 1000원짜리 지폐를 앞세운 아이가 준에게 ‘아장아장’ 내딛을 때마다 ‘나풀나풀’ 나비를 쫒는듯하다. 아이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보석, 준이 머리를 쓰다듬자 무언가를 찾듯 ‘두리번두리번’ 칭얼댄다.

"이쁜 꼬맹이.?몇 살?"
“이잉~”
이에 아이의 아버지인 듯 보이는 사내가 허리 굽힌 잰걸음으로 다가가 앉으며 눈높이를 맞춘다.
"명훈이 몇~살,"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아이, 자신 있게 손가락3개를 펴 보이며 함박웃음을 웃는다.
“아휴! 우리 명훈이 잘했어요. 안녕 하세요. 해야지."
과장스런 목소리로 엉덩이를 토닥이는 아버지, 명훈은 준을 향해 고개를 까딱이더니 이내 아버지의 가슴을 판다.?

"3살이야, 명훈이. 참~ 잘 생겼다."
준의 칭찬에 쑥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까닥인 아버지, 아들을 안고 꼬질꼬질한 벙거지 앞에 선다.
"명운아. 여기다 넣어야지."
명운이 쥐고 있던 지폐가 꼬질꼬질한 벙거지 안으로 투하하자 잦아들다 커지는 박수소리와 환호성의 어울림, 최고조다.
“뭐 하노? 한곡 더해 바라.”
“앵콜이라는데! 노랫값은 해야제.”
“키타가 없어서 그러나? 누구 쭌이 사무실에 가서 키타 가져와라.”

기대이상의 금전적 호응과 집중된 시선에 준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손을 좌우로 흔든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환호성과 박수소리에 휘파람소리까지 더해진 흥분의 도가니다.
“앵콜~ 짝짝짝........호훗~~ 짝짝짝....... 아침부터 할 일 있나. 한곡 더 해바라.”
그렇게 후덥지근한 기온과 각양각색[各樣各色]의 환호성소리가 어울려 부산역광장의 여름아침풍경은 화기애애하게 선명해진다.

3. 일어나

관중들을 헤치고 나서는 뻥구, 준에게 ‘헤실헤실’ 눈인사와 함께 손에든 기타를 건넨다. 준이 부산역분수대 앞에서 공연할 때 쓰는 기타로, 벙거지를 준 앞에 던져놓고 물러났던 동근이 때마침 구경하던 뻥구를 구경꾼들 뒤로 데려가 엉덩일 흔들며 기타 치는 흉낼 곁들인 설명을 했던 것이다.

“이거, 이거 알제! 준이 사무실에 가 가져와라. 알았제.”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준은 얼떨결에 받은 기타를 어깨에 멘다. 그리고 엷은 미소로 주위를 훑어보며 기타머리를 물고 있는 카포[Capo]를 두 번째 플랫[flat]에 끼운다. “궁쿵작작 .................” 경쾌하고 흥겨운 8비트 리듬이다.

“검은 밤에 가운데 서있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1995년1월, 미스터리[mystery]한 죽음으로 대중들을 안타깝게 했던 가수 김광석이 부른 노래 ‘일어나’다. 이 노래 또한 준이 하도 불려 부산역광장을 거쳐 간 노숙부랑인들 사이에선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가 된 노래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시작된 박수장단에 아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동근과 어울려 춤을 춘다. 그러나 한 노숙부랑인이 두 다리를 '흔들흔들' 개다리 춤을 출 때는 모두들 추던 춤을 멈추고, 장단 맞춘 박수를 치며 왁자지껄한 폭소를 쏟아낸다. 그렇게 과도하게 흥겨워진 박수장단이 엇갈렸다 이내 절묘하게 하나가 되더니 각양각색[各樣各色]의 목소리가 어울린 합창을 한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에 새싹들처럼”

노랫소리, 박수소리, 즐거워 죽겠다는 환호성 등으로 왁자지껄하게 채워진 이른 아침 부산역광장은 피날레[finale]를 앞둔 축제풍경을 보는듯하다.

그때 구경꾼을 헤치고 한 사내가 나선다. 모든 걸 동근에게 일임[一任]하고 떠났던 김 경장이다.

“햐~아 아직도 안 끝난는교?”
“아! 동생이가, 근데 와 또 왔노?”
동근은 친근함을 표하고 싶은 것인데, 멍들어 붓고 터진 메기 같은 얼굴이 웃는 건지, 인상 쓰는 건지 묘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 경장의 퉁명스런 대답에 이내 불통한 본색을 드려낸다.
“신고가 들어왔다 아니요.”
“뭐 신고! 진짜 함 해보까?”

빠진 앞니를 자랑이라도 하듯 침을 튀기며 불거진 목의 힘줄을 ‘실룩실룩’ 혁대를 풀려는 과장된 몸짓이다. 이에 김 경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낯빛을 바꾸며 동근의 두 손을 잡는다.

“아이~ 참! 왜 이라는교?”
“내 누군지 모르나? ”
“아~ 참! 와 이러는교?”
“이거 놔 바라. 내 함 해보께.”
“아~ 참!”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동근과 김 경장,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환호성을 치며 어울렸던 구경꾼들이 서둘러 갈 길을 재촉한다. 환경변화에 민감한 노숙부랑인들 또한 삼삼오오(三三五五) 흩어져 빈 벤치를 찾아 앉으며 비밀을 공유하듯 소리죽인 대화를 나누거나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찾는 등 부산스럽다.?몇몇은 벌써 등에 맨 가방을 베개 삼아 느티나무가로수 벤치들을 독차지하고 금방이라도 누울 폼이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공권력은 그만큼 두렵고, 귀찮고, ..........결국에는 하찮은 것이다. 이를 지켜보며 어깨에 멘 기타를 풀어 든 준이 동근과 경찰관 사이에 끼어든다.

“예! 예! 알겠으니까. 이젠 정리하겠습니다.”
하지만 김 경장은 준의 말을 무시한 채 지훈과 두 덩치를 향한 의심 섞은 말투다.
“와 그라고 있는교?”
“신경 쓰지 말고 가 일 보이소.”
언제 일어났는지 떡 벌어진 어깨를 움츠리기 바쁜 덩치들과 나란히 무릎 꿇고 앉아있는 지훈, 싸울 때와는 다르게 풀 죽은 모습이다. 그런 지훈의 모습에 노숙부랑인들은 생각지 않게 등장해 뭔가를 캐보겠다는 김 경장이 달갑지가 않은 것이다. ‘웅성웅성’ 주장과 의견들이 마구잡이로 엇갈린다.
“그래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가 일보이소.”
“할일 없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지 뭐 얻어 처먹을 게 있다고 또 와 지랄이고.”
“그래 하는 말이 민중에 방망이 아니가.”
울분이고, 반항이고, 애원이고, 욕이고, 협박이고, 거짓말이고, 때늦은 공권력은 씨도 안 먹히는 기막힌 상황. 결국 할 말이 없어진 김 경장이 아우성인 추레한 차림들을 훑어보며 단호함을 가장한 볼멘 목소리를 내뱉는다.

“자꾸 이라면 모두 연행 할 수밖에 없십니더.”
이에 동근이 심통 난 아이처럼 입술을 삐죽, 그렁그렁한 목소리를 자랑하며 풀었던 혁대를 채운다.
“웃기지 말고 우리 동생 말 들었제. 쪼매만 기다리라. 알겠제.”
김 경장은 결국 20분 안에 해산하겠다는 믿기엔 좀 그런 약속을 받고나서야 낮 뜨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폭주하는 민원, 한정된 인원, 비좁은 파출소, 통제가 안 되는 노숙부랑인들, 공권력을 과시하기엔 모든 상황들이 받쳐주지 않는 여름 피서 철에 일요일아침. 당사자 간에 문제만 없다면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4. 알아서 하소.

이젠 준과 서릿발 같은 공권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동근을 포함한 6명의 공범들이 부산역의 새벽을 건드린 삼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결정해야한다. 동근이 가로수벤치를 향해 걸어가며 흥분을 가라앉힌 입을 연다.

“동생아, 아까 할 말이 있다고 했제? 함 해봐라.”
“아니 이 자식들 내가 알아서 하께요.”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마음을 쏟아낸 준, 잠깐의 침묵이 뭔 뜻인지 알겠다는 듯 속내를 마저 털어놓는다.
“.....................”
“다구리(집단폭행)로 조지긴 좀, 그렇잖아요.”

준이 그렇다면야 이미 결정 난 것이다. 그래도 성동근하면 명색이 부산역두목, 동의를 구하는 척이라도 해봐야한다. 쩌 벌린 두 다리에 어깨를 추켜세운 위엄스런 자세로 준과 함께 서있는 5명의 노숙부랑인들을 휘둘러본다. 5인의 노숙부랑인들은 응징은 고사하고 보복을 걱정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염려스러움에 범상치 않은 눈빛을 주고받기 바쁘다.

1초........10초....

“뭐! 노래 값이라고 쳐야제! 알아서 하소.”

어쩔 수 없다는 듯 합리주의를 강조하며 이탈하는 노숙부랑인, 준과 제일멀리 떨어져 있던 노숙부랑인이다. 상황이 종료되면 체감해야할 세상냉대에 등이라도 부빌 벤치를 차지하기위해서다. 세 명의 노숙부랑인들 또한 입 맞춘 신호인양 짧은 시간차를 두고, 어깨에 멘 가방을 풀어 내리며 앉을자리가 남아있는 벤치를 향해 흩어진다.

“자슥들, 오늘 사람 잘 만난 줄 알아라.”
“인간 같지 않은 자슥들 땜에 잠도 못자고 이게 문 짓이고..........”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제, 알아서 하소.”

그렇게 준과 2명의 노숙부랑인들을 뺀 나머지들이 자리를 차고?앉는데, 아스팔트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은 이가?세월을 반추 하듯 희뿌연 담배연기를 내뿜는다.?그렇다고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벤치와 아스팔트바닥에 신문지나 박스를 깔고 앉아있는 40명 정도의 노숙부랑인들이 자신들과는 상반된 동의와 합의를 얻어낸 준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할 각오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 일어나라.”

눈 마주치기 어색한 분위기를 타이르듯 내뱉은 준, 하지만 앉아있는 사람들도, 먼 산을 보는 사람들도, 누워있는 사람들도, 담배 피는 어느 누구도 동의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다만 관심 이상으로 지켜보는 눈빛들이 선뜻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고개를 파묻은 채 무릎 꿇은 지훈과 두 덩치들 또한 서로가 서로를 살피는 곁눈질이다. 누구든먼저 반응하기를 바라는 것인데, 준이 중저음을 불량스럽게 쥐어짠 고함질로 다그친다. 이에 지훈이 마지못해 꼼지락꼼지락 무릎을 펴자 이때다 싶은 두 덩치들 또한 무릎을 펴며 일어난다.

“..........................”
“이 자식들이 고사 지낼 거야?”
“...........”

준이 그런 지훈에 이어 두 덩치를 지목해가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자랑하며 몰아 부친다. 그러나 불려도 대답 없는 두 덩치들의 묵묵부답[??不答]에 불끈 쥔 주먹을 후려칠 듯 흔들어대자 놀란 어깨를 들썩인 두 덩치들이 자대 신고하는 이등병 폼이다.

“야! 김지훈이,”
“예~”
“또 덤비고 싶으면 반병신 될 각오하고 와. 알았지.”
“...................”
“새끼 하고는! 그리고 너희 두 놈.”
“.........................”
“이 새끼들이 대답이 없어.”
“예~옛”
“앞으로 지훈이랑 같이 다니는 게 내 눈에 띠든가. 아니, 소문만 들려도 내손에 죽는다.”
“옙!”

이유야 어쩌든 두 덩치들은 지훈의 부하이길 포기하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그런데 다리가 풀려 걸을 수 없다며 지훈이 울먹인다. 그동안 유쾌, 통쾌로 괴롭혀왔던 노숙부랑인들에게서 해방 되었다는 만감이 교차한 때문이다. 부하이기를 포기했던 두 덩치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부산역을 빠져 나간다. 양쪽 겨드랑이를 부축 받았지만, 질질 끌려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지켜보는 노숙부랑인들의 마음이 찜찜한 것은 절대 이대로 물러 설 지훈이 아니란 공통된 느낌 때문이다.

그렇게 부산역광장을 빠져나가는 3인의 탕아들, 뒷짐을 진 채 주시하는 준에게 두 사람이 ‘굽실굽실’ 다가간다. 이른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곤욕을 치러야 했던 사과장수지민과 마른기침을 발작적으로 내뱉던 나이 먹은 노인이다.

“힝~ 해...행님요. 가..감사 감사합데~잉.”
“커억... 커커... 감사 합니더. 선생요, 커억... 제가 빨리 죽어 삐리야 되는 긴데, 커억, 커...그래야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는 긴데...........”

세월이란 모진풍파에 깎일 대로 깎여 초췌하진 노인의 등을 쓸어내리는 준, 이세상의 그 무엇이 이 힘없는 노인에게 이런 인생을 살게 한 것일까? 그 어느 누구도 강요한 사람은 없다. 있다면 힘없고 빽 없는 죄요, 빈곤과 가난을 공유하는 소통보다, 자본우선주의의 협잡(挾雜)을 나누자고 권하며 꾸며대기 바쁜 종교, 정치, 경제, 사회가 휘두르는 미친 권위와 권력과 지식일 것이다.

옆에 서서 머리를 긁적이던 지민이 준과 눈이 마주치자 히죽인다.

“히~잉"
“왜? 짜장 한 그릇하까?”

준의 짜장이란 말에 모자 속 돈을 추리던 동근이 좌우를 휘둘러보며 사람 수를 세는가 싶더니 지민을 향해 가래가 그렁그렁, 울퉁불퉁한 목소리를 외친다.

“짜장! 그래 먹자. 몇 명이고? 1, 2, 3.................20.... 싼초! 한 30그릇 시키삐라. 준이 것은 곱빼기로 하고.”
“힝~ 쪼..매만 기다리시소.”

옛정을 못 잊고 찾아온 사과장수 지민, 오랜만에 부산역 싼초가 되어 풍물거리를 향해 뛴다. 그런 싼초의 뒷모습을 확인한 동근이 모여 있는 노숙부랑인들에게 갈색벙거지를 들이댄다.

“자, 자, 있는 대로 좀 보테 봐라.”

아직 추리지 못한 잔돈을 짤그락짤그락, 십시일반[十匙一飯]을 부르짖는 윽박지름. 구경꾼들이 던져준 돈이 모자란 것보다 자장면30그릇은 행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권리, 특권인 것이다.

“니! 임마, 이럴끼가? 천 원만 내라. 뭘 꾸물거리쌓노?”

하지만 어느 누구 맞대응 하는 이가 없다.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내 놓던가 곤욕스러운 거부의사를 표명하고, 눈치 빠른 몇몇은 돕겠다며 야식집을 ‘들락날락’ 야단법석[野檀法席]을 피울 뿐이다. 야식집 또한 이른 아침 자장면30그릇 배달은 야식집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 한마디로 정신없다.
그런데 소문에 모여드는 노숙부랑인들이 주문한 자장면숫자를 훌쩍 넘어가, 결국 한 그릇에 두세 명씩 달라붙어 젓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순서인양 몇몇이 가방을 뒤져 소주를 꺼내놓자, 동근이 휴대용스테인리스 컵에 한가득 부어 준에게 권하더니, 한 모금씩 돌려 마시는 병나발 건배를 한다.

“자! 잔은 평등하게 인생은 멋지게!”
“건배!”

이런 저런 사소한 것들까지 어울리는 풍경들이 이해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감상하기 자연스런 그림 같다. 그렇게 이른 새벽부터 부산역광장을 후덥지근하게 달군 싸움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도 술자리 분위기를 띄워줄 시답지 않은 한 토막 전설이 되기 위해 여름날 분주한 풍경 속으로 가물가물 스며든다.

<계속>




<이호준 약력>

전라북도 정읍 출생
작사,작곡가, 거리음악가
문화복지 여섯줄사랑회: 회장
실직노숙인조합: 위원장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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