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한대뿐이지만 사과 장사를 하는 ‘지민’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부산역에서 꼬지를 하던 노숙부랑인 ‘싼초’였다. 홀 어머님이가 돌아가시자 거리로 내쫓겼던 것인데, 돌아가고 싶어도 엄마 없는 집은 감옥이요, 주동자인 형의 폭력은 고문이었다. 그렇다고 자본우선주의에 철저하게 편집된 길 위에 내 팽개쳐진 장애인을 환영해 주는 곳이나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엄습하는 무자비한 현실, 벗어나야 한다는 초초함에 쫓겨 피곤하면 신문지나 박스를 의지하여 잠을 청하는 노숙에 구걸을 하며 무작정 걸었다. 그런 그가 부산역광장에 머물게 된 것은 찬송가 때문이었다. 집에 갇혀 지내는 동안 라디오를 통해 친숙해진 노랫소리, 하지만 잔심부름에 심심찮게 얻어맞고, 욕먹는 고통의 연속이기도 했다.
준이 그런 지민의 말 못할 사연을 알게 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날도 부산역분수대 앞에서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를 마지막으로 하는 메들리레퍼토리[medley repertory]를 뽐내고 있었다.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에 나라로 갑시다.”
그런데 누구든 눈만 마주치면 어눌하게 히죽이고 보는 싼초가 노래를 마친 준의 코앞에 자장면을 들이민다.
“힝~ 해.......”
“그래! 그래! 형님이라고,”
“힝~”
“근데 왠 짜장이냐?”
말을 받아준 준에게 쑥스러운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히죽이던 싼초, 이유야 어쩠든 자장면을 받아든 준이 분수대경계석에 앉아 ‘후루룩 쩝쩝’ 개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어~! 잘 먹었다. 근데 자장면 값을 머로 해야 하나?”
싼초는 처음부터 싼초가 아니었다. 그냥 “야”로 불리며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부산역 최하바리 꼬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꼬지[구걸]한 보잘 것 없는 수입으로 박스[box] 몇 장 펼쳐놓고 술상을 차릴 때였다. 중앙에 이미 얼큰하게 취해 다리를 꼬고 누워 주먹만 한 트랜지스터라디오[transistorradio]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던 동근이 갑자기 자리를 차고 일어나 손가락질지휘에 불퉁한 목소리를 쏟아낸다.
“화려한 불빛......눈물 같은 세월에 나는 꽃잎이 되어 떠다니는 구름이 되어.....야! 니 오늘부터 부초다. 알겠나.”
소주, 오징어, 참치통조림.... 등을 늘어놓기 바쁘던 야, 동근을 보며 “힝~”하며 히죽일 뿐이다. 기대이하의 반응에 동근이 시들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누워버린다.
“노래 가사하고 딱 이다 아니가?”
그 순간 부초[浮草]란 별명은 불러주지 않는 이름 이상의 존재감이 되어 노숙부랑인들의 심심풀이 술 한 잔 입방아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몇 주가 지났다.
주말 저녁이면 특권인양 부산역대합실에 앉아 TV를 보던 동근이 옆에 서있는 부초를 향해 영화 속 장면흉내를 낸다.
“헤이~ 싼~초, 총을 뽑으라.”
손가락 총을 뽑아 쏘는 동근을 보며 어눌하게 “힝~”히죽이는 부초, 그때부터 부초라는 유행가 제목보단 남성미가 물씬한 싼초가 된 것이다. 그런 세월이 벌써 3년, 하지만 지금껏 누구하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 한 사람 없었다.
“힝~”
준이 자장면을 먹는 동안 햇볕을 가려주며 서있던 싼초, 뒷주머니에 작은 생수병을 꺼내 준에게 건네며 옆 경계석에 앉는다. 생각지 않은 자장면에 물 대접까지, 준은 횡재한 기분이다.
“뭘 이런 것까지!”
병마개를 비틀어 벌컥거리는데, 싼초가 바지주머니를 뒤져 꺼낸 뭉치를 준의 코앞에 들이민다. 사방이 노란고무줄에 칭칭 감긴 신문지뭉치다. 마시던 물병을 내려놓은 준이 받아 펼치자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장애인복지카드,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인쇄된 활자가 너덜너덜하다. 하지만 박지민이라는 이름과 사진의 윤곽이 정신지체2급이란 정보와 조합되어 싼초가 임자인 것은 틀림없다.
2. 자장면 값
준은 그렇게 앞뒤를 살펴본 복지카드를 싼초에게 건네며 생수병에 남은 물을 마저 들이킨다. 약지손가락으로 아스팔트바닥을 비벼대던 싼초, 더듬거리는 독백과 함께 건네받은 카드를 신문지에 펼쳤던 순서대로 접어 앞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그리고 자장면 먹은 흔적들을 서둘러 챙긴다.
“힝~ 지.. 집에 가고 싶다.”
자장면, 잠뽕 몇 그릇에 소주파티중인 형님들에게 눈치껏 합류하려는 것인데, 준은 그저 쳐다볼 뿐이다. 뭘 더 물어보고 싶어도 찾아 눈에 띄지 않으면 욕을 먹고 손찌검 당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칠이 지난 금요일 오후.
공연장비 설치로 정신없던 준이 등 뒤의 인기척에 눌러 쓴 보라색모직벙거지를 치키며 뒤돌아본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삐딱하게 서있는 말쑥한 차림의 성동근, 인사를 대신한 용무를 밝힌다.
“바쁘나?”
“아! 형님, 3신데 공연해야죠!”
“그래도 내랑 커피한잔 하자.”
“...............”
공연 장비를 펼쳐놓은 채 자릴 차고 일어난 준, 어수선하다. 이미 뒤돌아서 그늘 좋은 가로수벤치를 향해 걸어가는 동근의 뒤꽁무니를 따르는데, 동근이 커피수레를 끌고 다니는 아줌마를 부르는 손짓을 한다. 그러나 무얼 먹어도 계산이 희미한 동근이기에 손수레를 챙기는 아줌마의 느릿한 행동과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결국 동근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주머니지갑에서 꺼낸 1000원을 쥐고 흔든다.
“뭘로 드릴까예? 시원한 냉커피, 마차?”
“됐다. 됐고. 동생아, 커피 괜찮체?”
“예. 뭐! 전 아무거나 좋습니다.”
“커피 두잔 도.”
“예~ 잠깐만 기다리이소. 맛나게 타드리께예.”
횡재라도 한양 동근에게서 천원 권 지폐 한 장을 받아 챙긴 아줌마, 커피 타는 손길이 활기차다.
“내 돈 받는 게 그래 좋나?”
“그래 보여예? 자! 여기, 동근 아제의 건강을 비는 정성을 담았어예.”
“고년 다른 건 몰라도 입담 하나만은 천하일품[天下一品]일세.”
“드이소. 모자라면 또 부르시고예. 오늘은 돈도 받았는데! 서비스 양껏 해주꾸마.”
더운 여름날오후, 벤치에 나란히 앉아 커피향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종이 잔을 받아 든 두 사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동생아. 며칠 전 싼초가 보여준 거 있제?”
자장면 한 그릇을 들고 온 싼초가 내민 복지카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준은 불안하다. 성동근하면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의 두목으로 말이야 곱게 해도 행동을 가늠하기 힘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답을 망설여야하는 그 짧은 긴장감에 파노라마[Panorama]처럼 떠오르는 지난날들, ‘불우이웃돕기공연’하겠다고 부산역으로 넘어온 첫날이었다.
장비를 설치하고 공연을 시작하려는 준 앞에 어깨를 ‘으쓱으쓱’ 버티고 서는 노숙부랑인, 숨쉬기 불편한 냄새에 흐릿한 눈빛과 이마를 빽빽이 싸맨 깨끗한 붕대의 조합이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 느닷없는 발길질에 악보스탠드가 마이크스탠드와 함께 “우까꽝깡~” 요란하게 널 부러진다.
“노래 할라꼬? 그라믄 우리 똥근이행님 허락받고 해야제.”
부산역 꼬붕들 중 고참 겪인 김동만이다. 원래는 제일 늦게 식구가 된 지훈이 나설 일인데, 며칠 전 불심검문으로 들통 난 밀린 과태료 150만원 때문에 구속돼버려 부산역서열로는 지훈의 위요, 친구인 동만이 나선 것이다.
산발한 긴 머리를 치렁치렁 기타를 어깨에 둘러 맨 채 눌러 쓴 보라색모직벙거지를 경계로 번들거리는 눈빛, 널 부러진 악보와 스탠드들을 챙긴다. 동만의 덤빌 것이라는 예상이 보기 좋게 빚나간 것이다. 동만은 농락당한 기분에 치미는 분기를 주체 못하고 주먹을 휘두른다.
“이 자슥이,” .
턱을 향해 타원형궤적을 그리며 휘어들어가는 주먹, 준은 세우려던 스탠드를 팽개친 채 옆으로 종종걸음 치는 게걸음질을 하며 편 손날을 동만의 목을 향해 쭉~ 뻗는다. 기타를 메고 있어 엉성해 보이지만, 권투선수의 스트레이트펀치[straight punch] 폼으로 날린 목침이다. 뜻밖의 공격에 가격당한 목을 감싸 쥔 동만이 뒷걸음질을 치더니 뒤돌아 등을 보이며 주저앉는다.
“카각~ 칵, 니, 사람 칫나.”
“...................”
“기타처서 돈 많이 벌어, 캐액,...”
그렇게 주저앉으면서도 치근덕대는 악다구니에 열중하는 동만, 준이 발뒤꿈치로 동만의 등을 찍어 민다.
“그래! 얼마면 되는데? 새꺄.”
한번해 볼 테면 해보자는 것인데, 동만이 단발의 비명과 함께 목을 감싸 쥔 손을 재빠르게 풀어 바닥을 짚는다. 하지만 아스팔트바닥에 얼굴을 처박아야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하늘을 우러러 나동그라진다.
“욱, 개..갱찰 좀 불러주소.”
그런데 목침 한방에 동만이 주저앉을 때부터 ‘휘적휘적’ 바쁘게 다가갔던 사내들, 준과 부딪친 시선을 유지하며 널 부러진 지훈을 경계로 맞선다. 3대1, 준은 왼 주먹을 불끈 쥐며 상대방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위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차피 덤비는 첫 상대를 한방에 쓰러트리지 못하면 그걸로 모든 건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앞의 세 명을 쓰러트린다 해도 그 다음 또한 6명이 덤빌지 10명이 덤빌지 모르는 미지수다. 막연하게나마 숫자적우세가 선발을 무너트린 강자에게 베푸는 속보이는 관용을 믿어볼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 명이 동만이 일어날 수 있게 부축한다.
“일나라. 니는 안 되겠다.”
그렇게 동만을 부축한 두 명이 동패들이 모여 있는 택시 승강장 쪽 가로수벤치를 향하자 나뒹군 두 개의 스탠드를 대충 세워놓은 한명이 그 뒤를 따른다. 한판 크게 붙을 줄 알았던 준은 보기 좋게 빗나간 예감에 오만 잡생각들을 조합(調合)해 본다. 하지만 사정이야 어찌됐던 싸움을 말리는 사람들에게 뭐라 할 순 없는 법, 경계의 눈빛을 반짝일 뿐이다.
준이 부산역분수대를 배경으로 공연 장비를 설치하고 있을 때부터 한쪽에 모였던 논다는 치들의 의견들이 분분했었다.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고, 꼬지수입도 괜찮을 것이란 의견에 일단 두고 보자는 쪽이 우세였다. 그런데 동근은 달랐다.
“뭔 말이고? 법대로 해야제. 동만아! 니 가봐라.”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부산역에서 준에 관해서는 상식이 통제할 수 없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래서 세 사내들도 경찰을 부르거나 주먹을 앞 새우기보단 나가떨어진 동만을 챙기기 바빴었고, 그로부터 일주일동안 주먹질에 침 튀기는 설전(舌戰)이 네 번이나 오고갔다. 그러나 왈가왈부하는 사람 한 사람 없었고, 경찰 또한 신고하는 피해자가 없으니 예의주시하자는 자세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다음 다음날도, 공연 장비를 설치하고 있으면 업그레이드[upgrade]된 컴퓨터게임 속 전사처럼 전날보다 더 강해 보이는 사내가 시비를 걸어올 뿐이었다.
그런 하루일과로 일주일을 보낸 준, 공연장비 설치하던 손을 멈춘 채 하늘 향해 “휴~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참! 맑고 푸른 가을하늘, 노래보다 주먹질한 날이 많았던 지난일주일, 정당하지 못한 알력에 타협하거나 굴복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부르는 인기척, 준이 뒤돌아본다.
“내 좀 보자.”
흰머리가 희끗희끗 두꺼비 얼굴을 한 깔끔한 차림의 사내가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짝 다리를 집고 서있다. 준이 일어나 장갑을 벗어 한손에 쥐는 우호적인 예를 표하며 고개를 까닥인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겠다는 의지표명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위치를 상기시키는 가오(かお)를 잡는 사내다.
“니 이름이 뭐꼬?”
“예, 이준 입니다.”
“내 누군지 알제?”
준은 우호적인 노숙부랑인들이 일러준 덕분으로 눈앞의 사내가 부산역노숙부랑인들의 두목 성동근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째 살을 부비며 주먹질에 발길질이 오고 간 싸움, 인정해주지 않는 상대에게 무작정 굽히긴 싫어 대답대신 날카로운 시선을 ‘번들번들’ 성동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
부딪치는 눈빛에 맴도는 묘한 긴장감, 동근이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며 말을 잇는다.
“됐다마. 뙜~다. 그건 됐고, 앞으론 니 괴롭히는 일 없을 끼고마.”
“...............”
“힘든 일 있음 얘기하고, 노래하다 생각나면 용필이 노래 한곡 해도.”
그렇게 해서 준은 부산역식구가 되었다. 선보인 싸움 실력 덕분으로 노래하는 근처엔 부산역 어느 누구도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고, 오히려 멋모르고 덤비는 치들이 있으면 해결사를 차처하고 나섰다. 그런 면에서 성동근은 가장 믿음직스런 비호세력이었다.
이런 과거 때문이라도 마냥 불안한 준이 동근의 얼굴을 살피며 입을 연다.
“왜, 무슨 일 있습니까?”
동근이 대답대신 커피 잔을 내려놓고, 상의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입에 물더니 “칙~" 라이터를 켜며 희뿌연 연기를 내뱉는다. ‘느릿느릿’ 뜸 들이는 듯한 행동 같아 마냥 불안한 준, 후~후~ 불어 마신 커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다 ”꿀꺽”하고 걸리는 소리다. 이에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멋쩍은 얼굴을 태연함으로 가장하는데, 동근이 그런 준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불퉁한 목소리를 쏟아낸다.
“일은 무슨 일, 싼초가 집에 가고 싶다꼬 울고불고 난리 치 쌓테, 내는 모르겠고 니가 좀 도와도. 그래도 그게 예술이 뭔진 아는 기라.”
과연 동근이 말한 예술이란 무엇일까?
숨쉬기 좋은 공기 같은 것일까?
생명을 품어주는 어머니 뱃속 같은 것일까?
원활한 소통과 자유로운 풍요가 공존하게 하는 행위일까?
그렇다면 싼초가 3년 동안 벙어리냉가슴 앓듯 숨겨왔던 사실을 되찾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아무런 이익도 없는 동근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산역 싼초는 지민이란 이름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하지만 지민에겐 3년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면 싼초에게 집은 무슨 의미일까?
정치와 종교, 그리고 자본이 만든 제도일까?
범죄일까?
이상향일까?
그것은 권모술수[權謀術數]와 감언이설[甘言利說]이 판치는 세상을 바라보며 허기나 채우기 위해 무심무감[無心無感]으로 방황해야 하는 부끄러움에 “개 코나 나발 이다.”면 손가락질을 하는 깨달음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도 익숙한 냄새를 가진 사람들을 향한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내 갈 끼구마. 있다가 용필이 노래 한곡해도,”
벤치에서 일어난 동근, ‘휘적휘적’ 노숙부랑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벌인 술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인생은 예술이라고 하지 않던가! 감동, 위안, 나눔으로 소통하고 변화하며 융화해 소멸과 탄생을 이어온 관계적 카타르시스[catharsis], 하지만 정치나 경제, 종교, 교육에게는 말만 화려한 신분상승일 뿐이고, 좋은 돈벌이수단이며 1%의 기득권을 위한 자본우선주의가 재단, 편집한 행포일 뿐이다.
그래서 배고픔, 슬픔, 외로움을 나눈다고 떠벌리지만 배 터져 죽었다는 공유[共有]는 없다. 다만 99%의 창의적인 생각을 분리하고, 누려야 될 권리를 차단, 수정하여 자본을 극대화시키려는 연산작용[演算作用]일 뿐이다. 그런 수정분리적인 생각들은 계급적 분열을 조장, 신을 찾는 기득권들의 이유가 되고, 개발하는 기득권들의 이유가 되고, 착취와 핍박하는 기득권들의 이유가 되어 지금껏 자본이데올로기를 권장, 보호, 육성해 왔다.
3. 과거 속에 사람들
아침 일찍 목욕탕을 다녀온 싼초, 깨끗하다. 팔과 얼굴에 지난 3년 동안의 우여곡절[迂餘曲折]들로 얼룩진 상처들이 확연하게 보일 정도다. 그리고 집에 간단 소문에 누가 사 입혔는지 알록달록 잘도 차려 입었다.
그렇게 몇몇 부산역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면 택시를 탄 싼초, 복지카드가 희미하게 증명하고 있는 동네까지 창밖 풍경에만 열중하더니 내린 언덕 언저리부터 골목골목을 발걸음도 가볍게 헤집는다. 뒤꽁무니를 졸졸졸.....쫓는 준은 푹푹 찌는 뙤약볕에 헉헉... 더운 숨을 내뱉기 바쁘다. 그런데 갑자기 멈춰서는 싼초,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한곳만을 쳐다본다. 10미터 앞 녹슨 파란대문이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이마에 땀들이 붉게 익은 뺨을 타고 턱을 통해 떨어져 ‘피~이 피~이’ 마른먼지를 일으키는 것이 마치 전쟁영화 속 폭격장면처럼 같다.
그런 싼초의 뒤꽁무니를 졸졸졸..... 쫓기 바빴던 준이 드디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아~ 힘들다. 왜?”
“힝~ 저..기다. 우..우리 집!”
“저기란 말이지!”
슬로우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화면 같은 싼초의 말더듬에 만족한 목소리를 음미하듯 중얼거린 준, 녹슨 파란대문을 향해 걸어가 “띠~잇”초인종을 누른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길어지는 침묵에 초인종을 연속으로 누르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쉰 목을 돋워본다.
“..................”
“띠~익, 띡, 띠~이~ㄱ,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계십니까?”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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