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위의 사람들 (16) - 싼초(2)

이호준 / 기사승인 : 2012-06-12 11: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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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한 침묵, 긴장의 정도가 더해지자 바람소리가 인기척으로 들릴 정도다. 결국 좁은 어깨를 움츠린 채 준의 뒤에 서있던 싼초가 달려들어 “캉, 캉, 캉,” 대문을 두드린다. 혼란스러움을 참지 못한 것인데, 끼익~ 꺽, 끼익~꺽..,,,괴로움을 토하는 파란대문은 녹슨 아랫부분이 금방이라도 찢어지던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그런 싼초의 마음을 늦게나마 알아주듯 낮잠 자다 깬 하품 섞인 목소리에 불규칙적으로 슬리퍼 끄는 소리다. 하지만 작열하는 뙤약볕에 ‘끼익~ 꺽, 끼익~ 꺽, 꺽, 꺽, 컥,’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듯한 대문소리와 범벅이 되어 준에겐 정돈된 기대감을 싼초에겐 막연한 불안을 느끼게 한다.


“아하~ 피곤해 죽겠구만,”
“차까~ㅇ, 끼익~꺽,...”


차가운 금속성과 함께 녹슨 아랫부분을 너덜거리며 열린 대문, 낮잠에서 덜 깬 눈을 비벼대는 빨강운동복의 50 중반의 사내가 얼굴을 내밀더니 문에 껴 굳어버린 석고상 같다. 준의 등 뒤로 숨는 뻥구를 목격한 것인데,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타캬악~” 언젠간 닥칠 것이라 우려했던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문을 닫아 걸어버린다. 싼초는 당황스럽다. 녹슨 파란대문너머로 숨어버린 형을 주문처럼 부르더니 이내 절박하다 못해 시끄러운 울음을 쏟아낸다.


“형아, 형아, 형아, 혀엉~,혀엉~,......”


개돼지만도 못한 목숨을 구걸로 연명[延命]하며 기억나는 순간순간을 벙어리냉가슴 앓듯 살아왔을 싼초, 준이 손부채질을 하며 그늘 좋은 맞은편 담벼락으로 걸어가 기대여 앉는다.
3년 전 싼초의 어눌한 인사를 한번쯤 받아봤을 이웃들이 2층 창문을 열고, 대문을 열고, 옥상에서서, 앉아서 가족들의 화기애애[和氣靄靄]한 저녁 찬거리로 쓸 이야기꺼리를 마련하기위해 기웃거린다. 녹슨 파란대문은 그런 속도모르고 스치는 바람에 “끼익~ 꺽, 끼익~ 꺽....” 정담이라도 나누자는 것 같다.


그렇게 후회와 원망과 애원으로 한참을 오열하던 싼초, 울음을 그친 채 이젠 파란대문을 바라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작스레 느껴지는 배고픔, 목이 쉬도록 운 탓도 있지만 뭐하나 속 시원하게 풀어진 것 없고 풀어질 것 같지도 않은 현실에서 일단 피하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잃어버린 것을 떠올린 듯 ‘두리번두리번’, 준이 그늘진 담벼락에 앉아 잔 돌멩이 던져 맞히는 놀이에 빠져있다. 쪼그려 앉자 한쪽 눈을 찡그려 감고 조준하는 것이 영락없는 올망졸망한 꼬맹이들의 구슬치기다.


“해..행님요.”


슬로우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화면 같은 말더듬에 울먹임이 더해진 목소리, 준이 돌멩이 조준을 흩트린 채 싼초를 올려다본다.


“다 울었냐?”
“힝~ 가~시지예. 지..가. 짜장 사께예.”
“짜장면! 배고프냐?”
“예. 배..”
“배고프다고”
“예~! 주..죽겠어예.”


말을 받아주자 더듬던 말을 자신 있게 내뱉은 싼초, 뒤돌아서 종종걸음을 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준도 그 뒤를 졸졸졸.......... 뱀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하며 휘어지고 경사진 산복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쌩쌩 바람을 휘날리며 뻔질나게 지나치는 여러 종류의차들, 등산복차림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흥겨운 수다소리, 시끄러운 매미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 지민에겐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서라운드음향이다.
그렇게 산중턱을 다 내려와서야 찾은 중국집, 세월의 모진풍파에 빨강페인트칠이 헤어져 대한반점인지, 다한반점인지 의심스럽다. 싼초가 “힝~”하고 히죽이며 미닫이문을 잡아당긴다.


“어서 오이소.”


덜덜덜..... 위기감을 토해내는 구형선풍기, 닦을수록 세월의 때가 묻어날 것 같은 6개의 아이보리색 4인용탁자와 의자들, 물걸레질의 물기가 남아있는 독기다시바닥, 파리똥범벅인 차림표, 특유의 기름 냄새, 기분 좋게 자리 잡은 풍경들의 나열이다.
어릴 적 싼초는 날이 저물면 형과 함께 창밖 맞은편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장사나간 엄마를 기다리곤 했었다.


“봐라! 봐라! 동생아. 눈감고 삼키바라. 맛있제. 자짱 맛나제.”
“힝~ 마..맛있다. 형아 도..또 먹자. 힝~”
“그~래. 우리 이쁜 동생 많이 무으라.”


그렇게 상상으로 고인 침을 삼키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빨간 생선다라를 머리에 인 엄마가 서 있었다. 그리고 길게 늘었다 줄어드는 엄마그림자를 벗 삼아 숨이 턱에 차는 종종걸음으로 산복도로[山腹道路]를 올라갔었다. 생선이라도 잘 팔려 “어이구, 내 새끼 엄마 기다맀나! 배 고프제? 빨랑 집에 가자. 맛 난거 해 주꾸마.” 기분 좋은 목소리를 높이는 날이면 앞선 형의 뒤꽁무니를 쫒으며 “자장면보다 맛있는 것이 있을까?” 엄마의 말을 의심해보기도 했었다.
그때도, 집에서 쫓겨나던 3년 전에도, 오늘도, 인사하는 젊고 뚱뚱한 남자를 뺀다면 변함없는 내부시설이다. 탁자 밑에 철재의자를 요란하게 끌어당기며 승리의 V자를 그린다.


“자..짜짱 꼬..꼽빼기 두.. 개 주이소.”
부여잡고 있는 과거만큼이나 누군가가 알아봐 줬으면 바라는 주문이다. 뚱뚱한 주인은 생각보다 빠른 주문에 반가운 대답을 쟁반에 담아 내려놓으며 주방으로 직행한다.


“예~ㅅ.”


물병을 놓고 두 개의 컵과 물수건이 끼리끼리 정다운 쟁반, 호들갑스럽게 벙거지를 벗은 준이 물수건을 펄쳐 얼굴을 닦는다.


“아하~ 덥다. 더워.”
“힝~” 히죽인 싼초, 가득채운 물 컵을 준 앞에 들이민다. 그리고 자신의 몫으로 남은 컵에
가득 부은 물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돌돌 말린 물수건을 펴 땀범벅인 얼굴을 닦는다. 그런 묘한 침묵과 주방 안의 맛있는 시끄러움이 부딪치기를 몇 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자장면이다.
자장면이 주인의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대충 휘적휘적 ‘후루룩~ 후루룩 쩝쩝.....’ 싼초는 예초부터 옷에 튀고, 콧등에 묻는 것엔 신경 쓸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먹는 건지, 삼키는 건지 요란하다. 그러나 준은 개운치 않은 마음에 먹는 둥 마는 둥 면 가락 세기 바쁘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가한 오후 식당 안은 두 사람의 자장면 먹는 소리, 구형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카운터에 앉아있는 주인의 신문 뒤적이는 소리 등으로 뒤죽박죽, 묘한 앙상블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자장면 포식을 끝낸 두 사람, 이젠 카운터[counter] 앞에 서서 자장면 값을 서로 계산하겠다며 옥신각신이다. 통통한 몸을 구형선풍기에 의지한 채 신문을 뒤척이던 주인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라 보는 표정이 푹푹 찌는 더위에 얼마 되지 않는 돈 가지고 오버하지 말라는 표정이다.


“해..행님예. 지..가 계산 하께예.”


얼굴을 찡그린 울상으로 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싼초, 준은 어쩌면 오늘 자신을 내쫓았던 형제들과 화기애애한 자장면파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자장면 값으로 받은 1000원 권 지폐를 헤아리는 주인에게 묻는다.


“아저씨, 여기 동사무소가 어딥니까?”
“동사무소예?...............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보입니더.”
“그러니까 쭉 가다가 왼쪽으로 돌아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쭉 가라이거죠.”
“예. 찾기 쉽습니다.”


자장면 값을 쥔 손까지 동원한 주인의 설명을 확인한 준, 어눌하게 히죽인 싼초가 슬로우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화면처럼 말을 더듬으며 바구니에 사탕을 한 움큼 집어 주머니에 챙긴다.


“힝~ 예..옛날엔 하..할아부지였는데?”
“아버지예! 몸이 안 좋으셔서 몇 달 전부터 병원에 계셔예.”


주인을 통해 들은 옛 주인의 예상치 못한 안부에 쾌유를 비는 주문인 양 “힝~”하고 히죽이는 싼초, 준이 재촉하며 출입문 쪽으로 몸을 돌린다.


“싼초 가자.”
“잠깐만예.”


그렇게 등을 돌린 두 사람을 불러 세운 주인,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상하며 날렵하게 카운터를 빠져나와 미닫이문을 열어젖힌다.
“...............................”
“드르륵~”


요즘처럼 장사하기 힘든 때 아버지를 찾는 손님이라면 안 먹어도 배부르고 기분 좋다. 이것이 이 허름한 집에서 뚱뚱한 몸을 움직여 표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인 것이다. 이유야 어쩌든 활기찬 인사로 문밖을 나서는 두 사람에게 연신 고개를 숙인 주인의 인사가 정겹다.


“잘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데이. 다음에 또 오이소.”
“힝~ 다..음에 또 오..오께예.”
“예~ㅅ. 안녕히 가이소.”


4. 가난한자들의 희망제작소


뒤꽁무니에 싼초를 단 준이 산등성을 따라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만들어놓은 골목골목을 헤집는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내 딛을 때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자장면집 주인의 설명 덕분에 어렵잖게 찾은 동사무소, 기능을 오버한 에어컨[air conditioner], 안경에 김이서릴 정도다. 준은 거사[擧事]를 앞둔 무사처럼 보라색모직벙거지를 벗어 헝클어진 긴 머리를 뒤로 쓸어 묶고, 테이블위에 두루마리화장지를 둘둘 말아 안경과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그리고 싼초를 뒤꽁무니에 달고 사회복지[社會福祉]란 명패 앞에 가 선다. 샴푸냄새가 상큼한 긴 머리에 검은색 플라스틱명찰을 단 여성, 봉긋한 가슴에 달린 명찰이 움직일 때마다 각도를 달리하며 김숙자란 이름을 번들거린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예?”


가장한 상냥함으로 고개를 든 김숙자씨, 속설[俗說]처럼 목소리와 비교되는 얼굴이다.


“싼초 거 줘봐라.”


뒤돌아 본 준의 손을 내미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머닐 뒤지는 싼초, 그렇게 손에 손을 거친 복지카드가 테이블을 넘어간다. 그런데 복지카드를 건네받으며 올려다보는 김숙자씨의 눈초리가 의심 가득하다.


“장애2급인데 생활보호수급대상잔지 확인 좀 부탁합시다.”
“두 분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데예?” ·····


공통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려는 것인데, 준이 대답보다는 바지뒷주머니에서 꺼낸 지갑 속 명암을 뽑아 건넨다.


“실직노숙인 조합, 뭐하는 덴데예?”
“노숙인 관련 쪽에 일하는 단쳅니다.”
“그래예! 근데 개인정본 함부로 가르쳐 드릴 수가 없는데예.”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살피기보단 편리와 보신으로 앞가림하려는 관료주의[官僚主義], 김숙자씨의 여전한 눈초리다. 준은 치미는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얼굴빛을 누르락붉으락 또박또박한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이친구가 부산역에서 노숙 한지 3년이 넘었는데, 보니까 장애인카드를 가지고 있길래, 뭐가 좀 잘못된 것 같아서 그럽니다.”
“뭐가예?”
“뭘 좀 알아야 도와주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아니 그리고 여기 당사자도 있는데, 그 정도는 획인 해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니면 당신들이 알아서 해보시던가?”
“저희가 뭘?”
“터진 입이라고 말로만 대민봉사니 뭐니 하며 구라 까지 말고 장애인이 부산역에서 3년 동안 노숙한 사실을 몰랐으면 모를까 알았으면 이제라도 국민의 권리를 찾아줘야 할 것 아닙니까!”
“그건 경찰서에 가서...... ”
“당신들 입만 열면 국민의 공복이니 뭐니 자화자찬에 핏대새우는 공무원들 아냐.”


뭐라도 금방 집어 던질 것 같은 준의 기세에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살피던 남자직원이 친절함을 가장한 미소로 끼어든다.


“저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같은 공무원이라도 담당하는 업무가 다르거든요. 저희 동사무소에서는.........”
“우리는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무식한 국민이라 그런 건 모르겠고, 여기 이친구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대한민국국민으로서 권리를 찾기 위해 위대하시고 고귀하신 똥사무소공무원님들 뵈러왔으니까. 법~대로 해주소.”
“그럼 일단 경찰서에..............”


동장에게는 오늘도 평생을 바쳐온 대민봉사의 길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컴퓨터 자판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그런데 퉁명스럽다가 비아냥대는 언성의 난동, 평소에 친절한 대민봉사상이라도 주고 싶었던 김숙자씨 자리다. 동장의 종교 같은 대민봉사일과에 일대위기가 닥칠 기미인 것이다. 만년필 뚜껑을 닫으며 금테안경 넘어 사내를 살핀다. 보라색모직벙거지에 긴 머리, 부산역분수대 앞에서 통기타를 치며 70~80년대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불러재끼던 사내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은 그렇게 모금한 돈을 노숙부랑인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내용의 신문기사와 TV가 며칠 전에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김숙자씨 옆으로 다가가 테이블 넘어 준에게 두툼한 손을 내민다.


“아니!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다 오셨습니까?”


싱글벙글 다정다감한 중년의 동장, 일어선 책상위에 동장 조명박이란 금박이 박힌 검은색명패가 서슬 퍼런 만큼 동사무소직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지금쯤이면 동사무소의 수장으로서 사법권을 운운하며 112신고를 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 언발란스[unbalance]함을 감지한 것인지 동장이 내민 손을 잡는 준의 인사 또한 엉성하다.


“예, 예,”
“며칠 전 TV에 나오시던데, 참! 대단하십니다.”


동장의 너스레에 준의 뒤에 어정쩡하게 서있던 싼초가 말을 더듬은 끝에 고개 숙인 인사를 한다. 받는 둥 마는 둥 준에게서 얼굴을 떼질 못질 못하는 동장, 뭐든 말만 하라는 듯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를 높인다.


“힝~ 아..안녕 하..세요. ”
“근데 우리 동엔 무슨 일로?”


이에 준이 숙자씨에게 한 설명을 되풀이하자 고개를 ‘끄덕끄덕’ ‘싱글벙글’인 동장, 숙자씨에게 근엄함과 권위가 물씬 풍기는 권유를 한다.
“아~! 예~ 그런 거군요. 숙자씨, 상세하게 알아드리세요.”
대답과 동시에 컴퓨터자판을 두드리는 김숙자씨, 따져봐야 대민 봉사를 앞세울 건 안 봐도 빤한 것, 말해 봐야 입만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네옛”
“타타타타......................”


“박지민씨, 생활보호대상자네예. 지금도 정상적으로 수령[受領]되고 있고예. 말씀 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주솔 따로 해 놓고 누군가 대신 수령 받고 있는 것 같은데예. 통장만 만들어 오시면 이번 달 20일부터는 여기 계신 박지민씨가 정상적으로 수급[受給] 받으실 수 있고 예. 주소지를 지금 사시는 곳으로 옮기고 통장을 바꾸셔도 데고예.”


의심의 눈초리를 노골적으로 놀려대던 숙자씨가 친절한 숙자씨가 되어 가르쳐준 절차[節次]를 밟고 며칠이 지나 20일이 되자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다.
부산역 꼬지꾼 싼초가 부산시민 박지민으로 거듭난 것이다. 지민은 현금지급기가 토해낸 지폐뭉치를 건네는 준을 앞세워 부산역건너편에 달셋방을 얻고 자장면, 돈가스, 삼겹살도 사먹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며칠이 지나자 바람 앞에 모래처럼 사라져버렸고, 3년 만에 찾아간 자신을 외면한 형에 대한 원망과 후회로 입도 안 대던 술에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아침, 언제나 그랬듯 부산역광장은 오가는 열차이용객들의 분주함으로 가득하다. 그 틈바구니를 헤매는 작은 키에 예쁘장한 아가씨, “같이 온 사람이 부산역에서 노래하는 가수 같드라.” TV 내용을 기억해낸 큰 오빠의 혀 꼬부라지는 넋두리에 찾아온 지민의동생이다. 이사람저사람 사진을 보여주며 살피더니 인사불성[人事不省]으로 쓰려져 잠든 사내 앞에 멈춰 선다.

진동하는 오줌지린내에 씻지 않은 검댕이 얼굴눈언저리가 부어터져 피 떡이 진 사내, 부산역광장에 퍼질러 앉아 며칠째 술타령을 한 지민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단 걸 증명이라도 하듯 오빠를 알아보고, 꿈이 아닌 생시라는 당혹스러움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아낸다.


“으흐흣흐.......미안하다. 오빠야, 그날 같이 나왔어야 되는 긴데, 큰 오빠야가 무서워서 흐흐흣... 돈도 없고, 오빠야 주머니에 복지카드라도 넣어주면 연락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흐흐흣....”


지난3년 동안 골백번을 후회하고, 죄스러워했던 눈물에 오빠의 떡 진 머리를 매만지는 손이 덜덜덜.... 병증 심한 수전증환자 같다.
이런 꿈인지 생시지 모를 인기척에 잠에서 깬 지민이 좌우를 휘둘러보며 ‘깜박깜박’ 애써 냉담해지려한다. 하지만 꿈이면 어떠랴 애타게 보고 싶었던 사람인데, 흐느끼는 동생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보석[寶石]이다.


“....벌써3년이나 흘렸다. 미안해서, 살수가 없어서, 많이 찾아다녔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었나. 흐흐흣 어엉엉...... ”


이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나 싶어 하나 둘 ...구경꾼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지민과 동생을 에워싼다.


“참 안됐다 아니가.”
“그래도 다행이네요. 늦게나마 이렇게 만났으니.”
“그러게 말입니더. 같은 하늘아래 살면서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119라도 불러야 되는 거 아니가?”
“아따. 무슨 일입니까? 같이 좀 압시다.”
“좀. 비켜보소.”
“대체 무슨 일인데예?”


개별[個別]의 삶을 벗어던지고 공통의 관심사로 진정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공유[共有]하려는 것이다.


5.눈물의 변화는 소통이다.


“우..리 막..내, 막내 아니가! 와.. 우노?”


고약한 냄새가 풀풀.... 슬로우[slow]에서 정상으로 움직이는 화면처럼 말을 더듬으며 몸을 일으키는 지민, 동생은 그런 오빠의행동이 뒤늦게나마 얻은 희망인 것 같아 단어앞머리에 힘을 준 볼멘 반문을 하는데, 지민이 동생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오빠야. 내, 알아보겠나?”
“아..안다! 선..희, 이..쁜 내 동생 아니가. 우..울지 마라.”


거무죽죽하게 번지는 눈물, 며칠을 씻지 않아 눌어붙은 손등의 검댕이가 묻어나는 것이 마치 수채화물감 장난질을 한 것 같다.


“어어엉...........”
“내 동생, 우..울지 마라. 내..는 추어도! 아..파도 때려도! 저..절대 울지 않았다.”
“맞네. 맞아. 말을 더듬는 걸 보니 우리 오빠야가 맞네. 맞아. 그래~ 어엉엉...........”


슬픔과 환희의 교차가 심한 희열을 늘어놓은 동생 선희, 지민이 부축하고 일어나 느티나무그늘이 좋은 벤치에 걸터앉는다. 선희는 그런 오빠 손길에 이끌린 안도감에 울음을 그치는가싶더니 그것도 잠시다. 벤치에 앉자마자 후회와 원망이 뒤섞인 흐느낌을 쏟아낸다.


“흐흐흣...................”
“선생님요. 죄송헌데! 손수건 있으면 좀, 헤헤헤....”


부산역 싼초 지민의 상봉[相逢]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던 동근이다. 구경꾼사이를 ‘휘적휘적’ 두 번을 외면당하고서야 얻은 꽃무늬가 울긋불긋한 손수건을 들고, 지민과 동생이 앉아 있는 벤치를 향한다.


“힝~ 해..행님요. 내.. 동생, 서..선희.”


지민의 인사를 겸한 소개에 고개를 끄덕끄덕, 동근이 무릎 굽혀 앉자 거무죽죽한 선희의 얼굴을 닦는다.


“그래, 잘 왔다. 잘 왔어.”
“흐흐흣.....”
“이제라도 찾아 왔으면 됐제. 뭐가 문제가 되노? 그만 울어라.”


장성했을 딸 생각을 하는 것인지 행동이 정성스럽다. 그렇게 손수건을 선희에게 넘긴 동근, 일어나 지민의 어깨를 ‘토닥토닥’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고 처진 어깨를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길이 애처롭다.
그런 동근의 뒷모습에서 3년이란 지난 세월의 우여곡절[迂餘曲折]을 띄워 보내려는 듯 히죽인 지민이 말을 더듬는다. 이에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채 침묵처럼 훌쩍거리던 선희가 응석 같은 코맹맹이 대답을 거듭하며 오빠 손을 잡은 손에 점진적인 힘을 주더니 손수건이 덮지 못한 입 꼬리올린 미소를 짓는다. 꿈이 아닌 생시라는 것에 감사하면 두 번 다시 헤어지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힝~ 내.. 집 있다.”
“그래!”
“시..원한 에..컨도 있다.”
“그래!”
“치..침대도, 거..울도, 피..비(TV)도 있다.”
“그래! 그래! 그래! 오빠야. 내도 가보고 싶다.”


그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선희, 오빠가 거만스런 몸동작까지 섞어가며 자랑했던 보금자리를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부산역광장은 삼삼오오[三三五五]모여 벌린 술판이 뭔가가 쑥하고 빠져나간 공허함에 인생이 불쌍해져 상처받은 세월의 한탄으로, 그리움의 악다구니로 술병을 깨고, 붙잡고, 뒹구는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결국 경찰관과 119구급대원이 출동하기를 몇 번, 공권력의 억압적 지배를 받고서야 언제 폭발할지 모를 불안한 평온[平穩]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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