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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주어져있는 게 삶이듯이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시는 존재합니다. |
▼ 저는 모태 신앙인으로 3남 1녀 중에 차남으로 강원도에서 태어났으며 대학 시절까지 강원도에서 성장한 감자바우로서 부모님은 연로하시지만 아직 생존해 계시고 다른 형제들은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인정받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오래 전에 전국 장로협의회 부회장을 역임하시고 원로장로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셨으니 평신도로서는 그런대로 잘 짜여진 신앙의 유업을 물려받은 셈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 탓으로 인간적인 번민과 방황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종교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체 성장하여 왔고, 오히려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갈등과 방랑을 갈무리하지 못한 채 젊은 시절부터 어디에도 쉽사리 안주하지를 못했고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과도 늘 불화(?)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지요. 60년 가까이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도 매사에 무조건 순종하지 못하고 반항하려 하며 근본적인 믿음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변화되지 못하니까요.
때로는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아무에게나 친절하여 오해도 받지만 특별히 바라는 바도 없고 그냥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세상의 끝 날처럼 건강하게 살아내자는 게 저의 아침마다의 기도 제목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지능은 높은데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고 문학뿐만 아니라 운동, 음악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밴드부 활동을 하면서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마스터했으며 대학 때는 보컬 활동을 하면서 전자오르간을 연주하였고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강원도 대표로 출연하여 문화체육관에서 공연한 적도 있었습니다.
운동도 마라톤이나 축구 등의 주력을 위주로 하는 종목을 잘했고 그래서 군 생활도 ROTC 17기로 임관하였지만 체력에 자신이 있어서 공수특전단에 지원 복무하기도 했었습니다.
사회 생활은 파란만장한 여정으로 이어졌지만 끊임없이 이어져 오는 시를 쓰는 천직과 더불어 주로 강단에서 많이 생활을 하였고 더러는 이런저런 개인 사업 등의 외도도 하였으나 부침이 상당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들에게는 많은 피해나 고통을 주면서도 반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리가 먼 타인들에게는 언제나 후한 사람으로 각인되는 인간적이지 못한 모순을 즐기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때로는 본의 아니게 어정쩡한 위치로 인하여 남들의 오해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웃들의 인정과 격려로 잘 살아내고 있는 셈입니다.
● 시의 유용성, 회복성, 비전성을 총괄하면서 백신과 치유의 관점에서, 시의 무한 예찬론을 청명하게 들려 달라.
▼ 제가 뭐라고 단정 짓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입니다. 그냥 시는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져있는 게 삶이듯이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시는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세상의 누구나 시인이지요.
특별히 시의 세계에 가깝게 접근한 직업을 갖게 된 시인들이 바로 시심을 그대로 표현해내고 시어를 나열하는 재주를 직업 시인이 아닌 사람들 보다 조금 더 갖고 있다는 차이점만 존재한다는 거지요.
바꾸어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조금만 노력하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시심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격과 자질을 지니고 있느니만큼 제가 바라는 건 이 어렵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시인의 마음을 부활시키고 시인의 모습을 되찾게 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어떤 방법을 찾아야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시는 새삼스럽게 예찬을 하고 천거를 하고 심도 있게 지칭하여 다루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우리 자신의 모습과 생활의 단면이니 만큼 마치 향수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고향을 찾듯이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서 찾아야 하는 과제라고 여기고 있는 겁니다.
● 림삼의 詩作 노트는 매우 특이하다. 기실 수필과 흡사하며, 논점이 명확하다는 평가이다. 선명하게 그 범주를 형상화하여 달라.
▼ 始作노트는 단순히 시를 쓰는 도중에, 또는 시를 쓰고 나서 느끼는 편린들입니다. 또한 시와 관련한 어떤 소회의 범주로 생각하지 않고 시와 더불어 떠오르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본연의 인간성 조명을 하나의 매개체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 또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생각과 감상이 달라질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저는 처음 떠오르는 영감으로 또 하나의 스토리를 이어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할 말이 많아지고 그래서 어떤 때는 쓸 데 없이 시작노트가 길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권면이나 강요를 화두로 삼으니 마치 설교나 훈시 같은 고리타분한 가르침의 표현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수필이니 콩트니 또는 서간문이니 하는 문학적인 장르의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정한 시와 완전하게 하나이면서도 분명하게 구분되는 또 하나의 파노라마를 통해 그것을 읽는 독자들부터 생각이 깊어지고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기 시작하여 우리의 세상살이가 좀 더 나아지고 밝아지며 아름다운 얼굴로 발전되어지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부족하지만 제가 제시하는 화두를 말꼬리로 삼아 더 유능하고 명쾌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해박한 견해와 철학으로 생각을 승화시켜서 알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또 하나의 엄연한 읽을거리로 자리매김 되고 인정될 수 있는 시작노트가 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권면이나 지적들은 오로지 다른 사람을 향한 충고가 아니라 바로 제 자신에게 일침을 가하는 소리이며 그렇기에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자는 다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 림삼시인에게 있어 詩作의 요체와 지향점을 솔직담백 과감하게 부각시킨다면!
▼ 시인은 특별한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최소한 시를 한두 편씩은 써보았을테니까 결국은 모두가 시인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거기에 무슨 시인이 되는 통로이며 전문가의 관문인 것처럼 신춘문예나 백일장이나 원고 모집이나 또는 동인지나 전문지에 시를 게재한다거나 시집과 동인지를 출판하고, 무슨 문학상을 수상하고, 시화전을 개최하고, 문학의 밤에 참석하고, 문학 세미나를 진행하는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활동을 직접적으로 진행하는 부류, 즉 시인이라는 직업의 사람들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실상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저는 어떤 제도권이나 문학단체와의 협조, 합동의 활동 또는 거기에 속해 있는 문학인들과의 교류나 친선도모 등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인색한 편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이나 인품과 비교되는 걸 심하게 꺼린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간혹 저를 ‘영원한 야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좀 독선적인 행태로 혼자만의 길을 외골수로 외롭게 걸어가고 있는 문학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굳이 영식 화법으로 표현하자면 언더그라운드나 아웃사이더라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저는 시에 대한 정의에서도 다른 시인들과는 좀 색다른 논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문학 강좌 같은 기회가 있으면 늘 주장하는 거지만 한글이라는 우수한 표현의 도구가 우리 국민들에게 골고루 주어졌는데 그건 특별한 몇 사람만의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문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나 구절은 누군가 먼저 사용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다시 써서는 안 되는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지요.
물론 지적재산권이라는 게 있으니까 일방적이며 무차별적인 침해로 사료될 정도와 수준의 한계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겠지만 무슨 학위 논문처럼 표절이라는 확실한 경계는 적어도 문학의 세계에서는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냥 아름다운 시어를 사용해서 시를 쓰고 싶다면 그 시어는 기존에 누군가가 먼저 사용했다고 해서 못쓰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자기가 자기의 감정과 시상에 충실하여 시로 쓰는 순간 그 시어는 바로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과정을 무슨 어려운 인고의 산물인 것으로 여겨서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모방에서 시작된다손 치더라도 전문가나 기존 문인의 지도와 격려를 받으면서 조금만 노력하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진실한 창작의 단계에 누구나 돌입하여 이른바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를 누구나 믿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지식정보 사회의 만개, IT 후기 사회를 맞아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서 심대한 결핍 영양소는 무엇이라 보나! 그리고 시대사적 전환기를 맞아 ‘집단의식’ 요체 정립에 대해 심사숙고하여 달라.
▼ 정보사회나 IT문제 등은 제가 다룰 수 있는 분야가 아니고 첨단 세대도 아닌 바라서 감히 평을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닙니다. 단지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상상 외의 문화 혜택을 받는 최첨단의 사회에 살고 있다 보니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문제가 있어서 문외한인 제가 느끼기에도 안타까운 부분은 있습니다.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가는 대신 그만큼 왠지 모르게 인간 본연의 인간성은 상실되어져 가고 더불어서 인격이나 인권의 문제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거꾸로 퇴보하는데 사람들이 그 부분은 간과하는 듯 하고 거기에 따라서 마치 좀이 슬듯이 인간의 존엄성도 사람들이 아울러 스스로 파괴해 가는 듯합니다.
점점 더 편리한 문명의 이기에 모든 걸 집착하게 되고 그렇게 기계와의 친밀도나 친숙도에 따라서 사람의 가치 척도가 재정립 되어져가는 것 같아서 조금 서글퍼집니다.
비단 기계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편의위주, 속도위주, 기능위주의 삶을 추구하다 보니 오래 전부터 이어져오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심지어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나 언어 문제에 이르기 까지 그 정통성을 잃어버리고 온갖 저급한 언어들이 혼합되어 마치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정치권이나 사회 지도층의 인사는 물론이고 우리의 참된 가치관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지도 편달해야 하는 교육 기관이나 언론사에서조차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앞 다투어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미래 지향형의 선구자적인 포석인 양 그 폐해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되레 선도를 하고 있으니 이렇게 가다보면 어느 새 우리는 국적불명의 언어를 사용하는 인종 불문의 국민이 되어 주체성도 가치관도 상실한 채로 혼란의 도가니에 침몰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제가 바라기에는 좀 더 큰 조직이나 나아가서는 국가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방안을 연구하는 인적 물적 투자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림삼 시인의 팔로어가 상당하다.
▼ 나름대로 오랜 기간을 문학 세미나나 논술 강의 등을 병행해 왔으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진행하면서, 인터넷상의 미니홈페이지나 블로그, 팬 카페 등으로 인연을 맺은 독자나 제자들 및 오프라인 동호회원들이 저의 열혈 팬입니다.
또한 저의 시풍이 좀 독창적이고 시를 쓸 적에 은연중에 마음속의 애절함을 드러내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게 되다 보니 그런 시를 애독하시는 팔로어들의 성향이 다분히 극성스러운 분들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위 스스로를 ‘림삼 매니아’라고 호칭하시는 분도 있는데 아마도 말씀 드리기는 좀 거북하지만 제가 보기에 삶에 아픔과 슬픔을 많이 지니신 분들이 그런 쪽에 속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시를 통해서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키워나가고 상처 입은 가슴을 힐링(치유)을 받을 수 있도록 시가 아름답고 고요하고 상큼한 봄과 같은 색을 띄고 있으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 인생 대선배로서 치열한 생존세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 용기와 모험, 소망의 에센스를 공유하여 달라.
▼ 인생을 이만큼이라도 살고 보니 슬그머니 깨닫게 되는 건 있네요. 우리가 받아온 교육 기관이나 다른 제도적인 학습을 통한 전공이나 교육보다도 더 중요한 게 삶의 경험이며 부딪치고 깨지면서 알게 되는 지식, 그리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도리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살면서 누구나 성공 보다는 실패나 실기를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이런 실수의 체험들이 바로 살아있는 가르침이 되는 거지요. 한번 맛본 실패를 거울삼아서 다시는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거나 답습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계획과 구상을 근거로 행동에 만전을 기하는 게 성공을 향한 첩경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이야 말로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에 근원이 되고 깨달음이 되는 에센스가 아닌가 합니다.
이 문제는 단적으로 결론을 지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시작노트라든지 아니면 기회가 주어지면 별도의 코너를 통하여 인간사의 단면들을 하나씩 짚어나가려 합니다.
● 추후 시 외에도 혹 관심을 갖고 개척하여 보고 싶은 테마나 분야가 있다면!
▼ 저는 오래 전에 단편소설이나 콩트도 몇 편 집필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입니다. 도무지 지식과 견문이 짧아서인지 소설 같은 긴 문장이나 방대한 분량의 작품은 버거워서 못쓰겠다는 결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가나 평론가, 그리고 시나리오작가나 칼럼니스트 같은 진정한 스토리텔러들을 퍽 존경합니다. 저는 제아무리 좋은 내용을 장만하고 있더라도 문장을 몇 번 이어가다 보면 중간부터는 계속해서 글이 꼬이고 내용에 혼선이 오면서 중심을 못 잡습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필력의 한계라는 거지요.
추후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지금보다 진일보하여서 우리의 우수한 한글과 한국어에 관한 ‘뿌리 찾기’나 ‘뿌리 지키기’라는 작업에 도전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강연이나 대담을 통해서일 수도 있고 기고나 학술적인 집필을 통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더 늦기 전에 누군가는 해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이상야릇한 언어가 횡행하는 시대에 편승하여 적당히 표현하고 대충 맞추어 시를 쓰면 되지 구태여 거슬러 외로운 지킴이 역할을 하는 게 무슨 사명감이며 무슨 빛이 나는 책임감이겠는가 하겠지만 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우리의 말과 글이 우리 국민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이 실정에서 어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노벨 문학상이나 해외의 유명한 심사기관 등에서도 품격 높은 한글로 만들어진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올바르게 평가되어지고 그 우수성에 진심으로 매료되어 감탄과 감동을 마다하지 않는 그날까지 우리의 이 아름다운 국어는 갈고 닦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올바른 우리말과 글을 표현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우리 후손들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계속 불리워질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언론인이나 문학인들, 그리고 교육자나 정치가 등이 한층 분투해야 할 때입니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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