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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 |
NLL과 국정원으로 싸울 시간이 없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정치 콘텐츠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곳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분석하고 이를 다시 재생산해 우리 사회가, 혹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대호 소장은 지금 대한민국을 ‘수술이 필요한 환자’라고 진단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로마제국 망하듯이 주저앉는 것은 시간문제라고도 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수술을 집도할 이는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정치인들이 환자에게 들이대야 할 메스로 서로를 찌르는 행태만 보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서로를 찌르는, 혹은 찔리고 있는 메스의 이름은 ‘NLL’과 ‘국정원’이다. 여당은 참여정부의 2007 남북정상회담 녹취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다는 시비를 지난 대선에 이어 꾸준히 들이대고 있으며, 야당은 이에 맞서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비난하고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댓글로 여론을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호 소장은 이런 ‘작은 일’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영토를 팔아먹었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런 의심을 하는 나라가 선진민주국가 중에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그 의심의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이 논쟁은 반역이냐, 아니냐의 문제인데 그런 건 민주국가의 토론이 아니다. 그런 논쟁을 건 쪽이나 그걸 되받아친 쪽이나 한국 정치발전에 환멸을 초래하기는 매한가지”라고 지적하며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어쨌든 간에 그 국정원 댓글로 인해서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오히려 민주당의 대선 패배는 정치적 무능과 함께 참여정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문제와 한미FTA에 대한 태도 등이 표를 깎아 먹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정원(선거부정) vs NLL(반역), 한국인이 가장 공포·혐오 느끼는 두 가지”
“한국은 수술이 필요한 환자, 정치 아니면 수술 불가능”
김대호 소장은 또 “NLL은 애국시비, 반역시비이고 이쪽(국정원)은 우리에게 악몽으로 남아있는 독재와 선거부정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공포와 혐오를 느끼는 것들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여야는) 이런 무기를 쓰는 것이다. 사람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공포와 분노, 증오를 끌어낸 것인데, 이렇게 되면 에너지문제, 성장문제, 복지문제, 지방재정문제, 청년실업문제, 대학문제 등등 산적해있는 중요한 문제들이 깡그리 덮이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대선 전에 펴낸 책 ‘희망코리아로 가는 길, 2013년 이후’를 살펴보면, “한국 보수는 보수할 내용이 모호하고, 진보는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방향이 모호하다. 상대에게는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한다. 경쟁자가 가진 기득권은 내려놓으라고 아우성치지만, 자신이 가진 기득권에 대해서는 오불관언이다. 정치판에서는 비전과 감동도, 정의와 상식도 실종되어 버렸다”고 기술했다. 꼬일 대로 꼬여만 가는 엉킨 정국의 문제점은 바로 이 점이라고 김 소장은 짚고 있는 것이다.
김대호 소장에 따르면 현 대한민국은 수술이 필요한 환자이다. 신체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고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사망선고다. 팔, 다리부터 말단 신경, 내부 장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부위에 병을 앓고 있다. 수술만이 해결책이나 수술을 집도할 의사인 정치인들은 수술실에 누운 환자 대신 자신들끼리 메스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수술은 정치가 아니면 할 수가 없다. 수술하는 놈들이 메스 들고 서로 찌르고 난리치고 있는 것”이라며 “그래서 대한민국은 결국 기득권자만이 살 수 있는 구조인 셈”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적 독과점으로 인한 비기득권자 ‘청년’의 눈물
김대호 소장은 정치권이 내팽개친,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청년실업을 꼽았다. 그는 “우리 때는 정말 일자리나 기회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청년들을 보면 눈물이 다 난다”고 운을 뗀 뒤 “열심히 일할 나이의 청년들이 노량진에 처박혀 있고 9급 공무원 같은 일자리가 100대, 2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가장 똘똘한 애들이 임용고시나 준비하고 앉아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대로 된 일자리는 별로 없고 한달 200만 원 받는 걸 엄청 괜찮은 일자리라고 생각하더라. 청년들이 이처럼 참혹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은 제대로 된 주장(의견)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현실에 분노를 표출해야 하며 제대로 된 정치인을 생산할 수 있는 구조 개선만이 대한민국을 위한 또 하나의 수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 정당은 깡통정당”이라고 입을 뗀 뒤 “이 깡통에서 선거 때가 되면 뭔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되는데, 설비가 부실하고 공장이 깡통인데 거기서 제대로 물건이 나오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일단 얼렁뚱땅 만들어서 집권하고 나니 보여주기식(공약 혹은 정책)이 많은 것이고 한쪽은 NLL로, 또 한쪽은 부정선거로 싸우는 동안 양극화나 일자리문제, 연금, 복지문제는 다 뒤로 밀리게 된다”면서 “진짜 반성해야할 점은 정치비전을 제시해야할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대호 소장은 제대로 된 정당이 없는 구조,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나온 정치인들이 또다시 정치적 비전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행태를 반복하는 한 결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그렇기에 이들이 기득권 내려놓기에 초점을 맞춰야 대한민국도 더 큰 발전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아니, 더 큰 발전상이기 이전에 눈앞에 놓인 상처들을 치료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기초선거정당공천제 폐지, 기득권 밥그릇 내려놓기 첫걸음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자신의 밥그릇을 더욱 견고하게 하려는 기득권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는 부분에서 시작된다. 김대호 소장은 “가장 힘이 센 쪽에서 뭔가를 양보해야 하는데 힘이 센 쪽에서는 오히려 자기 밥그릇을 철 밥그릇으로 만들려고 하고, 철 밥통은 금 밥통으로, 그리고 그 안에 밥을 많이 퍼 담으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는) 정치가 과잉대표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치는 자기 기득권에 대해서는 철저히 양보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국민들과 약속한 것도 엎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정당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변화가) 힘들다는 것이고, 정당은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즉 정치 기득권자들은 국회의원이라는 강력한 권력을 기반으로 하여 지방자치공천제도로 인해 자신들의 세력화를 이뤄내고 정치적 비전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통치를 멈추지 않으면서 상대 정당에 대한 깎아내기만 성공적으로 유지하면 ‘밥그릇 지키기’는 더 견고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의 난국은 곧 비기득권자인 청년층의 생존을 옭아매는 올가미로 작용한다는 판단이다.
김 소장은 “지금 한국 정치는 자신의 의지는 관철하지 못해도 상대방의 의지는 오랫동안 저지할 수 있다. 힘의 교착상태인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리 좁지 않은 교차로에서 차들이 서로 먼저 가려다가 완전히 뒤엉켜 버린 격”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있지만 이는 정당이 바뀌면 다 풀리게 되어 있다. 정당을 바꾸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정치독과점을 초래하는 두 가지 제도, 즉 대통령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정당명부 또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바뀌게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하지만 여야가 서로 스크럼을 짜고 막고 있는데 이 와중에 조그만한 구멍이 하나 있다. 그 구멍은 바로 기초선거정당공천제”라고 덧붙였다.
김대호 소장은 이와 관련돼 저서에서도 “현재 국회의원의 영혼과 안목이 5~20년 후 대통령의 그것을 결정하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 정당과 국회, 국회의원이 미래의 내각이자 청와대, 대통령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국회와 국회의원의 안목을 키우고 영혼을 갈고 닦아 놓지 않으면, 즉 이를 제도적으로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선거제도 개선을 통한 정당 바로세우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대호 소장이 언급한 대통령결선투표제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그리고 기초선거정당공천제를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결선투표제란 선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차지한 후보가 충분한 수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한 경우(과반수 혹은 40% 이상) 가장 높은 득표를 기록한 두 후보를 대상으로 재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말한다. 이회투표제라고도 하며 프랑스의 경우 대통령 선거와 의회, 지방선거 등에 적용하고 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기존 비례대표제의 확대 의미로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양당 중심 정치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개념이며, 대체적으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말한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는 지역구 의원과 정당에 대한 투표, 즉 1인 2표제를 시행하는데 이 때 극소정당 제외 후 각 정당에서 득표한 비율만큼 의석을 나눠 배정한다. 때문에 정당명부제를 강화하게 되면 다당제로 발전, 정당 간 자연스러운 경쟁체제를 구축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정책 비전 강화 등 정치혁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도입을 주장하는 쪽의 입장이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1명만을 뽑는 기존 방식과는 달리 여러 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제도를 말한다. 즉 한 선거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기존 제도를 ‘소선거구제’라고 하는데 2~4인을 뽑는 경우 ‘중선거구제’, 5인 이상을 뽑는 경우를 ‘대선거구제’이다. 한 선거구에서 투표결과에 따라 1위는 물론 2위, 혹은 3~5위까지 국회에 입성할 수 있는데, 정당명부제와 마찬가지로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대안의 하나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기초선거정당공천제는 말 그대로 정당의 간판을 내 걸고 기초선거에 출마할 인물을 당에서 직접 공천하는 것을 말한다. 특별시나 광역시장을 제외한 시, 군, 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장과 시, 군, 구 의원을 뽑는 기초선거에서,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의 폐단을 줄이고자 하는 취지로 이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대호 소장은 위에서 언급한 선거제의 개정만이 정치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는 “선거제도 문제로 인해 양 강 구도가 될 수밖에 없는데 사실상 이 양 강에 들기는 굉장히 어려운 구도인 셈”이라면서 “빨갱이 진보든 진짜 진보든 간에 지역적 기반도 있는 민주당 같은 당을 능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그렇기 때문에 양 당은 독과점을 놓지 않기 위해 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독과점을 위해 수많은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패악을 불러일으키는 이 정치제도를,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사수하기 위해 내려놓지 않고 있으면서 경제민주화니, 민주주의니 하는 것은 위선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다음호(422호)에서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진단 및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와 한계점, 박원순 시장 시정운영에 대한 평가 등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과의 두 번째 인터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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