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리는 용서, 태워지는 적막..."용기는 용서에서 생긴다"

림삼 / 시인 / 기사승인 : 2014-02-13 11: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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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VIEW) 林 森 ' 타인의 우슬초' ‘우슬초’, 구약성경에서 용서를 뜻하는 성스러운 허브를 가리키는 ‘히솝’

[일요주간=림삼 시인] 예수는 “일흔번 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어라.”라고 말한다.

성경에 보면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만한 거액의 빚을 진 사람이 빚을 준 주인에게 탕감을 받는 일화가 나온다. 그런데 탕감을 받은 사람이 곧바로, 자신에게 얼마 안되는 빚을 진 사람을 찾아가 기어코 그 빚을 받아내고 만다. 뿐만 아니라 그 빚을 진 사람을 옥에 가두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거액의 빚을 탕감해주었던 주인이 그 사람을 다시 붙잡아,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고 만다는 내용이다.

예수에게 칭찬을 듣기 원했던 한 제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제게 죄를 범한 사람을 일곱 번 정도 용서해주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는 “일흔번 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어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곧 용서에는 조건이나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남에게 주기 가장 어려운 것이 용서라면, 남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도 용서이다. 베풀기 어렵기에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용서이기도 하다.

용서가 있는 곳에는 평안이 있다. 용서를 주고받는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사랑, 그리고 보장된 미래가 있다. 그러므로 용서는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오늘의 ‘시작 노트’에서 사실 할 말은 이미 이쯤으로 다 한 거다.

평화와 행복을 위한 최상의 선물인 용서를 생활 자체의 양식으로, 몸과 마음의 전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에는 어떠한 다툼도 전쟁도 없다. 물론 시기나 미움이나 질투나 중상모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언제나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솔선수범으로 봉사하며, 겸손함의 아름다움까지 더하여 쉬임없이 풍겨나오는 미덕 만이 있을 뿐이다. 겸손은 내가 늘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교만은 내가 늘 미흡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겸손은 미안한 마음이고, 교만은 서운한 마음이다.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용서를 모른다. 용서를 모르는 사람은 참된 용기도 모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은 어린 시절을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보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이다. 선교 활동을 벌이던 그녀의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에 가뭄으로 인정이 메말라버린 마을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백인인 펄 벅의 어머니가 신을 노하게 만들어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불안에 떨던 사람들이 점점 분노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어느 날 밤 폭도처럼 되어져 펄 벅의 집으로 처들어왔다.

사태를 알아차린 펄 벅의 집안 하인들이 무리를 막아보려 애를 썼지만 이미 광분하기 시작한 폭도들은 강도로 변하여, 밖에 있는 창고를 약탈하려고 기물을 부수며 여기저기 불을 놓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하인들이 급하게 몸을 피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펄 벅의 어머니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집 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어 차를 따르게 하며 접시에 케이크와 과일을 담게 했다. 그런 다음 집 안에 있는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함성이 들리더니 몽둥이와 흉기를 손에 든 사람들이 단숨에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사람들은 굳게 잠겨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문이 활짝 열려있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펄 벅의 어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훔친 물건들을 손에 들고 방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정말 잘들 오셨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그 물건들은 필요하신 분들은 다 가져가세요.” 그녀의 권유에 멈칫하던 사람들은 하나둘 씩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와 과일들을 먹었다.

그들은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방 안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훗날 어머니가 펄 벅에게 그날 밤을 회상하며 말해주었다.

“만약 그 때 용서하지 못하고 그들의 행동에 분노하며 같이 흥분했었으면 그런 여유와 용기가 나지 않았을 거야.” 이후 펄 벅은 힘든 순간에는 항상 떠올리는 말이 있었다. “용기는 용서에서 생긴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용서도 사람에 따라서 그 과정과 결과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저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 얼굴만 보면 저까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즐거워한다.

하버드대학교의 ‘제임스’교수는 “행동에 뒤이어 감정이 따르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행동과 감정은 동시에 일어난다.” 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기를 보면 즐거워진다는 말을 들으면 상대도 미소짓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광고회사에서 한 여직원이 평소 호랑이로 불리는 기획실장의 행동을 바꾸어 회사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 실장은 평소 말을 잘 안할 뿐 아니라 신경이 몹시 예민해서 부하 직원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넬 줄 모르는 이른바 목석같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 여직원은 출근시간에 실장과 마주치자 호들갑을 떨면서 인사를 했다. “실장님, 오늘 아침에는 웬 일이세요 ?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시네요.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

실장은 어리둥절해져서 “뭐, 내가?” 하며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직원은 “네, 정말 실장님 환한 얼굴을 보니까 저까지 덩달아서 기분이 좋아지네요.” 라고 말하자 그 실장은 그날 하루 종일 웃는 낯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주목받기를 원한다. 나쁜 이미지가 아니라면 무슨 일에서든지 남들의 시선을 모으려고 한다. 5백여년 전에 로마의 시인 ‘사이러스’가 한 말이다.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마음 속의 주머니에다가 용서를 가득 담으면 된다.

사실 용서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건 아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앞서도 표현했듯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랑은 용서하는 것이다.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만큼 참된 사랑은 없다. 그래서 용서는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으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보복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하지만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는 법이다. 확실히 상대방을 보복하는 방법은 그를 용서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처지가 되어 살아보아야 하고 그 사람의 마음 속, 아니 꿈속에까지 들어가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설령 상처를 받았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실수를 용서해주어야 한다. 나도 은연 중에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용서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이해인’수녀의 시가 있다. 그 중에 몇 소절이다. ‘산다는 것은 날마다 새롭게 용서하는 용기 용서받는 겸손이라고 일기에 썼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 것은 용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기쁨이 없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직이 고백합니다.’

어떤 마법사가 마을 전체에 주문을 걸었다. “이제부터 이 마을에서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향해 나쁜 말을 내뱉을 때, 분노를 담은 그 말은 모두 돌로 변할 것이다.” 그 때부터 상대에게 차갑고 날카로운 말을 내뱉으면 그 말은 뜨거운 돌로 변했다.

사람들은 서로 마음을 다치기 일쑤였다. 그래서 한두 개의 돌을 갖고 다니다가 자기에게 상처를 주는 상대방을 향해 던지려고 했다. 뜨거운 돌을 들고 다니면 손에 물집이 잡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다시 돌을 던져서 분한 마음을 풀 수만 있다면 손에 상처 쯤은 생겨도 괜찮았다.

점점 마을은 모든 땅이 돌로 뒤덮여 꽃이 피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그 마을을 지나다가 말했다. “여러분께 필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용서란 당신 손에 든 돌을 내려놓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혹 용서하면 상대가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뜨거운 돌을 내려놓자 자신의 삶이 좋아졌다. 그리고 돌들이 사라진 땅을 뚫고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성자로 불려온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얼마 전에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을 마치고 한 세기에 가까운 질곡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만델라는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실현한 대표적인 정치인으로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왔다 1918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는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현 집권당)’를 이끌며 투쟁하다 투옥돼 무려 2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를 통해 첫 흑인 대통령이 됐고, 이후 ‘진실화해 위원회’를 출범시켜 청문회에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을 사면하는 등 흑인과 백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이른바 ‘무지개 국가’를 건설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퇴임 이후에도 남아공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그 위인은 잠드는 순간에도 평화의 씨앗을 뿌렸다.

넬슨 만델라에 대한 추도식은 상대가 불편하고 싫어도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의 장이 됐다. 그가 평생 외쳤던 ‘공생’과 ‘공영’은 불멸의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추도식장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악수를 했고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도 조우했다.

인도의 ‘프라납 무커지’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맘눈 후사인’ 대통령도 함께 자리했으며, 정적 관계인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나란히 행사장에 입장했다.

5000만 명의 남아공인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십억 명이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기리며 진정한 용서의 성자를 기억했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용서의 가르침을 두고 영웅은 떠나간 것이다. 남은 전 세계의 인류는 그 숭고하고 위대한 뜻을 이어 불멸의 역사를 써나가야 할 과제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 말자. 믿음과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말자.

마음을 다해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지금 슬픔에 젖어 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말자. 우리가 흘린 눈물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말자. 날마다 마음을 비우며 괴로워 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내 발걸음을 아쉬워하지 말자. 내 생긴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해 걷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세상의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는다. 자기 이름으로 피어난 거기까지가 꽃과 잎의 한계이고 그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다. 바라기에는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도 말자.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 용서의 시작이고 궁극적으로는 용서의 완성으로 가는 정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게 사람의 살아가는 도리일 거라고 생각한다.


- 타인의 우슬초 -

林 森

노랑 빨강 꽃엽 지켜주려

살아있는 용서 느끼고 싶어?

그러려면

지난날의 너와 화해하는 게 필요해,

그토록 너를 아프게 하던 상처로부터

훨 훨 자유로워질테니



그렇게 피흘리는 용서,

진정으로 해주고 싶었는데

정작 용서 받아줄 사람은

이미 가고 없다는 사실에

태워지는 적막


자 -

지금이라면 그 공허의 빈 자리에

새로운 또아리 장만해 놓았단다


어차피 낯선 타인의 얼굴로

주춤거리며 너 자리했으나

날마다 날마다 새로 살겠다는

너와의 약조만 체험되어진다면야


이제부턴 영 영

용서의 우슬초 목놓아 가꾸리라

▲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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