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들이 맡기고 간 애인

이지민 수필가 / 기사승인 : 2018-06-20 16: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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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수필가
이지민 수필가

[일요주간 = 이지민 수필가] 점심모임을 끝내고 여러 명이 커피숍에 들렀다. 큰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자리를 찾는 우리에겐 아랑곳 않고 그녀는 흐트러짐이 없이 노트북만 들여다본다.


커피숍에서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 휠을 긁어대는 젊은이들이 한심스러워 보였다. 캥거루족일 것이라는 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들을 도매금으로 몰아붙였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 들으며 공부가 될까. 그냥 시간 때우려 검색이나 하고 웹서핑을 하는 게지. 도서관에 가면 될 걸 밥값과 맞먹는 찻값을 내며 죽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어폰은 캥거루족의 예의 없는 도구라고 생각했었다.


다 큰 대학생인 아들과 둘만의 여행을 갔을 때도 이어폰은 버릇없는 도구라 생각했다. 일주일 후면 입대하게 되는 아들과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자작나무 숲이 그윽한 강원도에 가면 우리 둘만의 시간이 주어질 것 같았다. 설득하는 내게 아들은 효도여행이라며 생색을 냈다. 굽이굽이 어렵게 찾아가는 동안 아들의 귀는 이어폰의 차지였다. 여행하며 많은 얘기를 나누려던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늦게 도착한 자작나무 숲은 순은純銀의 세상이었다.


눈은 우리들의 발자국을 따라오며 뽀드득거렸다. 밟힘의 미학을 섬세히 전해 왔다. 눈과 자작이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얗게 빛나는 자작은 갓 스물을 넘긴 처녀의 피부처럼 피어올랐다. 쭉 뻗은 몸은 하늘 저 끝에 닿아 있다. 타고 오르면 구름 한 뭉치씩 잡아 내려올 것도 같다. 청춘들의 휴대폰 사진에 그림동화를 만들어 갔고, 아들도 송두리째 맘을 뺏긴 듯 깊이깊이 피부로 숲을 흡입했다. 그 때도 아들의 귀에는 이어폰이 있었다. 이 순간에는 어떤 음악을 들을까. 이어폰은 질투유발자였다.


“어때?”


답이 없다. 아들의 귀는 이어폰이 빼앗아가 내 말을 듣지 못하는가 보다. 이 아름다운 순간에도 아들의 귀는 이어폰의 것이다. 이 엄마의 마음은 모르고, 이어폰에 모두를 내주다니. 소통에 차단기를 내리다니. 숲속으로, 저 눈 바다 속으로 뺏어 던지고 싶었다. 성미가 급한 나는 끝까지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아들은 말과 표정을 아꼈다.


아들은 시험기간만 되면 열이 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고 했다. 그 말을 의심했었다. ‘자기공명사진 MRI.’ 뇌 사진을 찍은 날 무심했던 나는 밤이 새도록 숨죽이며 꺽꺽거렸다. 아이는 진짜 아픈 거였다. 뇌혈관 기형으로 동그랗고 하얀 것이 혈관 속에 있었다. 그동안의 몰이해와 냉정한 의심들이 심장에 자책의 칼질을 해댔다. 성적 얘기는 다시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노심초사였다.


그런 아들이 입대를 했다. 나는 걱정이 지구를 떠안은 듯했다. 2년 가까운 시간의 부자유와 불편, 애국과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옭아맨다. 기피하면 영어의 몸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세뇌된 자긍심으로 견딘다. 군대 간 둘째 오빠가 수색부대에서 지뢰를 밟고 순직했다.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잔해들로부터 아직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아들의 안부는 수십 번을 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랜만에 아들의 손 편지를 받았다. 무릎결절로 고생은 했어도 40킬로 야간행군을 이겨냈다며 자랑이 대단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어 내려가는 내 눈가가 습해져 왔다. 한참을 읽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대 전 강원도에 갔을 때, 이어폰만 끼고 있다며 속상했죠? 실은 저도 입대가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그런데 엄마에게 들키기도 싫었거든요. 입 밖으로 내놓으면 그 두려움이 엄마에게 옮게 될까봐. 미안 엄마. 말하지 않고 견디는 방법은 이어폰뿐이더라고요.’


아들 방에 들어서니 책상이든 벽에 걸린 액자든 모두 그대로다. 의자에 앉아 본다. 아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전들 입대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초조했을까. 가슴이 먹먹했다.


‘이렇게 커 있었구나.’


속 좁게 서운해 하는 내게 표정을 아끼던 아들의 모습이 편지위에 겹쳐졌다. 서랍에서 아들이 두고 간 이어폰을 꺼내 귀에 끼워 봤다.


나도 아들의 이어폰을 끼고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지하철도 탔다. 비좁은 공간에서도 누구 하나 내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이어폰은 예의 없는 도구가 아니라 똑똑한 도구였다. 이어폰의 본질은 귀에 끼우거나 밀착할 수 있게 만들어진 전기신호를 음향신호로 변환하는 소형장치이다. 뭇 소음들로부터 차단된 나만의 세계가 주는 행복을 누리게 하는 예의바른 도구다. 책도 읽어주고, 실시간으로 세계의 뉴스를 속삭여 준다.


이어폰은 나날이 진화했다. 체감할 틈도 없이 내가 가진 편견들을 비웃었다. 스마트폰의 눈부신 진화와 같은 배를 탔다. 구글이나 네이버는 무선이어폰을 통해 수십 개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하고 서로 다른 언어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인공지능과 실시간 통번역 서비스를 등에 업은 무선이어폰이 바벨탑을 무너뜨릴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고한다. 이어폰은 단절이 아니라 소통이고 스마트한 녀석이다. 밀려드는 정보의 파도를 막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순 없다.


이젠 나와 이어폰은 막역한 사이다. 그 버릇없다던 이어폰을 끼고 카페 창가를 차지하고 앉아 책장 넘기는 즐거움에 종종 빠져 본다. 와이파이가 잘 안 되거나, 휴대전화를 꺼놓은 상태에도 이어폰은 귀에 그대로 있다. 옆자리에서 들리는 갖가지 소리들 때문이다.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열 올리는 아내들, 조별과제를 하려 토론하는 대학생들, 달콤 쌉쌀한 속삭임을 조각조각 엮어가는 연인들, 학습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엄마들,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올리는 김 과장의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총무과 미스 김, 떠드는 이유도 많고 할 얘기도 많은 곳이다.


논쟁, 혹은 설득으로 핏줄을 도드라지고, 자기 입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열변을 토한다. 카페는 그들이 침묵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킬 의무는 없는 곳이다. 이어폰은 주위 사람들에게 신경 쓰고 있지 않으니, 비밀스런 이야기를 마음껏 해도 괜찮다는 무언의 표시다. 그들의 사생활을 채집할 한 치의 틈도 없음을 선포한다.


아들이 맡기고 간 스마트한 애인이 내 귀에 있다.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아들은 자작나무만큼 자랐으리라. 이어폰을 나눠 끼고 아들이 좋아하는 <트와이스>의 음악을 공유하거나, 통번역을 통해 펜팔 하던 두바이 소녀와 실시간 대화하는 그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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