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서영택 시인 “아버지는 곧 한 편의 시” 『현동 381번지』에서 『돌 속의 울음』까지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8-24 10: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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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이은화
대담자: 서영택
▲ 서영택 시인

 

 

서영택 시인. 2011년 《시산맥 등단》 대진실업주식회사 대표이사. 전)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총동문회장. 한양미래전략포럼 공동대표. 전)서울대 식품영양CEO과정 총교우회장. 전)호서대 벤처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시인협회 감사. 산업포장. 대통령표창장. 조지훈문학상. 최우수논문상(한국가족기업학회). 중부지방국세청장표창장. 시집 『현동 381번지』 『돌 속의 울음』 문학나눔도서선정(2020)

Q1.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희 ‘작가초대석’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 새벽 6시에 일어나 사우나에서 반신욕을 하고 9시에 출근합니다. 점심은 직원들과 함께하며 소통하고, 늦은 저녁까지 업무를 이어갑니다. 회사에는 7개의 면허가 필요한데, 그중 위험물안전관리자와 산업안전관리자를 제가 맡고 있어 가능한 한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이지만, 제게는 그 모든 시간이 시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과의 만남, 일터의 풍경, 계절의 변화가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한 편의 시가 됩니다. 생활인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시인으로 하루를 성찰하는 것. 그것이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저의 일상입니다.


Q2. 선생님의 학생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 시간의 성장 과정에서 시와 맞닿았던 순간이나 정서적 뿌리가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 제 문학의 시원은 아버지에게서 비롯됩니다. 소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셨지만 바둑과 장기에 능하셨고, 흥이 나시면 판소리를 부르시던 분이었습니다. “배움은 때가 있다. 공부 못한 한은 평생 간다”는 말씀은 제 삶의 이정표가 되어 대학과 경영학 박사까지 이어지는 힘이 되었습니다. 농촌에서 자란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하교 후 농사일을 거들었고, 여름이면 바다에서 수영하고 조개를 잡았습니다. 태풍이 불면 진해의 군함이 피항을 왔는데, 1km쯤 헤엄쳐 군함을 묶는 곳까지 간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은 학업에 대한 열망만이 아니었습니다. 삶을 깊이 바라보는 마음, 말로 다 하지 못한 한(恨)의 정서까지 함께 전해주셨습니다. 제게 시를 쓰는 일은 어린 시절 몸으로 겪은 삶과 자연,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태도를 다시 언어로 피워내는 일입니다. 아버지는 곧 한 편의 시입니다.


Q3. 경영학적 사고와 시적 사유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경영학 박사로서 안정된 길을 걸어오시다가 시인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 경영학과 시는 언뜻 다른 세계처럼 보이지만, 제게는 둘 다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순간순간이 경제이고 경영입니다. 상품을 고를 때의 가성비 같은 것도 다 그 안에 있습니다. 경영학이 사회와 조직 속 인간의 선택을 바라보는 학문이라면, 시는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에 가깝습니다. 현실을 중시하고 원리와 근거를 따지는 편이라, 시를 쓴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삶에는 이성과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기억, 상실과 희망 앞에서 저를 이끈 것은 시였습니다. 그래서 시는 제 안에서 늘 닿고 싶은 하나의 봉우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 “조지훈 문학상” 조지훈 시인의 삼남 조태열 전)유엔대사와 함께.



Q4. 등단 이후 꾸준히 추구해 오신 선생님만의 시 세계와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등단 이후 제가 꾸준히 붙들어 온 것은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평범한 사물과 일상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그 안에 시간이 쌓이고 기억이 스며 있으며 삶이 응축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그 보이지 않는 결을 언어로 드러내는 일을 ‘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의 역할은 ‘삶의 이면을 비추는 거울’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터져 나오는 존재들의 ‘숨구멍’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일이 버겁고 고단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은 존재합니다. 그것은 예술일 수도, 문학일 수도, 한 줄의 시일 수도 있습니다. 『돌 속의 울음」』이란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 “시는 어제의 나를 가까스로 오늘에 데려다 놓는다.”라고 썼습니다. ‘시’가 나 자신을 존재하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등불 하나를 밝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시는 충분한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Q5. 첫 시집 『현동 381번지』는 구체적인 번지수를 제목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시집에는 어떤 장소와 시간이 깃들어 있는지요?

⯈ ‘현동 381번지’는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제 삶의 시원이자 문학적 고향입니다. 가족과 이웃이 있었고, 들판의 바람과 골목의 풍경, 저녁 무렵의 노을, 말없이 일하시던 부모님의 뒷모습 같은 장면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이 지금도 제 시의 가장 깊은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은 실제 공간을 넘어 제 안에 남아 있는 기억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풀을 베고 농사일을 거들며 계절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마을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사람들도 흩어져 이제는 고향의 모습을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동 381번지’는 사라진 고향과 유년의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을 담은 제목이기도 합니다. 저의 성장 기록인 동시에, 마음속에 간직한 자기만의 고향과 기억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집입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오늘의 나를 만든 삶의 뿌리를 찾아, 결국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Q6. 이어 두 번째 시집 『돌 속의 울음』은 ‘돌’이라는 사물 안에 ‘울음’이라는 감정을 담은 제목입니다. 이 시집에 담긴 주제를 들려주세요.

⯈ ‘돌’은 가장 침묵하는 존재입니다. 겉으로는 단단하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수많은 계절과 비바람을 견디며 시간을 품고 살아갑니다. 저는 그 침묵 속에서 누구도 듣지 못한 울음을 보았습니다.

누가 있는가, 저기 돌 속에
울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새들의 날개를 생각했다
- 「돌 속의 울음」 부분


시집 『돌 속의 울음』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상처와 고독, 그리고 묵묵히 삶을 견뎌내는 존재의 내면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 깃든 말 못할 슬픔과 고통을 ‘돌 속의 울음’으로 비유했습니다. 그 침묵 속에 갇힌 뜨거운 울음을 해방시키고, 그 안의 존재를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그 안에는 생명의 온기와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가 숨 쉬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 시집은 2020년 문학 나눔 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조지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시인’이라는 이름은 늘 저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 해외 봉사 활동(캄보디아 시아누크빌)



Q7. 『현동 381번지』 이후 『돌 속의 울음』을 출간하며 선생님의 시의 방향과 세계관이 변화한 지점이 있다면요?

⯈ 첫 시집 『현동 381번지』가 기억과 장소를 통해 삶의 근원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다면, 두 번째 시집 『돌 속의 울음』은 그 기억을 바탕으로 존재의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었습니다. 풍경 너머의 침묵과 시간, 사물들이 지닌 언어에 더 오랫동안 시선이 더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습니다.


두 시집의 해설을 써주신 유성호 교수님께서 “서영택의 시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순연하게 바라보다가 그 잔상을 최대한 자신의 삶과 정서로 귀환해 들이는 미학적 접면(interface)에서 발원하는 장치이자 원리일 것이다. 이 또한 서정성에 충실한 서영택 시인의 든든한 방법론이 아닐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평처럼 첫 시집보다 시선과 바라봄의 깊이가 한층 깊어지고 풍성해졌다는 말씀은 삶의 갈피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는 조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 길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Q8. 두 시집을 통해 독자분들께 가장 전하고 싶으셨던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두 시집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기억과 희망입니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오늘을 지탱하는 힘이며, 희망은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제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시는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가장 깊은 언어라고 믿습니다.

지상 어디든 바닥 아닌 곳이 없고

올라갈수록 깊어지는 그곳

몸 구석구석 다녀가는 빛을 따라

방전된 생에 햇빛 충전을 끝내는 날

삶의 바닥에서 일어선다
― 「정물화」 부분


삶의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닥일지라도 그 속에 늘 희망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은 결국 삶을 이루는 소중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성신문》 송년의 밤(2023)



Q9. 좋은 작품이 많지만 그래도 특히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시 한 편을 꼽는다면요? 그 이유도 함께 들려주세요.

⯈ 『돌 속의 울음』 시집에 실린 「빛을 만지다」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빛이 터널의 끝이다
돌고 돌아 너에게로 가는 길

별들이 그물에 걸려 출렁인다 휘어진 나무는 가시를 뱉어내고 몸을 떨었다 상처가 드러난 통증이 벽에 박힌 못처럼 반짝인다 세상의 모든 나뭇가지들, 하늘의 길이 흔들린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다시 돌아온 너를 맞이한다 내일의 창을 열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저 끝을 향해 어둠을 뚫고 달려나가는 것이다 - 「빛을 만지다」 전문



이 시는 어둠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작은 빛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상처를 극복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안은 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터널과 같은 시간을 지나게 하지만, 그 끝에는 다시 걸어갈 이유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일상에 지친 독자들이 이 시의 행간에 머물며, 자기 내면에 굳어 있던 마음의 빗장을 풀고 잠시 고요한 평온을 마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시를 권합니다. 이 시는 제가 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절망을 외면하지 않되 그 안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추는 작은 빛 하나를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Q10. 글을 쓴다는 것은 종종 장면을 ‘기록’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시를 쓰면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어떤 점인지요?

⯈ 말씀하신 대로 ‘사실의 기록’과 ‘예술적 창조’ 사이에서 늘 헤매고 있습니다. 시를 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늘 새로운 언어를 만나는 일입니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발견해야 하고 익숙한 감정을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언어로 형상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로 내 삶의 가장 정직한 순간을 붙잡아, 매번 새로운 시적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 무게를 견뎌내는 과정이 저에게는 시를 쓸 때 마주하는 가장 외롭고 힘겨운 일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비우고, 더 많이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저에게 시는 끝내 붙잡히지 않는 존재입니다.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다시 멀어지고, 놓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는 뜻밖의 한 문장을 건네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는 저에게 가장 자유로운 세계입니다. 그래서 '시인'이라는 이름이 가장 소중합니다.


Q11. 다음 시집에서는 어떤 풍경과 어떤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으신지요?

⯈ 앞으로 준비할 시집 역시 평범한 삶과 사소한 풍경 속에서 쉽게 지나쳐가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할 것입니다. 일상의 풍경과 자연, 그리고 사물들의 아주 낮고 세밀한 숨소리를 받아 적는 일은 제가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야 할 숙제이자 문학적 지향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고 이면에 숨겨진 어둠까지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눈과 마음에 머문 삶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작품 안에 투영되어, 그 안에서 따뜻한 온기를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창한 담론보다는 작은 존재들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언어로 담아내는 시집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Q12.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인사 부탁드리며,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 문학 작품 속에서 작가와 독자 간의 공감은 시를 쓰는 입장에서 보면 정말 필요한 부분입니다. 시를 읽고 이해하며 감동받고, 치유와 위로를 얻는 것은 문학 작품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은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제 시가 독자 여러분께 그런 작은 쉼과 다시 걸어갈 용기를 전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은화 시인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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