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 여·야 엇갈린 판결

이진희 / 기사승인 : 2011-01-28 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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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서갑원 현직 상실…박진 의원직 유지

▲ '박연차 게이트'의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27일 한나라당 박진 의원(왼쪽)과 이광재 강원도지사(가운데), 민주당 서갑원 의원의 희비가 갈렸다. 박진 의원은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돼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고 이광재 강원지사와 서갑원 민주당 의원은 각각 지사직과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대법원, 이 지사·서 의원 현직 상실 원심 확정
한나라당 박 의원 무죄…유·무죄 차이는 당적?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여야의원 등의 희비가 엇갈렸다. 27일 열린 대법원 상고심에서 민주당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같은 당 서갑원 의원이 각각 직무를 상실한 반면,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관련기사=10~11면>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이날 오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광재 강원도지사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4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지사는 작년 6.2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의 불모지'로 불리는 강원에서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며 집권 여당 후보를 누르고 도백(道伯)으로 선택받은 지 7개월 만에 지사직을 상실하게 됐다.

이 지사는 이번 확정 판결로 도지사직 상실은 물론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라 10년간 공무담임권과 피선거권이 제한됨으로써 20년 남짓한 정치 인생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정치인으로서 이 지사의 삶은 1988년 5월 당시 노무현 국회의원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노 의원의 낙선 이후에는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 등과 함께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어 물밑에서 대권을 준비하다 2002년 12월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시킴으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참여정부 실세가 됐다.

2003년 38세의 나이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고, 이듬해 17대 총선에서는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 지역구인 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데 이어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야당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이 지사의 정치 활동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악연이 발단이었다.

박 전 회장이 2008년 말 탈세 혐의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다 정ㆍ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져 검찰 수사로 확대됐고, 이 지사도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었다.

민주당 의원 신분이던 이 지사는 박 전 회장 등 지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09년 초 수사선상에 오른 뒤 그해 3월21일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데 이어 닷새 만에 구속되면서 결국 '영어의 몸'이 됐다.

그에게는 2004년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사돈에게서 1천만원을 받고 2004~2008년 박연차 전 회장에게서 미화 12만달러와 2천만원을, 2006년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한테서 미화 2만달러를 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이 지사는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4천814만원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6.2지방선거에서 도지사 당선 직후인 6월11일 열린 2심에서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천417만원이 선고되면서 7월1일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는 도지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부지사가 권한을 대행하도록 규정한 지방자치법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이 지사는 "확정판결 전에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지방자치법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두 달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기사회생한 이 지사는 이후 "소극적인 강원도의 시대를 끝내고 비전과 희망을 만들겠다"며 의지를 다졌고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를 위해 발로 뛰는 열정을 보여줬지만, 정의의 여신 '디케'는 줄기차게 무죄를 주장해온 그를 외면했다.

이에 앞서 대법원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민주당 서갑원 의원에게 벌금 1천200만원과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서 의원은 의원직을 잃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게 돼있다.

서 의원은 2006년 5월 경남 김해시 정산 C.C 클럽하우스 앞에서 박 전 회장으로부터 직접 5천만원을, 2006년 7월 미국 뉴욕 한인식당에서 박 전 회장의 지시를 받은 식당 사장으로부터 미화 2만달러를, 2008년 3월 박 전 회장의 돈 1천만원을 차명으로 후원계좌에 입금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민주당 소속 이 지사와 서 의원이 각각 현직을 상실한데 반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 22개월간 재판을 받아온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27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지난 2009년 3월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박 의원은 `잘 나가는' 집권여당 중진 의원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 2002년 `정치1번지'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거머쥔 박 의원은 18대 총선 당시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꺾는 저력을 발휘하며 3선에 올랐다.

또한 18대 국회 상반기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맡아 `한미관계 복원'을 내건 이명박 정부의 미국통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외통위원장으로서 2008년 12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의 상정을 강행, 야당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불과 몇 개월 뒤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으며 보폭을 좁혀야 했다.

설상가상 2009년 7월에는 당원권마저 정지되면서 사실상 정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불법 정치자금을 결코 받은 바 없다"며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해온 박 의원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머리를 짧게 자른 채 선거지원에 나서는 등 몸을 한껏 낮춘 채 밑바닥 행보를 이어왔다.

박 의원은 대법원 판결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한 인고의 시간이었다"고 지난 22개월을 회고한 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바르고 깨끗한 정치를 만드는 데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다.

다만 그는 대법원에서 후원금 1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받아들여진 데 대해 "아쉬움이 크다"며 "차제에 정치후원금 제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같은 날 진행된 대법원 판결에서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벌금 1200만원과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한 반면,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이에 대해 여야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민주당은 ‘여당 무죄, 야당 유죄’의 정치 판결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며 "다가올 4월 재보선에서 국민의 뜻을 잘 받들 수 있도록 준비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배 대변인은 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강원도정에 공백이 생겨 안타깝다"며 "그러나 한나라당은 도민의 힘을 결집하고 정부와 협력해 반드시 동계올림픽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구두논평에서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힌 뒤 이 지사의 ‘단지(斷指) 논란’을 거론하며 "기본적으로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 사람은 공직에 앉을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이춘석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보복·기획수사에 따른 명백한 정치적 판결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며 "유무죄 판결의 차이는 오로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당적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박연차 게이트는 전 정권에 대한 보복수사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참사까지 빚어졌다"며 "법원마저 현명한 판결을 기다린 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외면했고, 사법부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대법원은 야당 정치인에게만 가혹한 정치판결을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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