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정’ 지역을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

소장현 / 기사승인 : 2019-02-21 14: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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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싱어> 가수 문철, ‘널 보고 싶다’

전국시도민향우회 총연합회 전국호남향우회 중앙회
홍보대사를 맡으면서 지역사랑 곳곳에 전령사 역할

부도 후 재기과정 자살시도‘가정의 소중함 각별해’
어떤 목표도 좌절과 방해 겪지 않고 성취되지 않아

 

[일요주간 = 소장현 기자] 지난 12일 오후 가수 문철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첫 인상은 다부진 단신의 외모이다. ‘배구, 복싱, 태권도, 조기축구’등으로 탄탄하게 단련된 동안이미지의 건강미 물씬 풍기는 가수 문철에게서 삶의 중후함이 단번에 감지된다.

진한 호소력을 담아낸 문철의 보이스는 그의 삶만큼이나 결코 가볍지 않다. 경박한 사랑 타령만 하지 않는다. 문철의 노래에는 진지함과 뜨거운 열정과 영혼의 철학이 있다. 가수 문철과 진솔하고 격의 없이 나눈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본다.  

 

▲ 진한 호소력을 담아낸 문철의 보이스는 그의 삶만큼이나 결코 가볍지 않다.


● 가수 문철 누구인지! 핵심 이력을 간략하게 소개하여 달라.

▼‘널 보고 싶다’로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시니어 싱어의 주인공 가수 문철입니다. 최근 10년 사이 세 번의 앨범을 냈는데, 최근 수록되어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3집까지 음반을 냈는데, 본인 곡은 9곡 정도입니다.

가사의 1절을 들려드립니다. 어쩌면 애절하게 격정적으로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애틋한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한 번 영상을 직접 시청하여 보세요.

널보고 싶다.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만날 수가 없는 그 사람 / 텅 빈 가슴 애태우며 오늘도 기다리는 가 남모르게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던 사람 / 꼭 한 번 만나고 싶은데 미치게 보고 싶다 죽도록 보고 싶다. / 내 사랑아 한 잔 술로 마음 달랜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유행가 트롯토를 구성지게 불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자랑 같지만 벌써 40년 전부터 노래 실력을 뽐냈습니다. 광주CBS 노래자랑 최우수상 우상(1975년), KBS 우리 마을 최고야 대상 수상(1995년) 노래 싣은 고향소식 대상 수상(1996년) 현재 전국시도민향우회 총연합회와 전국호남향우회 중앙회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데, 천곡 정도의 레퍼토리로 중무장하고 있습니다.

 

▲ 문철의 노래에는 진지함과 뜨거운 열정과 영혼의 철학이 있다.


● 기사 내용을 음미하여 보면, 삶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은데!

▼ 저의 이력과 사연을 독자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현재도 대전이 집이어서 주말 부부신세입니다. 저는 50대 초반부터 본격 가수 활동을 한 늦깎이 가수입니다. 대전에서 29살부터 잠시 직장생활 이후에 15년 동안 제조업을 했습니다. 당좌를 잘못 텄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2002년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46세의 나이었지만 벌써 현재 63세입니다.

 

▲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유행가 트롯토를 구성지게 불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 공장 부도 이후의 생활은 매우 험한 언덕이었을 것 같은데?

▼ 낮에는 아내와 포장마차를 하면서 6년 동안 신탄진에서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부도 직후에는 노점상을 했습니다. 대리운전은 적은 금액이지만 고정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둘째아들 급식비를 제때에 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삶을 마감하고자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게 너무 지옥으로 느껴졌습니다. 거듭 좌절을 겪으면서 2번의 연탄불 감행과 비오는 날 대청댐에서 재시도…

● 벅찬 시련을 슬기롭게 어떻게 극복했나? 

 

▼ 부도 이후 정말 열심히 재기하려고 노력했고 고통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절대 죽어서는 안 되겠다는 의지로 재기를 위해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신자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던 것 같습니다. 사업 실패로 이어지는 부도의 일련의 사태는 딱 부러지게 누구 한사람의 잘못은 아닙니다. 옆에서 용기를 주며 생활의 힘듦과 어려움을 묵묵히 지켜 봐준 아내의 고마움은 이루다 말할 수 없습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로 그것을 덮고 갚기엔 너무도 큰 아픔이었기 때문입니다.

 

▲ 낮에는 아내와 포장마차를 하면서 6년 동안 신탄진에서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방송 출연의 기회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도 이후 척박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인연이 되어 2008년 10월 대전MBC 세상이야기(문철편 50분 다큐멘터리)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큰형의 반대가 심해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SBS 동행이라는 화해 프로그램에서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받은 큰 형과 제가 출연하는 것에 제안이 오기도 했습니다.

● 고향과 어머님, 자녀 이야기를 살짝 들려 달라.

▼ 저의 고향은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넙도입니다. 덕동리 해변은 잔잔한 바다가 섬 내륙으로 깊숙이 파고들어온 만(灣) 안쪽 아늑한 포구연안이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통제영 자리입니다. 당시 이곳 주민들의 생활환경은 미역과 김이 주종이었습니다. 사업이 활황이었을 때, 부모님께 TV를 선물하면서 마을의 효자로서 자랑거리가 되었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특히 모친은 50대에 세상을 떠나셔서 어머님 생각이 간절합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선한 눈빛! 자신보다 자식을 더 생각하는 어머니! 그 무엇으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어머니의 사랑! 저 또 한, 자녀들을 키우다 보니 그 사랑과 헌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 사랑을 갚을 길이 없어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 유니메드 전주 노래교실에서 공연을 마치고


저는 세 아들을 가진 아들부자입니다. 첫째와 둘째 아들은 어느 덧 커서 사회에 나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늦둥이 막내아들은 현재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여 열심히 군 복무 중에 있습니다. 힘든 시절을 겪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잘 자라줘서 세 아들들에게 늘 고맙고 미안합니다. 사실 제가 지금까지 온 것도, 자식들이 바르게 잘 자라준 것도 아내의 힘이 제일 큽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소홀하고,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으로 인해 매우 힘들어 할 때도 늘 아내가 옆에서 내,외조를 잘해줬습니다.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에게 늘 표현을 못하고 힘들게 해서 항상 미안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족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달프고 지치더라도 집에 오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하루의 그 힘듦과 고통이 사라집니다. 가장 힘들 때 이들이 아니었으면 과연 버텨낼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저 자신한테 되물으면, 마냥 고맙고 귀한 존재들이란 생각부터 듭니다. 이 자릴 빌려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문연주 인기가수와 한컷


● 모든 고비고비를 슬기롭게 통과했는데, 희망의 메시지를 확신있게 들려 달라.

▼ 2002년부터 15년이 지난 2016년부터 분명 풀리는 조짐이 보였습니다. 현재는 가수활동을 하면서, 4차 산업 IT계열에서 새로운 저력을 힘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힘들었던 그때의 경험 덕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뭘 해도 그때보다 힘들진 않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 제주도 글로벌 세미나에서 미국 여가수와 함께


지금의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나 혼자 잘나서가 아닌 좋은 인연과 노력 덕분입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이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지 않으며, 항상 웃음과 사랑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사는 게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냉철한 판단을 갖고 노력하면 언젠간 좋은 일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 주어진 시련을 오히려 유익한 환경으로 바라보고 지혜와 용기, 분별력을 담금질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고 갖은 방법을 통해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어떤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면, 고난과 시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목표도 좌절과 방해를 겪지 않고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반드시 뚜렷한 목표를 가지시면 분명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주어진 시련을 오히려 유익한 환경으로 바라보고 지혜와 용기, 분별력을 담금질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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