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시명상은 언어로 수행하는 치유의 방식, 『가슴으로 시 읽기』 저자 이강선의 시명상 독서법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1-12 10: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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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이은화
대담자: 이강선
▲ 이강선 시인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1975목포 출생. 영문학 박사. 2010년 유방암 3기 진단 이후 몸·감정·언어의 상호작용에 깊이 주목하게 되었다. 이후 통합심신치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며 현대 명상과 몸마음 이론을 체계적으로 수학했다. 이러한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과 명상을 접목한 ‘시명상’ 방법론을 정립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치병의 기록을 담은 『몸이 아프다고 삶도 아픈 건 아니야』(2012) 『가슴으로 시 읽기』(2025) 등이 있으며, 다수의 영한·한영 번역서와 학술서를 출간했다.


Q. 지난가을 출간하신 『가슴으로 시 읽기』에 대한 소개 부탁합니다.

▶ 『가슴으로 시 읽기』는 시명상을 말하는 책입니다. 시명상은 시를 대상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어디에도 없던 형태의 명상입니다. 시를 읽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감정, 그리고 알아차림을 다룹니다. 그래서 일반 명상보다 한결 쉽고 편안하지만, 멈춤과 깨어있음이라는 명상의 핵심 효과를 그대로 가져옵니다. 주의 조절과 그로 인한 일상의 습관 변화를 살펴보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한 스님으로부터 ‘언어로 하는 수행’이라는 별칭을 받았습니다.


Q. 시를 분석보다 느낌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데, 이런 관점을 갖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 시를 ‘분석보다 느낌’으로 읽어야 한다는 관점은 어떤 계기로 생겼기보다 시를 오래 겪어오며 자연스럽게 굳어진 태도에 가깝습니다. 시는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멀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이해의 대상이라기보다, 잠시 머무르며 겪는 대상으로 읽어왔습니다.


Q. 이어 시명상을 “삶을 대하는 자세”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무엇이라 보시나요?

▶ 시명상에서 말하는 ‘삶을 대하는 자세’는 시에서 읽어낸 태도들입니다. 존 카밧진의 아홉 가지 태도—판단하지 않기, 인내, 초심, 신뢰, 애쓰지 않음, 수용, 내려놓음, 감사, 연민—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태도들은 감정과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가에 대한 기준이 됩니다.


다만 이 태도들을 하나씩 짚어내지는 않았습니다. 시 안에는 언제나 여러 태도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는 아주 짧지만, 사람의 생을 모두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 안에는 아름다움도 있고, 인내도 있으며, 수용과 내려놓음이 동시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시는 가르치기보다 혼자 읊조립니다. 짧은 시 한 편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건드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멈추어 읽을 때, 집중할 때, 설명 없이도 알아차림이 일어납니다. ‘멈춤과 깨어있음의 미학’이라는 부제는 바로 그 지점을 가리킵니다. 시는 멈출 수 있는 계기를 열어주고,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삶의 태도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Q. 『시명상』 각 부(1·2·3부)가 독자에게 안내하는 정서적 흐름과 의도는 무엇인가요?

▶ 1부는 시명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다룹니다. 이 부분에서는 현대 인지과학의 관점을 끌어와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경험되는지를 말합니다. 특히 리자 펠드먼 배럿의 감정 구성 이론을 바탕으로, 감정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경험과 맥락, 언어에 의해 생성된다는 점을 짚습니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2부는 시명상의 실제를 담고 있습니다. 아홉 개의 파트로 나누어 열여덟 편의 시를 다룹니다. 시를 읽고 경험하고 탐색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시명상의 3단계입니다. 직접 시 앞에서 멈추고, 감각과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겪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들을 경험하고 보편성을 탐색한 다음, 최종적으로는 자기 언어로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3부는 시명상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시명상을 겪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지를 기록합니다. 작은 들꽃 앞에 멈추는 모습에서부터, 삶을 지배하던 핵심 감정이 달라지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변해 가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또한 텍스트의 표면 이해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스스로 찾아냅니다. 한편으로 자기 생각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쓰기 또한 시명상 작동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3부는 구체적인 변화를 짚고 있습니다.
 

▲ 도서관 지혜학교 <영화와 소설을 통해 보는 미국의 다양성> 강의



Q. 강의나 칼럼 활동 중 시명상의 치유 효과를 깊이 느끼게 해준 순간이나 독자 반응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 매번 시명상을 하는 동안 누군가는 울컥합니다. 장소는 달라도 여러 사람이 같은 구절에서 멈춥니다. 동일 장소에서는 각기 다른 구절에서 멈춥니다. 그것은 시를 겪는 동안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겪은 일이 감각으로 머물러 있다가 어휘를 만나면 당시의 감정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을 제대로 풀어내거나 표현하면 그 감정이 오래도록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또한 누군가가 귀를 기울여 주었다면 순화되거나 완화됩니다. 울고 나면 개운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는 감정표현을 약함의 징표로 여기곤 합니다. 그렇기에 상대가 알면 안 될 것 같은 감정을 억누릅니다. 이 일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통할 수 없는 감정은 신체에 해를 끼칩니다. 우리는 감정을 타고 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휘가 경험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을 불러옵니다.


정호승의 「산산조각」을 읽을 때 어느 그룹은 ‘다정히’에서 반응했습니다. 누군가는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에서 반응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에서 반응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순간접착제’에서 기억을 불러왔습니다. 각자의 삶이 달라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고는 편안해진 얼굴로 강의실을 나섰습니다.


Q. 시명상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흔히 겪는 어려움이나 오해, 그리고 이를 완화할 방법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지난 워크숍에서 참가자 중의 한 명이 놀란 어투로 말했습니다. 시가 너무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특별한 말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시를 읽고 느끼는 대로 말해보라고 안내했을 뿐입니다. 그때 예로 들었던 시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였습니다. 김소월의 시지만 우리에게는 동요로 익숙합니다. 동요는 좋아서 배우고 쉬워서 배우고 리듬이 있어서 쉽게 기억합니다. 시 또한 동요와 같은 리듬을 갖고 있습니다. 소리 내어 읽고 리듬을 살려 읽고 함께 읽으면 쉽게 기억합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면 시는 내 일상에서 사라집니다. 내 생활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그분이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시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렵다거나 슬프다거나 그 어떤 생각과 느낌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 말에는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시는 고상한 것이니, 일상과 관련 없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그러합니다. 시는 어떤 특정 장면에만 등장합니다. 국어 교과서나 논문, 시 낭송 현장, 대담, 인용 등이지요. 시는 은유와 상징을 찾아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러니 시가 분석할 대상이 되었던 겁니다. 그 시간에 제가 한 일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저 천천히 읽으라고 안내했던 것입니다.


Q. 암 투병 시기에 글이 주었던 힘이 현재의 치유 활동과 시명상 작업에 어떻게 이어졌는지 궁금합니다.

▶ 암을 앓던 시기에 글을 썼습니다. 항암 주사를 맞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도 썼습니다. 그 기록이 『몸이 아프다고 삶도 아픈 건 아니야』(2012)로 나왔습니다. 몸은 병을 겪지만 삶은 병을 겪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수전 손택은 사회가 질병을 은유로 소비해 왔다는 점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사회는 암을 “억눌린 감정이나 공격성이 안으로 폭발하여 스스로를 파괴하는 질병”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손택은 이런 식의 해석, 즉 “성격이 암을 만든다”라는 은유가 환자에게 질병의 고통에 더해 죄책감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준다고 간파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내성적이어서 암에 걸렸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손택 역시 암을 앓았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힘찬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 삶에는 '건강한 왕국'과 '아픈 왕국'이 있고, 우리는 그저 두 왕국 모두의 시민권자일 뿐입니다. 질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사실입니다.


병을 앓던 시절, 제게는 고통 대신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글은 집중하기에 가장 좋았습니다. 그때 썼던 글이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이 되었습니다. 그 책 또한 “암 극복기가 아닌, 견딤의 기록”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투병이라고 하지 않고 ‘치병’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그래서입니다. 질병이 제 삶을 멈추게 한 것이 아닙니다. 아픈 몸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정기검진을 받습니다. 투병과 치유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는 삶의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2024년, 저는 『몸이 아프다고 삶도 아픈 건 아니야』의 독자를 여럿 만났습니다. 누군가는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화가는 12년 전 절망에 빠져 죽음을 생각하던 시절, 제 책을 읽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1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합니다. 시를 읽고 글을 쓰며 강의합니다. 산에 가고 맨발로 걷고 들꽃을 들여다봅니다. 특별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납니다. 운명이 나에게 닥쳐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낸 삶이 곧 운명입니다.
 

▲ 전라남도 사서 교사 연수에서



Q. 명상의 실천을 “멈춤과 깨어있음의 미학”이라고 표현하셨는데, 바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시명상 방법은 무엇일까요?

▶ 얼마 전, 함께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그림마다 그 앞에 멈추어 색채와 분위기, 그리고 흐름을 느꼈습니다. 흔히 그림책을 펼치면 이야기를 읽습니다. 다 읽으면 교훈을 찾습니다. 멈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멈춤은 그림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보는 일입니다. 그것은 그림을 느끼는 일입니다.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들고 멈추는 것입니다. 어디에서건 좋습니다. 아무리 짧아도 좋습니다. 그저 그 순간에 그 구절을 들고 온전히 멈추어 온 마음을 다해 읽고 듣고 느끼는 것입니다. 3분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면 멈추는 순간을 알게 됩니다. 어디서건 멈추어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글 판 글을 보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여러 달에 걸쳐 그 글이 말하는 순간으로 데려갑니다. 이윽고 일상에서 그 순간을 사용하게 됩니다. 내 것으로 말이지요.



Q. 시명상이 단순한 독서법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태도”라고 하셨는데, 이러한 인문학적 치유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요?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쓰려면 한 권의 책 이상의 분량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가’라는 큰 전망보다, 한 사람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명상은 독서법이나 치유 기법이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입니다. 시 앞에서 멈추는 방식이 달라지면, 세계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그 변화는 거창하게 사회로 확산하기 이전에, 이미 개인의 일상 안에서 일어납니다. 말을 서두르지 않게 되고, 감정을 곧바로 판단하지 않게 되며, 타인의 말과 침묵을 조금 더 오래 견디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 변화라는 말 대신, “한 사람이 시 앞에 서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 한 사람의 변화가 쌓일 때, 관계의 밀도와 이해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시명상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언제나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Q. 끝으로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연구·저술이나, 시명상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엇을 새로 하겠다고 말하는 게 점점 조심스러워집니다. 여전히 시를 읽고, 글을 쓰고, 멈춥니다. 시명상 역시 삶을 겪는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를 겪으며 일어나는 느낌이 어떻게 한 사람의 언어가 되는가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느낌이 어떻게 ‘나의 말’로 형성되는지를 따라가려는 작업입니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연장입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앞세우지는 않으려 합니다. 전하려는 순간, 시는 다시 설명의 대상이 되고 명상은 또 하나의 기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삶이건 시건, 어떤 장면 앞에서나 조금 더 오래 머무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이해하고, 너무 빨리 정리하고, 너무 빨리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삶도, 생각도, 시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시명상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었으나 말로 옮기지 못했던 감각을 다시 만나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살아보는 일입니다. 그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말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앞으로’입니다.

 

 

▲ 이은화 작가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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