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기초연금안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시선

김진영 / 기사승인 : 2013-10-08 0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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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반대하면 빨갱이 아녀!” vs “부모한테 거짓말 하면 안되지!”
▲ 노인의 날인 10월 2일 개최된 ‘박근혜정부 기초연금안 노인 만민공동회’ ⓒ일요주간
[일요주간=김진영 기자] 노인의 날이었던 10월 2일, 공사 중이던 종묘공원 입구 한편에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노년유니온 등 4개 복지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기초연금공약 노인 만민공동회’는 지난 9월 26일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두고 당사자인 노인들의 생각을 모아보는 자리였다.

행사 시작시간인 3시를 앞두고 주변을 지나는 어르신들의 표정에는 궁금증이 담겨 있었다. 본지 기자를 붙들고 “지금 뭐하는 거여?”라고 물으신 한 할아버지에게 행사에 대해 설명을 드렸더니 “정부 하는 일에 반대하면 빨갱이 아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 어르신들의 시선이 단번에 우리 쪽으로 쏠렸다. 다른 한쪽의 할아버지 한분은 “그게 아니지”하면서 끼어드셨고 자칫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

기자가 다시 “어르신은 기초노령연금 얼마 받고 계세요?”라고 묻자 ‘빨갱이’를 언급한 할아버지는 “7만원”이라고 답하시며 “난 더 올려줘도 싫어. 그런 거 안 받아도 돼”하면서 못마땅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다시 어르신들의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섰다. 한 쪽에서는 “역대 대통령 중에 약속한 거 지키는 사람이 누가 있었나?”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엄마, 아부지 같은 사람들한테 거짓말 하면 안되지”라고 맞받았다. 중간에서 다시 한 분은 “대통령이라면 자고로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안 지키니까 노인네들이 난리가 나지”라며 상황을 정리했다.

행사 시작을 알리는 “마이크테스트 하나, 둘, 셋” 소리가 장내에 울리자 수정된 기초연금안에 찬성하는 노인들은 행사장을 떠났고 반대하는 쪽은 저마다 의자를 찾아 자리를 채웠다. 연단 뒤편으로 행사 플랜카드가 내걸리고 주최 측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취재진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했다.

▲ 만민공동회에 참석한 어르신들이 연설을 듣고 있다 ⓒ일요주간

사회를 맡은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이명묵 대표는 “오늘 이 자리는 대한민국을 키우는데 온 청춘을 바치신 노인분들이 직접 노후복지를 설계하는 자리”라고 운을 뗀 뒤 “기초연금공약 노인만민공동회를, 당사자 노인어르신들을 모시고 시작하겠다”고 행사 시작을 알렸다.

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복지시대시니어주니어노동연합 최자웅 상임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후퇴에 대해 “원칙적이고 약속을 잘 지키기로 점수를 많이 딴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몇 달도 되지 않아서, 공약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한민국의 가장 존엄한 국민, 어르신들에게 식언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오늘 만민공동회를 통해서 존경하시는 어르신들께서 박근혜 대통령을 꾸짖어주시고 대통령과 정부가 복지민주국가로 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함께 만들어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곳저곳에서 “옳소!”, “잘한다!”라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박수가 이어졌다. 뒤이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구 공동대표는 복지공약의 이모저모를 설명했다.

그는 복지정책을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크게 4가지로 설명했다. 노인빈곤율 1위와 노인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첫째와 둘째 이유로 꼽았고 셋째는 내수활성화, 네 번째는 자녀세대의 노인부양에의 책임을 덜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공동대표는 “지금 공약안대로면 노인빈곤율 해소가 1%밖에 안된다. 내수 진작, 소비활성화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국민연금 연계안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이 노인들의 노후소득을 보장한다는, 제 역할을 못하게 된다”면서 “처음부터 이렇게 법을 정해버리면 5년, 10년 후에도 계속 이대로 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오늘 행사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당사자인 노인들을 빼고 그런 결정은 하지 말라. 덜 받든 더 받든 우리가 직접 결정하겠다. 더 받아야 한다면 제대로 이유를 알고서 더 받겠고 덜 받아야 한다면 충분하게 설득을 통해서 더 받도록 하겠다, 라는 기회를 어르신들 스스로 만들어 가자는 뜻”이라고 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그는 이런 취지의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할 뜻임을 밝히면서 “대한민국을 우리가 만들었듯이 우리 미래도 우리가 만들어간다, 하는 것을 시작하는 첫 번째 모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을 마쳤다.

연설이 길어지자 어르신들의 집중도가 다소 낮아진 듯했다. 사회자는 어르신 한 분을 기초연금안의 당사자로서 연단으로 모셔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발언권을 얻은 양재덕(66세) 할아버지는 “20만원 준다고 하니까 다 표를 몰아줬는데 6개월도 안 되서 돈이 없어서 못주겠다고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면서 “이게 정치인들의 고질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인이 무슨 봉입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중들은 함성과 박수로 답했다.

이어서 야당의 정치인들이 연단에 발을 올렸다. 가장 먼저 도착한 정의당의 심상정 원내대표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르신들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린다”고 사과를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도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한다고 하곤 재원을 핑계로 후퇴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고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속였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는 증세를 이야기하는 정권이나 정치인은 정권을 포기한 정당이라고 한다고 언급하고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와 함께 임기 내 공약을 이행하도록 힘쓰겠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 안철수 의원이 연설하는 사이 심상정 원내대표와 정동영 상임고문이 어르신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일요주간

연설 도중 등장한 안철수 의원을 심 원내대표가 소개하자 어디선가 “안철수!”하는 지지자의 외침이 들리기도 했다. 연단에 선 안철수 의원은 정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정책목적인데 노인빈곤율을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기초연금안은 비용문제로만 치부되고 있다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는 “어제 국무총리에게 노인빈곤율이 몇 % 줄어드느냐고 물었는데 모르겠다고 하더라. 얼마를 줄일 수 있는지만 통계가 나와 있고 실제로 그걸 하는 정책목적인 노인빈곤율은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는 모르는 것”이라면서 “선후가 뒤바뀌었다”고 하자 어디선가 “그렇지!”하는 맞장구가 터져 나왔다.

안 의원은 자신이 속해있는 보건복지위원회가 국회에서 초선의원이나 비례대표가 대부분인, 비인기 상임위라는 발언과 함께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데도 관심이 적은 곳이라는 것에 놀랐다”고도 했다. 그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가장 중요한 위원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여기 계신 어르신들을 잘 모시겠다”고 말을 마쳤다.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은 “작년에 어르신 45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거냐의 문제는, 야당여당을 떠나 이제 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을 누리면서 가치를 누리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가 있다는 헌법을 이행하면서 국회가 책임지고 보장해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함성소리가 크게 울렸다.

지난 대선 때 증세 없는 복지가 논란이 되자 박근혜 당시 후보는 ‘왜 꼭 돈으로만 생각하느냐, 따뜻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면서 그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비심, 동정심이라는 말이다. 국가가 자비심이나 동정심으로 없는 분들에게 도와드리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이나 정부는 복지는 동정, 자비심(으로 보고) 이건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된다는 생각인데 복지가 성장(내수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제 말이 맞지 않느냐”고 동조를 구했다. 다시 박수와 함성이 이어졌다.

▲ 안철수 의원, 심상정 원내대표, 정동영 상임고문이 나란히 연단에 서서 청중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일요주간

세 야권인사는 다시 연단에 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운집된 인파를 뚫고 퇴장했다. 사회자는 다시 어르신들에게 마이크를 돌리려 했지만 참석한 많은 어르신들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뜨거운 취재열기를 보였던 사진기자와 취재기자들도 썰물 빠지듯 자리를 떠났다.

기자는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어르신들에게 지켜본 소감을 물었다. 두 세분이 고개를 가로저었고 주변에는 기자를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시선만 향했다.

아직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께 다가갔다. 연세를 여쭙자 27년생, 87세라고 하시는데 우연히도 본지 기자의 조부와 연세가 같았다. “행사 어떻게 보셨어요?”라고 묻자 “나와서 얘기하는 건 좋은데…”라면서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오히려 “자네는 우리나라 정치 잘한다고 생각하나?”라고 되물으셨다. “할아버지 보시기엔 어떠신데요?”라고 묻자 “쓸데없는 공약은 왜해. 왜 단 3일을 못 내다봐. 무상보육이나 다 백지화됐잖아”라고 혀를 차셨다.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시라면서 한 달에 기초노령연금 15만원에 더해 6만원을 더 받고 계신다고 했다. 어제 국군의 날 행사를 뉴스로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다고 말을 이어간 할아버지는 이내 기자에게 “국회의원 300명씩 필요하다고 보나? 우리가 가난한 이유가 뭔데”라며 뼈있는 한마디를 남기시고는 열심히 살라며 기자의 손을 꼭 붙잡아주셨다.

종묘공원 공사장 판넬 한 편에 마련된 행사장에는 정치인들이 빠져나간 후 다시 어르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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