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감으로 만든 인간 삶의 희노애락 ”

문학박사 황인원 / 기사승인 : 2013-12-03 10: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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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순수함과 기의 세계 드러내는 작가 이숙 [일요주간=문학박사 황인원] 시인이 언어를 활용해 자기 세계를 표현하듯 화가는 색을 활용해 세상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래서 언어의 마술사 혹은 색의 마술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언어를 다스릴 수 있어야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구조가 가능하고, 화가는 색을 다스릴 수 있어야 세상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활용하는 게 아니라 다스릴 수 있어야 자기 분야에서 일정한 위치에 올라서는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시인 중 언어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화가 중 색을 활용하는 사람은 많아도 다스릴 수 있는 사람 역시 드물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색깔의 강도를 잡아 앉혀 캠퍼스에 다소곳이 만들 수 있는 사람만이 색을 다스릴 수 있다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색을 다스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화가 이숙이다. 그는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덧붙이는 일이 없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두툼하게 덧붙여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색의 활용에 가깝다. 물감의 있는 그대로의 색감을 보태고 보태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낸다.

이숙의 그림에는 ‘날렵한 색깔’의 흐름만이 존재한다. ‘날렵한 색깔’이란 화가가 물감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독기를 제거하고 색깔이 빛으로 나타날 때 사용함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삶의 소리> 시리즈다. 이숙 그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그림들에는 원래 색감은 없다. 원래 색의 독기를 모두 빼내고 부드러우면서도 순수한, 이제 막 태어난 아기의 영혼과도 같은 모습의 색감이 존재한다.

이숙은 이 색들로 하여금 인간 삶의 희노애락을, 그리고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속 깊은 마음의 질감을 드러낸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말하는 단어는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만 들어보자. ‘네 마음대로 해’는 틀린 말이다. 이 말은 ‘네 의식대로 해’라고 해야 맞다. 생각해보라. 사람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하는 행동은 모두 사회 교육을 통해 얻은 것을 바탕으로 한다.

태어나서 아장아장 걸을 때 아기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집으러 간다고 치자. 이때 그 물건이 아이에게 위험 물질이면 부모는 ‘이건 만지면 안 돼’하며 뺏거나 멀찍이 놓는다.

그러면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저 물건은 위험물질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학교에 들어가면 공중도덕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각종 행동양식을 배운다.

이때 나오는 행동은 마음의 행동이 아니고 의식의 행동이다. 그러니까 의식은 교육에 의해 뇌에 저장된 행동양식이다.

마음이란 지금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이나 태도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의식으로 가득한 행동을 마음의 행동으로 다시 되돌리기 위해 수많은 수양을 쌓는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말이다.

이숙은 이런 의식의 상태에서 마음의 상태로 가는 색감을 절묘하게 드러내는 데 탁월하다. 그것은 우리들 내면의 숨어 있는 속 깊은 행동의 변화 양상이다.

그 과정에서 이숙은 희노애락을 담아낸다. 이숙의 그림이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이 동시에 한 캠퍼스에 놓여진다. <바람이 내게 준 선물> 같은 작품은 하얀 계열의 색감이 바람에 흩날리듯 외부를 감싸고 내부 즉 중심부에는 검정색과 파란색, 분홍색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이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그리하여 인간의 모태 속에서 세상을 향해 머리를 드는 순수한 영혼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영혼의 소리>라는 작품은 어두운 색깔의 배치를 극히 자제하고 있다. 말하자면 영혼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어둠의 빛깔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작가의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얼굴과 귀와 손과 작은 육체가 어우러져 색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음이라는 단어를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색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다스려 화폭에 담아냈기에 이 같은 색의 배합이 가능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처럼 이숙의 작품은 온전히 색의 다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스림으로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숙의 일부 작품에서는 인간이 가진 기(氣)의 세계마저 보여주게 된다. 예의 <인간의 영혼>이라는 작품도 상단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의 모습을 표현한다.

더불어 <사랑하라 처음처럼>이라는 작품도 역시 작품 상단에 기의 따뜻한 형상을 드러낸다. <영혼의 그림자>나 <우주의 꿈>도 예외는 아니다.

이 같은 작품성은 어느 작가와도 다른 이숙만의 세계다. 인간의 몸에 구석구석 피가 흐르듯 기가 흐르고 있다. 기가 막히면 그 부분은 온전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기가 차가우면 역시 신체의 기능이 떨어진다. 우리말에 ‘기가 차다’ ‘기막히다’는 말은 바로 인간의 몸에 기가 흐르고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 인간 영혼과 신체에 흐르는 기의 본질을 잡아내고 작품의 일부로 활용하는 국내 유일의 작가가 바로 이숙이다. 물론 그 작품 수단이 색의 다스림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화단에 이숙처럼 색을 다스리는 작가는 많지 않다. 색을 다스리면서도 인간의 영혼이 담고 있는 순수함과 기의 세계까지 드러내는 작가는 이숙뿐이다.

때문에 이숙이라는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독특함은 우리에게 고향과도 같은 편안함과 희망을 준다. 사실 작가의 작품은 계속된 변화를 주는 것이 생명이다.

어떠한 변화 과정을 겪든 이 같은 원초적인 생명의 경이로움과 희노애락을 담아내는 작업이기를 바란다. 그것은 작가 이숙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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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이숙 (Lee, Sook)

덕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덕성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10회, 부스전 9회
국내외 초대전 및 단체전 83회 출품

◎ 수상
2006- 21세기- 새로운도전,한국최초의지명공모전 우수상 ( 안산,단원미술관)
2001- 제15회 대한민국 화화대전( 과천현대미술관)
1995_ 제1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 과천현대미술관)
1994- 제5회 미술세계 대상전( 서울, 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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