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한 국회의 고성 및 막말 논란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불신과 막연한 회의감을 조성하며 자발적 정치참여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때문에 입법부 본질의 역할을 찾고 정책위주의 국회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통해 국민의 대표성을 강조하는 한편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함과 동시에 양강 구도를 희석시켜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연정을 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당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당선자만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각 정당에 대한 득표율을 토대로 한 비례대표제를 통해 총 300석(지역구 246, 비례대표 54석)의 의석수를 나누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승자독식의 독과점 체제가 야기한 양당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소선거구제 중심의 현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치권을 비롯한 학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치개혁, 비례대표제 확대로 모아져야
오늘날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미 있는 토론의 장이 마련됐다.
7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된 민주당 정치혁신실행위원회 이종걸 의원 주최 ‘국회의원 선거구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중대선거구제도를 중심으로’에서는 발표자로 나선 한국정치아카데미 김만흠 원장, 성신여대 정연주 교수(법과대학), 동국대 박명호 교수(정외과), 명지대 윤종빈 교수(정외과) 등 전문가를 포함해 민주당 이종걸 의원과 유인태 의원, 문병호 의원, 이언주 의원 등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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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된 민주당 정치혁신실행위원회 이종걸 의원 주최 ‘국회의원 선거구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중대선거구제도를 중심으로’에서 발표자로 나선 동국대 박명호 교수(정외과), 한국정치아카데미 김만흠 원장, 성신여대 정연주 교수(법과대학), 명지대 윤종빈 교수(정외과) (왼쪽부터) ⓒ일요주간 |
먼저 한국정치아카데미 김만흠 원장은 “선거구제 개편 논란을 정리하면서 중대선거구제가 그 취지에 부합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지역구조 타파전략이 계속 얘기되는데 그것보다는 양당 독과점 폐해를 깨트리는 것에서 봐야한다”고 언급했다.
양당구조가 가진 문제점으로 인해 새로운 정당분출현상은 계속 되고 있으나 대통령중심제와 소선거구제 등 제도적인 장벽 탓에 다당제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독일식 비례대표제 ▲일본식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등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근본적으로 정당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중심제보다는 의원내각제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과연 현재의 대통령제에서 독일식 모형과 결합하는게 가능할까 하는 문제가 있다. 의원정수를 상당히 많이 확대하지 않고는 독일식 모형의 효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대선거구제는 과거 유신시대와 5공화국 시기에 경험했으나 둘 다 선의의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대안으로는 어렵다고 본다”며 그 도입 배경에 있어 유정회와 전국구 배정 방식을 통해 여당의 과반수 의석 보장에 목적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이 밖에도 중대선거구제는 당선자간 득표 차이가 클 수 있으며 이에 따른 대표의 등가성과 대표 적합성 자체에 대한 논란, 행정체계와 선거구 개편 여부 등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김만흠 원장은 “독일식을 중심으로 한 비례대표제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나 정당 중심의 의원내각제와 제도적 친화력을 가지고 작동하고 있다는 점, 정당정치 민주화가 전제되지 않는 비례대표제는 더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박명호 교수도 소선거구제에서 대선거구제로 갈수록 비례성이 높아지며, 그만큼 사표(死票) 발생 가능성이 줄게 돼 국민의사가 왜곡되지 않고 제대로 반영될 수 있으나 마찬가지로 다른 정치제도(국민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제)와의 정합성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박 교수는 “의회 내 다당제적 경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중대선거구+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 정부형태와는 부적절한 선거제도로 평가되고 있다”며 “그런 면에서 보면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하되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이 중대선거구제를 제기한 의도, 비례성·대표성의 확대 등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선거제도 개편을 논하기에 앞서 원칙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주의 실현과정에서의 헌법적 이념인 대표의 정확성 등을 충족하는 정책적 방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신여대 정연주 교수는 “중대선거구제가 물론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해결하기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첫째 대선거구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측면이 있고 또 하나는 효과면에서 미흡하거나 오히려 반대의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이라며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을 폈다.
헌법적 이념인 민주주의 실현 수단으로서의 중대선거구제를 봤을 때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 또는 신진정치세력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거나 비용절감, 소수정당의 계파·지역초월적 정치 실현 목표가 오히려 반대 효과를 낼 수도 있다며 정 교수는 “기초단체지방의회선거에서 중선거구제가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많은 문제점이 제기됐다는 것은 이를 경험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면서 “(중대선거구제는)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들고 부패문제의 가능성이 크며, 또 전국적인 인물이라든가 기존 지역유지 내지는 토착세력이 당선될 확률을 높이며 신진세력이나 장애인·여성 등이 당선될 확률이 오히려 적다고 본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더욱이 현 소선거구제+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는지 자체에 의문점이 들 수 있으며, 영·호남으로 양분된 지역적 기반이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기존 양당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다고도 지적했다.
반대로 각 정당이 각 지역구에서 1명의 후보자만을 낼 수 있도록 제한할 경우에도 반드시 소수세력이나 군소정당에게 유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획일적 제한은 대정당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작용해 결과적으로 평등의 원칙과 비례의 원칙 등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중대선거구제보다 비례대표제 강화가 대안이 될 수 있으나 의석확대 시 국민적 반감에 부딪힐 수 있으며 현 의석수에서 지역구를 줄이게 되면 해당 지역 및 국회의원들의 반발에 직면하는 등 문제점이 도출된다.
정 교수는 “독일의 경우 의원내각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 비교는 어렵지만 대통령제와의 결합이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결국 독일식 혼합식, 병립식 비례대표제 확대 전제하에서 소선거구제+비례대표 확대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명지대 윤종빈 교수는 정치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선거제도 개편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해 정치권이 좀 더 진정성을 갖고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거제도를 논의할 때는 여러 가지 목표가 있다. 비례성이나 정치참여를 제고할 것인가, 통합의 정치로서 지역주의 완화 등이 목표인가, 명확히 그 취사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고서는 답을 만들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또 설득과 통합의 정치를 위해서는 비례제의 확대를 통한 온건다당제로의 지향점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유권자의 정치관심도와 투표참여를 높이기 위한 목표로서 개방형 비례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윤 교수는 “정당명부 순위결정권을 유권자에게 돌려주자 하는 차원에서 핀란드나 칠레에서 쓰고 있는 개방형을 들 수 있다”며 “비례제 확대 측면에서 국민들에게 비례대표의 의원 결정방식을 유권자에게 돌려주겠다고 얘길 한다면 좀 더 설득이 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개혁을 위해 넘어야 할 산
제도개선의 실현 가능성으로서 현실적인 비용문제와 국민 공감대 형성, 비례대표의 상향식 공천 등 정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이야기가 오갔다.
간담회를 주최하며 이날 사회를 맡은 이종걸 의원은 “지금 소선거구제를 좀 더 보완하는 방법으로 비례대표를 늘려야 된다는 견해가 굉장히 많다”며 “다만 현실의 새누리당, 민주당 비례대표 선출방식이라면 (정치개혁을 위한 제도로서)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언주 의원은 비례대표제 운영시 무엇을 대표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 성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인지, 지역인지, 전문분야별인지, 정당인지를 분명하게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정당이 명부 만드는 방식 자체가 비민주적이다보니 사실은 대표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데 이 분들을 왜 뽑는 것인지 취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며 “개방형도 좋은 아이디어지만 평소에 말이 거칠고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선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정연주 교수도 “개방형이 이론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부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고정명부식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다. 어떤 인기스타가 들어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들한테 유리할 수밖에 없고, 당의 정책강령으로 몸을 불사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당선될 확률이 높다”고 동의를 표했다.
거대 양당 기득권 포기라는 가치적 측면에서 무엇보다 기호순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시됐다.
김만흠 원장은 “세계 주요국에서 번호 붙여서 후보를 내는 나라는 없다”며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간판만 가지고도 둘 중에 하나는 될 건데 (기호순번제 폐지는) 쉽게 채택하기 어려워 보이나 정당기득권 폐기는 기호순번제 폐지에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편 비례대표제 확대에 따른 의석수 확대를 국민에게 설득하기 위한 방안으로 총액제를 언급한 이언주 의원은 “사람은 늘리되(의석수) 세비는 그 안에서 나눠 쓰겠다, 하는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박명호 교수는 “사실 정치개혁 논의, 제도변경 논의는 실질적이어야 한다. 원칙만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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