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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일 서울지방경찰청 수사팀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중요미제(강도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서울경찰청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은 5일 “지난 2002년 서울 구로구의 한 호프집 여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장모(52)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장기 미제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일명 '태완이법' 덕분이었다. 단서는 사건 현장에 있던 맥주병에서 발견된 쪽지에 묻은 지문 일부와 발자국 일부였다.
태완이법이란 지난 1995년 5월 대구에서 발생한 김태완(당시 6세)군에 대한 황산테러사건을 계기로 추진된 법이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패혈증에 걸려 투병하다 사망에 이르도록 황산테러를 가한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채 공소시효 만료가 임박해지자 살인범 공소시효 폐지 여론이 불거지면서 2015년 7월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됐고,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됐다.
이로써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되어 수사기관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갖고 과학적·다각적인 기법으로 조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됐다. 서울경찰청은 태완이법 시행 이후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을 편성했고 주요 미제사건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호프집 살인사건’이었다.
해당 사건은 2002년 12월 14일에 발생했다. 당시 장씨는 공사장에서 타일공 보조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는 이날 오전 1시 30분께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호프집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그러다 오전 2시 30분께 종업원이 퇴근하고 여주인 A(당시50세)씨가 혼자 남자, 자신의 가방에서 둔기를 꺼내 A씨의 머리와 얼굴, 어깨 등을 수차례 내리쳤다. 장씨는 A씨의 사체를 가게 안쪽에 숨기고 현장을 깔끔히 정리한 후 A씨의 가방을 훔쳐 도주했다. 이후 그는 가방 안에 들어있던 현금과 카드로 인근 상점에서 65만 8,000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했다.
당시 사건은 서울 남부경찰서(현 금천경찰서)에서 수사했고, 장씨의 몽타주는 사건발생 직전 현장에 있었던 종업원과 장씨가 들른 상점 주인 등의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작성됐다. 이후 수배에 들어갔지만 인상착의와 맥주병에 남아있던 작은 쪽지문, 발자국 외엔 별다른 단서가 없어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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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불리는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 법안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298인, 찬성 199인, 반대 0인, 기권4인으로 가결됐다. (사진제공=뉴시스) |
이후 중요미제사건수사팀은 금천경찰서에서 받아온 자료를 검토했다. 특히 쪽지문에 묻은 지문 일부와 발자국 등 피의자가 남긴 '작은 흔적'에 주목했다. 쪽지문의 경우 오른쪽 엄지의 3분의 1 정도의 크기였지만, 2012년 도입한 지문자동식별시스템(AFIS)을 활용해 특징점 10여 개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수사팀은 이 특징점을 전체 지문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피의자로 장씨를 특정했다.
수사팀은 사건발생 당시 상황을 시간대별로 재구성하고 증거물 중 현장에서 발견된 흔적들을 정밀분석해 장씨가 호프집에 간 사실을 입증했다. 또 피의자가 사건 현장에 남긴 발자국의 형태가 뒷굽이 높고 둥근 '키높이' 형태라는 점도 눈여겨 봤다. 경찰은 장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그와 비슷한 모양의 신발 2점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키가 160~165㎝로 '단신'인 그는 여전히 비슷한 스타일의 신발을 즐겨신고 있었다. 그렇게 경찰은 수사 관문을 좁혀 지난달 26일 장씨를 검거했다.
경찰 검거 당시 장씨는 발뺌했지만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장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가게 밖에 있던 쇠파이프를 갖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쇠파이프를 미리 준비한 게 아니고 노상에 있던 걸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국과수 감정이나 법의학 교수한테 당시 피해흔적을 감정의뢰한 결과 쇠파이프가 아니라 둔기, 망치 등으로 가격한 것이라는 감정결과를 통보받았다"며 "당시 피의자가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가방 안에 망치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태완이법 시행 이후 경찰이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한 것이 이번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최근 경찰은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의 피의자 2명도 15년 만에 붙잡았다. 이 사건은 2002년 4월 40대 노래방 여주인이 목 졸려 살해된 뒤 충남 아산의 갱티고개 인근에 유기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전담팀을 꾸려 범인 추적에 나섰지만 단서를 잡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현장감식반에서 현장의 완전치 않은 지문과 족적을 채취해 잘 보관하고 있었던 게 결정적인 수사단서가 됐다"며 "과거에는 지문을 분석하는데 5일 정도 소요됐으나 유사지문이나 쪽지문을 기존 데이터베에스와 대조하고 빠른 시간내에 식별할 수 있도록 향상된 과학적 지문감식법이 개발돼 이 사건 해결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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