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우리사회 내부고발 문화의 민낯

김쌍주 / 기사승인 : 2019-01-03 11: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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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기획재정부 신재민(33·행정고시 57회)사무관
前 기획재정부 신재민(33·행정고시 57회)사무관

[일요주간 = 김쌍주 대기자] 前 기획재정부 신재민(33·행정고시 57회)사무관이 2일 기자회견을 열어 KT&G사장교체와 적자국채발행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한 내용들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정국이 요동을 치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기자들을 피해 모텔에서 칩거해왔지만 이제 당당하게 수사에 임하고, 당당히 살겠다.”며, “어떤 정치집단이나 이익집단과 관련돼 있지 않다. 순수하게 이 나라와 행정조직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공익제보”라고 주장했다.


신 전 사무관은 “공익제보자가 숨어 다니고 사회에서 매장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즐겁게 제보하고 유쾌하게 영상을 찍었는데, 그게 진정성을 의심 받을 정도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지 몰랐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은 “고시 4년을 준비하고 (기재부에서) 4년 일하고 나왔다”며, “기재부에서 느낀 막막함과 절망감을 다른 공무원들이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며 폭로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신 전 사무관은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재부가 이날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비밀누설혐의와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 내부고발의 성격


△ 내부인에 의한 행위이다. 조직의 비리를 제보하는 개인은 현재 해당 조직의 구성원이거나 또는 과거 어느 시점에 있어서 조직의 일원이었던 사람이다. 내부공익신고의 행위는 상대적으로 이렇다 할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조직 내부자가 공익적 목적으로 하는 계층제 권위에 대한 비판적 도전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조직비리의 언론에 의한 폭로나 일반사회의 제삼자 또는 당사자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개인적인 문제에 관한 고소 및 고발 행위와는 구별된다.


△ 공익적 행위이다. 내부 공익신고는 조직이 불법, 사기나 사회에 유해한 비도덕적 활동에 관여함으로써, 공공의 불이익이 자신의 조직이익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이를 밝히는 이타적 행위이다.


△ 윤리적 행위이다. 내부 공익 신고는 개인의 양심적 판단, 전문 직업적 윤리, 사회일반에 대한 책임 등에 토대를 둔 윤리적 행위이다. 내부자에 의한 조직 비리의 공개 행위라고 하더라도 악한 저의 또는 악의적 보복에 의한 경우는 내부 공익 신고로 정당화되지 못한다.


△ 외부적 행위이다. 내부 공익 신고는 조직 내부 비리의 대외적 폭로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조직 구성원이 자기의 감독자에게 알리지 않고 그 상위 수준의 관리자들이나 감사 부서와 같은 조직 내부의 부서에 비리를 직접 알리는 내부형의 경우도 내부 공익 신고로 보고 있다.


△ 행위의 파격성이다. 대체로 내부 공익신고는 이례적인 성격을 띠며, 그 때문에 조직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파격적이다. 미국에서의 행정 비리 폭로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뉴욕시 경찰국의 독직과 부패에 관한 형사 써피코 폭로사건은 사회에 큰 파문을 던져 주었던 바 있다.


△ 공동체 보호적 의미를 갖는다. 내부공익신고는 조직내부에서는 항명·불복으로 간주되는 조직 규범의 일탈행위지만, 사회 전체적인 입장에서는 조직의 부패·불법·사기 또는 유해한 활동에 항거함으로써 일반시민의 안위를 도모하는 옳은 또는 의로운 행위이며 조직을 배신하거나 동료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부정부패라는 병리현상이 치유되기를 원하는 건전한 행위로 간주된다.


■ 내부고발 행동패턴의 변화


이번 기재부 신 전 사무관의 경우 언론에 제보하는 종전의 관례를 벗어나 ‘유튜브 폭로’를 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언론계에서는 동영상 폭로, 얼굴공개, 경쾌한 분위기 등 내용보다 방식에 더 놀랐다는 반응들이다.


전대미문의 ‘유튜브 폭로’에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언론계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제보자를 보호해주던 시절은 옛말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스스로 1인 미디어가 되어 대중에게 호소하는 ‘미래의 내부고발’ 예고편을 본 것 같다는 반응들이다.


이는 스마트 폰·소셜 미디어 시대에 전통적인 언론권력이 해체되고 있다는 징후라는 분석들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법적문제로 비화된 만큼 실체적 진실규명은 지루한 법정공방을 통해 법원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공익제보자들이 언론에 내부고발을 한다는 게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안정적인 미래를 몽땅 내던지고 개인의 삶은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일이니 만큼 공익제보자 자신이 내부고발을 하는 일은 100% 확실하게 먹히게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조직 내부에서도 되도록이면 노력해보고, 안되면 일단 문서를 모아 내부고발을 하면 거의 99% 소송 전으로 들어가게 되고, 개인 대 조직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데 증거 없이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러니까 공익제보자들이 내부고발을 할 때는 자신이 만족할 만큼 준비하고 나서 세상에 알리는 게 기본이라는 말이다.


■ 내부고발에 대한 반응


내부 고발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내부 고발자가 공익과 조직의 의무를 위한 희생적인 순교자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내부 고발자를 개인의 영광과 명예를 위한 고자질의 측면으로 보는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제도에는 민간분야를 주로 다루는 공익신고자보호법과 공공분야 부패신고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패방지법내의 공익제보자 보호조항이 있다. 두 법 모두 신고대상 및 보호범위가 협소하여 다양한 공익제보자들을 완전하게 보호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내부고발을 했던 한 노조원의 경우 “3년째 해고생활, 회사에서는 월급 한 푼 안 나온다. 누가 견딜 수 있겠는가. 상황이 이러다보니 누가 상식과 정의를 위해 고발할 수 있겠는가. 현재의 제도와 사회분위기는 불의를 봐도 절대 고발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의를 위한 고발과 비판을 원천봉쇄하는 사회다.”라고 비판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기업에 대한 내부고발이 사실로 밝혀지면 해당 기업의 부당이득을 환수해 내부고발자에게 상당액을 보상한다. 그래서 내부 고발자들이 ‘로또’ 맞는 것처럼 횡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제도 덕분에 기업이 아무리 힘 있고, 돈 있어도 함부로 못 한다. 우리는 기업의 고위임원들이 불법행위를 버젓이 지시하는 환경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내부고발은 어떤가? 평생의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다.


대부분의 내부고발자가 이렇게 된다. 부당해고 재판 끝에 복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징계를 내리거나 왕따를 시켜 못 버틴다. 생계가 어려워진다. 직장이 끊긴다는 건 인맥이 다 끊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 사회적 관심까지 줄어든다. 그즈음이 되면 대단히 힘들다. 그래서 고통이 길다고 표현한 것 같다. 고통이 길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한다.


■ 내부고발에 대한 보호대책 긴요


내부고발의 경우, 조직 내에서의 파면, 직위 해제, 승진 불이익 또는 집단 따돌림 등의 보복을 받을 수 있다. 또 민형사상의 법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에서는 2011년 3월 29일부터 공익신고자보호법을 통해 신고자를 보호하고 있다.


부실한 법이나마 법원이라도 제 정신 차려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만 한다. 법원의 판결이 질질 끌어 온데다, 이겼다고 좋아해야 하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고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화가 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한국 내부고발 문화의 현실이다. 한 공무원은 “그 조직 안에서 누가 어떻게 돈 받아먹는지 다 안다. 내부 고발자 보호법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져 시행된다면 비리의 90%는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 희한한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정부패척결을 외치면서도 부정부패척결에 가장 효율적이라는 내부고발을 왜, 적극 보호하지 않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입으로는 뭐라고 떠들건 부정부패의 존속을 원하는 세력이 이 나라의 상층부에 그렇지 않은 세력보다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조직 내의 의리를 중시하는 문화적 저항도 만만치 않다.


한국사회 특유의 이중 잣대와 위선, 조직문화의 폭력성, 저급한 의리의식, 절대권력에 굴종하는 비열한 인간군상 등 한국사회의 모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평소엔 모든 사람들이 그 모순을 키우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일조해 놓고 막상 자신이 피해자가 되거나 불이익을 당할 경우에 한해서 울분을 터뜨리며 이 사회에 정의가 있느냐고 묻는 일은 그 얼마나 흔한가.


첫 번째 관건은 익명성이다. 공익제보자는 법적으로나, 사생활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익명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내부 고발자는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건만 그들이 겪어야 할 고난의 길은 험하기만 하다.


내부 고발자가 겪게 되는 시련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옳고 그름의 다툼 정도로 시작되나, 차츰 권력과 인간관계의 문제로, 이어서 개인에 대한 참기 어려운 모욕으로, 나중에는 인간의 존재 의미마저 부정당하는 단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툼은 곧 모든 것을 거는 싸움이 되고, 물러설 수 없는 싸움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런 게임은 룰이 없는 이전투구의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상대는 조직과 권력이 있는 다수이고, 내부 고발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단기필마이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여론의 환호와 지지가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런 환호와 지지는 그렇게 오래 가지 않으며 기대만큼 큰 힘도 되지 못한다. 사회적 지지의 환상에 대해 진정한 용기라고 칭송하다가도 곧 식는다. 대부분 안타까워하거나 자책하는 정도이며, 그마저도 잠깐인 경우가 많다


많은 보통 사람들은 불의나 도덕, 옳고 그름을 돌아보기에는 자신의 일이 너무 많고, 다른 것을 챙길 경황이 없다. 내부 고발자의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해 사회는 생각처럼 그렇게 고마워하거나 기억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직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작은 이익 때문에 곧 조직을 두둔하고 나서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상식이 통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바른 말을 하면 다친다는 생각을 더 믿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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