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노동인권②] ‘콜 수 압박’ 원·하청 구조, 국민 알 권리? 뒷전

성지온 기자 / 기사승인 : 2022-07-11 11: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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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 업무 11개 민간 위탁 업체에 ‘외주화’
-상담사 1인 당 하루 평균 120콜 소화…자세하고 정확할수록 성과↓
-제도 문의 다수…상담사 처우 개선 미룰수록 국민 알 권리 뒷전으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인근 건물 앞에서 민간 위탁업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성지온 기자>

 

[일요주간 = 성지온 기자]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대표번호를 누르면 듣는 인사말이다. 수화기 건너편 대상자는 자신을 건강보험공단 직원이라고 밝혔으나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공단으로부터 도급계약을 맺은 민간 위탁업체 소속 직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공공기관의 원·하청 구조는 필연적으로 공공성과 생산성이 충돌하게끔 한다. 

 

◆최초의 공공기관 전문 상담기관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는 지난 2006년 출범했다. 공공기관 최초의 ‘전문’ 상담 기관 탄생에 이목이 쏠렸다. 초기 공단은 전문성과 자부심을 기른다는 의미에서 일부 지부는 호텔에서 상담사들과 머물며 교육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화 응대도 본사 소속과 외주업체 직원이 함께 받았다. 공단 소속과 외주업체 직원 간 경계는 흐릿했다. 그러나 고객센터 업무 전체가 외주화되면서 이들의 경계는 점차 확연해졌다.

현재 건보콜센터는 전국적으로 12개 센터를 운영 중이며 총 11개 민간업체가 공단과 도급계약을 맺고 1,600여 여명의 상담 인력을 운용 중이다. 공공기관 상담사로서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요구하는 동시에 생산성과 효율성 압박을 받는 셈이다. 실제 현장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상담사들은 상충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성과 생산성 필연적 충돌

앞서 지난 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서울 영등포구 CCMM 빌딩 앞에서 민간 위탁업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이들은 공단의 관리·감독이 소홀한 틈을 타 상담사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특히, 상담사들은 콜 수 압박 탓에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민간 위탁업체가 콜 수가 낮다는 이유로 상담사들의 대면 교육을 거절했다는 주장이다.

건강보험은 업무 특성상 정부 시책에 따라 제도와 정책이 수시로 바뀐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만 상병수당 시범제도, 주택금융부채공제, 소득 중심의 2단계 부과체계 개편 등이 새로 생겼다.

그러나 회사는 단순 자료 배포만 할 뿐 깊이 있는 교육을 진행하지 않았다. 사실상 상담사 개인 역량에 맡긴 셈이다.

일부 상담사는 관련 제도에 관한 뉴스를 찾거나 공단이 제공한 스크립트를 따라 읽는 등 임기응변이 잦다고 고백했다. 건보 관계자 역시 <일요주간>과의 통화에서 “굵직한 제도가 도입되지 않는 이상 공단이 직접 교육하지 않는다. 대신 제도가 상세히 적힌 스크립트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인근 건물 앞에서 민간 위탁업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성지온 기자>


◆민간 위탁업체가 콜 수에 집착하는 이유
건보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협력사 평가지표 중 생산성 부문에는 응대 건수, 응대율 등이 있다. 목표는 평균 99%다. 걸려오는 전화를 많이 받고 응대할수록 목표율 99% 달성에 가까워진다. 다시 말해, 걸려오는 전화의 완전한 소화를 의미한다.

공단 콜센터는 여러 협력사로 분할·계약되어 있다. 민간 위탁업체로서 차기 도급계약에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생산성 혹은 효율성 지표를 높여야 한다, 이는 콜 수를 높여야 한다는 동의어와 다르지 않다.

2019년 행정안전부가 118개 공공기관, 156개 민원 콜센터의 운영 실태 전반을 조사·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담사 1인이 응대하는 상담 건수는 1일 61.5건으로 집계됐다. 응대율은 89.5%였다. 같은 기간 건강보험공단 상담사는 1인당 하루 120.11건을 소화했다.

업무시간 내 120콜을 받기 위해서는 한 통화당 4~5분 이내로 마쳐야 한다. 건보콜센터로 걸려오는 전화는 주로 제도 문의가 대다수다. 그러나 높은 응대율을 지향하는 구조에선 자세하고 종합적인 설명은 저성과자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최소한의 정보 제공, 단순 안내가 상담사 개인에겐 유리하므로 국민의 알 권리는 뒷전으로 밀린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파업과 토론회를 각각 개최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콜 수 압박에 국민 알 권리 뒷 전


회사가 원하는 대로 콜 수만 올리고자 하면 할 수는 있다. 단순히 전화만 많이 받으려면 보험료를 낮출 방법이 있는데도 조정 방법은 안내하지 않으면 된다. 피부양자로 등재할 수 있어서 보험료 면제가 가능한 데도 모른 척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빨리 전화를 끊으면 콜 수 올리는 거 어렵지 않다. 징계받을까, 저성과자로 낙인찍힐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상담사 A씨)

지난해 5월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콜센터 노동자 노동건강실태 및 해결방안 토론회를 주최한 바 있다. 이곳에서 관계자들은 국민 알 권리를 위해 공공부문 콜센터의 경우 공공성이란 이념 실현을 위해 통화품질 내용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공공부문 콜센터는 전문적인 지식과 정확하고 신속한 상담이 최우선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기업의 평가기준에나 적용되는 QA(품질보증)평가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면서 “공공부문 콜센터의 성격에 맞게 QA평가는 폐지하고 급변하는 정부의 제도와 법 시행 등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발빠른 교육으로 전문상담인력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공공기관 설립 취지에는 공공성 실현이라는 이념이 있다. 그러나 특정 업무가 외주화될 때 해당 업무 목표는 공공성 대신 생산성 향상으로 대체된다. 이 간극에서 모순을 느끼는 건 외주화된 노동자다. 자신의 업무가 공공적인 속성을 띄고 있지만, 현장에선 생산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이 작성한 연구보고서 ‘외주화된 노동에서 노동자, 시민의 위험 연구(2021)’에서는 “공공적 가치가 충분한 업무가 외주화되었을 경우, 공공적 가치는 원하청 구조에서 단절되며, 하청 노동은 성과와 효율성 중심으로 재편된다”라며 “특히 건보콜센터의 경우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한 정보를 수집, 운용하고 있어, 매우 광범위한 정보를 취급하는 부문 자체를 아웃소싱한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손영희 건보고객센터지부 부산지회 부지회장은 “우리는 공공기관 상담사다. 국민이 기나긴 대기를 하며 상담사에게 전화했을 때는 본인이 모르고 있던 부분을 상담받고 해결방안을 제시받고 싶어서일 것”이라면서 “건강보험 상담사들이 공공성보다 효율성으로 상담을 한다면 결국 이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도급업체의 실적 챙기기만 급급한 이런 행태는 공단이나 국민, 상담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공단, 소속기관 직접 운영방식 최종 결정
한편, 지난해 10월 건강보험공단은 고객센터 운영 방식을 현행 민간 위탁방식에서 소속기관 직접 운영방식으로 변경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한 바 있다. 자세한 방식은 노사 및 전문가 협의회에서 정하기로 했다. 비록 공공운수노조 측이 요구한 ‘공단 직접고용’은 아니지만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일단 수용키로 했다.

공단 콜센터 상담사들은 조속한 소속기관 설립을 통해 공공기관 상담사로서의 사명감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공공성을 잃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원청으로서 현재 고객센터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라. 앞으로 열릴 노사 및 전문가 협의체에서 소속기관으로의 전환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여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기관으로서 더 이상 민간위탁 아래에서 발생하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성을 훼손 및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콜센터 상담사 B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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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콜센터님 2022-07-11 14:38:00
이런 내막이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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