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드 줌]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

이재용 前 환경부장관 / 기사승인 : 2019-09-17 23: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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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前 환경부장관

[일요주간 = 이재용 前 환경부장관] 어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삭발식’을 거행했습니다.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에 반발해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서울역, 광화문광장에서 벌인 1인 시위에 이어 어제 삭발이라는 다소 과격한 퍼포먼스를 행하기까지 나름의 번뇌가 없진 않았으리라 싶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애국가를 배경으로 지그시 눈을 감은 황 대표의 잘려나간 머리카락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오래 전 입소를 앞두고 훈련소 앞 이발관에서 일제 바리깡에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삭발식 현장에 나와 있던 대표적인 극우논객 정규재 씨가 삭발을 끝내고 나경원 원내대표와 나란히 앉아 있던 황 대표에게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정규재 : 머리 처음 깎으시죠?
황교안 : 네, 뭐.. 에...
정규재 : 군대 갈 때 깎았습니까?
황교안 : 저는 군대를 못 갔습니다.
정규재 : 아, 그러시군요.

화제가 된 이 인터뷰 영상을 퍼 나르며 속된 말로 ‘멕이는 거’라며 재미있어 하는 분들도 있는데, 반대로 화를 내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파 유튜브를 대표하는 채널의 진행자가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좀처럼 듣고 보기도 힘든 ‘담마진’이란 희한한 병명으로 군 면제 받았다는 매우 생소한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는 겁니다.

웃자고 한 소리겠죠?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덤비는 모양새도 그리 썩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한편에선 나름 심각하게 다큐를 찍는데 그걸 개그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동방예의지국에서는 그리 바람직한 모양새는 아니라지만, 웃겨서 웃는 걸 누가 막겠습니까? 세상에 감출 수 없는 것이 재채기와 사랑이요, 막을 수 없는 것은 재채기와 웃음이라 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거리를 전전했습니다. 원내에 자리가 없으니 현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으려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거리를 전전할 이유가 없잖겠습니까? 보통 현장에 답이 있다고들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온전히 현장에 뼈를 묻든지, 아니면 책상머리에서나마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를 하든지, 둘 중 하나는 돼야 나름 뭐라도 건질 텐데, 이도 저도 아니니 없던 번뇌도 생기고, 결국 삭발에 이른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효경(孝經)의 가르침에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이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이니’ 했습니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란 뜻입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단발령이 내렸을 때 최익현은 “오두가단(吾頭可斷) 차발불가단(此髮不可斷)”, “내 머리를 자를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 질타하며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처럼 엄격한 유교적 전통에 예외적인 경우가 스님들입니다. 스님들의 삭발은 세속의 번뇌와 욕망을 잘라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심지어 부모로부터 받은 머리카락까지 잘라내며 세속의 인연을 끊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뜻합니다. 스님들은 끊임없이 삭발을 하면서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고 스스로를 경책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삭발’은 스님들이 머리를 깎는 걸 말하고, 일반인들이 하는 건 ‘이발’이라고 합니다. 어제 황교안 대표가 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이발’입니다. 요즘에야 젊은이들이 멋과 개성으로, 탈모가 심한 경우 궁여지책으로 삭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어지간해선 절에 들어갈 게 아니라면 삭발을 하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습니다. 그러니 황교안 대표가 어제 ‘이발’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제 황교안 대표의 ‘이발’ 전에 이미 무소속 이언주 의원,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이발’을 감행했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5일에는 자유한국당 이학재 의원이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단식과 관련해서 자유한국당은 지난 1월, ‘5시간 30분 릴레이 단식’으로 큰 웃음을 줬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5시간 30분 단식하고 저녁 먹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다졌는데, 결국 돌아온 건 ‘5시간 30분 딜레이 식사’란 비아냥 뿐이었습니다.

황교안 대표에 이어 오늘은 같은 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이발’을 했습니다. ‘이발’을 끝낸 김 전 지사는 “머리 밖에 깎을 수 없는 미약한 힘에 대해 죄송하다”며 “국회의원들 모두 머리 깎고 의원직을 던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합니다.

지난 5월 박지원 당시 민주평화당 소속 국회의원은 국회 패스트트랙 처리와 관련해 야당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로 ‘삭발, 단식, 의원직 사퇴’를 꼽았습니다. 박 의원의 말이 꼭 지켜야 할 지침은 아니지만, 최근 제1야당 자유한국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들을 보며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문길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은 “20세기 교수들이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과정이 19세기 교실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큰 문제”라며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를 정의했습니다.

원내 110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에서 삭발, 단식, 의원직 사퇴 같은 약자의 구호가 난무하고 있는 걸 보면서, 결국 21세기 국민들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고 구태를 벗지 못한 자유한국당이란 19세기 정당, 20세기 정치인들의 모습에 그저 헛웃음만 납니다.

 

[주요 약력]

민선1, 2기 대구 남구청장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이재용치과 원장
前 극단 처용 대표
前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前 환경부장관
前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 

現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 중·남구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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