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주관! 히포크라테스 이후 인간·자연 탐구
미래 통합의학이 대세, 미국이 응당 주도할 것

[일요주간=정상연 한의사] 인류는 상당히 약한 존재이다. 산 속에서 늑대에게 물려서 생수병 만큼의 피를 흘리면 생명이 바로 위태로워진다. 다행이 지혈이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통한 미생물 감염으로 인해 다시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다.
커다란 사고 없이 생존하여 소중한 2세를 남겼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동안의 행운에 감사를 표한 후 새로운 시련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급속히 진행되는 노화로 인한 불편한 질병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뼈, 인대, 힘줄의 강도가 현격히 줄어들어 젊었을 때처럼 생산적인 일을 할 수가 없다. 사냥 능력이 떨어져 무리에서 외면 받는 늙은 사자처럼 자신감을 잃고 가족이나 국가에 의지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약하디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을 치료하는 ‘의학’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인류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 덕에 의학은 무수한 세월을 거쳐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유사 이전의 인류가 가지고 있던 의학적 신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지만, 사람들은 주로 악령이나 분노한 신이 질병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기원전 1600년경)는 질병을 일으키는 ‘무엇인가가 밖에서부터 들어온다’고 언급하면서, 이것은 ‘신의 숨결’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약 3천년 전, 고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의 신성한 경전인 아베스타(Avesta)는 의술을 악마와 맞서는 싸움이라고 묘사했다. 같은 시대의 동양의학 초기 서적에도 하늘의 신에게 질병의 치유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내용이 나온다.

따라서 고대 의사들은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매개로 한 의학을 열심히 탐구했다. 예를 들어 간질병이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신성한 질병인지 아니면 신의 천벌이 내린 결과인지를 조사한 것이다. 불행이도 간질병 환자들은 악령이 들었다는 당시 결론의 희생양으로 무차별적으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치료에 있어서도 신의 개입은 절대적이었다. 고대 이집트인과 그리스인은 신의 계시를 받아 치유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환자들은 의사에게 주술로 몽환 상태에 빠진 상태로 사원에 입장하여 신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기원했다.
물론 이러한 질병관과 치료방법은 효과적으로 인류의 건강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신보다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학풍조가 자연스레 생겨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이다. 그는 의학을 신성한 영역으로 여기는 데에 처음으로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다. 질병은 반드시 자연적인 원인이 있다는 신념하에 환자 자체를 관찰했다.
히포크라테스 이후로 의사들은 환자의 소변을 맛보기도 하고 혀나 눈동자의 상태를 기록하는 등 더욱 환자 자체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풍조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치료에 있어서도 자연과학으로부터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의 내부에 생긴 문제를 고쳐줄 약품이 하늘나라가 아닌 지구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열이 끓는 환자에게 몸을 차갑게 해주는 약초를 먹이자 빠르게 열이 떨어졌다. 농이 가득한 조직에서 사혈기나 거머리를 이용해 피와 염증을 제거하니 종기가 곧바로 사라졌다.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수은을 훈증해서 사용하니 원인균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의 경험이 누적되자, 인류는 동식물을 활용한 생약 약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중국은 황제 신농씨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을 시작으로 국가주도의 약전이 활발히 편찬되었다.
그리스의 디오스코리데스는 당대의 모든 약학적 지식을 모아 드 마테리아 메디카를 집대성하여 현대의 모든 약전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고, 이를 토대로 12세기에 서양 최초의 약국이 열렸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체액 이론과 갈레노스의 독기 이론에만 매몰되지 않게 되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미생물과 전염병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질병이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고 확신한 그는 누에를 괴롭히던 병균을 박멸해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
진단기기의 혁신이 이루어지면서 생리학에 대한 지식도 빠르게 축적되었다. 르네 라에네크에 의해 발명된 청진기, 사무엘 지그프리드 폰 바슈가 고안한 인체에 무해한 형식의 혈압계 등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신체의 비밀들을 밝혀준 기계들이다.

더불어 인간의 타고난 체질이 건강상태를 결정한다는 학설도 대두되었다. 대표적으로 멘델의 유전법칙이 1865년 발표되었고, 동양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상의학이 1894년에 동의수세보원이란 책을 통해 알려졌다.
20세기에는 분자생물학의 발달과 핵의학 진단기기의 혁신으로 인류가 머리 속에서 추상하던 이미지들을 실제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환자의 혈액을 뽑아 10분만에 혈소판 수치가 부족한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초음파 기계를 통해 심장의 판막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난해하고 추상적이던 인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를 활용한 간단한 알고리즘으로도 인체상태를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의학정보가 누구에게나 이해 가능한 형태로 정립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회 전반적인 번영이 지속되면서, 누구나 쉽게 약을 구하고 적은 비용으로 병의원에서 처치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왔다.
미래의 의학은 어떤 모습일까? 의학적 진보는 이미 이루어질 만큼 다 된 것은 아닐까?
단언컨대 미래는 통합의학이 새로운 길을 제시해줄 것이다. 지난 몇 천년간 의학은 ‘인체는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왜 병에 걸리는가’를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덕분에 분자단위까지 쪼개진 인체의 정보와 질병의 메커니즘이 대학 도서관을 가득 메울 정도로 쌓여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들은 너무나도 독립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게 한다. 그러므로 지식의 통합이 의학의 미래이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이 되는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은 나라의 의료를 담당하는 두가지 축인 양방의학과 정골(整骨)의학의 학문적·면허적 통합을 2020년에 완료하기로 하였다.
정골의학은 근골격계에 대한 수기치료를 중심으로 한 전인(全人)적인 의학이다. 정골의사들은 현재 주로 1차 진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 중 31%는 가정의학 진료(family practic), 16%는 내과(internal medicine), 7%는 소아과(pediatrics) 진료를 담당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한의학과 치료의 원리 및 역할이 유사하다.
정골의학의 패러다임은 인체의 모든 요소를 하나로 꿰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통서구의학이 갖는 이원론적 한계를 극적으로 해결해줄 것임이 확실하다. 이러한 혁신이 미국에서 예정대로 일어난다면, 현재 중국과 일본이 쥐고 있는 통합의학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통합의학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 혜택 속에서 인류는 또 얼마만큼의 번영을 누리게 될까? 우리 후손들이 누리게 될 세상이 기대되고 또 부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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