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포엠포엠』 발행인 한창옥 시인의 예술혼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5-12-08 1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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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이은화
대담자: 한창옥
▲ 한창옥 시인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시인 한창옥은 서울 송파 출신으로 2000년 시집 『다시 신발 속으로』로 데뷔해 <현대시>로 작품발표 시작했다. 시집 『빗금이 풀어지고 있다』 『내 안의 표범』(2017년 세종우수도서) 『해피엔딩』 등을 출간. (사)부산시인협회『부산시인』 편집주간(2005-2009), (사)부산작가회의 부회장(2020-2022), 한국시인협회 비등기이사(2020-2022)를 역임했다. 현재 송파문화재단 비상임이사와 『포엠포엠』 대표 발행인을 맡고 있다.


● 이번 시간은 시인이자 포엠포엠 발행인 한창옥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석촌호수 서호에 ‘한유성길’ 기념비와 ‘흉상’이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호주 교민 초청 공연 준비하시며 연습 전날까지 인간문화재 49호로서 예술의 혼을 쏟으셨지만 갑자기 세상을 뜨셨습니다. 고인이 되신 다음에 잠실 석촌호수 서호에 서울시와 송파구가 명명 선포한 <한유성길> 기념비가 세워졌고 송파를 빛낸 위인으로 선정되시며 <흉상>이 제막되었습니다.


● 부친이신 인간문화재 49호이신 한유성 선생님을 기리는 <한유성문학상>을 2016년 송파구 후원으로 제정하셨는데요. 이 상이 오늘날 갖는 문화적, 문학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 아버지는 어린 나이부터 평생을 바쳐 한국의 소중한 민족문화를 지켜낸 분이죠. 서울 송파의 유일한 문화유산인 국가무형문화재 <송파산대놀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기무형문화재 제3호 송파 <답교놀이>가 긴 복원 과정을 거쳐 보존되고, 오늘날 송파의 유일한 국가무형문화재로 자리하기까지는 험난한 시대에도 80년간 일생을 바친 아버지의 예술혼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숭원 문학평론가는 “오직 한 가지 일에 전념하여 전력을 기울일 때 남이 따르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삶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신 분”이라며, “이러한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한유성문학상>은 특별한 가치가 있는 상이라고” 하셨습니다.


● 부친께서 답교놀이 재연 현장에서 “예술은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죠. 오늘날 ‘예술의 융합’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요?

▶ 대체로 문학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영화. 연극. 음악은 물론 스포츠를 즐기지요, 이 모든 것이 문화예술입니다.


오랜 복원으로 탄생한 송파산대놀이는 1972년 서울국립극장에서 첫 공연 이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답교놀이>는 서울지방문화재 3호로 지정되기까지 1982년 정월 대보름날 한국 민속촌에서 첫 시연을 가졌습니다. 43년이 흘러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문학사상> 주간이시던 이어령 선생님은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40여 명의 시인, 소설가를 초대해서 답교놀이 시연 공연을 주관해 주셨던 일을 잊지 못합니다.


민속촌에 보름달이 환히 떠오르자 횃불을 들고 답교놀이를 하며 춤판에 끼어 춤을 추시던 소설가 김동리. 최일남. 한승원 선생님. 시인 김춘수. 김남조. 전숙희 선생님. 가야금의 황병기 교수 등 대한민국 문학인들의 운치 있는 모습을 보며 모든 예술장르는 예술문화의 기초인 문학이 핵심이며 서로 어우러질 때 예술은 더욱 깊고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3대가 전통예술을 전승하며 예술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가족들이 예술 활동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 지금은 석촌호수가 된 송파강에서 아버지와 쪽배를 타고 물장구치며 자란 저는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면서 시라고 뽐냈어요. 80년대에는 뜻을 같이하는 시인 지망생들과 함께 시를 쓰고 낭송회를 하며 시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나 등단을 제대로 준비해보기도 전에 1988년부터 긴 투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직에 있던 남편은 고향인 부산으로 근무지를 옮겼고, 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 저는 2000년에야 첫 시집을 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집안에 시인이 세 사람이나 있고 피아니스트도 있으니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시면서도 문학적 정서를 품고 한국의 춤, 음악, 탈 그림까지 섭렵하신 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자손들이 물려받은 것은 분명합니다.(웃음)


 

▲ 호주교민 초청공연 준비 중 아버지 마지막 모습


 

● 12월 19일 송파구청에서 제9회 <한유성문학상> 시상식이 열립니다. 부친을 기리는 것 너머 이 상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수상자 선정에서 중요하게 보는 점은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 이번 심사평에서 문학평론가 이숭원 선생님은 “한유성 선생은 오직 한 가지 일에 전념하여 전력을 기울일 때 남이 따르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삶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다. 한유성문학상을 마련하여 선생을 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매년 한 명의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사무실로 도착하는 많은 시집과 발표작을 1년간을 살펴보면서 작품성은 물론 오랫동안 걸어온 문학의 길과 인성을 더 중요시하는 게 심사 기준입니다.


● 올해 수상자 정영선 시인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 정영선 시인은 1995년 등단 후 30년이 넘게 쉬지 않으며 여러 권의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생의 모순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자신의 정당한 길을 찾으려는 것을 작품에서 보여주고 계시죠. 올곧은 문학의 길로 이뤄진 결실의 생애 첫 상을 받는 수상자이기에 의미가 매우 큽니다.


● 「포엠포엠」이 100호를 넘겼습니다. “혁신과 외로움의 길”이라 하셨는데, 문학 출판의 가치와 사명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어려운 구조 속에서도 『포엠포엠』이 자리를 지켜나가는 것은 좋은 필진과 독자의 힘이죠. 더 젊고 신선한 잡지로 거듭나기 위해 저와 성국 출판총괄은 혼신의 열정을 다해왔습니다. 시인들만 보는 문학지가 아닌 전국의 다양한 독자들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오랜 세월을 발로 뛰며 외로운 길이라고 느끼면서 많이도 노력했지요. 쓰고 싶은 작가의 에너지와 읽고 싶은 독자의 에너지를 온전히 담아내는 잡지가 되도록 계속 애쓸 것입니다.


● 『포엠포엠』만의 차별화된 편집 철학이나 특징은 무엇입니까?

▶ 『포엠포엠』은 남의 눈치를 본다거나 문단 권력에 영합하지 않는 진정성에 근원을 두고 편집디자인에서도 소리 없이 앞서가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만나기 어려운 최고의 작가나 문화예술인을 직접 섭외해서 현장 인터뷰로 직접 원고를 쓰는 <한창옥의 zoom in interview > 기획은 20년간 진행해 왔습니다. 2026년 봄호 66회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임형주 팝페라 테너와 <서울 팝페라하우스>에서 인터뷰 약속이 잡혀있죠.


이번 겨울호에도 한국시협이 개최한 건국대 서울캠퍼스 새 천년관에서 있었던 ‘서울, 세계 시 엑스포 2025’에서 미국의 시인인 하버드대 데이비드 맥캔 David McCann 명예교수와 어렵게 현장 인터뷰를 했습니다. 『포엠포엠』을 발행하는 시인으로 이번 축제에서 세계와 나란히 마주한 문학의 소통은 시대적 소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을 만나다> 90회 역시 이번 행사에서 최금녀 시인의 ‘도라산역’ 시낭송을 듣고 감동해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죠. 우리나라 최초 소녀 실향민으로서 그리운 고향 영흥 장백산 아래 이 세상에 태어나서 태가 묻힌 영흥까지는 몇 킬로나 될까. “나, 아직 죽지 않았는데”라고 러시아 군인이 별사탕을 던져주던 철길에서 아직도 마음 서성이는 최금녀 시인과 인터뷰는 내내 울컥했습니다.


『포엠포엠』은 누구나 쉽게 읽히도록 가독성 있게 만드는데 차별화를 두고 있지만 우선 표지디자인이 특징이겠죠.


● 『빗금이 풀어지고 있다』 부터 『내 안의 표범』 그리고 『해피엔딩』까지, 사물과 존재의 온기를 발견하는 작품세계를 펼쳐오셨습니다. 선생님의 시집과 작품세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제 시는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감성과 정서를 담은 시와는 달리, 정통 서정시와 리얼리즘의 요소를 지니면서도 현대시의 참신한 기법을 구사한다는 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평소 무의식이나 감정이 낯선 이미지와 메시지의 결합으로 자연스럽게 배열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대시의 특징은 은유와 비유가 체화된 시어와 진술이라고 봅니다. 어떤 장면이랄까요, 경험과 체험의 순간들을 끌어와 내용을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무의식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감각과 현실 인식으로 직조하듯 새기는 스토리 배치의 이야기가 있는 시를 쓰려고 하지만 시에 대한 생각. 기준. 미학은 다 다르지요.
 

▲ 건국대 서울캠퍼스 새 천년관 행사무대에서 데이비드 맥캔과 한창옥

▲ ‘서울, 세계 시 엑스포 2025’에서 미국의 시인인 데이비드 맥캔과 한창옥 인터뷰 중


 

● “시를 읽고 한 줄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된다”라고 하셨죠. 문학이 일상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 2002년에는 <부산아시안게임 성공기원> 행사의 사회를 시인인 제가 맡았습니다. 또한 같은 해 제3회 ‘철도의 날’ 기념 <가을기차여행 시낭송회> 개최했는데 부산역에서 울산까지 새마을호 특별 운행을 지원받아 시민과 함께하는 행사를 기획·총괄하고 사회까지 진행했습니다. 열차 칸칸이 시민과 시인들이 섞여서 시를 낭송하는 그런 행사가 다시 또 가능할지 꿈같은 일입니다. 많은 시민에게 다가가서 시 한 줄이라도 가슴에 닿게 할 수 있었던 큰 경험이었어요.

저는 한용운, 조지훈 시인과 영국에 ‘바이론’과 <미라보다리>의 ‘아폴리네르’시가 좋아서 암송을 자주 했어요. 물론 그 시인들 시의 영향이 제게 어떤 식으로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시의 따뜻함과 아름다움, 슬픔을 나눠 받지 않았을까 해요. 시는 사회를 희망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태주 시인의 시가 바로 그런 예이지요.


●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과 종이책의 문학지를 지키는 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 우리는 현재의 세계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있을 때 그리워하게 됩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없거나 손을 베일 듯 반듯한 종이의 감촉이나 냄새가 느껴지는 종이책이 없다면 삶의 한곳이 텅 비지 않을까요. 조상의 얼과 흥겨운 힘이 있는 우리 무형의 문화와 위대한 책의 친근함은 이 시대의 시사성이지요.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며, 문학지를 손에 들고 다니는 이들이 멋있게 보이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책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는데, ‘종이책의 문학적 생명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영상매체에 밀린 출판 불황에도 여성시인 최초 문학잡지를 만드는 마음이 어떤 것일까? 어리석은 자신을 알면서 열정을 갖는 것은 우리의 삶도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가치를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이책이 사라진다면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은 문학잡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은 글쓰기 페이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영원한 책과 같습니다. 종이책이 따라갈 수 없는 최첨단 팝업북은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우리는 많은 것이 가상 세계로 통합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은 자신의 효율성을 이미 증명했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처럼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끈질긴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책과 문학의 소멸을 막는 역할을 『포엠포엠』이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웃음)


● 마지막으로 ‘문학이 예술의 기초이자 중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문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전망과 바람을 들려주세요.

▶ 문학과 예술을 대중화하는데 사명감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편집인의 내공은 물론, 현실을 직시하는 깊이도 있어야 하고 재정 등 책임져야 하는 어려움이 많이 따릅니다. 재정이 넉넉하다고 해도 창간과 폐간이 되풀이되는 현실입니다.


세계적인 가수 지드래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며 몸에 밴 몸짓 하나하나가 춤처럼 느껴지고, 표정 하나하나에 자신 생각을 담아 전달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시인도 끝없는 예술가로서 진정성 있는 창작에 매진해야 합니다. 변함없이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힘이 그만큼 소중하니까요.

 

 

▲ 이은화 작가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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