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앙데팡당 초대작가 ‘해산 최수식 화백’

소정현 / 기사승인 : 2019-05-24 14: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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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후손…한일 수교반대 프랑스로 추방
'프랑스 영국의 유수 박물관' 혈마도 등 작품 소장
조선왕조 영정, 기독교 성화 폭넓은 작품활동 매진

▲ 해신 최수식 화백

 

[일요주간 = 소정현 기자] 한국 화단에서 대원로이신 최수식 화백은 제자 류신영 화백께서 대신한 인터뷰에서 “경제가 안정적으로 활성화되면 국민들이 다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예술지망생들은 전시회에서 많은 작품에 두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열심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위해 연마하면 자기만의 독창적 차별화된 화풍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며, 앙데팡당전에 참여하는 후배작가들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질 않는다.  


해산 최수식 화백의 일월오봉도는 만원권에 삽입되어 있으며, 해산의 작품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혈마도' ▲영국 대영박물관 '미녀와 소' ▲스페인 피카소 박물관 '호랑이' ▲일본 우에노 박물관 '악녀' ▲미국 카네기 홀 '악녀'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 해산 최수식 화백은 한국 화단에서 독보적 원로이다. 일반 독자들에게 해산 최수식 화백의 인생 역정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예시하여 달라.


▼ 저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만석꾼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부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 2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으나, 배움의 학비가 없어 독학으로 공부하여 10세 때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 14세 때는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사사 받으면서 동양화의 양대산맥인 남종화 북종화를 두루 섭렵하면서 최고 경지에 올라섰다.
이후 이당의 강력한 독려 하에 서울대 서양학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한일수교반대 학생운동에 앞장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 프랑스로 추방되어 파리 소르본대학에 다니던 중 현대 미술사에 미증유의 사건이 촉발된 것이다. 사연을 말씀드리면, 내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 어머니의 한복속치마 인견에 생명력 충일한 말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 생존화가 중 유일하게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해산 최수식 화백의 인생 역정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부친은 독립군 투사였고 외가 역시 항일 투쟁의 뜨거운 혈통을 이어받았다. 최수식 화백 역시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역경을 견디어 냈는데!


▼ 1945년 광복이 다가오니 일본의 감시와 탄압이 극에 다다를 때 만석꾼의 전재산중 마지막 토지를 처분한 군자금을 상해 독립군에게 안전하게 전달하기 위해 모친은 건곤일척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의 형이 돌이 되기 전에 불명의 병으로 죽자, 죽은 형의 배를 갈라 그 안에 독립자금을 넣고 꿰매어 추운겨울철 아이를 담요로 싸서 자는 아이처럼 품에 안고 기차를 타고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상해까지 독립자금을 전달한 일화는 장엄하게 회자되어 온다.
저는 이런 장엄한 유서 깊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자손으로 대학시절 한일수교반대운동에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항거해왔다. 현재는 독도수호국민연합 고문으로 나라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혈마도'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혈마도에 대한 배경에는 모자지간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애절하게 눈물겹게 설명하여 달라.


▼ 서울대 재학 중 한일수교반대 학생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면회 온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곧 프랑스로 추방되는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입고 있던 한복속치마를 벗어 눈물을 닦으라고 저에게 건네주었다. 프랑스 유학중 창작활동과 학비를 벌고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고달픈 타국생활에 지쳐 생에 마지막 작품을 불사르지 않을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 이르렀다.
어머니가 주신 인견속치마를 펼쳐놓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며 의대생들이 실습하고 버린 주사기를 주워와 자신의 팔에서 피를 빼기 시작하였다. 이때 같이 수학한 등소평의 딸 등린이 평소에 자랑하곤 했었다.
중국의 황제만이 8마리의 말을 그려 걸어놓을 수 있다던 말을 떠올리면서 대한민국이 중국보다 더 힘차게 달리며 더 크게 발전하기를 기원하며 나 자신의 피로써 말 16마리를 형상화 시켜놓고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급히 병원에 옮겨져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교수의 친구인 루브르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통해 루브르박물관에 전시하게 되었다.

● 최수식 화백은 조선왕조 영정과 기독교 성화, 불화 등 두루 작품 활동에도 폭넓게 매진해왔는데?


▼ 조선완조 5대왕 영정을 그리셨고, 1984년 기독교100주년 기념 성화를 그렸다. 양산 통도사, 해남 대흥사, 구례 화엄사, 설악산 백담사, 서울 조계사 탱화는 혼연일체 결실물이라 할수 있다.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병, LP판, 컴퓨터 액정 등에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그림을 구현하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스치로폼 등 환경폐기물은 마치 태평양에 떠있는 것이 일본 섬 크기와 같다. 우리 주변에도 각종 생활쓰레기로 넘쳐나 인류에게 환경보호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환경폐기물을 작품소재로 재활용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묘책을 구사하고 있다.

 

▲ 그림자 보좌하는 애제자 류신영 화백과 함께(왼쪽)


● 최수식 화백의 맹호도는 우리 한민족에게 어떤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나?


▼ 호랑이는 옛부터 우리 겨레의 설화 속에 자주 등장해 온 동물이다. 호랑이는 착한사람과 정의로운 사람을 돕고 악한 자를 징벌하는 존재였다. 이는 맹수로서의 호랑이가 지닌 무서운 힘과 경외감이 결합된 결과로서 나온 독특한 성향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용맹함과 위엄을 두루 갖춰 백수(百獸)의 왕으로 불리는 호랑이는 존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에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 숭배사상으로 발전해서 재앙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삼재(수재, 풍재, 화재)나 기근, 풍란 등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어서 호랑이 그림을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또한 '권력'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호랑이 가죽, 털이나 호피, 문신 등을 소유하고 있으면 강력한 권력과 재물, 그리고 소망하는 사업이 대성하게 되리라 믿었다.

● 현재 최수식 화백은 독도수호연합 상임고문을 맡고 계신데! 독도는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상징성과 현실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달라.


▼ 부모님 모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셨고 만석꾼 전 재산을 이 나라 독립을 위해 바쳐 일본으로부터 독립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독도 침략 야욕에 휘둘리게 되면, 민족의 자존심을 잃게 되고 다시 일본에게 침략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본이 독도에 이토록 집착하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해양자원을 노린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그만큼 독도의 해저는 보물창고다. 오염되지 않은 태고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섬이다. 잘 지켜 후손 대대로 물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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