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이 보험의 영역으로 진출하려면?

정상연 한의사 / 기사승인 : 2019-04-30 17:52:47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 정상연 한의사

[일요주간 = 정상연 한의사] 2019년 4월 30일 기침이 끊이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만 70세 환자가 보건소 한의과에 내원하셨다. 3달 째 내과에서 감기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잔기침이 멈추지 않아 고생 중이라고 하신다. 하도 기침을 많이 해서 복벽이 아프고 당기기까지 한 상황이다.

맥과 혀를 살펴보고 청진기를 통해 폐와 기관지 음을 청진했다. 전형적으로 몸의 정기(正氣)가 부족하여 감기 바이러스를 스스로 퇴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의사의 머리 속에는 바로 쌍화탕 처방(백작약, 숙지황, 황기, 당귀, 천궁, 계피, 감초, 생강, 대조)이 떠올랐다.

쌍화탕은 상기도 감염증에 상용하는 대표적인 한약이지만, 무조건적으로 처방되지는 않는다. 환자의 적응증이 고려되지 않으면 오히려 감기를 키우기도 한다. 아무튼 이 환자에게는 지금 당장 쌍화탕이 처방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순간 한의사는 환자의 주머니 사정이 떠올랐다. 쌍화탕을 탕전하여 조제한 후 10일 치 투약하면, 못해도 할머니 주머니에서 20만원이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노인빈곤률이 최상위를 달리는 한국사회에서 감기 질환에 그만한 돈을 내 놓을 분들은 많지 않다.

결국 할머니는 보험이 적용되는 양방 진해거담제와 소염제를 타러 또 내과에 들를 수밖에 없고, 제대로 된 치료는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약국이나 편의점에 파는 쌍화탕이라도 사드시라고 권해보지만, 그 효과가 미미해서 병이 나을 것 같지 않다.

이미 대한민국은 질병 치료에 개인이 100% 의료비를 부담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으로 인식되는 사회가 되었다. 국민건강보험을 필두로 실손보험, 상해보험, 자동차보험 등 수많은 병원비 보장제도가 환자의 실질적 의료비를 경감해주고 있다.

물론 한의원에서도 보장이 꽤나 잘 되는 치료수단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침구(鍼灸)치료다. 따라서 많은 환자들이 본인부담금을 조금씩만 부담하면 만족스런 어디서나 침구치료를 받을 수 있다.

 

▲ 커다란 걸림돌은 첩약의보에 제동을 거는 약사회와 한약사회의 목소리다. 현재 전체 첩약의 3.4%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약사와 한약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첩약 시장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크게 넓히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혜택을 첩약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 현재 논의 중인 ‘첩약의보’이다. 첩약 치료에 국가가 개입하면 조제와 처방내역이 관리되고, 환자에게는 줄어든 본인 부담액으로 좋은 약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다. 


 또한 첩약시장 활성화로 한약 재배와 유통 시장이 활성화되고 한의계의 임상영역이 확장되어 학문의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커다란 걸림돌은 첩약의보에 제동을 거는 약사회와 한약사회의 목소리다. 현재 전체 첩약의 3.4%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약사와 한약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첩약 시장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크게 넓히고자 하기 때문이다.

점점 늘어나는 약사·한약사 면허숫자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은 최저시급, 임대료 등은 약사와 한약사에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끔 만들고 있다. 이 때 지각변동과 같은 첩약의보 소식이 들려오자 첩약의 분업을 요구하며 한 몫을 단단히 챙기려하고 있다.

2001년 양방 의약분업이 이루어지고 나서 다음해 건강보험 재정이 5조원이 증가했고, 이는 모두 의사와 약사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 후에도 증액된 만큼의 재정이 매년 의약분업을 위해 지출되었다.

약사와 한약사의 입장에서는 첩약의 분업을 이루어 2001년의 잭팟을 또 한번 기대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2018년부터 적자로 돌아선 건강보험 예산이 2026년에 완전히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첩약의 분업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한의학의 전문가로서 선언하건대 첩약은 분업을 할 수가 없다. 첩약은 진단/처방/포제/탕전/투약 등이 복합된 하나의 의료기술이기 때문이다. 양방약이 분업되어 처방과 투약이 구분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현재 양방의 의약분업에서 약사의 역할은 이미 완성된 기성의약품을 약사가 보관하였다가 처방전에 명시된 대로 환자에게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고로 정부로부터 약사는 약품관리료와 복약지도료를 받고 있다.

약사와 한약사는 의료인이 아닌 까닭에 의료기술과 관련한 영역 외(外)에서 약품의 관리라는 직역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그럼에도 약사와 한약사가 첩약을 분업하여 의료행위를 직접하겠다는 것은 법적으로 이치에 맞지도 않고, 그 부작용도 불 보듯 뻔하다.

일단 첩약의 안전성에 문제가 생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약을 완성하는 과정은 환자의 특성에 따라 늘 변동이 수반되는 복잡한 과정이다. 이 과정은 복잡한 의료행위이며 이를 통해 한약의 부가가치가 올라간다.

그런데 의료인이 아닌 약사와 한약사는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에 환자에게 제대로 된 약이 처방 되더라도 그 효과를 낼 가능성이 낮다. 당연히 한약의 부가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첩약 복용 후 사후관리 문제도 심각하게 꼬인다. 한약을 복용한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처방의 문제인지 조제의 문제인지 감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도자기의 빚기와 유약 바르기 과정을 각각 다른 사람이 한 경우 도자기가 굽는 과정에서 깨졌을 때 누구의 책임인지 감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2018년 발암물질이 함유된 고혈압약 파동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양약의 경우는 처방과 조제 사이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릴 수 있다. 따라서 그에 따른 문제 해결도 쉬운 편이다. 하지만 첩약은 환자에게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뒤따를 엄청난 혼란은 가히 상상하기도 싫다.

또한 첩약이 분업된 후 발생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문제이다. 복지부 기준을 충족하는 탕전 시설을 2만 5천개에 육박하는 약국, 한약국에 설치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일 것이다.

 

▲ 첩약이 분업된 후 발생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문제이다. 복지부 기준을 충족하는 탕전 시설을 2만 5천개에 육박하는 약국, 한약국에 설치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일 것이다.

 

따라서 유해하고 낭비적인 첩약분업을 더 이상 논란거리로 만들 필요가 없다. 소모적인 논쟁은 첩약의 보험적용 시기를 뒤로 늦출 뿐이고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오히려 약사회와 한약사회는 한약제제 분업에 관심을 돌리는 것이 낫다.

한약제제는 이미 제약회사에서 조제하여 출시한 검증된 약으로서, 현재는 분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양방의 의약분업 철학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한약제제의 분업이다. 약사와 한약사의 면허범위 안에서 체계적인 약품 관리와 복약 지도가 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한약을 다루는 법적인 권한이 있는 직역은 한의사, 한약사, 약사다. 그러나 한방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있다. 첩약은 하나의 의료행위로서, 양약처럼 단순하게 분업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지속적인 첩약분업 주장은 결국 첩약의 의료보험 적용을 반대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약사회와 한약사회가 진정으로 환자를 생각하고 한의약의 발전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한약제제분업에 집중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의료 보장성 강화 기조아래 한의사와 약사, 한약사가 법적인 권한 안에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한의약의 발전을 이루길 바란다.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PHOTO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