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앙데팡당전 초대작가 ‘박영길 화백’

소정현 / 기사승인 : 2019-05-26 22: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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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가는 토속적 아름다운 풍경 화폭에 재연
장영실 표준영정 67호 지정 국사교과서 실려

금방이라도 말을 건넬 것 같아… 초상화 대가
‘회교권 초청 미술대전’ 예수성화 이례적 출품

 

▲ ‘독수리 같이’ 역동의 날갯짓 치는 독수리의 고군분투는 우리 삶의 자화상이기도 한다.


[일요주간 = 소정현 기자]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 중책을 맡고 있는 박영길 화백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권 초유로 개최되는 앙데팡당전은 한국 미술계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며, 마냥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유럽작가들과의 국제교류, 역량 있는 한국 미술작가들의 발굴 및 후원 등 한국 미술계에 다각적 변혁을 초래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미술계에 더욱 좋은 기회가 되어 ‘꽃을 활짝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며, 후배 미술인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아끼질 않는다. 박영길 화백의 미술 편력의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담담히 전하는 특집 지면을 마련했다.

● 박영길 화백은 한국 미술계에서 어떠한 수식어로도 간단명료하게 소개가 불가능하다.

▼ 저는 오래전인 1980년에 정식 학원등록을 해서 지금 현재까지 전화번호를 한 번도 바꾸지 않고 후학을 지도했습니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1987년~1986년 사이 동남아를 기점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전시를 통해 감흥을 받고,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황홀함을 고스란히 화폭에 반영되다 보니, 과찬과 존경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늘 감사할 뿐입니다.

● 향토색 짙은 고향을 묘사하는 박영길 화백의 토속적 작품들에서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작품 곳곳에서 포착된다.

▼ 작가로써 현존하는 것들이 차츰 잊혀져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옛 모습이나 자연을 잘 묘사해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기에 옛 사물과 토속적인 흔적들을 작품에 구현하고 있습니다. 후대에 자손들은 비록 그림속에서이지만 아름다운 자연들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세월의 무상함! ‘무거운 짊을 진 소, 평화롭게 매여 있는 소’ 시골장터의 정겨웠던 풍경이다.

 

● ‘대한민국 표준영정 제67호’로 지정받은 박영길 화백의 ‘장영실 표준영정’은 국사와 교과서 및 표준전과 등에 실리어 역사교육의 효과를 높이게 되는데 한몫하였다.

▼ 국가의 표준영정 지정은 작가로서는 더 없는 영광입니다. 표준영정이라 한 인물을 선정이 되었을 때, 일단 문헌을 통해 그 사람의 시대적 배경과 인품과 덕망까지 묘사를 해야 합니다.

작품이 완성되면, 정부에서 심사위원 8명, 심사위원장 1명을 구성하여 심의를 하게 됩니다. ‘골상학 의상학’ 전문가들의 까다로운 심의 속에서 통과된 결실물이 바로 ‘대한민국 표준영정 67호 장영실 영정’입니다.

● 초상화 묘사 전문 화백이기도 한 박영길 화백은 금방이라도 말을 건넬 것 같은 사실적인 묘사와 생동감이 넘쳐흐르는데?

▼ 저는 한국 초상화작가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인물 묘사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물은 모든 작품의 기본입니다. 인물을 잘 그리게 되면, 어떠한 사물이든지 빛의 각도에 따라 변화무쌍한 화폭을 일절 주저하지 않습니다. 원근법과 구도법 및 빛의 원리를 잘 숙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물은 시대의 변천에 따른 의상의 특성이나 직위, 인격, 인품 등을 알 수 있기에 인물화를 몰두할 때면, 내 자신이 스스로의 신비로움에 빠져듭니다.

 

▲ 마디마디 영글은 결실의 곡식들은 풍요로움을 갈급하는 삶 자체이다.


● 박영길 화백은 오로지 목소리만으로도 초상화를 그려낼 수 있는 절대 흔치 않은 능력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매우 놀랍다.

▼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현재는 인사동 지산화실에서 작품 혼을 불사르고 있지만 1980년도 정식으로 종로에 학원 둥지를 틀고, 한때는 몽타주의 그림을 그릴 때도 있었습니다. 이후 점차로 라디오나 TV 속의 인물들을 목소리만 듣고 인물을 형상화했던 것이 큰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2012년도 인사동 하나로갤러리에서 초대기획 개인전을 했을 때, 정성태 관장께서 축하인사에서 수많은 작가와 관객들에게 박영길 화백은 서양화가이지만 동양화, 인물화, 사군자 등을 능숙 능란하게 잘하는 화백이며, KBS‧MBC‧SBS 등 ‘특종 놀라운 세상’에서 음성만 듣고 똑같이 그린 아주 놀라운 화백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생생합니다.

● 박영길 화백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모세의 홍해기적, 최후 만찬의 세족식, 예수님 십자가 등 기독교 성화에도 괄목할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 1981년도에는 성화 개인전도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얼마 전 CTS TV 방송의 ‘내가 매일 기쁘게’에 성경말씀을 쓰는 서양화가 박영길 화백으로 50분 출연한바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늘 감사하고 늘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앙심이 돈독한 내조자인 아내 김필성은 늘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지만, 민족과 열방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주님의 섭리와 은혜에 살고 있어 늘 감사합니다.


▲ 예수 초상화는 기독교인을 뛰어넘어 타종교권에서도 전혀 이질감을 갖지 않은 보편적 이미지이다.


● 회교권 ‘아제르바이쟌’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예수 성화’를 전시한 것은 대단한 용기로 시도된다.

▼ 아제르바이쟌은 1990년 구소련에서 독립된 국가입니다. 2013년 아제르바이쟌 정부에서 23개국 나라의 대사관을 통해 1개 국가에서 2명씩 왕복티켓, 보험료 등을 전적으로 부담하여 한국에서는 한국미술협회 서양순 부이사장님과 함께 다녀온바 있습니다. 2013년에는 아시아에서는 아제르바이쟌에 한국만이 대사관이 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제르바이쟌의 70%가 회교도인 것을 알고도 예수님 얼굴을 전시하기로 마음을 먹고 가져갔을 때는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보호와 인도함 속에서 모든 과정을 기적적으로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9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서 러시아 공항에서 7시간 기다렸다 3시간 타고 아제르바이쟌에 도착하여 아제르바이쟌 대통령 휴양지에서 초대전을 했습니다. 전시장까지 오신 한국대사님, 영사님께 지금도 늘 감사를 느낍니다. 전시도록에 당시 대통령과 정부 각료 사진이 함께 실신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것입니다.

● 박영길 화백은 2017년 세계최대 무궁화 200호 초대작을 선보였는데, 특히 일본에서개최되는 전시회에도 빠짐없이 전시하여 무궁화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 1990년부터 일본의 동경, 지바, 나가사키, 오사카 등에서 개인전을 수없이 했습니다. 한국의 상징인 무궁화를 멋있고 힘 있는 꽃으로 묘사를 해서 알리자는 생각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100호 그림 무궁화를 그렸습니다.

당시 산림중앙회 이석현 회장님께서는 청사 소장용으로 100호 작품을 구입하시어 산림중앙회 청사 1층 로비에는 무궁화와 함께 하는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무궁화 200백호를 제작해서 제막식까지 한 바 있습니다. 한국의 무궁화는 일본 현지에서 반응이 너무 뜨거웠고 현지 한국 영사관에서도 국외선양이라며 매우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한 적도 있습니다.


▲ ‘생명의 땀방울’ 토지를 소산물을 잉태하기 위해 얼마나 인고의 세월이 흘러야 했을까!


● 박영길 화백은 민주평통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남북한 미술인들의 활발하게 교류되면 예술문화 측면에서 어떤 통합적 성과를 예견하나?

▼ 대통령 직속 헌법 기관인 민주평통상임위원으로 14대~17대까지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예술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남북한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작품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여러 번 갔었습니다.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에 정영만, 김기만, 정찬모, 선우현 등 북한 최고의 화가들 작품이 북한 창작미술원에 전시되어 있어 작품을 직접 촬영도 하고, 북한 작가의 합본 도록을 구입해서 많은 연구도 한바 있습니다. 북한 작가들이 작품성에서 대단한 실력을 겸비하고 있기에 교류전을 하게 되면, 상호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해외에서 ‘원더풀 박영길’이란 찬사를 받는 등 세계 속에 한국 예술의 혼을 심어주는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2012년에는 북경 코엑스에서 50호 작품인 ‘사람의 눈동자 누드화’로서 큰 인상을 남겼는데?

▼ 현재 저는 중국에서 길림예술대학교 종신교수로도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조어대 국빈관에서 개인초대전을 개최한바 있습니다. 6자회담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조어대는 해외의 정상들이 빈번히 회동하기에 엄격히 통제되는 장소입니다. 특히 조어대는 중국의 최고의 작고하신 작가들의 작품이 소장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12년 북경 코엑스에서는 부스를 10개씩이나 무상으로 제공받으며, ‘눈동자 속의 누드화’(마음의 창 50호)와 ‘돌의 작품’(도란도란 20호)이 경매에 붙여져 매우 높은 고가에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경 코엑스는 매우 까다로운 절차로 아무나 전시를 할 수 없었기에 매우 큰 영광이었습니다.


▲ 사람의 눈동자 안의 누드 여인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초고가로 경매된 작품이다.

● 2018년까지 제10회 지산 박영길 화백배 전국 골프대회를 개최하여 왔는데, 개인 이름을 갖고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이채롭게 느껴진다.

▼ 이동영 회장께서 지금까지 이끌어온 대한스포츠프로골프협회에서 저의 작품을 구입해서 상품을 주고, 제 이름 석자를 걸고 대회를 하고 싶다는 제안에 지금까지 10년째 1년에 한 번씩 프로들의 대향연이 ‘지산 박영길 화백배’라는 타이틀로 열렸습니다.

또한 워싱턴DC에서는 WORLD US PGA 골프협회 주최로 두 번의 박영길 화백배골프대회를 개최한바 있습니다. 골퍼인과 화백의 만남은 좀 독특합니다. 저는 시타구와 함께 격려사, 1등 시상식등을 매년 갖고 있는데, 멋진 자연을 만끽하는 힐링타임은 매우 이채롭기만 합니다.

● 박 화백은 시서화에 두루 능통한 조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동양화를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신동으로 불렸다. 마지막으로 박영길 화백의 가족사를 간략하게 들려 달라.

▼ 조부님은 시서화에 능하신 분이시며, 또한 교사로 재임하고 있는 막내 동생은 현대서각과 서예를 한 유명한 박육철입니다. 제 막내딸 역시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학과 4학년 졸업반 과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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