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前 대통령과 同鄕 상트페테르부르크서 출생
정치적 스승 푸틴 전폭 지원하에 ‘요직 승승장구’
2008년 70% 지지로 압승 러시아 제5대 대통령에
[일요주간= 소정현 기자] "메드베데프는 매우 사려 깊고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는 21세기 러시아를 훌륭하게 이끌고 있다"(오바마 美 대통령)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정치 지도자들의 다른 세대를 대표한다. 그는 매우 지적이며 새로운 세대의 인물"(콘돌리자 라이스 前 미국 국무장관)
제5대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아나똘리예비치 메드베데프’(Dmitry Anatolyevich Medvedev).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 뚜렷한 일치점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단신의 메드베데프를 유약한 선비형 관료로 묘사하면서 러시아를 과연 사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합리적 성격과 드러나지 않는 카리스마를 가진 ‘외유내강형' 인물로 평가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다. ▲ 제5대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 삶의 터전 ‘상트페테르부르크’
메드베데프는 1965년 9월 14일 푸틴 前 대통령 고향인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했다. 부친 아나톨리는 공학교수이고, 인문학자인 모친 율리야는 사범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학교 시절 친구들은 그를 독서광으로 기억한다. 소련 백과사전을 통째 외우고 다녔고, 학교 성적은 언제나 '수'나 '우'였다. 메드베데프가 초등생 때의 담임선생 베라 스미르노바는 "그는 늘 공부만 하고 외부 활동이 제로여서 '애늙은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며 생생하게 당시를 떠올린다.
메드베데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판사를 꿈꾸었으나 1991년 대학 은사 ‘아나톨리 소브차크’(Anatoly Sobchak) 교수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선거에 당선되면서 이에 합류한다. 푸틴 대통령은 동대학 법학부 12년 선배이다.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 정책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레닌그라드대학 민법학과 학과장 ‘아나톨리 소브차크’ 교수가 초대 레닌그라드 시장에 당선됐고 메드베데프는 그의 법률보좌관이 됐다. 여기에서 메드베데프는 소브차크 시장 밑에서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부시장)으로 일하던 푸틴과 첫 인연을 맺은 후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1996년 소브차크가 재선에 낙마하자 두 사람은 자기 길을 갔다. 푸틴은 즉시 모스크바로 향했고, 메드베데프는 사업가로 변신해 제지회사인 '핀 첼'('일림 펄프 엔터프라이즈'로 개칭)의 설립에 참여했다. 이 회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지펄프회사로 급성장했다.
이후에도 메드베데프는 푸틴 대통령과 단 한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견고한 관계를 구축했다. 메드베데프는 1999년 크레믈린의 푸틴이 실장으로 있던 내각 행정실의 부실장을 맡아 모스크바로 가면서 곧 회사를 떠났다
2000년 푸틴이 러시아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메드베데프는 더욱 승승장구했다.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최대의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 회장의 중책까지 떠맡았다. 2003년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데 이어, 푸틴 대통령이 2004년 3월 14일 재선에 성공한 뒤 2005년 11월에는 대통령의 교육과 사회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제1부총리 자리에 올랐다.
2007년 12월 17일 푸틴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 하에 크렘린 내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2008년 3월 2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70%가 넘는 압도적 지지율로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Gennady Zyuganov)를 제치고 러시아의 제5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5월 17일부터 임기를 시작하였다. 메드베데프는 소비에트 시절을 포함해 러시아 정치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오르게 되었다.
◆ 최대 협력자 푸틴과 갈등예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09년 11월 12일 푸틴 총리 등 행정부 고위 관계자와 연방회의(상원)·국가두마(하원) 의원들이 참석한 크렘린의 연례 국정연설에서 산업 국유화 등 과거 관행과 단절을 촉구하면서 경제개혁과 실용적 외교를 거듭 강조했다.
메드베데프는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정보통신·우주산업 등 첨단 분야를 적극 육성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국영기업은 민간의 손에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국수주의적 성향의 푸틴 총리는 대통령 재임 때(2000∼2008년) 일부 기업을 국영화하고 서방 세계와 대립하는 외교 정책을 택했다. 주요 외신들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연설에 푸틴 총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했다.
2009년 11월에는 푸틴 총리의 측근인 ‘미하일 레신’ 크렘린 언론 자문관을 직권 남용 혐의로 해임해 러시아 정계를 놀라게 했다. 이렇듯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 총리와 서서히 거리두기를 시작하는 조짐이 역력하다. 이는 양두(兩頭) 체제에 균열이 가해지고 있거나 혹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푸틴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는 몸짓으로 해석된다.
원인은 너무 자명하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출마를 거듭 시사하고 있는 가운데, 푸틴의 2012년 대선 출마 의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집권당에서 두 명의 후보가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 후보단일화가 본선보다 더 험난한 고지라 할 수 있다.
푸틴 총리는 러시아 헌법의 대통령 3선 금지 조항 때문에 출마를 포기하였지만 2012년 대선에는 후보로 나설 수 있다. 4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연임하며 2008년까지 8년 동안 권좌에서 군림한 푸틴 총리는 3선 연임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메드베데프 당시 부총리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총리직을 맡았다.
푸틴 총리의 대통령 복귀설은 퇴임하자마자 끊임없이 떠돌았다.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출신인 푸틴이 진보적이며 유약한 이미지의 메드베데프에게 권좌를 넘겨주며 총리를 맡은 것은 메드베데프의 영향력 감소를 적극 차단하면서 4년 뒤 대통령직에 복귀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앞으로 이 둘 관계를 내다볼 수 있는 단초는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푸틴 총리는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반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43위에 그쳤다. 러시아 여론조사에서도 푸틴 총리가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메드베데프가 근래 들어 러시아 정치와 경제 상황에 대해 거침없이 질책과 비판을 쏟아내는 점도 대선 행보라는 해석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2009년 9월 10일 러시아 언론의 기고에서 "러시아 민주주의는 아직 부실하며 경제는 비효율적이다."고 밝혀 푸틴의 집권시절에 정책 실패를 암시하는 인상을 야릇하게 풍겼다. 둘은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과 공조체제의 붕괴는 둘 다 필멸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상호 우호적 그리고 견제적 협력이라는 시소게임을 멈추기가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다.
◆ ‘국내외 현안’ 어떻게 돌파할까?
급냉각 기류를 면치 못하던 미국과 러시아 관계에 훈풍이 몰려오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009년 7월 6일 모스크바에서 첫 정상 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의 이력과 스타일이 흡사한 면이 있어 전임자 푸틴보다는 미국과 러시아 관계 개선의 낙관론에 힘을 실어준다. 둘 다 나이차가 많지 않다. 1961년생인 오바마가 메드베데프보다 4살 위이다. 두 정상 모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강단에서 법학을 가르쳤다. 또한 두 정상은 법률가 출신답게 개혁주의 성향이 강한데다 외교에서도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점이 눈에 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금년 4월 8일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역사적인 핵무기 감축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협정은 2009년 12월 기한이 만료된, 미국과 러시아가 1991년 타결했던 1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대체하는 것으로 향후 10년간 효력을 가지며 양자합의에 따라 5년 연장할 수 있다. 두 정상은 핵무기 감축, 양국 간 협력 강화, 이란 핵개발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올해 여름 미국을 방문한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신흥경제 4국인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관계 심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금년 4월 13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들이 그들의 자국 통화를 이용한 상호간 교역을 허용한다면 원자력, 우주개발, 나노기술 발전에 국가적 협력을 강화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6월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첫 번째 회담에서 4개국 정상들은 “우리들이 국제 금융기관에서 목소리를 키워야 하며, 글로벌 통화제도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내용을 결의한바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활성화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2009년 1월 14일부터 싱가포르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13일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기고한 글에서 출범 20주년을 맞는 APEC의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APEC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각 회원국의 발전 수준과 서로 다른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 공개 대화와 합의에 대한 약속, 의견 존중이라는 원칙하에 협력해 왔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는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의를 준비하고 있고 이 영광스런 임무는 큰 책임과 약속이 따른다."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금년은 한국과 러시아 수교 20주년으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올 9월 한국을 방문한다. 2008년 9월 29일 러시아를 공식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이끌어낸바, 양측은 외교·안보 분야의 새로운 협의채널로서 양국 외교 당국간 제1차관급 전략대화를 개최키로 합의하였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대외적 외교 경제 관계 활성화에 비교적 양호한 점수를 얻고 있지만, 대내적 기상도는 상당수 흐림이다. “알코올 중독은 국가적 재앙이다." 메드베데프는 2009년 8월 12일 보드카로 대변되는 러시아 술문화를 개탄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흑해 연안 휴양지 소치에서 열린 음주대책회의에서 “알콜 생산과 유통, 광고 등에서 다각도로 강경 조치를 취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며 탄식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특히 러시아 시장에서 거래되는 보드카의 30∼50%가 탈세 하에 저질의 제품들이 암거래 유통되고 있기에 건강상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러시아 의사들은 15∼54세 사망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술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과 자체 군대까지 보유한 러시아 내무부는 수없이 많은 부정 비리와 각종 사건에 직원들이 연루되면서 정부 내 개혁 1순위로 꼽힌다. 전직 경찰관들이 유튜브를 통해 내부 비리를 잇달아 폭로, 내무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가운데 2009년 4월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경찰서장 총기 난동 사건은 메드베데프 정부에 치명타가 됐다. 당시 한 경찰서장이 아내와 말다툼을 벌인 후 시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해 3명을 숨지게 하고 6명을 다치게 했다.
개혁 골자는 2009년 12월 24일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훈령으로 서명한 내무부 혁신안에 모두 담겼다. 개혁 핵심은 내무부 조직의 슬림화와 그를 통한 효율성 제고, 그리고 인적 쇄신을 통한 권위 회복이다.
◆ 유튜브 전용채널로 ‘네티즌과 소통’
교황 베네딕토 16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등 각계의 유명 인사들이 유튜브 전용 채널로 네티즌과 소통하고 있다. 열광적 인터넷 애용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그는 2009년 9월 1일에 유튜브 전용 채널(youtube.com/kremlin)을 개설했다. 메드베데프는 크렘린 공식 홈피에 블로그를 개설하여 국가 주요 현안과 정책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 영부인과 자녀들의 일상까지 소개하면서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신장이 불과 162cm밖에 되지 않는 메드베데프는 매일 수영을 하며 활력 넘치는 건강을 유지한다. 젊은 시절 딥퍼플(Deep Purple)·블랙 새버스(Black Sabbath) 등 서구의 하드록 밴드에 심취하였고, 프랑스산(産) 와인을 좋아하며, 이탈리아 정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동갑내기인 부인 스베틀라나 메드베데프와는 7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 지난 1989년 결혼하여 올해 14살의 아들 1명을 두고 있다. 스튜어디스 출신의 푸틴 총리부인 류드밀라 여사! 푸틴이 권력의 정상에 오르기 이전에는 미지의 여성이었던 것에 비해 스베틀라나는 패션쇼 큐레이터와 교육 프로그램 운영자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수준급의 사진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사진은 우리의 주변 세계는 물론 우리가 이전에 간파하지 못했던 뭔가를 보게 해 준다. 사진의 진정한 의미는 이미 지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의 ‘특별한 슬픔’을 잡아내는 데 있다."며 사진 예찬론을 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한 자선 경매에서 서(西)시베리아 튜멘주 토볼스크시 크렘린성을 직접 찍은 흑백 사진이 170만달러라는 초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메드베데프의 신앙은 러시아 정교회이다. 금년 1월 초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LG전자의 3세대 ‘터치와치폰(LG-GD910)'을 손목에 찬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 메드베데프 프로필
2008년 제5대 러시아 대통령,
2005년 러시아 제1부총리,
2003 러시아 행정실장,
2000년 가스프롬 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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