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또 하나의 가족? “건강하면 가족, 아프면 남이냐”

신현호 / 기사승인 : 2010-05-31 09:39:18
  • -
  • +
  • 인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논란

<일요주간=신현호 기자>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40년 전 전태일이 외쳤던 말이 아니다. 2010년 현재 세계 글로벌 기업이라 부르는 대기업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안전지킴이(이하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ㆍ비반도체 그리고 삼성전기를 포함한 피해자는 지금까지 입소문으로 제보된 것만 45명. 이 가운데 암 피해자들은 40명이고 17명이 사망했다고 반올림 측은 주장했다. 특히 나머지 5명은 암은 아니지만 희귀질환을 앓고 있으며 1명은 자녀가 소아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것. <일요주간>은 최근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열린 ‘삼성 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 참석자들의 애끓는 목소리를 들어봤다.




환기시설도 화장실도 없었다

삼성 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故 황유미씨. 평소 질병도 없던 건강한 그녀였다.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을 앞둔 19살의 어린나이에 입사한 그녀는 24대의 기계가 돌아가는 작업장의 3베이 구역을 최은선씨와 함께 담당했다. 수동으로 반도체 세정작업을 하는 업무였다. 반도체를 바구니에 담아 손으로 넣었다 뺐다했다. 그 곳에는 알 수 없는 각종 화학물질이 가득했다. 환기시설이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땀은 이마와 가슴을 가득 적셨다. 심지어 실내에 화장실도 없었다. 실외에 있는 화장실 한번 가려면 복잡한 소독 절차를 거쳐야만 하고 자기 키보다 높이 쌓인 물량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도저히 화장실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평소 자주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으며 머리가 아프다고 가족들에게 자주 이야기를 했다. 같이 일하던 은선씨는 임신 중이었으나 유산을 했고 사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혈병으로 숨졌다.


은선씨 후임으로 이수경씨가 들어왔다. 수경씨도 백혈병을 얻어 아주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중 백혈병으로 숨졌다. 유미씨 아버지 황학기씨가 이렇게 알음알음 알게 된 백혈병 사망자만 5명. 황학기씨는 삼성을 찾아가 5명이나 죽었는데 어떻게 산재가 안 되냐며 항의했으나 개인적 질병이라며 거부당했다. 삼성은 백혈병에 걸리는 물질을 쓰지도 않고 취급도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다. 유미씨가 죽고서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2차례 하나마나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이미 삼성 측이 환기시설을 모두 만들어 놓은 세트장에 들어가 역학조사를 한 것이다. 당연히 허용치 수준의 농도가 검출되었다. 근로복지공단도 그것을 토대로 산재신청을 거부했다. 삼성-근로복지공단-산업관리공단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왜 니네 남편만 죽는데?”

삼성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故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는 이렇게 말한다.
“삼성안의 노동자는 노예다. 노조가 없기 때문이다. ‘일한만큼 월급만 나오면 그만이지’라고 저도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런 피해를 입어보니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보호받을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 노조가 없기 때문이다. 5년 전 아이아빠(故 황민웅씨)가 9개월간 백혈병과 싸우다 죽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다는 이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고통이 채 아물기도 전에 산재가 아니라는 삼성과 싸워야 했던 외로움,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녀도 삼성에서 11년을 근무한 노동자이지만 삼성에게서 버려졌다.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대한민국은 한 국민을 버렸다. 삼성은 못 믿더라도 정부한테 의지하고 믿었던 적이 있다던 그녀. 노동자를 위한다는 노동부를 믿었고 근로자들을 위한다는 근로복지공단을 믿었다. 역학조사를 한다고 했었을 때 정말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산업안전관리공단을 믿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그들끼리는 너무 끈끈한 정으로 뭉쳐있었다. 피해자만 제외하고. 너무 끈끈해서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삼성 측은 보상을 노리는 억지생떼라며 ‘그렇게 현장이 위험하면 다 죽어야지 왜 네 남편만 죽느냐’고 까지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피해자와 시민단체, 언론을 만나지 않고 산재신청을 하지 않으면 치료비를 대주겠다는 회유책을 쓰기도 했다. 당연히 치료비를 물어야 함에도 선심 쓰듯 말하는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다고 정애정씨는 토로했다.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음을 스스로 입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입증을 못했으므로 산재는 불승인이 됐다. 정부가 대신 나서서 조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예측한 결과가 벌어졌다. 모두 안전기준치 범위 내에서 깨끗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나왔다. 직업병에 의한 질병이나 사망은 한명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삼성에서 근로하는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말이 있다. 만일 안전한 환경에서 정해진 작업량과 시간만큼 일을 했다면 이렇게 많은 백혈병 환자와 희귀질환 환자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특히 여사원들의 경우에는 유산, 임신, 생리불순을 겪는 것을 너무 많이 목격했노라고 정애정씨는 증언했다.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도 삼성이 말하는 보호 장비나 안전장치는 하나도 착용하지 않고 일을 했다. 일할 때 입는 옷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보호하기 위한 옷이었다.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11년간 몇 번의 교육을 받기는 했다. 교육을 안 받고 거짓서명을 한 적이 많았고 교육을 받더라도 직장 내 성희롱이나 여름철 물놀이 같은 교육을 받았을 뿐 정작 필요한 화학물질ㆍ위험물질에 대한 교육은 없었다.

정애정씨는 “정전이 되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암흑세계다. 만일 가스누출이라도 일어난다면 잘 뛰는 사람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며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엄청난 이득을 본 삼성이 ‘바보들 30년이 지나니까 이제 조금 알았네’라며 비웃는 것 같다고 했다.




발암성 물질 안 쓴다는 삼성 사실과 달라

한겨레21에서 입수한 환경수첩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는 트리클로로에틸렌(TCE)를 비롯한 6가지 발암성 물질과 40여종의 자극성 위험물질을 사용하고 있었다. ‘세정·식각’ 공정에서 쓰인 트리클로로에틸렌은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 유방암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역시 세정·식각 공정에서 쓰인 디메틸아세트아미드도 발암성 물질로, 불임·유산 등을 유발한다. 세정 작업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일한 뒤 2007년 3월 급성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23)씨가 맡았던 일이다. ‘사진’ 공정에 사용되는 감광액에는 발암성 물질인 중크롬산염과 벤젠이 포함된다. 중크롬산염은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성 반응을 일으키고, 천식을 유발한다. 벤젠은 백혈병 등을 유발하는 대표적 발암물질이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