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에 주먹은 어떤 존재일까?

김영호 기자 / 기사승인 : 2010-06-02 19: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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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깡패와 건달 100년사 , 정치와 주먹의 은밀한 유착(2)

정치인-조폭-연예인 커넥션 존재 밝혀져
강남 중심 군소 조직 형태로 늘어나는 추세
연예계 진출 등 합법화 둔갑해 음지서 기승

[일요주간 = 김영호 기자]해방 후 정치사에도 언제나 주먹이 따랐다. 정치사에서 주먹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이정재로부터 시작된 정치강패는 1980년대 들어서도 사회 이슈에 끊이질 않는 잡음을 제공하면서 계속해 권력과 공존함을 알렸다.

합법적으로 행세하며 음지 기승

자유당의 신임을 받던 이정재, 그리고 임화수와 유지광의 시대에서 정치깡패라는 변화된 주먹의 지도는 역사상 드물게도 통합된 시기를 맞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하게 된 깡패들은 부정선거, 고대생 테러사건 등으로 스스로 4.19를 불러오면서 자유당과 함께 세력을 잃고 5.16을 맞으면서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동대문 사단, 화랑동지회로 알려진 이 시기의 정치깡패들은 정치사에 깊숙한 발자취를 남기며, 권력과의 유착이라는 주먹의 가장 적나라한 공생관계가 표면에 들어나게 된다.


제 3세대 주먹. 사보이호텔 사건을 계기로 회칼시대를 연 3세대 조폭, 호남세력의 상경으로 서울의 밤은 더없이 잔인한 면모를 가지게 된다. 국민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숙청의 대상이었지만, 반면 정치세력의 보이지 않는 후원세력으로 음지에서 꾸준히 활동한다. 90년대 이르러 조직범죄는 더욱 세분화되고 합법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정재의 주먹 제2기가 권력에 의존했다면 조양은을 필두로 시작된 제3기 주먹들은 사채, 슬로머신, 도박, 주류, 유흥에 기생하면서 합법화를 과장해 담합과 건축 관련 이권에 동원됐다.

3대 패밀리의 과거

당시 사건을 담당한 모 검사는 "'범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의 뿌리는 50년대 중반 광주의 고교폭력써클 '케세라', '행여나', '오케이' 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졸업후 사회로 진출해서 광주시내 대호다방과 동아다방을 무대로 조직을 형성, 수년간 싸움을 벌였다.


치열한 폭력에서 승리한 대호파는 OB파로 개칭했다가 구OB파와 이동재가 이끄는 신OB파로 양분됐다. 또 패자인 동아파에서는 김태촌이 자신의 출신지역 이름을 딴 서방파를 결성, 독자적인 세력을 확장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구OB파 출신 조양은이 서울로 자리를 옮겨 호남파에 가입한다.


이들이 주먹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1975년 '사보이호텔' 사건. 이들을 중심으로 광주, 전주, 목포 등지에서 올라와 무교동 일대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호남파'는 70년대 초반까지 서울의 밤을 지배하던 기존의 '신상사파'와 조금씩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주류공급권과 정기적인 상납금 등을 둘러싸고 신상사파와 잦은 충돌을 빚던 호남파는 1975년 1월 명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에서 생선회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채 신상사파를 기습, 명동을 장악했다.


이후 호남파는 일정한 세력 조정을 거친 뒤 김태촌의 서방파와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로 삼분되면서 주먹계 '3대 패밀리'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즉 광주 OB파의 신.구로 대표되는 조양은과 이동재가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겨 계속해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김태촌과 조양은의 악연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과 조양은의 악연은 3대 패밀리의 하이라이트다. 두 조직간 대결은 1976년 4월 서울 태평로 아시아호텔에서의 집단 난투극으로 비화하면서 광주 등 호남권 일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점으로 치닫던 대결은 공교롭게도 두목들이 검거되면서 종료된다. 전국 평정에 나선 조양은은 1977년 10월 4일 광주를 찾아 한 호텔에서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서울구치소로 압송된 조양은은 김태촌과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김태촌 역시 이동재 습격 사건과 신민당 각목대회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같은 시기에 자수해 왔던 것. 조폭 두목들이 모여든 서울구치소는 일순간에 긴장에 휩싸였다. 하지만 곧 그들은 구치소에서 화해를 하게 된다.


검찰은 1978년 6월 출소한 조양은이 그 해 11월 10일 서울 광주 대전 순천 등 각 지방 조직까지 규합, 전국적 규모의 ‘양은이파’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고 설명했다. 김태촌은 이듬해인 1979년 출소한다.


김태촌씨와 조양은씨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고 한다. 서로 자신이 최고임을 내세우는 두 사람은 쫓고 쫓기는 ‘전쟁’을 치르며 경쟁이라도 하듯 대형사고를 터뜨려 왔다. 교도소에서 만나 화해했다가도 출소하면 또 원수가 됐다. 그러면서도 결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조양은 20년 옥중생활

두 사람의 옥중 생활에 대해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폭력의 대가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름값’ 때문에 혐의가 과장됐으며 억울한 면이 있다는 것. 20년 가까이 수형 생활을 한 조양은. 그는 출소후 서울로 올라와 1년 가까이 편지를 주고받았던 김소영씨 집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충남 온양의 김 씨의 집 ‘푸른산장’에서 은둔의 시간을 가진 뒤 1995년 6월 10일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결혼식을 갖는다. 조양은은 “나와 아내를 연결시켜준 사람이 목회자로 알려졌는데 사실은 ‘천안곰’ 조일환 선배가 중간에 다리를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조씨는 영화 <보스>에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활발한 사회 활동을 재기하는 한편, 신학대학에 입학한다. 노숙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세족식에도 참석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살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듯했다. 그러나 30년 이상 묵은 구습을 한 번에 떨칠 수는 없는 듯 조양은은 출소 1년 5개 월 만인 1996년 8월에 이어 2000년 12월에 도박과 외화 밀반출 등의 혐의로 잇따라 구속 수감된다.


세인들은 “과거와의 단절은 거짓이었다. 조양은은 세상을 속였다. 종교의 우산 속에 숨어 여전히 범죄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서 위장 신앙생활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 김소영씨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을까. 조양은은 다시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 이제 그의 나이도 61세이다.

김태촌, 수감과 병마 연속

김씨와 '서방파'가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6년에 일어난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이다. 당시 김씨는 이권에 개입한 검사의 청부로 저지른 일이라고 폭로해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씨는 1986년 징역 5년 및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았으나, 폐암이 발병해 1989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러나 1990년 정권 차원의 '범죄와의 전쟁'에서 폭력조직을 결성한 혐의로 다시 체포, 1992년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다. 2004년 10월 출소한 김씨는 종교인으로 탈바꿈, 각종 신앙 간증 활동을 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김씨는 그 해 재수감 됐다가, 2005년 8월 보호감호를 규정한 사회보호법이 폐지됨에 따라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다. 교도소에 있었을 당시 도움을 줬던 일본인 목사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김씨는 노숙인 급식 활동 등을 해왔다.


그러나 이전 교도소 간부에 1000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2006년 11월 귀국하던 중 경찰에 검거됐다. 그는 건강상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수감 중 자주 병원신세를 지는 등 풀려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는 H그룹 K회장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또다시 이름을 세간에 알린다. H그룹 측 요청을 받고 폭력배들을 끌어들인 혐의를 받고 있는 전 맘보파 두목 오모씨는 김태촌씨가 이끌던 범서방파의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1980년대 후반 김씨가 인천 유흥가를 접수하는 데 앞잡이를 한 그는 OB파 두목 이동재 습격 사건,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 등에 개입한 전력이 있다.


사건 당일 저녁 H그룹 측 관계자가 들른 것으로 알려진 P음식점의 사장 나모씨는 김태촌씨의 직계 부하였다. 몇 년 전에도 구속된 적이 있다. P음식점은 K회장이 종종 들르던 강남의 유명한 고깃집이다.


한편 일부 언론은 이 사건에 양은이파 전 조직원도 관련됐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청담동 G가라오케의 지분 소유자로, 한화측 요청으로 폭력배를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권투선수 출신 장모씨를 지목해서였다. 하지만 경찰이 관리하는 조직 계보에 장씨의 이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그는 일본인 친구로부터 “권상우가 시계를 받고도 팬미팅 공연을 해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지속적으로 권씨를 협박했다. 사건은 일명 ‘피바다 발언’이 공개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김씨는 실형을 선고 받아 지난해 12월 만기 출소했다.

조폭과 연예인은 친해?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장에서 제작진과 주먹다짐을 벌인 유명 방송인 강병규(37)가 불구속 입건된 데 이어 인기 개그맨 이혁재(37)가 인천 송도에 있는 한 룸살롱에서 종업원들을 폭행해 경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당시 술자리에 인천지역 조직폭력배 두목이 동석한 사실이 알려졌다.


최근 불거진 연예인 탈선행각의 공통점은 바로 조직폭력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강씨의 경우 폭행에 가담한 인사들은 폭력배가 아니었음이 경찰 수사에서 밝혀졌지만 일각에서는 관련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룸살롱 여종업원과 남자 웨이터 등을 때려 입건 된 이씨는 실제 조폭 두목이 일행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곤혹을 치렀다. 수사당국은 문제의 조폭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밝혔지만 의혹은 가시질 않는다.


지난 2005년 2월 인기가수 조성모가 부산 공연을 마친 뒤 공연기획사 대표가 폭력조직 21세기파를 동원해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자, 본인은 칠성파를 동원해 이를 막은 사건은 유명하다. 아예 조폭과 손을 잡고 돈벌이에 나선 일도 있었다. 2005년 6월 인기 개그맨 H씨 등 유명연예인 3명이 ‘신촌이대식구파’와 손을 잡고 불법 유흥업소를 운영하다 적발된 것이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홍씨 등은 신촌이대식구파 고문이었던 전모씨와 손잡고 강남 일대에서 불법 유흥주점 여러 곳을 운영했다. 경찰 조사결과 해당 업소에선 여종업원과 손님 사이에 불법 성매매가 이뤄졌으며 업소 단골 가운데엔 동료 연예인 10여명이 포함돼 있었다.

수감 중 연예인 동원?

지난 2005년 5·31 지방선거 과정에서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조직폭력배가 특정 출마자를 돕기 위해 연예인 14명을 선거운동에 동원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른바 ‘정치인-조폭-연예인’의 삼각 커넥션이 실체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당시 살인 등의 혐의로 복역 중이던 조직폭력배 우두머리 전모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시의원 출마자 최모씨를 당선시키기 위해 자신의 조직을 움직였다. 부하 조직원들을 시켜 동원한 연예인들은 최씨의 선거 운동에 나섰고 결국 최씨는 당선에 성공했다.


지난 2004년에는 배우 최OO, 개그맨 이OO 등 톱스타 12명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특정 조직폭력배를 구명하기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국내 최대 폭력조직 서방파의 행동대장 나모씨가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팔다 적발, 구속되자 이들 연예인들은 재판부에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의 탄원을 냈다.


이들은 나씨가 운영하던 대형 한우식당의 단골로 드나들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연예인들이 제출한 탄원서에는 웃지 못 할 문구도 적지 않았다. 특히 “나씨는 예술을 이해할 줄 아는 고마운 분이며, 선처를 희망한다”는 내용이 검찰을 통해 언론에 알려지자 대중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나씨는 자신의 한우식당에서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42억원에 달하는 부당이익을 챙기고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 22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된 처지였다. 모 매니저는 “웬만한 매니저들치고 조직폭력배와 안면이 없는 사람이 없다”며 “친분 여하에 상관없이 중간보스급 이상과는 어떻게든 연줄이 닿아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상당수 조폭 인사들이 정식으로 기획사를 차려 연예 사업에 뛰어들었다. 소속 연예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폭력 조직이 나서 해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 <다음호에 계속> 제휴사/시사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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