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에 홀린 말기 암 환자의 구조 요청

문선우(INS 팀장) / 기사승인 : 2010-06-02 19: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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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우의 탐정 24시(3) ...어느 40대 말기 암 환자의 고백

“구걸에서부터 시작해서 머슴까지 해서 번 돈 2억 여 원…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행복하다 싶었더니 췌장암 3기에 절망??

“일주일에 이틀만 간호하고 나머지 4~5일은 전화 받지 않은 채 사라져…다른 남자 생겼나 의심…결국 사실로 드러나??


[일요주간= 문선우(INS 팀장) ] 가끔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하면 꼭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필자의 직업 특성상 의뢰를 받은 사건에 대해 함구를 해야 하다 보니, 어찌 그런 질문이 달갑겠는가. 그럴 땐 그냥 사건의 경중을 떠나 모두 중요하다고 말하며 넘어가곤 했다.


그렇다고 기억에 남는 사건이 왜 없겠는가. 생각하기도 싫은 사건에서부터, 늘 되짚어보게 되는 사건이며, 어이가 없어 웃게 되는 사건들까지 다양한 사건들이 정말 많았다. 그중에서도 햇살이 따스하거나, 잔잔한 봄바람이 풍요롭게 마저 느껴질 때면 가슴을 아리며 떠올려지는 사건이 하나있다.

어느 날 한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전화가 왔더랬다. 자신의 일은 아니고, 말기 암 환자의 부탁으로 전화를 한 것이라 했다. 아마 병상에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필자의 인터뷰장면을 본 모양이었다.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전화를 받고, 무작정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울적하고, 착잡하여 병원까지 도착해서도 지하주차장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더랬다.


그런 모습을 보려고 그런 것일까. 난생 태어나 처음 보는 말기암환자분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정도로 야위고, 안쓰러워 다가가기조차 겁이 날 정도였다. 각종 기계음소리도 낯설었고, 코에 호스를 꽂아 간간히 천장과 창밖만을 응시하고 있던 그 는 필자를 보는 순간 간신히 손을 들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필자의 모습조차 건강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같아 민망 할 정도여서 조심스럽게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하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말하는 환자나, 듣는 필자나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첫 만남이었더랬다.


약 4시간여정도를 한 단어 듣고, 문장으로 만들어 되묻고 맞느냐고 확인하며, 그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당시 44세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라 배우지 못한 설움과 가난으로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단다.


구걸에서부터 시작해서 남의 집 머슴까지 해서 번 돈은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입고 싶은 것도 참고 술자리한번을 참석하지 않고 결혼은 생각지도 못한 채 그렇게 모은 돈이 2억 여 원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1살 연상의 여자를 만나게 됐는데, 그 여자 보는 낙으로 몸이 힘든 줄도 모르겠구나 싶었더니 췌장암 3기더란다.


자신이 입원해있는 그 시점에도 여자는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해주고는 있으나 뭔가 한 가지 이상하다고 했다. 그 여성이 일주일에 이틀정도만 자신의 옆에서 간호를 해주고, 나머지 4~5일은 사라지며, 연락을 해도 통 전화를 받지 않으니, 혹시 여성에게 다른 남자가 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필자를 잘못 찾은 것이다. 필자는 사건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며, 각종 소송 및 고소고발을 대비하는 의뢰인들의 편에서서 증거자료를 준비해주는 사람이지, 불륜현장을 잡기위해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사람의 입장에선 얼마나 간절했으면, 텔레비전에 인터뷰하는 그 한 장면을 보고, 어찌어찌 필자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연락까지 했겠는가. 잠깐 볼펜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설령 여성분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하면 어쩌시려는 계획이있는거냐구...


설마 잘살라며 평생 모은 2억 원을 축의금으로 내놓고 가시지는 않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지금까지도 필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은 평생 일만하고 꼬부려 잠만 잤단다. 하루에 한 끼만을 먹었단다.


병원에 들어와 처음 세끼식사를 먹어봤단다. 결혼도 안했으니 자식도 없고, 자신이 이 세상에 와서 잠깐 있다갔다는 증거, 아니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게 2억이다.


마지막 아니 처음으로 자신을 돌봐준 사람, 그것이 그 여성이라면 아깝지 않게 흔적을 남기고 싶은데, 그녀가 곧 저세상으로 갈 자신의 전 재산을 목적으로 며칠만 버티자는 심상이라면 고아원에 기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그녀가 진심이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녀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환자에게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못하고 병실을 나왔다. 설령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면, 그 환자의 병이 악화될게 뻔했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필자의 업무도 아니고, 들어 줄 수도 거절 할 수도 없는 그런 일이었기에 더욱 난감했다.


뻔히 목을 빼고 필자의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을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연락을 하자니 할 말도 없고, 안하 자니 그것 또한 인간적인 도리가 아닌 것 같고, 필자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빙빙 맴돌았다. 차라리 도망이라도 가서 외면하고 싶었다.


아침에 병원으로 가서, 정문 앞에 차를 세워 놓고, 정오가 될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망설이기를 닷새였고, 다시 사무실로 차를 돌리며 내일은 꼭 병실에 들어 가야지라며 수백 번을 다짐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필자는 그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았다. 깊게 호흡을 한 후 병실에 들어서려는 순간 등을 보이며, 그 환자 곁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 여자를 보게 되어 병실에 들어서지 않고 조금 떨어진 복도에 앉아있었다. 분명 지난번 말하던 그 여성일 텐데, 기력도 없으신 분이 그 여성 앞에 나타난 필자를 보고, 얼마나 당황하시겠는가.


복도에 앉아있었는지 30여분이 지났을 무렵, 그 여성이 필자의 앞을 지나가는데 순간 어찌나 황당했는지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그 여자는 분명 어제 1층 병원 앞 정문에서 봤던 그 여자였다. 흔치않은 주황색 가디건을 입고 있었고, 필자의 차 옆에 주차된 검정색외제 승용차 조수석에서 어떤 남자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고는 캔에 들은 음료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가글을 한 후 창문 밖으로 ‘퉤!’하고 뱉어 한마디 하려다, 말았던 그 여자였다. 내릴 때 했던 말도 기억난다. ‘자기야, 시간 맞춰서 와. 문자할게’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고민이라도 안했을 것을, 기억이 나지 않았다면 죄책감이라도 들진 않았을 텐데, 왜 하필 그 여성은 필자의 차 옆에 주차를 했으며, 단번에 눈에 띄는 주황색 가디건을 입고 있었던 건지, 음료로 가글을 하고 꿀꺽 삼켜버리던가 할 것이지, 왜 필자의 차를 향해 뱉어버려 기억에 남아있는지, 웃자니 슬프고, 울자니 황당한 그일 앞에 도무지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는 건지, 머릿속이 까마득했다.


필자는 고심 끝에 본 그대로를 편지로 적어, 간호사에게 아무도 없을 때 환자에게 전해드리라고 하고,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 후론 필자도 그 환자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그게 4년 전 일이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었고 안타까워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저 가끔 올해 마흔여섯이 됐겠구나... 건강하시겠지...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다. 햇살이 따사로울 때면 가끔 그 환자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이렇게 좋은 햇살을 지금쯤 어디서 보고 계실까라는 궁금함과 병원에 들어와 처음 세끼를 드셨다는 그분의 말이 너무 마음아파서이다.


어디에서든 좋은 곳에서 편히 살고 계시길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결혼도 하셨을 꺼라 믿고 싶고 예쁜 아들딸도 생기셨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하루 세끼가 아닌, 다섯 끼를 드실 만큼 건강하실 꺼라 오늘도 나는 믿고 싶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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