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창 강북 경찰서장이 강희락 서울시 경찰청장에게 한 방 날렸다. 나 물러난다. 너도 물러나라. 이렇게 말이다.
양쪽의 진실공방이야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기사내용만 보면 이렇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무리하게 실적위주의 승진제도를 운영해 경찰을 압박했다. 양천경찰서의 고문사건도 그 결과이다. 그게 채 서장의 말의 요지이다. 이런 주장에 발끈한 서울경찰청은 하극상이라면서 그를 즉각 직위해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랫사람이 절대로 윗사람에게 머리를 들이밀면 안 된다.
아무튼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강도살인범을 잡으면 70점, 살인범을 잡으면 50점, 방화 강간범을 잡으면 20점, 아동 강제추행범을 잡으면 20점, 뭐 이런 식이다. 한 마디로 방화강간범이나 아동 강제추행범은 잡아봐야 점수가 안 된다.
당연히 경찰은 점수가 안 되는 범죄 수사는 뒷전이고 점수가 되는 수사에만 매달리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양천서의 사건에서 보듯이 점수를 올리기 위해 혐의자들에게 가혹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하물며 멀쩡한 사람을 이리저리 얽어 범죄자로인들 못 만들까.
이런 승진제도 아래에서라면 아니 할 말로 일선경찰로서는 관할 구역에서 살인강도 사건이 많이 날수록 신이 난다. 줄줄이 승진할 기회가 생기니 얼마나 좋으랴. 반대로 치안상태가 좋아 강력범죄가 안 일어나면 그 동네 경찰은 전부 출셋길이 막힌다.
그런 동네는 경찰에겐 지옥이다. 그러니 일선경찰은 될 수 있는 대로 범죄를 사전예방하고 치안을 잘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 말아야 한다. 뭐 그렇게 된다. 희한한 셈법이다.
뜻이야 좋다. 강희락 경찰서장인들 좋은 뜻으로 그런 승진제도를 만들었겠지. 점수제도로 경찰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더 열심히 범인을 잡게 하겠다. 뭐 이런 뜻 아니었나? 그러나 뜻이 좋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이 정권 들어와서 모든 게 실적 위주로 운영된다.
교육도 그렇다. 교육부도 일제고사를 치러 학교를 서열화하고 선생들을 평가하겠다고 난리다(물론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학교들마다 학생들의 점수를 올리려고 정규수업은 뒷전이고 문제풀이에 바쁘다.
심지어 수업이 파한 후에도 학생들을 잡아놓고 예상문제를 풀게 한다. 한 마디로 교육은 뒷전이고 학생들은 문제를 푸는 기계가 된다. 이게 무슨 교육인가? 망국의 길이다. 그렇다고 학교나 선생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쩌랴.
경찰의 가장 중요한 일은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잡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예방조처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범죄가 없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이다. 그러니 당연히 예방치안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범죄자 검거에 지나치게 인센티브를 부과하고 그것도 범죄의 종류에 따라 차별화할 때 일선 경찰서에서는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정도는 상식적으로 아는 일이다. 한 마디로 강희락 시스템은 본말이 전도되었다. 그의 시스템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치안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조장하는 시스템이다.
교육현장이나 경찰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왜곡현상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시스템의 당연한 결과이다. 모든 것을 과정은 생략해버린 채 결과만 갖고 평가하는 해괴한 제도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괴물은 한강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해 들어와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경찰업무나 교육활동은 기업의 생산활동이 아니다. 기업이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만 많이 남기면 최고이다. 그러니 과정은 필요 없다. 오로지 결과이다.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없으면 퇴출감이다.
국가행정은 그렇지 않다. 교육은 교육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 평가는 교육행위가 기대만큼 성취되었는지 점검하는 수단이다. 평가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치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수단이 목적으로 전도될 때 교육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경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치안을 유지하고, 범죄가 일어났을 때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범죄자 검거에 초점을 둔 인사시스템은 경찰의 기능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기업체 고용사장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화근이다.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국가를 기업처럼 운영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국가는 이익을 남기는 기업이 아니고, 대통령은 대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해주는 최고 경영자가 아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 이명박. 그런 구호는 멋있기는 하지만 국가를 망가뜨리는 재앙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년 반이나 대통령의 직을 수행했으면서 아직도 국가경영과 기업경영의 차이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1년이상 잠복근무를 하면서 살인자를 잡았던 검찰청의 의형제 용담이나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오는 멋진 강형사를 이젠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
이래저래 동네북이 된 서울경찰청장이 불쌍하고, 책임은 최고 오야붕이 져야 하는 것 아닌지. 마치 대대장이 연대장보고 같이 그만두자는 형국인데, 이런때는 사단장이 먼저 그만두는 것이 상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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