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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유의 전설 '라이언 긱스' |
세계적으로 하루에도 수천, 수만명의 축구를 꿈꾸는 유망주들이 배출되며 반대로 수천, 수만명이 선수생활을 접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6개의 프로팀이 존재하고 선수만 해도 700여명에 달한다.
축구협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선수는 초등학교 팀을 비롯해 총 2만여명에 달한다.
세계로 눈을 넓혀보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수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 선수들 중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유명선수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유명선수들 중에서도 데뷔당시 큰 관심을 받았거나 실력은 훌륭했으나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거나 부상, 감독과의 불화, 자기관리 실패 등 수많은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잊혀져간 선수들도 부지기수다. 팬들 역시 실력 있는 선수들이 사라져갈 때마다 아쉬워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축구선수로써 꿈을 키워 어릴적부터 오로지 한길만 매진한 그들.
이제는 가끔 그들을 기억해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선수로써 화려하게 꽃 피우지 못한 비운의 축구스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도 팬들에게 잊혀진 많은 선수들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김병수 선수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박주영 등 많은 선수들이 축구천재로 불렸지만 일부 축구팬들의 경우에는 당연하듯이 진정한 축구천재는 김병수 선수라고 말한다.
‘전방으로 찔러 넣는 정확한 패스’와 ‘천부적인 득점감각’, ‘문전 앞 직접 프리킥 성공률 90% 이상’, ‘진정한 멀티플레이어’ 그의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을 만큼 90년대에는 한국축구의 희망이라고 까지 불렸다.
80∼90년대 당시 김병수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된 게임메이커의 부재를 단숨에 해결할 인재로 지목될 만큼 한국 축구의 미래이자 희망이었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 첫 외국인 감독인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은 “축구인생 50년 만에 만난 천재다”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시작처럼 그렇게 화려하지 만은 않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국 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수상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으며 대학시절에도 현재 한국축구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홍명보보다 먼저 1학년 때 A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그때만 해도 그의 미래는 탄탄대로를 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축구계는 체계적인 선수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무릎과 발목에 큰 부상을 당하고도 얼음찜질 몇 번에 주사 한 두 대 맞고 경기에 계속 참가하다보니 그의 몸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돼버렸고 이탈리아 월드컵 직전 다리의 통증이 심해져 대표팀에서도 박탈당하게 된다.
그 이후 허송세월을 보내던 그에게 크라머 감독이 희망의 불씨를 제공하면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에서 승리를 견인하며 다시 한 번 재기하는 듯 보였지만 아쉽게도 부상당했던 다리가 다시 말썽을 일으키면서 올림픽 본선무대에는 진출도 하지 못하고 다시 아쉬움은 남겨야 했다.
결국 그는 부상으로 세월을 허비하다가 93년 우여곡절 끝에 일본 실업리그 코스모석유에 입단했지만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쓸쓸하게 축구계를 떠나고 말았다.
그는 현재 축구선수로써 펼치지 못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교 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병수 선수 외에도 또 한명의 잊혀지지 않는 선수가 있다. 바로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축구대회 4강 신화의 주인공 김종부 선수다. 김종부 선수는 더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축구선수로써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잊혀진 선수 중 한명이다.
그는 멕시코세계청소년축구대회가 끝날 무렵만 해도 화려한 인생을 예고했다. 당시 2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국축구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 할 것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6년 예상치 못한 스카우트 파동에 휩싸이며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저 그런 선수로 머물다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당시 프로계약에 대해 잘 모르던 그는 현대와 계약을 한 채 대우 유니폼을 입고 친선경기에 출전하면서 1년 출장정지와 함께 소속 대학교에서 제명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팬들에게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이밖에도 우리나라에는 많은 선수들이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선수들 중에서는 고종수, 이관우, 윤정환 등이 대표적인 불운의 스타라 할 수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들 모두가 축구천재로 이름을 날리며 90년대에 활약했던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이 중 ‘앙팡테리블’ 고종수는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가 아닐 수 없다. 고종수는 축구 명문인 광주 금호고를 시작으로 해서 프로팀 수원을 거쳐 국가대표에서까지 활약하며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다.
전성기 시절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프리키커로까지 칭송받으며 기술축구가 정착하지 못한 90년대 기술축구의 가능성을 열어준 선수이기도 하다. 박지성이 부각되기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진출해서도 비록 16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런 그도 부상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2002년 한국의 영광 한일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그는 2001년 당한 십자인대 파열이 번번이 그를 괴롭히며 축구 인생은 급격한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고 언제 유명선수였냐는 듯이 점차 투명인간 같은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는 결국 2008년 대전에서의 선수생활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현재는 고등학교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하며 화려한 2막을 예고하고 있다.
정확한 패스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던 윤정환과 최고의 테크니션 중의 한명인 이관우 역시 잦은 부상과 체력저하 등으로 인해 스타로 거듭나지 못하고 국내용이란 소리를 들으며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한 불운의 ‘축구천재’로 남게 된다.
2000년대 들어서도 비운의 스타는 여전히 존재한다. 고종수와 같이 유소년 시절부터 엘리트코스를 거치고 국가대표는 물론 유럽무대까지 진출했던 이천수 선수를 들 수 있다.
이천수의 특이한 이력은 부상으로 인해 하향세를 탔던 다른 선수들과 달리 팬들에게 외면을 당해 잊혀진 선수라 할 수 있다. 이천수는 우리나라 역대 축구선수 중 가장 많은 사고와 구설수에 오른 선수로도 손꼽힌다.
한때 한국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던 그는 현재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재도약을 노리고 있지만 ‘입천수’란 별명까지 붙을 정도의 튀는 언행과 행동 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과오로 인해 팬은 물론 지도자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 다시 대표팀으로 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선수들을 제외하고도 우리나라에는 백승철, 성한수, 양현정, 조원광 등 수많은 선수들이 축구천재로 불렸지만 모두 부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비운의 선수로 남게 됐다.
해외에도 그러한 유형의 선수가 적지 않다. 특히 세계최고의 축구선수라는 명성을 얻으면서도 정작 월드컵 본선엔 단 한번도 출전하지 못한 불운의 선수들도 다수 있다.
현재 박지성과 함께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살아있는 전설 라이언 긱스도 그런 선수 중의 한명이다.
올해로 35살을 맞이하는 긱스는 노장임에도 아직도 맨유에서 든든한 기둥으로 활약을 하고 있다. 그는 맨유에 몸담고 있으면서 리그 우승을 무려 8번이나 했으며 유럽최대의 축구축제인 챔피언스 리그에서 2번이나 우승을 거머쥔 명실상부 영국축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지만 월드컵 무대는 단 한차례도 올라보지 못한 최고 비운의 스타이다.
긱스는 나름대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그를 평생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아버지가 잉글랜드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잉글랜드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지만 그는 모든 축구인의 꿈인 월드컵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나라인 웨일스를 선택하게 된다.
그의 능력을 아까워한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어렸을 적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그를 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는 끝내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만약 긱스가 잉글랜드로 귀화해 대표팀에서 활약했다면 월드컵의 역사는 새롭게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명의 대표적인 선수는 축구 팬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공격수 조지웨아를 꼽을 수 있다. 라이베리아 출신인 그는 유럽리그에서 활약하며 1995년 올해의 유럽 선수상(발롱도르),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은 물론 현재까지 유럽과 남미 국적이 아닌 유일한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싹쓸이했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거머쥔 경험이 있지만 나라가 약소국이란 이유로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는 불운의 선수다.
맨유의 영원한 등번호 7번 조지베스트도 유럽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지만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아쉽게 월드컵 무대에 한번도 진출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화려한 이력에 걸맞지 않게 월드컵 출전 경험이 전무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축구천재로 이름을 날리며 뛰고 있지만 부상과 국적으로 인해 불운한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활약을 펼치지 못하는 선수도 상당히 많다.
결국 이 대부분의 선수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그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하는 불행도 함께 하고 있다. 아직도 축구를 꿈꾸는 많은 유망주들이 좌절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비운의 스타’가 아닌 ‘행운의 스타’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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