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수목극 '로열패밀리'(극본 권음미, 연출 김도훈)가 최근 새롭게 선보인 드라마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내며 강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지난 10일 종영한 SBS TV '싸인'에 밀려 1-4회가 방송되는 동안 시청률은 단 자리에 머물렀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재벌가의 호화로운 생활과 그 이면에 감춰진 비밀스러운 삶, 치부에 돋보기와 현미경을 동시에 들이댄 '로열패밀리'는 세련된 구성, 배우들의 명연기,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어우러져 매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몸에 좋은 성분은 하나도 없지만 혀끝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맛과 매력이 있다.
재벌 이야기는 흔하다. 현재도 안방극장에서는 MBC '욕망의 불꽃'과 SBS '마이더스' 등이 재벌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로열패밀리'는 이들과 격이 다르다. 상속을 둘러싼 형제들의 암투, 자신들만의 왕국을 지키려는 재벌가의 견고한 울타리, 불륜과 탈선, 출생의 비밀, 고고함 뒤에 숨겨진 인간적 고뇌 등 여느 재벌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요소는 물론 두루 갖췄다.
그런데 그 풀어내는 방식에서 세련미가 흘러넘친다. 뭐든 한 발 더 나갔다. 마치 기성복과 맞춤복의 차이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세공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는다. 미장센과 편집에서는 치밀함이 드러나고 배우들의 연기에서는 '악'소리가 난다. 속도도 빠르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도 질질 끄는 게 없다.
무엇보다 그룹의 회장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이 방점을 찍는다. JK그룹 공순호(김영애 분) 회장은 강한 카리스마로 아들과 며느리들을 한손에 휘어잡으며 '미실' 뺨치는 공포정치를 펼친다.
여기에 스릴러를 가미한 점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도를 활짝 키운다. 주인공 김인숙(염정아)의 정체, 한지훈(지성)과의 관계가 손에 잡힐 듯 말듯 아슬아슬한 재미를 주며 뒤를 쫓게 한다. '로열패밀리'에 비하면 '마이더스'와 '욕망의 불꽃'은 신분상승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단선적으로 그리고 있는 셈이다.
로열패밀리의 삶을 해부하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 JK그룹 공순호 회장은 유력 대통령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대신 JK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을 묵인해주겠다는 비밀 약속을 받아낸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이런 약속에 관한 서류를 주고받는 자리는 기업 사무실도, 호텔룸도 아니다. 미국행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 안이다. 모든 눈을 피하기 위해 둘은 땅이 아닌 하늘 위에서 사인을 주고받는다.
JK그룹은 며느리들에게 모유수유를 금한다. 그 이유는 뭘까.
JK그룹의 막내딸 조현진(차예련)은 "가슴 모양 망가지잖아. 우리 엄마한테 며느리는 애 엄마가 아니라 아들들의 노리개거든"이라고 말한다. JK그룹 사람들은 '평민' 출신 둘째 며느리 김인숙에 대한 경시를 단순한 무시나 구박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아예 이름도 부르지 않고 영문 이니셜을 따 'K'라고 지칭하고, 그를 금치산자나 정신병자로 몰아 그룹에서 내쫓으려 한다.
또 JK그룹에서는 그룹과 가문의 비밀이 누설되면 누구나 의심받으며 회장의 수하들에 의해 각자의 집을 수색당하고, 그룹 며느리들은 사업 아이템 경쟁을 통해 시어머니인 회장의 테스트를 받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이들은 가족이 아니라 매 순간 그룹 후계자 자리를 놓고 암투를 벌이는 경쟁자다. 당연히 그 경쟁 속에서 따뜻한 가족애는 실종됐다.
고아 출신 자수성가형 변호사 한지훈은 JK그룹 막내딸 조현진(차예련)에게 말한다. "난 고아고 넌 재벌인데 둘 다 가족이 없다. 그래서 둘 다 불쌍한데 더 정확히는 네가 더 불쌍하다." 조현진은 한지훈의 비밀의 후원자가 집안에서 무시당해온 자신의 둘째 올케 김인숙임을 알게 되자 충격과 함께 이런 말을 내뱉는다.
"우리에겐 너희들의 신파를 이해할 뇌구조가 없다."
조현진은 "10살 때 보스턴 학교로 홀로 보내졌는데 맹장이 터져서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를 했더니 우리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영어로 얘기하래. 그래서 난 울면서 영어로 아프다고 얘기했어. JK그룹은 허튼 돈 쓰지 않아. 우린 그렇게 살았어"라는 말로 화려할 것만 같은 로열패밀리들의 치열한 삶을 요약한다.
명품연기에 엔도르핀 솟아나
코미디도 아닌데, 심지어 심각한 이야긴데도 '로열패밀리'를 보면 엔도르핀이 절로 솟아난다. 배우들의 명품연기 때문이다. 특히 공순호 회장을 연기하는 김영애의 서슬 퍼런 카리스마는 신선함마저 전한다. 환갑으로 접어든 이 노련한 배우가 뿜어내는 꽉 차고 세련된 파워는 풋풋한 청춘스타가 뿜어내는 매력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김영애의 재조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이 드라마에서 존재감을 강하게 발산하며 드라마 속 재벌가 오너의 또 다른 모습을 창조해냈다.
여기에 유력 대통령 후보 부인 오미희와 JK그룹 첫째 아들 내외인 안내상, 전미선의 완숙한 연기, 극의 주인공인 염정아와 지성의 하모니 등이 어우러져 드라마는 어디 하나 버릴 게 없는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로열패밀리'는 재벌 2세와 결혼한 평범한 여인이 온갖 풍파 끝에 재벌 총수에 오르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그릴 예정이다. 과연 끝까지 지금의 매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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