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역사소설 - 김시습의 수락잔조(水落殘照)(2)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2-07-31 10:51:09
  • -
  • +
  • 인쇄
“제 스승님은 스님이고 설준 스님은 스승님의 스승님이시니 제게는……”
“그 웃음은 무슨 의미냐?”“스님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분이십니다.”“뚱딴지 같이 알 수 없다니!”“다른 스님들은 시주에만 의존하려드는데 스님은 반드시 직접 농사짓는 일을 호구지책으로 삼으시니 말입니다요.”
“네가 방금 호구지책이라 했더냐?”“왜요, 틀렸습니까요?”
“보기보다 유식하구나, 호구지책도 알고.”“스님 따라 다니다보니 그 정도는 압니다요.”

은근히 으스대는 만득을 쳐다보는 시습의 눈빛이 은은했다.“만득아. 사람이 살아가는데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게 바로 노동이니라. 호구지책 중에서도 노동이 가장 신성하니,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느냐.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비결이 엄연히 있는데도 그저 남의 곳간이나 넘보며 편안히 지내려 하니 땡중이라는 소릴 듣는 거 아니겠느냐.”

“제가 스님을 존경하는 이유입니다요.”“힘들다고 투정부리는 게 아니고 말이지?”“그러면요. 저도 이제는 스님의 일이라면 이골이 났습니다.”

내색한 적은 없지만 만득의 꾸밈없는 마음을 시습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시습이 은근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만득이 어쩔 줄 모르며 긴장했다.

“왜 그러세요, 스님.”
“왜긴. 여차하면 네놈 머리 깎아줄까 싶어 그러지.”
“이대로도 좋고 깎아주셔도 좋고.”“뭐라!”“스님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요.”
“중이 되지 않겠다는 말이냐?”
“중이 되고 말고를 떠나서…… 그리고 중이 되어서도 농사짓는다면 그게 그거 아닌가요?”
“허허, 그놈 말 좀 보게.”
“그런데요, 스님.”
“왜?”“저……”“왜 말을 하다 마는 게냐?”
“스님께서는 왜 수염은 깎지 않으시는지요, 머리는 깎으면서.”
“그러니까 말이다.”

시습이 말을 하다 빙긋이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다독이며 주위를 둘러보자 만득이 남아 있는 개구리를 마저 먹으며 시습의 입을 주시했다.

“맛이 어떠냐?”
“네! 어찌 답은 주시지 않고 엉뚱한 말씀만 하십니까요?”“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함이고 수염을 깎지 않는 것은 장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제 됐느냐?”

만득이 시습의 머리와 수염을 살피며 연신 입을 놀렸다.

“맛이 어떠냐니까?”“누가 맛으로 먹나요. 그저 허기지니 고맙다 하고 먹는 거지요.”
“예끼, 이놈아. 어서 먹고 움직이자꾸나.”


수락산 나들이

시습이 노원 상계(上契, 현 上溪洞) 수락산 중앙 부근 계곡 초입에 터를 잡고 정자를 짓기 시작했다. 정자가 거의 완성될 무렵 양주 관아를 방문하여 농사지을 땅을 불하받고 한가한 시간을 틈타 수락산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우선 가까운 곳부터 방문하고자 산 서쪽에 위치한 은선암을 찾았으나 그곳은 거의 폐허였다. 터를 대충 살피고 바로 학림사로 걸음을 옮겼다.

“주지 스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아라.”

학림사에 도착하자 만득을 들여보내고는 절과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수락산 산세처럼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풍겼다. 마치 학이 알을 품은 듯한 학포지란(鶴抱之卵)의 형세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학림사는 일찍이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이어 고려 말 공민왕시절 나옹화상 혜근이 수도하였다 해서 널리 알려진 절이었다.

공민왕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지난 시절 관서지방을 여행했던 일을 떠올렸다. 임진강을 건너 호곶을 지나 처음 머물렀던 곳이 송도였다. 곳곳에 남아 있는 고려의 흥망성쇠의 잔재들을 살피며 인간사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아울러 스스로 무덤을 판 형국인 공민왕의 방탕한 삶이 주는 교훈을 마음 깊이 새겼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저도 모르게 손이 모아졌다.

합장하고 상념에 빠져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눈을 뜨니 만득이 한 노스님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시습이 급히 다가가 노스님에게 공손히 합장했다.

“소승, 설잠이 스님을 뵈옵니다.”예를 마치고 주지스님을 본 시습의 가슴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목젖까지 솟구쳤다 다시 내려갔다. 티 없이 맑은 외모며 그윽한 눈빛에서 자신의 스승인 설준이 순간적으로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시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이곳의 주지 묘청이라 합니다.”

주지스님의 친절한 안내로 거처에 들자마자 작설차를 내놓았다.

“향이 참으로 좋습니다.”“설잠 스님이 재배한 차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요.”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소승은 그저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소승 비록 산중의 몸이지만 설잠 스님의 다도에 관한 이야기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제게 다도를 가르쳐주신 스승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설준 스님이라 알고 있소만.”“어떻게 그분을 아십니까?”“지금 조선에서 그분만큼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스님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단지 요사이……”“말씀하시지요.”“아주 곤궁한 입장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혹시 아시는지요?”
“곤궁한 입장이라니요?”“말하자면 구설에 휘말린 게지요.”


구설이라는 말에 시습이 잠시 긴장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합장했다.

“아는 일만이라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주지스님은 연신 확실하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이야기의 대략은 설준 스님이 경녕군(태종의 제 일 서자) 이비의 아들 이치의 부인과 구설수에 휘말렸다 했다. 즉 이치의 부인이 자신의 서방이 죽자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설준 스님과 연정을 나누게 되었고, 문건으로 과도한 시주까지 약속했다는 내용이었다. 주지스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습이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구설은 말 그대로 구설일 뿐이지요.”“설준 스님께서는 물욕뿐만 아니라 마음의 욕심까지도 초월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에게 어찌 말도 안 되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혹여 모종의 계략은 아닌지 근심됩니다.”“조정에서 서서히 불교를 탄압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런 말이 벌써 이 정도로 퍼졌다면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입니다.”
“탄압이라 하였습니까?”
“점점 더 그런 분위기를 유도하리라 생각됩니다.”

시습의 말에 주지스님이 합장했다.

“그건 그렇고 이 산 중간 계곡에 매월정이라는 정자를 세우셨다면서요?”“스님께서도 들으셨습니다.”“사람들이 오가며 들려주었습니다.”“거창하게 정자라 하여 부끄럽습니다만 이 한 몸 편안히 누일만한 곳으로는 충분합니다.”
“근일에 방문해볼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찾아주신다면 소승이야 영광입니다.”

잠시 주지스님과 일상에 대한 이러저런 대화를 나누고는 시습이 공손히 합장했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수락사 수락사는 지금의 흥국사를 지칭한다. 599년, 신라 진평왕 21년에 원광이 창건하고 수락사라 하였다. 이후 1568년에 덕흥대군(중종의 아들)의 원당을 짓고 흥덕사(興德寺)로 개칭했다가 1626년에 중건과 함께 다시 흥국사로 불렸다.
로 방향을 잡으려합니다.”

주지스님이 절 입구까지 배웅 나와 수락사 가는 길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시습이 거듭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는 만득을 앞세웠다.

“내일은 정인사에 가야겠다.”“정인사요?”“가서 스승님을 뵈어야겠구나.”

만득이 스승님을 되뇌다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스님!”“어서 앞서지 않고 또 왜 그러느냐?”
“스님에게 스승님이면 제게는 어떻게 됩니까요?”
“뭐라!”

시습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만득을 쳐다보았다.

“제 스승님은 스님이고 설준 스님은 스승님의 스승님이시니 제게는……”

시습이 만득의 말을 되새기고는 파안대소했다.

“왜 그러신데요?”“이놈아, 너는 내 제자니 스승님에게는 그야말로 손자 제자 아니겠느냐?”
서서히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손자 제자요?”
“자고로 부모와 스승은 하나라 하지 않았느냐. 너는 내 제자이고 나는 설준 스님의 제자이니 네게는 스승 할아버지가 되신다, 이 말이다.”

만득이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왜 그러느냐?”“좋아서 그러지요.”“그렇게도 좋으냐?”“당연하지 않습니까. 손자 사랑은 할아버지라는 말도 있잖습니까요.”
“허허, 그놈. 잔머리 하고는.”

시습이 심드렁하니 헛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만득아!”“예, 스님.”“나와 함께한지가 몇 년이냐?”“여러 해 되는 걸로 알고 있는뎁쇼.”“여러 해라.”
“그건 왜요, 스님?”“이제 보낼 때가 되어 그런다.”“보내다니요. 어디로 말입니까요?”
“네 할아버지께 말이다.”“왜 놀리십니까, 스님. 천애고아인 제게 할아버지가 어디 있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내 스승님이 네게는 할아버지라고.”
“예!”
“그래. 내일 스승님을 찾아뵈면서 너를 부탁하려 한다.”
“이제는 제가 귀찮으십니까?”
“스승께 네 머리를 부탁하려는 거란다.”
“그러면 저를 버리신다는 말씀은 아니네요?”“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누가 누구를 버린다는 말이냐.”

만득이 시습의 말의 의미를 헤아리는지 묵묵히 학림사 주지가 알려준 대로 길을 잡아갔다. 학림사에서 수락산 끝자락으로 방향을 틀어 언덕을 넘자 주지가 말한 대로 별지면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길 한 쪽에 수락사라고 써진 절의 푯말이 오롯이 서있었다.

그 푯말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어 조금 오르자 학림사보다 커 보이는 절이 시선에 들어왔다. 시습이 초입에 서서 절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대웅전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고 그 옆에는 성전(聖殿)이라 써진 현판을 머리에 인 아담한 건물이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성전으로 다가갔다. 의외로 그곳에는 바둑을 두는 두 노인을 중심으로 여러 노인들이 둘러앉아 훈수를 두고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아도 스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습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헛기침하자 훈수 두던 노인 중 한 사람이 시습을 쳐다보았다.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