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판단으로 계속 번영할 수 있기를”

최형선 칼럼리스트 / 기사승인 : 2012-11-30 17: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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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선의 새롭게 하소서> ‘달러를 접수하다’ 소통이 결코 악을 이해하고 편드는 것은 안돼
잘못된 세력으로 세상이 뒤집히는 사태는 막아야


가을이 오면 노랗고 붉게 물든 나뭇잎들을 보게 된다. 화려하고 예쁜 색깔에 반해 넋을 잃고 쳐다보노라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측은함이 마음에 일어난다. 사실 색깔이 그렇게 변한다는 것은 나뭇잎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니 말이다.

세상에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뭔가 수고를 해야 하고 뭔가 대가를 치러야만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인생들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쇼핑이 이뤄지는 날이라고 해서 11월 마지막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다음날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한다. 이 날은 연말 쇼핑의 시작이자 최대 쇼핑이 이뤄지는 날이다. 블랙이라는 말은 연중 처음으로 장부에 적자(red) 대신 흑자(black)를 기재한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날부터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세일이 시작된다. 이 기간에 미국 연간 소비의 3분의 1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상점들이 이날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엄청난 가격 세일도 한 몫 하는데 이런 할인 행사가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기 때문에 말도 많다.

현재 미국은 재정절벽(Fiscal Cliff)공포가 가시지 않은 상황인데 미국 의회가 새로운 법을 제정하지 못할 경우 2013년부터 세금인상과 정부예산 삭감이 뒤따르게 되고 경제 전반도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미국이란 국가가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고 압제와 인권 유린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롤 모델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샀고 또 엄청난 경제 호황을 구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그들의 삐뚤어진 잣대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만 소리를 내는 정책이 계속되면서 세계인들은 이제 미국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보여주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자는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이다. 그는 도박에 빠져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로부터 풍족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도박과 유흥으로 재산을 탕진한 후 생계를 위해 펜을 들었다.

별 기대 없이 쓴 첫 번째 소설 ‘노란 방의 미스터리’가 대박이 나면서 두 번째로 쓴 소설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의 소설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너무 공포스럽고 현실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쓴 이후의 소설들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인생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웨버가 이 작품에 러브라인을 살리면서 뮤지컬로 화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영화로도 성공한 이 소설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나도 여러 번 영화를 보았는데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너무 공포스럽고 현실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 작품이 러브 라인이 삽입되면서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로 변모하게 된 것은 아픔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아픔이 사랑과 결합될 때 사람들은 공감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다. 굶주린 손자를 위해 빵을 훔친 노인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법정에서 노인은 10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런데 눈길을 끌었던 이상한 판결은 노인이 빵을 훔치도록 내버려 둔 도시를 탓하며 뉴욕시장도 같은 벌금을 스스로에게 내렸고 법정에 온 방청객에게도 각각 50센트의 벌금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 노인은 결국 47달러 50센트를 들고 법정을 나왔다.

인생에서 원칙과 공의를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에게 감동과 덕을 끼치는 일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인은 그 후로 결코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세상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눈을 가지느냐에 따라 세상을 아름답게 재창조할 수도 있다. 즉, 공감을 기반으로 우리는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고 소통을 통하게 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소통이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소통이 좋다고 하지만 결코 악을 이해하고 편드는 것이어선 안 된다.

영국 청교도 혁명 때 혁명파 수장 올리버 크롬웰에게 자금을 지원했고 명예혁명으로 윌리엄 3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도 그에게 군자금을 지원했던 이들이 유태인들이었다. 그들은 결국 영국에서 화폐발행권을 얻어냈고 1694년엔 잉글랜드 은행을 설립했다.

유태인들은 과거 전 유럽을 아우르는 금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구축했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태인 가문인 로스차일드 가문은 로스차일드 은행을 설립했다.

이 가문은 이후 유럽 전역에 진출하게 되는데 로스차일드의 첫째 아들인 암셀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둘째 아들 잘로몬 로스차일드는 오스트리아 빈, 셋째 아들 네이선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영국 런던, 넷째 아들 카를 로스차일드는 이탈리아 나폴리, 다섯째 아들 제임스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프랑스 파리에 각각 진출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875년 수에즈 운하 건설에 드는 돈을 융자해 주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영국 정부에 영향을 주어 유대 국가 건설을 약속하는 밸푸어 선언을 유도했다. 유럽 전역에 반유대주의가 휩쓸자 로스차일드 가문은 스펜서 모건과 그의 아들이자 훗날 모건 은행을 설립하는 존 피어폰 모건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1850년 전후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6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할까? 로스차일드가는 아마도 50조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럽의 금융계를 장악한 로스차일드가는 미국에 연방은행을 설립함으로써 미국의 금융시장도 접수했다.

건국 초기에 영국과의 전쟁으로 국가 채무가 증가하자 어쩔 수 없이 워싱턴 대통령이 시한부로 승인한 중앙은행이 마침내 1913년 연방준비은행으로 바뀌면서 미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로스차일드가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미국 정부의 화폐발행권을 되찾으려고 시도했던 대통령들은 결국 저격을 당하거나 암살을 당하는 불행한 역사가 지난 세기 반복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다. 일곱 명의 대통령이 죽었고 수많은 국회의원이 죽었으니까 말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외교협회, 빌더버그 클럽 등 영향력 있는 국가의 명사와 귀족들로 구성된 국제 사교클럽에 운영자금을 대면서 여러 나라에 정치자금을 대고,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책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세계 주요 언론과 출판사, 교육기관 등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철저하게 자신들의 의도를 은폐하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은 가차 없이 제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화폐를 발행하면서 엄청난 고리대금을 받아내던 가문이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분명 지탄을 받아야 한다.

잘못된 세력으로 인해 세상이 뒤집힐 수 있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도 선거를 하는 것이다. 부디 현명한 판단으로 대한민국이 계속 번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최형선 프로필

- 現 tecoion 컨설턴트 / 강사
- ‘영문 technical writting 지침서’ 집필
- isis korea 번역 및 리뷰 담당
- ‘tesco design center’ technical writer역임
- brooks automation software technical writer 역임
- 臺灣, 日本, 싱가폴, 한국서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
- 하이닉스(hynix) 반도체 자동화 프로젝트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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