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역사 인물, 신수근

황천우 작가 / 기사승인 : 2013-12-20 13: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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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역사읽기 [일요주간=황천우 작가] 조선왕조실록 영조 51년(1775) 8월 기록이다.
『‘고금동충’이라는 4자를 써서 신수근의 사우에 걸도록 하다
임금이 ‘고금동충(古今同忠)’이라는 4자를 써서 내려 주고 이르기를,
“신수근은 포은(정몽주)과 충의가 같다.”
하고, 호조에 명하여 사우를 만들어 주고 그 곁에 각을 세워서 이것을 새기어 걸게 하라고 하였다.』

조선조 영조 임금이 고려 시대에 정몽주가 있었다면 조선 시대에는 신수근이 있어 자랑스럽다고 했다. 아울러 그에게 믿음의 지존이라는 의미의 신도(信度)라는 시호를 내린다. 그런데 정몽주는 누구나 알고 있는데 반해 신수근이란 인물은 현대에 상당히 생소하다.

ⓒNewsis
그 사유는 이외로 간단한다. 정몽주는 고려라는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한데 반해 신수근은 표면상으로 살피면 한 개인 그것도 조선 최고의 폭군이었던 연산군에게 충성한 것으로 살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수근의 이면을 살피면 단순히 연산군 개인에게 충성한 게 아니었다. 하여 그 진실을 알게 된 영조가 상기 실록의 기록처럼 사우를 만들어주고 또한 편액까지 하사한다. 그 사연을 살펴보자.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폐비 신씨의 오빠)이며, 중종의 장인(단경왕후의 아버지)이었다. 흘낏 살피면 신수근의 처지가 참으로 곤란하리란 사실이 한 눈에 살펴진다.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으니 말이다.

이 과정에서 신수근이 보인 처신을 살피면 그가 지향했던 충성의 의미가 드러난다. 먼저 반정이 일어나기 2년 전 일이다. 연산군의 총애를 받던 우의정 강귀손이 신수근을 방문한다.

아울러 그 자리에서 누이와 딸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지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물론 연산군과 진성대군(중종) 중에서 선택하라는 말로 그 의미를 헤아린 신수근은 오로지 명석한 세자(연산군의 장남 이황)를 믿겠다 대답했다.

이와 관련하여 신수근이 정말 개인 연산군에게 충성을 다했다면 이 사실을 고해야 했다. 그러나 신수근은 고변하지 않고 홀로 마음속에 감추었다. 본인 역시 장인과 처남 등 처가 일족이 죽임을 당했을 정도로 연산군의 폭정을 인정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이어 반정에 앞서 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이 다시 신수근을 방문한다. 역시 반정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단호하게 거절한다. ‘내가 이미 연산군을 임금으로 섬겼는데, 매부를 폐하고 사위를 보위에 올리는 일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내 목을 베라.’고.

이 대목에서 신수근의 충의 본질이 잘 드러난다. 폭군이지만 한번 임금으로 섬겼는데 결코 그를 배신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구로 일관한 사실은 연산군의 폭정과 반정의 필요성을 동시에 인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정의 정황을 살피면 바로 입증된다. 반정이 있기 10여일 전 이미 연산군도 반정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여 그 유명한 장녹수와 전비에게 목숨 보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정도였다. 아울러 반정이 있던 날 연산군 곁에는 그 어누 누구도 없었다.

신수근은 반정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연산군에게 고하지 않았고 또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일은 단지 그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선택은 그의 일족 아울러 그 딸의 운명, 대역죄인의 딸로 폐비됨, 까지 뒤바꾸어버리는 일이었음을 알고 있던 그의 충성은 단순히 연산군에 대한 마음으로 보기보다는 한 인간의 의리 차원에서 바라봄이 바람직하다 사료된다.

하여 시호를 받음에 조선조 실학의 거두 성호 이익이 축하 서문을 작성한다. 그의 문집인 ‘성호전집’에 실려 있는 글의 일부다.

『도는 굽혀도 펴지지 않음이 없고 일은 혹 지체되더라도 기다리면 이루어진다. 선을 드러내고 악을 배척하는 것은 하늘의 밝음이요 이익을 도모하느라 의를 가리는 것은 사람의 미혹됨이다.

사람이 혹 일시적으로 뜻을 이루어도 하늘은 반드시 영원히 정해 놓는다. 그러므로 충성스러운 지사는 큰일을 당하여 큰 절개를 세우니, 위무(威武)로 겁박하여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과 친족이 파멸당해도 또한 애석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온 세상이 떠들썩하여 그 시비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채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함몰되어 버리기까지 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후생들로 하여금 후일에 시끄럽게 논의하게 한다.

그러나 저 충성스러운 지사의 밝은 마음은 조용히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끝내 때가 되면 한 번에 발현된다. 비유하자면, 곧은 소나무의 정기가 흙 속에 묻혀 있으면 그 위에 덩굴풀이 자라나고 소, 양, 여우, 토끼가 뛰어다니며 밟아 대는데, 어느 날 아침에 우연히 농부나 목동이 발견하면 천 년을 묵어 복령(茯?)이 된 것은 장수할 자가 복용하고 이천 년을 묵어 호박(琥珀)이 된 것은 왕공(王公), 대인(大人)이 찾아내어 보물로 소장하니, 또한 끝까지 묻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근세에서 찾아보면 상공 신모(愼某, 신수근)와 같은 분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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