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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일처제인 우리나라.
그렇다보니 죽거나 이혼하는 등으로 헤어지기 전까지 남편과 아내는 여러 가지로 서로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한 명뿐이라는 절대적인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서로 다정하게 지낼 때는 물론, 끊임없이 다투는 등 서로 세상에 다시없을 원수인 듯 지낸다고 해도 역시.
뿐만 아니라, 일찍 죽더라도 배우자가 재혼만 하지 않는다면 그 절대적인 의미와 가치는 계속될 것인데, 그래서 사람은 결혼과 동시에 절대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진 존재, 즉,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결혼과 상관없이, 자식을 낳아도 사람은 곧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왜냐하면, 부모란 자식에게 도무지 말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더구나 죽어도 결코 바뀔 수 없는 절대적인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다 보니.
(자식이 부모의 다툼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자식에게 부모의 다툼이란 사람과 사람의 다툼이나 남자와 여자의 다툼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존재와 어머니라는 절대적인 존재의 다툼이니)
따라서 배우자나 자녀와 함께 있을 때 사람은 늘 절대적인 존재로서 살게 된다고 이해하면 정확하다.
이제까지 가족 등 주변사람들뿐 아니라, 뭇사람들에게도 잔뜩 시달리면서 살아온 흔한 천덕꾸러기 중 한명이며, 배우자와 자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무시당하는 흔한 천덕꾸러기 중 한명일 뿐이라고 해도.
또, 남들뿐 아니라, 아내나 남편조차 이 세상에 숱하게 많은 그저 흔한 남편이나 아내 중 한명이라고만 생각하고, 자녀 역시 이 세상에 숱하게 많은 흔한 아버지나 흔한 어머니 중 한명이라고만 생각한다고 해도 예외 없이.
비록, 배우자나 자녀 등 겨우 몇 사람의 절대적인 존재일 뿐이지만.
이런 까닭에, 결혼과 출산이란 사람이 절대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진 존재가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수천만 명이나 수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각 가문의 시조들이 그렇듯이, 다행히 후손이 멸종하지 않고 계속해서 번성한다면 당연히 이렇게 될 것이니.
물론, 그중에는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후손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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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혼으로 인해 자신이 절대적인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됐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모른다면 사람은 자신을 그저 숱하게 많은 남편이나 아내 중 한명이라고만 생각하기 매우 쉽다.
즉, 자신을 흔한 남편이나 흔한 아내 중 한명으로만 여기기 매우 쉬운 것이다.
아내나 남편은 이 세상에 다시없을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또, 매우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해도, 아직까지 자신이 자식들에게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모른다면 사람은 역시 자신을 그저 흔한 아비나 어미 중 한명이라고만 생각하기 매우 쉽다.
역시, 자식들은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람은 심지어 배우자나 자녀와 함께 있을 때마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그저 흔한 남편이나 아내로서, 혹은, 흔한 아비나 어미로서 말하거나 행동하기 매우 쉽다.
마치, 잠시 동안 남편이나 아내의 역할을, 아비나 어미의 역할을 한다는 듯이.
더구나 툭하면 ‘남들도 다 그렇던데 뭐’ 등으로 자신을 스스로 일반화하면서.
그래서 결혼이나 출산으로 인해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가 됐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사람은 스스로 흔한 사람이 되기 매우 쉽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래도 막연하게는 자신이 배우자나 자녀에게 절대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음은 알게 된다.
더구나 가끔씩 옆에서 가르쳐주는 사람들까지 있다 보니.
그러나 자신을 그저 천덕꾸러기라고만, 그저 흔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임을 감당하기 몹시 힘든 것이 현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생각지도 않았던 유산을 물려받는 등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이 좀처럼 자신의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듯이.
그렇다보니 오히려 자신의 절대적인 의미와 가치를 절대적인 권력이나 된다는 듯 악용하기 매우 쉬운데,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말과 행동은 모두 옳다고 우기는 등 자신은 배우자와 자녀에게 절대적인 권력자라도 된다는 듯 말하거나 행동하니.
따라서 자신이 주인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자신을 누구인지 모른다면, 즉, 자신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명확하게 모른다면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막연히 알고 있는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악용하기 매우 쉽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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