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어린 나도 그 누이를 무척이나 따랐으며, 이담에 크면 저런 누나 같은 예쁜 여인을 색시로 맞겠다고 맘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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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누가 파헤쳐 관을 열고 손에 낀 금가락지를 빼가 또 한 번의 소동이 났다. 지금이야 당사자가 좋으면 결혼하면 되지만, 그 때는 연애를 하면 가문의 망신이라며 절대용납을 안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지금 살아있다면 내 누이처럼 아들손자를 거느린 7순의 할머니가 되었겠지만, 내 어릴 적 너무나 큰 충격적인 사건으로 눈 한번 찔끔 감고 부부의 연을 맺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그곳 3거리를 지날 때마다 불쌍한 누이생각이 떠오른다.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기념한 것은 청춘남녀가 둘이 하나가 되라는 2-1을 상징 숫자로 정한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중매로 봄에 맞선을 보았는데 봄이 다 가고 낙엽이 우수수 다 떨어지는 가을도 가고 겨울이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연로한 부모님의 결혼 독촉에 여러 명의 신부 감과 선을 보았는데도 인연이 안 되었다. 처음 선을 보았던 그녀의 집에서 다시 한 번 선을 보자고 뜻하지 않은 연락이 왔다. 아마도 섣달을 안 넘기려는 심산 같았다.
머리에 포마드를 자르르 윤기 나게 바르고 회색점퍼에 새로 뽑은 번쩍번쩍한 자전거를 타고서 추위도 잊은 채 하얗게 눈 내린 시오리 비포장 길을 단숨에 달려갔다. 다 틀어진 줄 알았으나 두 번씩이나 보는 특별한 선 이라서 여간 신경이 써졌다.
처음 보았던 그 날 보다 친숙한 마음이 들었다. 상대측 부모님께서도 혼기가 꽉 찬 과년한 딸 결혼을 서둘렀고 나 역시 결혼을 독촉 받은 터라 양가 부모가 함께 모여 약혼사진을 찍은 지 한 달 만에 흰 눈이 살포시 내린 섣달그믐께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다.
그렇게 부부가 된지 올해로 41년째다. 그동안 궂은일과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용케도 잘 참아내면서 4남매를 낳고 키우며 가정을 꾸려갔다. 덧없이 세월은 흘러 아내의 검은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늘그막에 품안을 떠난 자식에 앞서 부부가 최고라는 실감과 나와 함께 잘 살아 준 아내에게 감사를 한다. 9년 후에는 조촐한 금혼식이라도 해야겠는데, 아내는 가끔씩 아프다면서 몸져눕기를 하니 내심 걱정이 된다.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 부부가 되었는데도 자식 낳기를 꺼려하고 이혼을 밥 먹듯 하고, 30을 훌쩍 혼기를 넘어서도 결혼이라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자기 한 몸 편하겠다고 독신주의자가 늘어만 간다니 세상 돌아가는 꼴이 별꼴이 반쪽이다.
청춘 남녀가 결혼하여 아이를 갖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부부라고 말 할 수가 없다. 국가에서 아이 낳기를 권장하는 까닭은 젊은 일꾼이 많아야 산업과 국력이 신장될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의 돈독한 매개체로 종족번식이 없으면 국가도 그 가문도 쇠퇴하기 마련이다.
우리 부모들은 먹을 것 입을 것 없는 가난과 싸우면서도 딸, 자식을 10여 명씩 낳아 잘도 키워 냈다. 5.16 군정 때 잘살아 보자며 흥부처럼 자식만 주렁주렁 걸림돌이 된다면서 산아제한을 한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며 예비군 훈련 시 속된말로 x알을 깐 정책은 출산율 저하를 예견 못한 실책이었다.
막사이상을 탄 새마을 운동의 대부 격인 故김용기 장로는 자식은 자산이라며 가난할수록 많이 낳아야 한다는 주장이 옳았다.
부부의 꽃은 자식이다. 개를 키운 지 실로 30여년 만에 발발이가 3마리의 새끼를 낳는 경사가 났다. 외손녀 하나에 손이 귀한 우리 집에 대를 이을 개구쟁이 손자가 태어날 징조인가보다.
오래될수록 보배라 했는데 그 첫째가 함께 늙어가는 아내며, 두 번째가 오래된 고전이며, 세 번째가 오래된 친구라고 했던가. 부부는 하늘에서 맺어준 특별한 인연인데 요즘 황혼이혼이라는 신조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조강지처로 만나 변함없이 서로 아끼며 사랑하며 한평생 같이 사는 한 쌍의 원앙처럼 반려자로 가는 길이 부부의 정도(定道)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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