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같이 사는 한 쌍의 원앙처럼”

송기옥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4-05-31 00: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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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부부가 된지 올해로 41년째’ [일요주간=송기옥 칼럼니스트] 사랑이란 슬픈 연가(戀歌)는 왜 부르느냐고 말 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추억은 새롭기 마련인가보다. 내 누이의 친구 N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하얀 저고리에 무릎이 보이는 검정 똠방 치마에 검은 단화를 신은 멋쟁이 누이로 활짝 웃을 땐 탐스럽고 잘 익은 복숭아처럼 양 볼이 탱탱하고 둥근 보름달 같은 얼굴에 하모니카를 잘 부는 활달한 아가씨로 소문이나 주위 총각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끔 우리 집에 놀러왔는데 어린 나도 그 누이를 무척이나 따랐으며, 이담에 크면 저런 누나 같은 예쁜 여인을 색시로 맞겠다고 맘먹었다.

ⓒNewsis
그런데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사건의 내막을 알고 보니 K라는 앞 동네 선배와 연애를 하였는데 누이의 부모가 결혼을 절대 반대하여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그녀의 시신을 사람이 많이 다니는 3거리 한복판에 칠흑 같은 한밤중에 평장을 하여 처녀귀신 되지 말라고 고이 묻어줬다.

그런데 누가 파헤쳐 관을 열고 손에 낀 금가락지를 빼가 또 한 번의 소동이 났다. 지금이야 당사자가 좋으면 결혼하면 되지만, 그 때는 연애를 하면 가문의 망신이라며 절대용납을 안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다.

지금 살아있다면 내 누이처럼 아들손자를 거느린 7순의 할머니가 되었겠지만, 내 어릴 적 너무나 큰 충격적인 사건으로 눈 한번 찔끔 감고 부부의 연을 맺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도 그곳 3거리를 지날 때마다 불쌍한 누이생각이 떠오른다.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기념한 것은 청춘남녀가 둘이 하나가 되라는 2-1을 상징 숫자로 정한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중매로 봄에 맞선을 보았는데 봄이 다 가고 낙엽이 우수수 다 떨어지는 가을도 가고 겨울이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연로한 부모님의 결혼 독촉에 여러 명의 신부 감과 선을 보았는데도 인연이 안 되었다. 처음 선을 보았던 그녀의 집에서 다시 한 번 선을 보자고 뜻하지 않은 연락이 왔다. 아마도 섣달을 안 넘기려는 심산 같았다.
머리에 포마드를 자르르 윤기 나게 바르고 회색점퍼에 새로 뽑은 번쩍번쩍한 자전거를 타고서 추위도 잊은 채 하얗게 눈 내린 시오리 비포장 길을 단숨에 달려갔다. 다 틀어진 줄 알았으나 두 번씩이나 보는 특별한 선 이라서 여간 신경이 써졌다.

처음 보았던 그 날 보다 친숙한 마음이 들었다. 상대측 부모님께서도 혼기가 꽉 찬 과년한 딸 결혼을 서둘렀고 나 역시 결혼을 독촉 받은 터라 양가 부모가 함께 모여 약혼사진을 찍은 지 한 달 만에 흰 눈이 살포시 내린 섣달그믐께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다.

그렇게 부부가 된지 올해로 41년째다. 그동안 궂은일과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용케도 잘 참아내면서 4남매를 낳고 키우며 가정을 꾸려갔다. 덧없이 세월은 흘러 아내의 검은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늘그막에 품안을 떠난 자식에 앞서 부부가 최고라는 실감과 나와 함께 잘 살아 준 아내에게 감사를 한다. 9년 후에는 조촐한 금혼식이라도 해야겠는데, 아내는 가끔씩 아프다면서 몸져눕기를 하니 내심 걱정이 된다.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 부부가 되었는데도 자식 낳기를 꺼려하고 이혼을 밥 먹듯 하고, 30을 훌쩍 혼기를 넘어서도 결혼이라는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자기 한 몸 편하겠다고 독신주의자가 늘어만 간다니 세상 돌아가는 꼴이 별꼴이 반쪽이다.

청춘 남녀가 결혼하여 아이를 갖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부부라고 말 할 수가 없다. 국가에서 아이 낳기를 권장하는 까닭은 젊은 일꾼이 많아야 산업과 국력이 신장될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의 돈독한 매개체로 종족번식이 없으면 국가도 그 가문도 쇠퇴하기 마련이다.

우리 부모들은 먹을 것 입을 것 없는 가난과 싸우면서도 딸, 자식을 10여 명씩 낳아 잘도 키워 냈다. 5.16 군정 때 잘살아 보자며 흥부처럼 자식만 주렁주렁 걸림돌이 된다면서 산아제한을 한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며 예비군 훈련 시 속된말로 x알을 깐 정책은 출산율 저하를 예견 못한 실책이었다.

막사이상을 탄 새마을 운동의 대부 격인 故김용기 장로는 자식은 자산이라며 가난할수록 많이 낳아야 한다는 주장이 옳았다.

부부의 꽃은 자식이다. 개를 키운 지 실로 30여년 만에 발발이가 3마리의 새끼를 낳는 경사가 났다. 외손녀 하나에 손이 귀한 우리 집에 대를 이을 개구쟁이 손자가 태어날 징조인가보다.

오래될수록 보배라 했는데 그 첫째가 함께 늙어가는 아내며, 두 번째가 오래된 고전이며, 세 번째가 오래된 친구라고 했던가. 부부는 하늘에서 맺어준 특별한 인연인데 요즘 황혼이혼이라는 신조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조강지처로 만나 변함없이 서로 아끼며 사랑하며 한평생 같이 사는 한 쌍의 원앙처럼 반려자로 가는 길이 부부의 정도(定道)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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