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베스틸 노동자 극단적 선택…가혹행위 파문

강현정 기자 / 기사승인 : 2022-01-25 11:27:09
  • -
  • +
  • 인쇄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 ‘맞다’…수사 기관, 증거 불충분
유족, 검찰에 재조사 요구…가해자 ‘정직’처분…솜방망이 징계 논란

 

▲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제강팀의 2012년 야유회 사진. 9명 중 2명만 옷을 입었고, 나머지는 알몸 상태다.

 

[일요주간 = 강현정 기자] 철강회사 세아베스틸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던 노동자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3년전 극단적 선택을 한 노동자 A씨(36)의 유서와 25분 분량의 영상 등이 유족과 매체 등을 통해 공개됐다.

 

해당 영상에는 A씨가 상사들에게 지속적으로 당했던 성추행과 괴롭힘이 구체적으로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다.

 

지난 24일 MBC보도에 따르면 세아베스틸 직원이었던 A씨는 2018년 11월25일 금강 하구 한 공터에 세워진 자신의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공장 앞 자취방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긴 지 3일 만이었다.

 

당시 함께 발견된 휴대전화에는 마지막 순간을 촬영한 25분 분량 영상과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유서가 있었다.

 

6년 전인 2012년 4월 계약직으로 입사했던 A씨는 정규직이 된 이후 승진까지 앞두고 있던 상태였다. 여기에는 상사들로부터 당했던 성추행과 괴롭힘의 구체적 기록이 담겼다.

 

특히 A씨가 입사한 지 두 달째였던 2012년 6월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제강팀 동료들과의 야유회 사진도 공개됐다. 해당 사진에는 2명만 옷을 입고 있고, A씨와 나머지 사원들은 발가벗은 채 가랑이만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A씨는 유서에서 단체 나체사진에 대해 “(옷을 입고 있던 남성 중 한 명인) B씨가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진”이라며 “회사 PC에 더 있을 테니 낱낱이 조사해서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적었다.

 

A씨는 또 입사 직후부터 B씨가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괴롭힘을 저질렀다고 지목했다. 그는 “입사한 달 B씨가 ‘문신이 있냐’고 물어봤다. 팬티만 입게 한 뒤 몸을 훑어보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수치심을 줬다”며 “찍히기 싫어서 얘기 못 했다. 한이 맺히고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A씨 유서에는 구체적 시기와 피해 사실도 적혔다. “2016년 12월10일 16시30분쯤 한 복집에서 볼 뽀뽀, 17시40분쯤 노래방 입구에서 볼 뽀뽀”라며 “그렇게 행동하는 게 너무 싫다”고도 했다.

 

B씨는 A씨가 2014년 무렵 뇌종양의 일종인 ‘청신경종양’으로 큰 수술을 받을 때도 면박을 줬다고 한다. 유서엔 “고함치듯 소리가 들려온다. 너 뇌종양이야?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왜 그렇게 여러 사람 있는 데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야만 하고, 위로는 못 할망정 상처를 주는지…”라고 적혔다.

 

작업할 때 소음이 심한 부서라 청력 저하로 힘들어하던 A씨가 부서를 바꿔 달라 해봤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야유회 사진에서 옷을 입고 있던 나머지 남성 C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C씨는) 왜 이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났냐. 성기 좀 그만 만지고 머리 좀 때리지 말라”며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쓰레기 같은 벌레 때문에 고통받지 말자”고 말했다.

 

A씨 유족은 매체를 통해 “얼마나 맺힌 응어리가 컸으면 안 좋은 기억들만 얘기하고 그런 선택을 했나 싶다”고 토로했다.

 

해당 사건과 관련 노무법인이 한 달간 관련 직원 15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A씨의 유서 내용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노무법인은 보고서를 통해 “가해자들에게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있다”는 이유로 B씨는 정직 3개월, C씨는 정직 2개월에 그쳤다. 이들은 정직이 끝난 뒤 지금도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관리책임이 있는 제강팀장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특히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사실을 부인하던 B씨는 A씨의 장례식에서 부하들에게 “관짝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잘하라”라고 모욕성 발언을 뱉기까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해 1월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맞다고 인정했고, 유족은 B씨와 C씨를 성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수사기관은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증거 불충분의 이유를 들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유족들은 검찰에 재조사를 해 달라며 항고장을 내고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강현정 기자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