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이은화 작가 시 읽기 84] 시인是認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6-09 13: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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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是認

이종구


당신 가슴에 큰 못을 박았지
잘 가라는 얘기처럼
잘 지내라는 얘기처럼

심장에 피어 떨리던 빨간 꽃을 보며
살아서 꿈꾸는 날이 봄날인 줄 알았지만
헛된 바람이나 설렘 때문이었어

살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죄가 되었어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되었지

태어난 새는 날아야 하고
꽂은 어디에서든
피어야 하는 것이라고
작은 돌멩이 같은 죄업들이 쌓여
가슴은 무거워지는데

깊은 통증 사이로
풀꽂들은 또 외로움으로 피어나고 있어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 시 감상 ) 풀꽃은 아무도 심지 않은 자리에서 핍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요. 이종구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풀꽃들은 또 외로움으로 피어”난다는 행이 떠올랐지요. 시인은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죄라고 말합니다. 잊지 못하는 일조차 죄가 된다고요. 사랑의 기억이 무겁다고 표현한 이 시처럼, 살면서 맺힌 말과 끝내 풀지 못한 화해는 모래처럼 흩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속 자갈처럼 단단해지지요. “작은 돌멩이 같은 죄업들”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온 날들의 퇴적층이 아닐까요.

시인의 꽃은 기쁨보다 외롭거나 통증이 깊어졌을 때 핍니다. 상실과 그리움을 밀어내지 않고 생의 한 자리에 오래 앉혀 두는 마음처럼요. 상처를 치료하는 언어가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인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한 생의 마침표로 기록하지요. 하지만 시인의 죽음은 그의 시들이 사람들 마음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풀꽃이 이제 우리 안에서 그리운 풀꽃으로 피어날 테니까요. 그래서 이 시의 끝 행은 시인의 부고보다 오래 남을 것입니다.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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