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시인의 작가 초대석 ]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 박한 시인이 던진 질문의 기록

이은화 작가 / 기사승인 : 2026-07-06 12:03:25
  • -
  • +
  • 인쇄
진 행: 이은화
대담자: 박 한
▲ 박 한 시인

 

 

박 한 시인. 성균관대학교 졸업. 2018 ‘지용신인문학상’, 2019 경기문화재단 유망작가 선정, 2024 제10회 《박영근작품상》, 2023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 출간.


Q. 선생님께서는 잦은 이사로 네 번이나 초등학교 전학을 다녔습니다. 이 상황이 선생님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요?

▶ 친구를 오래 사귈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새 학교에 가면 늘 새로운 친구들이 있어 교우관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어딜 가나 비슷한 공간과 놀이터. 운동장, 철봉, 미닫이문, 문구점, 그 앞에 오락기까지 모두 비슷비슷한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단독주택에서도 살아보고 사글셋방에서도 살아보고 아파트에서도 다 살아 봤지만 내적 심경에 큰 변화를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Q. 어린 시절 “왜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지?”라는 질문을 품으셨다고 했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품게 된 일화가 있을까요?

▶ 어른들은 왜 거짓말을 하지보다는 필요 없는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하는 모습이 제게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정적 일화로는 형과 다툼이 있은 후 어머니 아버지가 개입하실 때 “동생이니까 네가 참아.”라는 말이었습니다. ‘동생’이 인내의 이유가 되는 충분조건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된 것이죠. 그때부터 모든 존재와 활동, 생활에 ‘왜’라는 질문이 따라붙게 된 것 같습니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헌법에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가 있다고 적혀있는데 왜 두발 검사를 받아야 하는가. 내 머리카락은 내 신체가 아닌 것 때문인지 내가 아직 국민이 아닌 것인지? 이런 질문들이 학창 시절 끊임없이 이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Q. 그림과 영상과 음악으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져오던 중, 대학 철학 수업에서 만난 시인 선배가 “답이 아닌 새롭게 질문하는 방법”으로 시를 소개해 주었다고 하셨는데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 초반 질문하는 방식들은 꽤나 직접적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바로 물어보는 형식이었죠. “왜 그래야 해?”, “왜 그런 거야?” 이런 식이요. 그런데 시는 그렇지 않죠, 당시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인가 내 가슴 속을 치고 가는 것을 붙잡아 끝까지 몰고 가는 것이 바로 시다.”라고요. 이것은 선명하지도 그렇다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보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인 거죠.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상황과 상태 배경과 피안을 두루두루 살펴봅니다. 그것들을 서술하면서요. 그러다 보면 갑자기 잡아끄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문장부터 시가 되죠. 가끔 사람들은 시의 형식적인 면, 그리고 구조에 매몰되어 아직 시가 되지 않는 문장으로 시를 시작 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런 시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첫 문장부터 시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온몸으로 던지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시는 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과학이나 학문의 몫이죠. 제 몸짓과 언어, 태도를 사용해서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독자에게 체감하게 하고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하는 거죠. 예로 제가 쓴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늙은 술래의 노래」라는 시를 보면 “오랜 먼지와 기침은 놀이가 아냐, 고독이 너무 깊었을 뿐”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것은 얼핏 대답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질문입니다. 고독사라는 명명처럼 그들을 죽인 건 병도 노화도 아닌 고독이지 않을까? 이후 연에서 “난 사라질 거야”라는 화자의 태도 역시 문제의 해결점이 아니죠. 그저 독자를 제가 서 있는 질문의 자리에 함께 서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현실적인 문제해결을 내리는 것이 아닌 가장 인간적인 반응을 끌어내 그 독자가 관점의 확장과 관심의 영역을 요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마 이 질문을 접한 후에 독자의 태도와 감정은 이전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어르신들을 한 번 생각할 걸 두 번이 될 것이고, 또 그들이 지나갈 때 생각도 달라지겠죠. 시인은 갈등이 있는 곳을 가로지르는 사람입니다. 절대 어느 한쪽 편이 되거나 하는 산문과는 다르죠. 유일하게 시인이 편을 들어야 할 곳은 ‘생명’과 ‘사랑’이 있는 곳일 겁니다.

 

▲ ‘오월 문학제’ 자작시 낭독 장면.

 


Q. 처음 시를 쓴 뒤 혹독한 비평에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놓지 못했던 이유가 있다면요?

▶ 제가 쓴 시는 비록 혹평을 받았지만 함께 공부한 다른 분들의 좋은 시를 읽을 때 새로운 감각에 대한 발견은 신대륙을 도착한 것만큼 짜릿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이 세계 그리고 내 감각으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세계가 떡하니 앞에 새롭게 창조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더 실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도 저런 문장 저런 대지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었고 그것 자체가 제겐 탐험과도 같았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찾는 일은 인터넷 게임을 하는 것만큼 재미를 주었습니다.


Q.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 제 단점은 과작을 한다는 점입니다. 시를 한꺼번에 많이 쓰지 못합니다.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면 굉장히 오랜 시간 두고두고 곱씹으며 완성하죠. 2018년 등단 이후 5년이 지난 후에 첫 시집을 내놓게 된 이유입니다. 시집은 대체로 세월호 참사부터 여러 사회적 약자, 소시민의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시는 이태원 참사의 이야기이고요. 저는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예민합니다. 누군가 싸우고 있으면 그저 말려야 한다는 본능적 반응 때문에 친구들이 말린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저는 누군가 고통받고 있는 것을 잘 보지 못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그중 하나입니다. 전 국민이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천천히 수장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본 사건이니까요. 싸움이라면 당장 말렸겠지만 이 참사는 제게 엄청난 무력감과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죠. 예민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들에게 아마 같은 충격을 안겨 주었을 겁니다. 이 질문은 지금까지도 남아 아마 두 번째 시집에도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그동안 쓴 시들을 모아 책을 내려고 할 때 공교롭게도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저는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때 쓴 시가 이 시집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시집을 내고 그 해 ‘신동엽문학상’ 본선에 올랐다는 소식을 출판사로부터 들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전공하지 않아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문학상 본선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수상만큼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하며 조금은 제 글과 감각, 관점과 태도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졸작도 있습니다.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등단이 아닌 시집이 나왔을 때 비로소 진정한 시인이 된다고 말하던 선생님과 문우들의 이야기가 생각났고 그래서 제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책입니다.


Q. 2018년 ‘지용신인문학상’ 당선 이후 서점에 들렀을 때의 감정을 생생히 기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을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책을 읽기 위해 늘 찾았던 서점을 이제는 쓰는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달랐습니다. 뭔지 모를 자신감도 생기고 제 책도 이곳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감정이 더 고조되었던 것 같습니다.


Q. 박영근 시인은 노동 현장의 삶을 시로 담아 온 노동 시인입니다. 2024년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하셨을 때 먼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 감사하단 생각과 내 시가 읽히고 또 알아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박영근 시인은 저도 학도 시절 사숙했던 분이라 그분의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또 존숭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으로 된 상을 받게 된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마치 제가 그분의 시를 좇았다는 것을 안다는 듯 인정받는 느낌이었습니다.

 

▲ 시집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 출간 낭독회에서 독자들과 함께.



Q. 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진 북콘서트를 직접 기획하셨습니다. 시를 ‘읽히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것’으로 만들고 싶으셨던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 시가 산문화되면서 사람들, 독자로부터 멀어졌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회복할 방도는 딱히 없었습니다. 현재 음악은 문화면에서 최고의 소비력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음악의 장점을 찾던 중 음악은 청각을 자극하며 온몸에 리듬을 실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경험’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무엇보다 시와 음악은 원래 하나였다는 시원 또한 이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가사를 시처럼 써보기도 하고 시에 멜로디를 붙여 보기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뒤집힌 꽃잎’입니다. 이 시는 “파도에 꽃들”이란 노래로 나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Q.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들며 밴드 무대에도 섰습니다. 각각의 매체가 시인께 어떤 의미였나요?

▶ 각각이 저에겐 언어였습니다. 소통을 위한, 어린아이의 말은 무시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려 보여줬을 때 어른들은 한 번 더 봐주곤 했죠. 하지만 이후 영상과 음악이 더 효과적인 언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관련 있는 학교와 학과로 진학도 했습니다. 영상, 영화의 경우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만든 다큐멘터리는 많은 상을 받았고 대학 때 만든 단편 영화 또한 준수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영상은 종합예술이라고 할 만큼 대본, 콘티, 카메라, 조명, 연기, 음악, 편집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하는 분야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해내려면 상당한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때 저는 차비조차 없어 학교에서 제기동 자취방까지 걸어간 적도 있을 때입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계속했다면 잘할 수 있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음악은 또 다른 발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해서 마음도 편했습니다. 음악에 이응도 모른 채 시작했지만 즐거웠습니다. 사람들이 제가 쓴 가사를 함께 부르고 뛰어놀 때의 카타르시스는 정말 잊지 못합니다. 영상보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현실적 무게에 결국 잊혀 진 언어가 되었습니다.


Q. 해외 페스티벌에 초청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출연할 만큼 잘나가던 밴드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공중파 밴드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그 풍경 앞에서 음악 대신 시를 선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인디씬에 다시 돌아왔을 때 큰 포부와 희망을 품었습니다. 비록 한국 문화계 전체가 침체되는 시기였지만 그래도 새로운 팬들이 생기고 저 또한 성숙해진 실력으로 좋은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체기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사람들보다 계속 보던 사람과의 대면은 매너리즘과 지질증에 빠지게 했습니다. 나이는 점점 차고 부모님도 연로해지시는 가운데 결정해야 했습니다. 밴드를 그만두기로. 이제 제게 남은 건 시 뿐이었습니다. 시는 생각과 펜만 있다면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가 활자예술의 정수라는 제 신념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 유튜브 ‘다독다독’ 출연 장면.

 


Q. “예술의 정점에는 시가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기계적이고 빈틈없는 세계에서 시가 “유일한 숨골”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 흔히 시, 또는 예술을 신비주의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 과학의 발전이 이런 경시적 태도를 낳았죠. 19세기 사람들도 그럴 줄만 알았습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다. “신은 죽었고 예술은 종언했다.”라는 레토릭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현재까지 살아남았고 예술은 오히려 지위가 상승했습니다. 과학은 무의미의 학문이거든요. 과학을 발전시켜 우주를 가고 블랙홀을 발견하고 양자를 밝혀내도 그곳에는 물리 법칙 말고는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엔트로피 확산을 향한 움직임뿐. 실질적 삶에 의미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술과 종교가 사라지지 않은 겁니다. 그 ‘의미’를 설명해 주기 때문이죠. 과학은 “How” 즉, ‘어떻게?’에 대한 답변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술과 종교는 “Why”를 만들어 주죠. 바로 이 점에서 우리에게 삶의 숨골이 되는 것입니다. 반복적이고 기계적 일상에서 작은 차이를 찾아 주고 삶의 이유를 부여해 주는 예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피를 흐르게 만든다는 점에서 공기와도 같은 것 같습니다.


Q. 끝으로 지금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첫 시집을 낼 때 “부모가 된 느낌”이라고 하셨는데, 다음 시집에서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 부디 여러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시는 엄청난 의미의 함축입니다. 그러므로 일독으로는 그것을 다 채집할 수 없습니다. 여러 번 읽다 보면 처음 읽었을 때와 다른 단어가 보이고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이데거는 좋은 시는 절대 언어와 의미를 쓸데없이 소모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렵겠지만 시 속에 담긴 모든 의미와 공간, 세계를 빠짐없이 맛볼 수 있는 재독을 권합니다.


* 그림에서 영상으로, 음악에서 다시 시로, 박한 시인의 시를 찾는 여정을 들었습니다. 답이 아닌 질문을 건네는 『기침이 나지 않는 저녁』, 이 물음 앞에 잠시 마음을 내어 함께 서 보시면 어떨까요? 선생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끝으로 독자와 나누고 싶은 시 한 편 부탁드리며 이만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폭죽1


초저녁, 별이 불꽃을 낳는 소리
놀란 바다는 걸음을 뒤로 물린 채
밤이 이렇게 반짝여선 안 된다며
별들을 다그친다
능선 하나둘 지워지고
하얀 발들이 파도를 신었다 벗으며
건너오는 바다
모래 덮인 달빛 위에
나는 구두를 벗어 섬처럼 눕는다
새들은 어떻게 번지지 않고 저물까
파도 소리에 불을 붙이는,
이건 불빛을 털어내는 나만의 기술
하늘이 잘게 부서진다
해변이 검게 그을린다

 

 

 

▲ 이은화 작가

* 이은화 서울예술대학 졸업.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있음. 일요주간 문화예술 전문 주필위원.





일요주간 / 이은화 작가 cactus6812@daum.net 

 

'시민과 공감하는 언론 일요주간에 제보하시면 뉴스가 됩니다'

▷ [전화] 02–862-1888

▷ [메일] ilyoweekly@daum.net

[저작권자ⓒ 일요주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댓글 0

댓글쓰기
  • 이 름
  • 비밀번호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많이 본 기사